1

 

5) 력사적인 골계가들의 이야기

 

  

력사적으로는 말재주가 있는 유명한 재담가나 익살군을 골계가라고 하였다.

주로 궁전안에서 왕을 가까이 하고 보좌하는 신하들이나 재담군들이 왕에게 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골계》라고 하였으며 그런 갖가지 익살스러운 이야기를 묶은것을 《골계전》이라고 하였다.

궁중의 재담가, 익살군으로서는 임금이 사랑하는 희극배우나 악사도 있었으며 왕을 가까이에서 직접 보좌하는 측근신하들도 적지 않았다.

궁중의 재담가, 측근신하들뿐아니라 지방의 관청에도 관리이면서 재담가, 익살군으로 소문난 인물들이 적지 않았다.

이것은 앞에서 본 재상 리항복과 같이 당시 높은 급의 관리와 지방관료들속에도 해학의 명수, 재담가, 익살군들이 적지 않았다는것을 말하여준다.

그속에는 윤통과 같이 과거를 본 문인출신으로서 벼슬길에는 나서지 않고 각 고을로 돌아다니며 익살을 부리고 이야기도 잘하여 재담군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골계가들의 이야기는 그 실체가 제때에 서사화되지 못해 자취를 감추었거나 같은 류의 이야기에 포섭되여 개별적인물의 소산임을 알수 없게 된것이 적지 않다.

따라서 력사적인 골계가, 익살군에 대한 이야기는 현재까지 전하여오는 문집들에 고착된 이야기나 골계전의 이야기중에서 그 재담적인 요소가 풍부하고 교훈성을 주는 이야기들을 따로 선택하여 미약하게나마 취급하려고 한다.

 

2

좋은 제안

 

옛날 한 임금이 하도 심심하였던지 교외에 큰 유원지를 꾸리고 산짐승도 놓아길러 사냥터로 할 생각을 하였다.

왕의 구상대로 교외 백리둘레로 유원지를 꾸리고 산짐승을 서식하게 하려면 그 둘레안에 있는 백성들의 집을 다 옮겨야 하므로 매우 난감한 문제였지만 임금의 령인지라 감히 그 누구도 그 제안에 대하여 가타부타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처럼 엄청난 계획을 실현할수 없어 령의정이하 큰 대감들도 침묵속에 눈치만 보고있었다.

이러한 때 조정의 한다하는 대감들이 왕의 제안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악사출신의 측근신하가 입을 열었다.

《참으로 좋은 일인줄 아옵니다. 그 넓은 둘레안에 많은 짐승들을 길러두었다가 외적이 쳐들어오면 사슴들을 앞세워 뿔로 받게 하면 일거량득이니 문제없을것 같습니다.》

임금은 그 소리를 듣고 자기의 계획안이 얼마나 지나치고 주관적이였으면 대감들은 침묵하고 악사출신의 측근신하가 저렇듯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하겠는가고 생각하면서 그 계획을 취소하지 않을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분별없는 임금이 죽고 그의 아들인 왕세자가 새로 임금자리에 올랐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왕궁과 도성을 돌아보고는 이번에는 왕궁주변의 성벽에 색칠을 하라는 어명을 내리였다. 그것도 다를바 없이 임금의 위상을 높여보자는 심산이였다.

이번에도 여러 대감들은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키였다.

그러자 전 왕때부터 임금을 가까이 모시고있던 그 악사출신의 신하가 비위좋게 입을 열었다.

《참, 임금님께서 좋은 생각을 하시였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신이 그렇게 하도록 청할 생각이였습니다. 성벽을 번들번들 칠해놓으면 돈을 물쓰듯 하는 나라처럼 보이니 임금님의 위상이 자연히 높아질것이 아니옵니까? 더구나 도적놈들이 달려들어도 미끄러져 올라오지도 못할것이니 그것 또한 얼마나 좋은 생각입니까?》

그제야 왕은 신하가 하는 말이 결국은 자기의 허례허식을 비판하는것이라는것을 깨닫고 자기의 어명을 철회하였다고 한다.

설화는 악사출신 측근인물의 능란한 해학솜씨를 잘 보여줄뿐아니라 그 비판대상인 왕의 어리석음을 풍자적으로 잘 드러내보이고있다.

 

 

3

임금의 례로 지냄이 어떠한가

 

옛날 한 임금이 자기가 타고 다니는 말을 극진히 사랑하였다.

이따금 타고 다니는 말이지만 상감마마가 타고 다니는 말은 장수들이 타고 다니는 군마와 달리 왕궁에서도 최상의 대우를 받아야 했다.

어느날 임금은 마구간을 돌아보다가 자기가 타고 다니는 말이 일부 대감들이 타고 다니는 말과는 달리 별실에 매여있기에 마사원에게 무엇을 먹이는가고 물어보았다. 마사원은 별다른것이 없이 그저 여물에다 콩을 좀더 섞어먹인다고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아무래도 말한테도 엄연하게 등급차이를 두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다음날 마사를 맡아보는 관리에게 자신의 마구간은 화려하게 장식도 하고 안장은 물론이고 말장식도 비단으로 하며 여물에 콩은 물론 대추와 마른고기도 섞어먹이라고 어명을 내리였다.

이렇게 말도 임금과 같이 궁중안에 박혀있으면서 놀고먹기만 하니 살이 피둥피둥 쪄서 몸이 불어날대로 불어났는데 밖에 나가 달려보는 일은 별로 없는지라 나중에는 병들어죽고말았다.

왕은 별로 타보지도 못하고 애용하던 말이 죽은지라 장사를 지내되 대신의 례대로 하라고 어명을 내리였다. 그리고는 자기가 애용하던 말의 《장례》를 치르는 일과 관련하여 구구히 간하려는 자들은 무사치 못할것이라고 못박기까지 하였다.

그러자 내관들은 물론이고 큰 대감들까지도 말의 《장례》를 잘 치르어야 하겠다고 서둘렀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고있던 신하 한사람이 임금앞에 급히 꿇어엎드리면서 대성통곡하며 울음섞인 목소리로 아뢰였다.

《대왕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던 말인데 무엇이 아까울것이 있겠습니까? 우리 나라의 위세가 당당한데 대신의 례로 장사를 치르는것은 너무나 초라하오니 바라옵건대 임금의 례로 장사를 지내도록 하여주옵소서.》

왕이 그 소리를 듣고는 《임금의 례로 장사를 지낸다는것이 어떻게 한다는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신하가 여쭙기를 《그것은 백옥을 깎아 다듬어 널을 하고 무늬좋은 향나무로 바깥널을 만든 다음 군사를 풀고 백성을 동원하여 릉을 쌓게 하며 각국의 조의사신들을 불러들여 대왕께서 말을 귀중히 여기신다는것을 만천하사람들이 알도록 해야 할줄 아옵니다.》 하였다.

왕은 그 신하가 간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자기가 내린 령이 잘못된것임을 알고 어명을 거두도록 하였다.

아무리 말이 왕궁의 귀물인들 이런 제사례법과 례식이 세상에 또 어데 있단 말인가.

짐승도 가려보지 못하고 대신의 례로 장사를 지내라고 한것이 결국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왕으로서는 얼굴이 뜨거워 더 할 소리가 없었다. 그래서 자기가 내린 령이 왕궁밖에 멀리 퍼지지 않도록 단속하라고 하고는 다시는 그 어떤 령도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설화는 왕을 골려주는 측근신하의 해학적인 익살을 통하여 어리석고 허례허식을 좋아하는 봉건통치배들을 비판하고있다.

 

 

 

4

임금을 《감동》시킨 대신

 

옛날 한 임금에게 어릴 때의 유모 최씨가 있었다.

왕은 어릴적 젖먹던 일을 생각해서였던지 그 유모를 친근감을 가지고 대해주었으며 그의 소원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었을뿐아니라 《큰 유모》라고 우대하여 불러주기까지 하였다.

그러다나니 유모는 왕궁의 측근신하들과도 잘 어울려 임금의 보살핌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인지 하찮은 유모의 세력이 점점 크게 번져져 그 집의 아들과 손자 지어는 종들까지도 국법은 안중에도 없이 제 마음대로 놀아치고 행패질을 일삼았다.

남의 집 좋은 땅이나 가보까지도 마음에 들면 무조건 빼앗아냈고 큰길로 지나가는 좋은 수레가 있으면 그것도 종을 시켜 자기의 집으로 끌어갔다.

그럴 때마다 피해자들이 관청에 고소하여 그의 비행이 대궐에까지 알려지게 되였다.

그러나 임금이 보살피는 유모라 감히 법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가 련속 그의 비행이 우심하게 제기되는지라 할수없이 임금에게 상소하여 유모의 집을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시골로 옮기기로 하였다.

임금도 별수없어 승인하고말았다.

왕을 젖먹여 키운 턱을 대고 지금껏 나라의 대감 못지 않게 권세를 쓰다가 오늘은 정배가는 신세나 다름없이 된 유모는 마지막으로 임금과 작별인사라도 하고싶어 그간 자기와 자별하게 지내던 대신을 찾아가 부탁하였다.

유모가 눈물이 글썽하여 임금을 뵙게 해달라고 하소연하자 그를 측은하게 여긴 대신은 《알았소. 큰 유모! 내 시키는대로 꼭 하시오. 임금을 뵈옵고 돌아서 물러갈 때 자주 뒤를 돌아보시오. 그러면 무슨 좋은 수가 생길지 알겠소.》라고 귀띔해주었다.

다음날 그의 안내로 임금을 만난 유모는 작별인사를 올리고 차마 떠나기 아쉬운듯 자꾸 뒤를 돌아보며 물러갔다.

그것을 바라보던 신하가 이미 생각한대로 큰소리로 꾸짖었다.

《이 분수없는 로파야. 임금님께서 지금도 잊지 않고 로파의 젖을 요구하실줄 아느냐. 왜 자꾸만 돌아다보면서 민망스레 노느냐. 임금님은 너를 잊은지 오래다!》

그러자 큰 유모를 지켜보고있던 임금은 갑자기 어릴 때 유모의 품에 안겨 늦도록 젖을 먹던 추억이 되살아나 가슴이 쓰리였던지 《그만 돌아가 기다리게 하라!》고 령을 내렸다.

대신은 자기의 계책이 성공하였다는것을 알았다.

다음날 아니나다를가 유모를 제 집에서 늘그막까지 편히 살게 하라는 왕의 어지가 내렸다.

결국 대신의 익살스러운 《욕설》이 왕의 추억을 건드려 사태는 뒤집혀지고말았다.

설화는 보는바와 같이 임금을 등대고 하찮은 유모까지 세도를 쓰며 재산을 제 마음대로 로략질하는 봉건적인 페풍을 풍자비판하면서 어리석은 왕이 측근신하의 계책에 넘어가 옳고그른것도 제대로 가려보지 못하는 이야기를 은유적인 해학으로 보여주고있다.

 

 

5

고을원에게서 피물을 앗아내다

 

윤통이 경상도의 한 고을에 이르러 높은 관리들만 묵어가는 처소에 들었다.

그는 과거를 보았지만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도내 각지를 돌아다니며 관리들의 부정한 사실과 그릇된 처사를 알아내여 상소하거나 고발함으로써 고을원은 물론 아전들도 그를 무서워하였다. 특히 부정한 사실을 알아내거나 잡아쥐면 그의 능숙한 언변과 익살로 하여 한다하는 법관도 나중에는 빌붙거나 항복하고말았다. 그래서 그 누구도 그와 맞다들기를 두려워하고 그의 청이면 들어주거나 얼려서 보내려고 하였다.

이날도 무더운 여름철이라 저녁대접을 받고 마당가에 나와 기생과 한담하는데 한 고을아전이 지나가면서 기생에게 눈짓을 하는것이였다.

윤통은 그들의 관계가 각별하다는것을 직감하고 쉬겠다고 하고는 방에 들어가 코를 골면서 자는척 하였다.

기생은 곁에서 한참동안 지켜보다가 손님이 곤히 잠든줄 알고 아전에게로 달려갔다.

둘은 손을 다정히 잡고 보리짚이 쌓여있는 마당가에 이르러 주위를 살펴보다가 하는 말이 《달빛도 령롱하고 마음도 춘정이라 볼 사람도 없는데 춤이나 춥시다.》 하고는 두사람이 마주서서 춤을 추었다.

윤통이 기생의 뒤를 슬그머니 좇아 마당가에 이르니 기생과 아전이 손을 맞잡고 둥실둥실 춤을 추며 돌아가는것이였다.

그래서 두사람의 춤판에 뛰여들어 자기도 그들을 따라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제야 아전이 《우리 둘이 즐겁게 노는데 너는 누구냐?》 하고 물었다.

윤통은 《나는 저 방에서 자던 손님인데 깨여나보니 시중군기생이 없어졌기에 여기에 온것이요.》라고 하였다.

그러자 아전은 고을에 사찰을 내려온 관리인줄 알고 황송해하면서 용서를 빌었다.

윤통은 아전의 아래우를 살펴보고나서 《네가 지금 관가에서 무슨 일을 맡아보느뇨?》 하고 물었다.

아전은 허리를 굽혀보이며 《공방에서 피물을 맡아보고있사옵니다.》 하였다.

윤통은 재차 가죽이 모두 몇장 있느냐고 물었다.

아전은 사실대로 《사슴가죽이 일곱장이요, 여우가죽이 수십장 되옵니다.》라고 하였다.

윤통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너의 원님을 보고 피물을 청할 때 너는 있는대로 다 내놓아라.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내 이 일을 전부 발설하여 경을 치게 할터이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다음날 윤통은 원과 대청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지금 신을 지으려니 사슴가죽도 없고 가죽옷을 만들려니 여우털도 없소. 피물 몇장만 주시구려.》라고 하였다.

원은 부정할수는 없고 그렇다고 몇장 안되는 가죽을 다 내놓을수는 없어 《우리 고을에 피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어데서 들었소? 있기는 있어도 몇장이 안되겠는데…》 하고 얼버무리였다. 그리고는 곧 아전을 불러 피물을 내놓아보라고 하였다.

아전은 윤통과 한 약속이 있는지라 피물을 있는대로 다 내놓았다.

원은 그것을 보고 아연실색하였으나 윤통은 기뻐하며 피물을 몽땅 싸안고 돌아갔다.

원은 분을 삭이지 못하여 아전을 불러세워놓고는 머저리같이 그것을 다 내놓았다고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설화는 보는바와 같이 윤통이 고을원과 그 아전들을 보기 좋게 골려주고 그들이 감추어둔 피물까지 앗아가는 이야기를 통쾌하게 펼쳐보이고있다.

 

 

6

삼촌을 골려준 윤통

 

윤통은 청년기에 그의 삼촌과 함께 말을 타고 자주 서울로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삼촌은 무식한데다가 장사군성미가 있어 남을 얼려넘기거나 물건이나 먹을것이 생기면 자기만 위하고 친척이나 조카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였다.

하루는 윤통이 삼촌과 함께 서울로 말을 타고 갔는데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예상외로 여러날을 지체하다나니 준비해가지고 간 말먹이감이 거의 떨어져갔다.

그래서 어느날 저녁 윤통이 말먹이칸에 들어가 여물을 살펴보는데 자기 말은 여물통밖의 외기둥에 매여있고 삼촌의 말은 여물통이 있는 기둥에 매여져 여물을 먹고있었다.

윤통은 삼촌이 말먹이가 다 떨어져가니 자기 말만 먹일 작정으로 하는 고약한짓이라는것을 알았지만 삼촌과는 싸울수가 없어 말을 그 자리에서 바꾸어매놓았다.

그런데 말 표적이 밤에도 뚜렷이 나타나 인차 삼촌이 알아차릴것 같았다. 그것은 삼촌의 말 이마에는 큰 흰 반점이 나있으나 자기 말은 온통 검은 털뿐이였던것이다.

그래서 흰종이를 따서 자기 말 이마에 붙여놓고 검은 종이를 따다가 삼촌의 말 이마에 붙여놓았다. 그러니 낮에는 일보러 다니다가 저녁늦게야 돌아오는 삼촌은 자기 《말》이 여물통 기둥에 매여있는것을 보고 마음을 놓군 하였다. 그러다나니 삼촌은 자기 말이 아니라 조카의 말을 열성스레 먹인것으로 되였다.

이렇게 그럭저럭 며칠이 지나 이젠 볼일도 다 보고 서울을 떠날 날이 왔다.

윤통은 아침일찍 마구간에 들어가 말의 이마에 붙인 종이를 다 떼버리고 말도 처음과 같이 바꾸어매놓았다.

아침식사를 마친 다음 두사람은 마구간에 들어가 각각 자기 말을 끌어내 타려고 하였다.

삼촌이 자기 말을 타려고 하자 말은 비칠거리며 제대로 발을 옮겨딛지도 못하였다.

조카의 말도 그러한가 살펴보니 그 말은 완전히 딴판이였다. 그래서 혹시나 말이 바뀌지 않았나 해서 이마를 살펴보니 흰점이 있는 자기 말이 틀림없었다.

그러자 윤통은 《삼촌이 말먹이가 적다고 걱정하더니 내 말만 여물을 먹이고 삼촌의 말은 여물을 적게 먹인게 아니예요?》 하고 시침을 뚝 따며 물었다.

삼촌은 《아니야. 여물은 좀 적게 먹였어도 이렇게야 비칠거릴수 있나.》 하면서 윤통을 흘겨보았다.

윤통은 《말은 별일없는데 혹시 삼촌의 마음이 흔들려 말도 비칠거려보이는게 아니예요? 정 못 타시겠다면 내 말을 같이 타고 그 말은 끌고 갑시다구려.》 하고 빈정댔다.

그제야 삼촌은 익살스러운 조카녀석에게 속은줄 알고 《네 말을 타면 이 삼촌이 조카에게 끌려다닌다고 말들을 할터이니 지금은 이렇게 가다가 마을에 들어설 때 바꾸어타고 들어가자꾸나!》 하고 사정하였다고 한다.

이 설화에서는 자기 삼촌의 그릇된 처사를 숨은 해학으로 교훈을 찾게 한 윤통이 청년기부터 웃음과 익살로 이름난 사람이였다는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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