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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량반을 골려주다
말 못할 《량반》
정만서가 유람을 다니다가 서울로 가는 길에 있은 일이라고 한다. 그가 어느 한 산길에 이르니 웬 젊은이가 소를 몰고 가고있었다. 그것을 본 정만서는 고개를 넘기 힘든지라 우정 다리를 절며 앞에 가는 소몰이군 젊은이를 소리쳐불렀다. 《여보시오 젊은이, 내가 다리를 엎질러 고개길을 넘기 어려운데 그 소를 잠간 탈수 없을가? 이 산길만 넘겨주게나.》 젊은이는 량반행색을 한 행객이 다리를 절며 오는 정상이 측은했던지 《그렇게 하시지요. 서울까지 가시는 량반어르신 같은데 저도 그쪽으로 가니 도중에 가다가 내리워드리지요.》 하고는 정만서를 소잔등에 올려앉혔다. 그러니 소잔등에 량반이 타고 젊은이가 소몰이군으로 된셈이였다. 이윽고 소가 산등성이를 넘어 산아래마을에 이르렀을 때였다. 량반차림을 한 사람이 마주 오면서 소를 탄 정만서를 보고 《량반, 말 좀 물읍시다. 이 동네에 주가가 어디 있소?》 하고 묻는것이였다. 정만서는 주가라니 분명 술집을 가리켜 하는 소리인것 같은데 한자를 모르는 평백성은 대답하기 어렵게 물어보는지라 한바탕 골려줄 생각이 부쩍 났다. 그래서 머리를 기웃거리다가 《내 알기에는 이 동네에 주가라는 성을 가진 집은 있는것 같지 않소. 주로 김씨문중이 많고 박씨가 좀 섞여 살고있지요.》 하였다. 그러자 중년량반은 말귀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핀잔하듯 《아니 성씨 주가가 아니고 술을 파는 집을 말하는 주가요.》 하는것이였다. 정만서는 《그래요, 술을 파는 집을 찾는단 말이지요. 술집이면 아주 가까운 바로 당신의 코밑에 있지 않소. 하필이면 먼곳의 술집을 찾느라고 그러시오.》라고 하였다. 그 소리를 들은 중년량반은 코밑에 있는것이야 입이지 그것이 어찌 《주가》인가고 나무랬다. 정만서는 호탕한 웃음으로 《술이 들어가는 입이야말로 술집이나 같으니 <주가>가 아니겠소.》 하고 말하였다. 중년량반은 점잖은 량반인줄 알고 물었는데 말장난을 하는지라 기분이 없어 《나같은 량반인줄 알았더니 말 못할 <량반>이군.》 하고 입만 쩝쩝 다시였다. 정만서는 그제야 호탕하게 웃으며 《허허… 말은 못 탔어도 이렇게 소는 타지 않았소? 량반냄새를 내자면 말보다는 하늘소 아니면 나같이 부림소라도 타야지. …》 하고 조롱하였다. 중년량반은 유식한체 하려다가 놀림을 당한지라 《세상에 보기드문 익살군이군!》 하고는 황급히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설화는 이와 같이 유식을 뽐내려던 량반을 다시는 입을 벌리지 못하도록 신통하게 골려준 정만서의 기지를 해학적으로 잘 보여주고있다.
유식한체 하는것은 무식한것보다 못하다
정만서가 한때 황해도 어느 한 주막집에 들린 일이 있었는데 그가 옛말을 잘한다는것을 어떻게 알고 왔는지 여러 사람들이 찾아와 재미나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하였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교훈삼아 들려주었다고 한다. 리조 22대 정조왕때였다. 조정에 리문원이란 대감이 있었는데 그는 무식하면서도 높은 벼슬자리를 타고앉고는 유식한체 허세를 부리기를 좋아하였다고 한다. 언제인가 그는 친구인 어느 한 대감의 생일에 초청받고 간 일이 있었는데 술이 몇순배 돌자 여러 대감들이 서로 시부(시와 부)와 한학(중국 한어에 관한 학문)에 대한 이야기로 유식을 뽐내고있었다. 리문원대감은 무식하다나니 시부는 견줄수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있을수도 없어 국그릇에서 토란(남새의 한가지)을 저가락으로 집어내려다가 그만 떨구어버리고는 《여보시오, 한자는 그 수가 굉장히 많은데다가 어려운 글자도 적지 않습니다. 지금 이 국그릇속에 토란이 <풍당> 하고 떨어졌는데 그 풍당 <풍>자를 어떻게 쓰는지 알겠소이까?》 하고 물었다. 리대감의 그 소리를 듣고 오대감은 물론 그 좌석에 앉아있던 대감들이 모두가 풍당 《풍》자를 생각해보았으나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자 리문원대감은 껄껄 웃으면서 하는 말이 《모두들 헛공부를 했소이다. 그것도 모르는분들이 어떻게 일국의 나라정사를 할수 있단 말이요. 답답하구만.》 하고 입을 쩝쩝 다시였다. 그때 리대감의 옆에 앉아있던 기생도 민망스러웠던지 긴치마자락으로 바스락소리를 내면서 일어났다. 그러자 또 하는 소리인즉 《이자 저 기생이 일어날 때 바스락소리가 났는데 그 바스락 <사>자는 아시우?》 하고 물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한 때 비빔밥이 들어왔다. 그것을 본 리대감은 또 흥이 났던지 《비빔밥 <찬>자는 누가 아시오?》 하고 물었으나 또 대답이 없었다. 《대감들이 그렇게 무식하니 어떻게 하겠소. 나라의 일이 걱정되누만!》 그러자 그중 나이든 한대감이 《참, 리대감은 우리가 모르는 한자를 그렇게 알고계시니 놀라운데 그 글자를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주시오!》 하고 물었다. 리대감은 어떻게 하든 글자를 만들어보여야 하는지라 《에헴, 에헴… 풍당 <풍>자로 말하면 우물에 돌을 던지면 풍당할것이 아니겠소. 그러니 우물 정(井)자가운데 점(·) 하나를 찍으면 되고 바스락 <사>자는 풀밭에 뱀이 숨어서 지나가는 소리이니 초 두(卄)밑에 뱀 사(巳)자를 쓰면 되지 않소. 그리고 비빔밥은 밥에 나물을 얹어놓은것이니 나물 여(茹)밑에 밥 식(食)자를 써놓으면 되지 않겠소. 모두들 무식하구만!》 하고 스스로 유식한체 하였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듣고있던 여러 대신들은 무식한자가 신통히도 한자를 만들어쓰는지라 생각할수록 괘씸하였으나 그렇다고 골려줄 묘책도 없으니 그저 멍하니 쳐다볼뿐이였다. 그때 한 젊은 량반이 나서며 나도 한마디 하겠노라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 우리 아래동네에 량반집이 있었는데 글개나 아는 서울량반자식을 사위로 삼고는 인차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관리가 된다고 퍼그나 좋아하였습니다. 그런데 사흘째 되는 날 밤 그 집 장인이 술에 취한채 밖에 나가 변을 보다가 그만 호랑이가 덮쳐 물어가고말았습니다. 처남이 그것을 알고 쟁기를 들고나가면서 신랑보고 동네사람들을 깨워서 데리고 오라고 이르고는 산으로 뛰여올라갔습니다. 신랑은 급히 달려나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이렇게 소리를 쳤습니다. 《원산지호(먼산 호랑이)가 지촌래(가까운 마을에 내려와)하야 오인장(장인)을 착거(잡아가니)하니 유궁자(활있는 사람)는 지궁래(활을 가지고 오고)하고 유창자(창있는 사람)는 지창래(창을 가지고 오라)하고 무궁무창자(활과 창이 없는 사람)는 몽둥이를 가지고 속속래(빨리빨리 오라)하라.》 하였습니다. 밤중이여서 신랑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려퍼졌으나 《유식한》 한문투로 말하니 무슨 소리인지 알수 없어 모두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결국 손을 쓰지 못하여 장인을 영영 구원하지 못하고말았습니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이 유식한 량반자식을 사위로 맞았다가 손도 쓰지 못하고 주인장을 호랑이밥이 되게 하였으니 저런 유식한체 하는 신랑이 우환거리라고 관가에 고소하였습니다. 고을원도 그 소리를 듣고 량반자식이 고을백성들을 업신여겨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함부로 썼다고 잡아들이게 하였습니다. 신랑이 옥에 갇힌 다음날 그의 삼촌이 찾아와 그놈(신랑)이 말도 제대로 할줄 모르는 바보나 다름없으니 제발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울며 빌었습니다. 원은 측은하였던지 그놈의 신랑이 량반행세를 하느라고 유식한체 하며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한것이니 정신이 들게 몇대 볼기를 쳐서 내보내라고 령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네놈이 알지도 못하는 문자를 쓰다가 장인도 구원하지 못하였으니 다시 그런 문자를 쓰겠는가?》 하고 엄하게 욕설하였습니다. 그러자 신랑은 얻어맞은 볼기짝을 어루만지면서 《예, 차후론 갱불용문자(다시 그런 문자를 안 쓰겠다)하오리다.》 하였습니다. 고을원은 그 소리를 듣고는 일러주는 말도 채심하지 못하는 녀석인지라 《저 량반신랑이라는게 한문자에 미친놈이 틀림없으니 고칠 때까지 멀리 귀양을 보내라.》고 엄명하였습니다. … 젊은 량반이 이렇듯 흥이 나게 말하자 모여앉았던 량반들도 아까 리대감처럼 우리 말을 한자로 외워대거나 한자를 뽐내며 유식한체 하는것은 결국 다 무식한데서 오는거라고 하면서 리대감을 보고 조롱하듯 크게 웃어댔다. 그제야 리대감은 우리 말을 한자로 꾸며댄것이 자기의 무식을 가리우려 한짓이였는데 결국은 탄로되였는지라 《이 무식한 량반은 갑니다. 그러니 모두들 시부나 읊으며 잘들 노시오.》 하고 문턱을 넘어 황급히 달아나버렸다고 한다. 그후로 량반들속에서 이 사실과 관련하여 《모르면서도 유식한체 하는것은 무식한것보다도 못하다.》는 말이 생겨나 거들먹거리는자들을 훈계하였다고 한다. 이 설화에서도 정만서의 이야기꾸밈수와 해학적기질을 충분히 엿볼수 있다.
욕심많은 순라군을 얼려넘기다
정만서는 밤에도 술친구를 찾아가 술을 마시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시간이 가는줄 몰랐다. 서울장안에는 인경소리만 나면 성문이 닫기면서 사람들의 왕래가 금지되고 순라군들이 사람들을 단속하거나 붙잡아갔다. 어느날 밤 정만서는 친구집에 가 술을 마시며 이야기장단을 펴다가 늦게야 그 집을 나섰는데 인경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 도로 그 집에 들어갈수도 없고 하여 어정어정 청계천가까이까지 갔다. 그런데 앞에서 순라군들이 《게 누구야, 거기 섰거라!》 하고 소리치며 달려오는것이였다. 정만서는 이젠 틀림없이 잡히겠구나 하는 순간 기발한 꾀를 생각해냈다. 그래서 청계천아래로 성큼 뛰여내리면서 《아차, 이게 어디 갔나.》 하고 무엇을 찾는것처럼 하였다. 《당신, 거기서 무얼하는거요. 인경소리를 못 들었소?》 순라군들은 정만서가 의심스러워 큰소리로 물었다. 정만서는 《여보시오, 좀 가만있소. 내 여기에서 일생 먹고도 남을것을 빠뜨렸는데 찾아야 갈게 아니요. 생사가 달렸는데 왜 그리 야단이요!》 하고 도리여 제편에서 나무람을 하였다. 순라군들은 그제야 놀라며 《뭐, 일생 먹을것을 빠뜨렸다구? 그것이 혹시 금붙이라도 되는가?》 하며 물에 뛰여들어 도와주려 하였다. 정만서가 물에 빠뜨린것이 무엇인지 말도 하지 않으니 순라군들은 필경 금붙이가 틀림없으리라고 생각하고 청계천다리밑의 물곬을 손더듬으로 샅샅이 내리훑기 시작하였다. 순라군들은 밤새껏 거리를 돌아다니며 행인을 단속하느라고 고생하기보다는 금덩어리를 찾기만 하면 일생 호강할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열심히 찾았다. 그러나 물건은 나타나지 않고 시간만 흘러갔다. 조장인듯 한 순라군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물건을 찾느라 시간을 지내 오래 끈것 같아 다른 한 순라군에게 말했다. 《자네는 제 순차대로 거리를 돌아보게. 나도 이 량반이 찾는것을 보고 이어 따라서겠네.》 정만서는 그들의 꼴을 보며 꽤 욕심이 많은 놈들이라는 생각에 더 골려줄 심산으로 한마디 하였다. 《귀한 물건이니 영 손에 잡히지 않는구만. 날이 밝아야 찾아내겠는가.》 순라군도 어지간히 지쳤는지 정만서에게 《분명 여기에 떨구기는 떨구었소?》 하고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정만서는 분명 여기에서 떨구었는데 종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탄하였다. 순라군은 그렇다면 더 찾아보자며 다시 물에 들어섰다. 《이제 날이 밝으면 물안을 환히 들여다볼수 있으니 쉽게 찾을수 있겠지요.》 하고 정만서가 허리를 펴는데 날이 밝았다는 인경소리가 요란히 들려왔다. 그때 정만서가 《어이쿠! 이게 여기 있었구나.》 하면서 좋아라 곰방대를 찾아들었다. 순라군은 정만서가 곰방대를 찾아들고 좋아하는것을 보고는 어처구니가 없어 《아니 여보, 당신이 일생 먹고도 남는다고 한것이 바로 그것이였소.》 하며 짜증을 내였다. 그제야 정만서는 《이것이야말로 일생 먹고도 남음이 있는 물건이 아니겠소!》 하며 의미있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허허… 괜한노릇을 했군.》 순라군은 그 잘난 곰방대를 보물처럼 정신나가게 찾은것을 생각하니 자기도 어이가 없었던지 볼이 부어 달아나고말았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