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대감의 익살과 해학

 

2

《그런 희한한 구경거리가 어데 있겠소!》

 

어느날 아침이였다.

일찌기 비국(리조때 봉건국가의 최고통치기구의 하나인 비변사의 략칭으로서 군사, 정치, 외교, 재정 및 그밖의 중요문제들을 관할하였다.)회의가 있어 여러 재상들이 다 모였는데 유독 리항복만이 나타나지 않았다.

조금 기다리니 그제야 리항복이 관복자락을 너펄거리며 들어섰다.

《이거 미안하우.》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싱글거리는품이 모임에 늦은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눈치였다.

누군가 항복의 웃는 모양이 비위에 거슬렸던지 《아니, 왜 이리 늦었소?》 하고 핀잔조로 물었다.

항복은 대답에 앞서 웃음부터 내뿜었다.

《하하하, 내 그만 희한한 구경을 하다가 늦었소구려.》

그러자 한 재상이 흥미가 있었던지 무슨 구경거리였는가고 다시 물었다.

리항복은 말하기를 《글쎄 세상에 그렇게 희한한 구경거리가 어디 있겠소. 중과 고자녀석이 서로 잡고 싸움판이 벌어졌는데 중은 고자녀석의 불주머니를 잡고 고자녀석은 중의 상투를 잡고 서로 끌고당기며 길바닥에서 싸움질하니 구경군들이 길을 메웠다오. 정말 처음 보는 대단한 구경거리였지!》 하고 호탕하게 웃는것이였다.

그 바람에 여러 재상들이 허리가 끊어지게 따라웃었다.

그런데 약삭바른 한 재상이 그 소리를 듣고 《대감께서 그런 허황한 말씀도 하십니까? 아니, 중의 머리에 상투가 어디 있으며 고자놈에게 불주머니는 어데 있다고 그런 구경을 하셨단 말입니까?》 하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리항복은 그의 물음이 신통한지라 《그러게 하는 말이요. 글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것만 같더라니까. 내 말이 허황하다고들 하는데 그럼 대감들은 아무런 의의도 없는 이 모임에서 무슨 의논할 일이 있다구 이렇게 늘 말씨름이시우?》 하고 말하였다.

그의 말에 여러 재상들은 얼굴들이 붉어져 아무 말도 못하였다고 한다.

 

 

3

다리병에는 《란리탕》이 직효

 

간악한 왜놈사무라이들은 임진년(1592년)에 대군을 일으켜 우리 나라에 쳐들어왔다.

방비를 일상적으로 갖추고있지 못하였던 관군은 4월 13일 부산에서 패전하고 그로부터 보름도 채 되기 전인 24일에는 충주에서 패전하였다.

전쟁의 위험은 서울에 이르게 되였다. 그러나 서울을 수비하는 관군도 왜적을 막아낼 힘이 없었다.

그리하여 조종에서는 선조왕의 참석밑에 어전회의가 열리였는데 당면하게는 임금의 파천(피난)문제가 거론되였다. 그중에서도 행궁을 강계방향으로 하는가 아니면 의주쪽으로 하는가 하는것이 결정되지 못하여 문무백관들이 말씨름만 하고있었다.

이때 리항복이 의주로 향하여 떠나야 할 타당성을 자세히 아뢰였다.

선조는 원래 리항복의 충성심과 뛰여난 재주를 겸비한 높은 식견을 깊이 믿고있었던터라 그의 제의를 수락하게 되여 겨우 파천론의가 일단 매듭을 지을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날 밤에 어지가 내렸다.

이렇게 날이 밝기 전 어두운 새벽에 왕을 호종하여 문무백관들이 길을 떠났다. 길을 떠난지 얼마 안되여 비가 억수로 퍼붓고 바람까지 세차게 불었다. 임금이하 문무백관들은 을씨년스러운 날씨에다 기갈까지 겹치다나니 거의 절망상태에 빠지게 되였다.

이런 속에서 그럭저럭 혜음령에 당도하여 고개마루에 오르니 마침 비바람도 멎어 휴식을 하게 되였다. 한데 모두가 락심천만하여 못박힌 사람들처럼 한자리에 서서 더는 움직일 생각들을 못하고 멍청해있었다.

이때 머리를 숙이고 곰곰히 무엇인가 생각하던 리항복이 문득 주위의 모든 얼굴들을 한눈으로 뜯어보더니 무엇인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듯 빙그레 웃고 소리쳤다.

《여보게 양동지(동지는 벼슬이름), 빨리 여기 좀 오게. 긴히 할 말이 있어 그러네.》

명종왕때부터 내의원 전의(궁궐안의 약국주임)로 있는 양례수였다.

그는 의술이 고명하고 궁중안의 신임과 민간의 칭송도 웬간해서 그런지 성미가 거만하고 괴벽하여 궁중에서 부르면 고분고분 응하지만 그밖에는 그 누가 청해도 《다리병이 생겨 못 가겠다.》라는 한마디로 거절하기가 일쑤였다.

양례수는 이번 란리에 파천하는 임금의 시의로 따라가게 되였지만 그에게는 타고 가야 할 한필의 말도 차례지지 않았다.

그러느라니 진흙탕에 딩굴고 물웅뎅이에 빠져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였다.

그러던차에 멀리서 자기의 직계상관인 리항복이 부르는것을 본 양례수는 《필경 임금의 신상에 무슨 이상이 생긴 모양이다.》 하고 제나름으로 추측을 하며 허겁지겁 달려왔다.

리항복은 《앉은뱅이》가 줄달음쳐 뛰여온것을 눈여겨보고나서 《아니, 란리통인들 임금의 신상에야 무슨 병고가 있겠나. 내가 자네 병을 근심하여 좋은 약방문이 생각나서 알려주려고 불렀네. 지금 자네가 <앉은뱅이>를 면하고 뛰여오는것을 보니 병은 벌써 다 나은것 같구만. 그러니 내 약방문이 이젠 소용없게 되였소구려!》 하고 큰소리로 웃어댔다.

그러자 양례수가 마뜩지 않아하는 말이 《그럼 이 양례수한테 약방문을 가르쳐줄 의원도 있습니까? 어서 무슨 처방인지 말씀이나 하시구려.》 하는것이였다.

그러자 리항복은 《그래, 자네의 다리병에는 <란리탕>이 직효일것 같은데 그 약삭바른 왜놈들이 벌써 완치시켜놓았으니 내 공로가 놈들에게 빼앗긴셈이지. 그러니 할 말이 없게 되였구려. 하하하.》

두사람이 주고받는 소리를 듣고있던 상감과 중전, 후궁, 왕자를 비롯해서 령의정, 참판, 무예청별감, 사령, 구종에 이르기까지 양례수의 평시에 거만하고 안하무인으로 놀던 꼬락서니가 아니꼬왔던터이라 일시에 깨고소한 웃음보를 터치였다.

사람이란 아무리 화가 치밀거나 곤경에 처했다가도 우연히 한바탕 웃고나면 저절로 화도 풀리고 이제껏 겪은 곤경도 잊어버리기마련이다.

설화는 보는바와 같이 어려운 파천길에서 있은 간단한 생활일사를 통하여 리항복의 해학적기질을 충분히 엿볼수 있게 한다.

 

 

4

누가 먼저 죽어야 하는가

 

임금의 파천행차가 가산에 도착했을 때였다.

지금껏 지나는 곳마다 그 지방의 관원과 아전들은 모두 달아나 임금도 끼니를 이을길이 없어 하루에도 한두끼씩 건늬는것이 보통이였다.

그런데 가산에 도착해보니 이 고을에서도 지방관리들이 란리통에 모두 도망쳐버렸으니 맞아줄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한 백성이 임금님께 올리라고 밥상을 차려왔다. 거기에는 무둑한 조밥 두그릇과 갓 잡은 닭으로 끓인 큰 국그릇 두개가 놓여있었다.

문간방에 있던 한음 리덕형이 상을 받아가지고 황망히 임금한테 들어가려고 하였다.

그때 문서를 보다가 그것을 본 백사 리항복이 넌지시 한마디 건네였다.

《상감께서야 좀 굶으셔도 별탈이 없으시지만 우리들은 배가 고프면 일을 제대로 할수 없지 않나. 자네가 먼저 좀 들게나. 나도 이 문서를 다 쓰고는 좀 덜어먹겠네.》

그 소리를 들은 리덕형이 《무슨 무엄한 소릴, 우리가 먼저 먹다니… 자네 지금 제 정신인가?》 하고 펄쩍 뛰는것이였다.

리항복은 그러는 리덕형을 보고 《그렇게 성낼것까지야 있나. 어쨌든 덜어먹으라니까.》 하고 그냥 고집을 세웠다.

리항복의 고집 또한 여간 아니라는것을 잘 아는 리덕형은 밥과 국을 조금 덜어먹고야말았다. 그것을 지켜보고있던 리항복은 한음이 아무 탈 없는것을 보고서야 내시를 불러 상을 들리고 한음더러 임금께 아뢰라고 하였다.

그래서 한음은 임금에게 방금전에 순박한 촌백성이 정성을 다해 수라를 가져왔다고 아뢰이고 급히 물러나왔다.

그러나 리항복의 고집에 못 견디여 임금보다 먼저 자기가 수라를 덜어먹은것이 너무도 무엄하고 불손한것 같아 여간 불안하지 않았다.

얼마후 임금이 식사를 마치고난 밥상이 나와서 남은 조밥과 닭고기국을 여러 사람들이 조금씩 나누어먹었다.

이때 리항복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여보게 한음, 아직도 자넨 내 속심을 깨닫지 못하겠나? 그래 지금이 어느때이기에 밖에서 들어온 음식을 함부로 상감에게 올린단 말인가. 만약 독물이 섞인 음식이였다면 우리 목 백개를 베여바친들 그 죄를 씻을수 있단 말인가.》 하고 엄하게 꾸짖는것이였다.

그러자 리덕형이 《그렇다면 자넨 어째서 그걸 날더러 먹으라고 하였나? 그럼 자넨 날 죽으라고 그랬단 말인가. 너무한걸…》 하고 섭섭해서 말하였다.

항복이 《아직도 가늠이 안 가나. 독물이 들어있는 음식이면 누가 먼저 먹고 죽어야 하는가? 자네가 먹고 일없으면 좋은 일이고 그렇지 않다면 일이 어떻게 번질줄도 모르고 물덤벙술덤벙하는 자네와 그걸 알고 시험하는 나와 그래 누가 먼저 죽어야 하는것쯤이야 알아야 할게 아닌가.》 하고 웃음을 터뜨리였다.

그 소리에 한음은 크게 깨닫는바가 있어서 《자넨 과연 내 선생이 틀림없네. 내가 먼저 죽어야 하고말고.》 하였다고 한다.

설화는 보는바와 같이 전쟁상황에서 한 농군이 차려온 밥상을 놓고 이야기의 계기가 발단되지만 관리들이 자기의 직분에 맞게 모든 일을 엄정하게 처리할줄 알아야 한다는것을 교훈적으로 시사해주고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