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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만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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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만서의 래력과 혼사이야기

 

정만서의 출생년대와 가정형편, 본인의 성장과정 등 그의 래력과 인물상을 서사적으로 고착시켜놓은것은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져있지 않다.

다만 정만서가 유명한 익살군, 재담가로 널리 알려진 사실과 함께 그의 래력이 단편적으로나마 전하여올뿐이다.

실재한 이야기군으로 알려져있지만 문헌상 고착된것이 없는것으로 하여 구체적인 래력을 밝힐수는 없다.

그러나 구전화되는 일화와 그가 남긴 설화들에 그의 생활처지와 인물상이 비껴있으며 그로 하여 인생행로를 가늠해볼수 있는 여지를 준다. 이런 점에서는 봉이 김선달과 비슷한 점이 많으며 설화내용에서 밝혀진것을 보더라도 그와 같이 유람을 하면서 자주 만났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따라서 봉이 김선달이 활동하던 시기의 동년배 재담군이라고 볼수 있으며 일부 설화(담배장사군을 골려준 이야기, 논밭의 바위돌이야기)들은 중복되는것으로 보아 그들의 관계가 설화속에 어울려져있었다는것을 알수 있다.

구전화되여오는 그의 래력은 대략 다음과 같다.

정만서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령리하여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집안은 가난하였지만 책읽기를 좋아하여 공부를 착실히 하였다. 그러나 이끌어주는 스승이 없고 남들처럼 학당에 나가 공부할 처지도 못되였다.

몰락하는 량반가정에서 태여난데다가 부모들도 일찌기 세상을 뜨다보니 정만서에게는 자력으로 살아나가겠다는 의기심과 함께 린색한자들, 사리사욕을 채우는자들을 미워하고 골려주는 기질도 생겨나게 되였다.

한때 아버지 친구였던 김대감을 찾아가 과거에 등급하는 길도 열겸 살림살이도 보살펴달라고 청해보라는 동네어른들의 권고도 마다하고 끝내는 그 집 문전에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가난한 살림이였으나 언제나 명랑하고 쾌활하여 동네사람들은 정만서의 호탕한 웃음소리만 들어도 기뻐하였다고 한다.

생활이 어려웠지만 거기에는 개의치 않고 익살로 남을 웃기기를 즐겨하였으며 어진 사람을 도와주고 린색한들은 골려주었다.

어릴 때에는 장난질도 좋아하였지만 성인이 되여서는 집을 떠나 돌아다니며 구경하기를 즐겨하였다. 그러다가도 볼만 한 구경거리가 생기면 거기에 끼여들어 기지있는 익살과 재담으로 웃음판이 되게 하였다.

하기에 정만서라고 하면 총각때부터 옛말을 잘하고 익살과 재담의 능수로 소문나서 결국 최초시로인이 그에 탄복하여 딸을 주게 된 혼사이야기도 생겨나게 된것이다.

그는 장가를 가서 가정을 이루었지만 호주구실은 하지 않고 떠돌아다니기를 좋아하여 늘 안해의 지청구를 들었다고 한다.

안해가 이웃의 잘사는 집에 가서 쌀이나 돈 몇푼이라도 꿔오라고 하면 남에게 구걸하는것보다는 재미나는 이야기로 배를 채우는게 더 낫다고 태평스럽게 웃군 하였다.

정만서는 로자 한푼도 없이 산천구경을 떠나 전국각지로 돌아다녔지만 옛말을 잘하고 가난한 사람들도 동정해주고 모든 일처리를 바로해줄뿐아니라 린색한자들을 속시원히 골려주었기때문에 가는 곳마다에서 후한 대접을 받군 하였다 한다.

어느날 정만서가 로상에서 술생각이 나서 주막집에 들어갔으나 단돈 한푼 없어 주밋거리다가 여러 젊은이들이 앉아있는 탁에 끼여들었다.

그런데 그중 한 젊은이가 그를 알아보고 반가워하며 친우들에게 소개하고나서 술을 련속 권하였다.

정만서는 《나는 술값을 물 힘은 없지만 유쾌한 옛말이야기는 한마디 할수 있지요.》 하고는 련속 이야기를 엮어대여 술맛을 더 돋구어주었다고 한다.

밤이 깊어지자 젊은이들은 그의 잠자리를 걱정하며 서로 자기집으로 가자고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나 정만서는 굳이 사양하며 이 동네에서 그중 잘사는 집을 찾아가 옛말이야기를 한마디 들려주고 쉬는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 소리를 듣고 한 젊은이가 《이 동네에 재산가로는 박로인의 집이 있는데 너무도 린색하여 지금까지 누구도 자고 간 일이 없으나 정선달님이라면 아마 류숙시킬런지요?》라고 말하는것이였다. 하여 정만서는 젊은이들과 헤여져 곧바로 그 집으로 찾아가 좀 쉬여가자고 주인장에게 청하였다.

박로인은 행객의 아래우를 훑어보다가 《여보시오, 오늘은 집안에 무슨 일이 있어 받아들일수 없으니 다른 집으로 가보시오.》 하고 딱 잡아떼였다.

정만서는 듣던바대로 린색하기 그지없는자라는것을 알고 공손하게 《사정이 그렇다면 다른 집으로 가보겠는데 잠간 필묵이나 빌려주시오. 갑자기 시부가 떠올라서…》 하니 주인령감은 못마땅해하며 붓과 먹을 내왔다.

정만서는 활달한 필체로 아래의 시 한수를 써서 주인장에게 주면서 만나본 기념으로 써놓은것이니 한번 새겨보라고 하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린색한을 조롱한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니

세상만사가 뜬 구름과도 같구나

인생이 한번 죽어 무덤속에 들어가고

평토제 지낸 후 사람이 흩어져버리면

남는것은 적적한 산과 희미한 황혼뿐

달빛밖에 무엇이 있겠는가

 

박로인이 시를 받아들었으나 일자무식쟁이인지라 자기가 린색한이라는것을 은유적으로 조롱한것임을 알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동네에서 글귀나 아는 김진사에게 보였다.

김진사에게서 그 시가 바로 자기의 린색함을 죄책하는 글이라는것을 안 박로인은 그제야 얼굴이 달아올라 《하필이면 말로 욕하고 갈것이지 이런 글을 남겨놓고 갈것은 무어람.》 하며 중얼거리였다.

박로인은 생각하기를 내가 재산은 많아도 죽으면 관속에 가지고 갈수 없으니 생전에 그 재산때문에 박하고 린색하다는 비난을 받기보다는 인심이 후하다는 평을 받는게 낫겠다고 생각하고 그때부터는 마을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그후 그 행객이 다시 나타나 자기를 찬양하는 글귀나 하나 지어주었으면 하고 기다렸으나 정만서는 더는 찾아들지 않았다. …

정만서가 풍류객으로 소문난것은 총각때부터였다.

그는 집이 가난한데다가 부모도 일찍 여의다보니 나이가 찼어도 누구 하나 딸을 주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사람으로 말하면 총명하고 호방한데다가 글공부도 한지라 그를 허술히 보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웃동네에 사는 최초시로인이 술과 이야기를 무척 좋아하여 아래동네에 마실을 내려왔다가 길가에서 정만서를 만났다.

정만서는 최로인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 어떻게 로인장께서 우리 동네에 내려오셨는가고 물었다.

그의 물음에 최로인이 수염을 내려쓸며 내야 할 일이 있나, 술에 얼근하지 않으면 재미나는 얘기라도 들으려고 다니는데 자네는 지금 어데로 가는 길인가고 물었다.

정만서는 로인장의 속생각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어 《술생각에 옛말 들을 생각이 나시는 모양이군요.》 하며 그를 주막집으로 안내하였다.

약주를 연거퍼 내며 정만서의 이야기를 듣던 최초시가 기분이 좋아 《자네 어디 정혼한데가 있나? 이젠 장가를 가야 할텐데… 자네도 알겠지만 나에게는 무남독녀 외딸이 하나 있는데 자랑은 아니지만 예쁘고 인정미도 있어. 그래서 알맞는 배필을 하나 정해주어야 하겠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하고 물었다.

최초시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여나올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던 정만서는 깜짝 놀라며 《로인장님의 사위감은 집안이 좋고 인물도 잘나고 학문도 월등한 그런 젊은이여야 하겠는데 저같은게 감히 생각이나 할수 있사오이까.》 하고 겸손하게 대답하였다.

최초시는 그의 점잖은 말과 행동에 감개무량해하며 《아니야, 자네야말로 인물 잘나고 학식있고 옛말 또한 구수하게 잘하니 나의 첫번째 사위감이야. 그러니 내가 정하는 날에 우리 딸을 보러 꼭 오게나!》 하고는 기분이 좋아 돌아갔다.

그런데 다음날 최초시가 사위감을 고르러 다닌다는 소리를 들은 권부자의 아들이 그를 끌고 술집으로 갔다.

권부자의 아들이 련속 권하는 술을 마시고 얼근해진 최초시는 그전날 정만서와 한 약속은 감감히 잊고 자네를 사위로 맞으면 우리 딸애도 호강할것 같은데 임자 생각은 어떤가고 물었다. 그러자 권부자의 아들은 련속 절을 하며 감지덕지해하였다.

최초시는 《그러면 좋아, 내가 부를 때 우리 딸과 만나보기로 하세.》 하고는 술집을 나섰다.

그 다음날이였다.

웃마을 최지주의 아들도 최초시가 사위감을 물색한다는 소리를 듣고 길가에 지키고 섰다가 그를 술집으로 안내하여 푸짐하게 한상 잘 차려 대접시켰다.

최초시는 이번에도 얼근해진김에 전과 같이 《자네야말로 미남인데다가 지주집 아들이니 우리 딸애하고 짝이 기울지 않지. 그러니 내가 부를 때 우리 집에 와서 딸애를 만나보라구.》 하고는 술집을 나섰다.

이렇게 하여 최초시는 술을 좋아하는 덕으로 련 삼일동안에 세명의 사위감을 물색해놓고 이틀후에는 딸과 맞서는 시간을 아침, 점심, 저녁으로 정하고 차례로 불러들이였다.

최초시는 제일 첫번째로 정만서를 오라고 련락하였다. 그런데 정만서는 최초시가 술김에 한 소리인지라 미덥지 않아 아침에 찾아갈수 없어 일을 보다가 저녁에 잠간 들려보기로 하였다.

그러다나니 두번째에 보기로 한 권부자의 아들을 첫번째로 보게 되였다.

최초시의 딸은 안방에 앉아있고 권부자의 아들은 가운데 얇은 휘장을 친 맞은켠 방에 들어가있었다. 권부자의 아들은 안방에 들어가 인사를 나누고나서 자기네 집에는 천냥이 넘는 재산이 있기에 무슨 소원이든 다 풀어줄수 있다고 자랑하였다.

최초시의 딸은 처음부터 재산자랑을 하며 거들먹거리는 그가 역겨워 대번에 퇴짜를 놓고말았다.

두번째로 찾아든것은 최지주의 아들이였다.

그는 자기네는 땅이 많고 머슴들도 많아 평생 아무런 걱정없이 호강하며 살수 있다고 자랑질하였다.

최초시의 딸은 이번에도 땅자랑, 머슴둔 자랑만 하는 최지주의 아들을 그 자리에서 퇴짜놓고말았다.

이번에는 세번째로 정만서가 안방에 들어갔다.

정만서는 먼저 이렇게 말하였다.

《댁의 아버님께서도 잘 아다싶이 나는 재산도 없고 그리고 남들처럼 특별히 잘난데도 없는 평범한 총각이요. 있다면 제힘 하나밖에 없소. 그러니 안해를 맞아들이면 이 손으로 정성껏 도울것이요. 그리고 매일 밤 심심찮게 옛말도 해줄수 있구…》

최초시의 딸은 듣던바대로 웃기기 잘하고 례절도 바르고 제 자랑도 모르는 순진한 총각인 정만서가 대번에 마음에 들어 쾌히 승낙하였다고 한다. …

정만서는 가난속에서도 남의 덕을 입는것을 싫어하였고 평생 벼슬길에도 나서지 않았다.

봉이 김선달과 같이 전국각지로 돌아다니며 산천구경을 하고 옛말주머니로 남을 즐겁게 웃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량반들과 린색한자, 부정한자들은 뒤쫓아가 혼내주거나 골려주는것을 락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익살군, 재담가로서 정만서의 이름은 오늘도 구전화되여 전해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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