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에서 찾아보는 몇가지 교훈
은전도 땀을 흘려야 생긴다
세상에는 놀고먹으면서 공짜로 돈이 생기기를 바라는 어리석은자들도 없지 않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직심스레 일하였고 낟알도 잘 가꾸어 많이 걷어들여야 그것이 다름아닌 돈이 되고 재산이 된다고 일러왔다.
하기에 민간에서는 이런 교훈적인 민담이 적지 않게 창조되였다. 그중에서 《포도밭에 은을 묻어두었다》와 《낡은 집 기둥밑에 돈 백냥》은 심히 교훈적인 민담의 하나로 된다.
옛날 한 산촌마을에 포도밭을 잘 가꾸어 해마다 포도를 많이 수확하여 장마당에 내다 팔아 걱정없이 살아가는 근면한 농사군이 있었다.
산간마을이다보니 언덕밭을 뚜지며 곡식을 심어 근근히 살아가기보다는 그 땅을 걸구어 포도농사를 잘하는것이 용돈을 마련하는데도 좋고 쌀을 사다가 보탬하는데도 좋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시작한 일인데 수입이 괜찮을뿐아니라 포도밭을 가꾸는 재미도 나서 해마다 밭을 늘군것이 근 3천평이나 되였다.
그런데 이 실농군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의 일손을 도와 포도밭을 가꾸는데는 관심이 없고 매일 포도를 따서 장마당에 나가 파는데만 관심을 돌렸다. 그래야 그 돈으로 술집에도 드나들고 부자집 자식처럼 행세할수 있었기때문이였다.
포도철이 지나면 두 아들은 아버지가 포도를 팔아 한푼두푼 모아놓은 돈을 궤짝에서 몰래 털어내여 탕진해버리군 하였다.
그래서 아버지가 두 아들을 불러놓고 《사람이 일하지 않고서는 못산다. 돈도 제 땀을 들여 번 돈이라야 쓸 재미도 있다. 이 늙은 아버지를 봐서라도 포도밭을 가꾸는데 재미를 붙혀라.》하고 늘 타일러주었다. 그러나 두 형제는 그때는 듣는체 하다가도 돌아앉으면 그전과 조금도 다를바 없었다.
그러던차에 아버지가 늙고 병들어 림종에 이르게 되였다.
아버지는 두 아들을 불러놓고 《내가 죽으면 내대신 너희들이 저 포도밭을 잘 가꾸어라. 그리고 돈을 요긴하게 쓸데 있으면 포도밭에 은을 묻어둔것이 있으니 그것을 파내 쓰거라.》하고 눈을 감았다.
아버지가 유언하고 돌아간 다음 두 형제는 포도밭을 잘 가꾸어보려고 마음먹었지만 건달습성을 말끔히 버리지 못하고 일을 착실히 하지 않다나니 돈이 생길리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유언한대로 포도밭을 뚜지며 은이 묻혀있을만 한 곳을 파헤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뚜져도 은을 숨겨둔 곳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손맥이 풀린 두 형제는 밭머리에서 땀을 씻으며 다시 궁냥하였다. 있을만 한 곳을 다 파헤쳐보았으나 은을 찾아낼수 없으니 첫머리로부터 3천평의 마지막 끝까지 다시 파헤쳐보자고 의논하였다. 그래서 수십일에 걸쳐 온 포도밭을 말끔히 다 뚜지고 갈아엎었다. 힘들기는 하였으나 그때마다 아버지가 포도밭을 가꾸느라고 고생한것을 다시금 되새겨보며 직심스레 마지막까지 파헤쳤다. 그러나 은은 나타나지 않았다.
《조화로다. 분명히 포도밭에 은을 파묻었으니 파내여 쓰라고 하셨는데 어찌하여 나타나지 않을가?》하고 형이 동생을 보며 한탄하였다.
그러자 동생이 한참동안 생각을 굴리더니 《아버지가 살아계실적에 돈이 생기는족족 우리가 몰래 훔쳐내여 써버렸는데 어데 남은 돈이 있어서 포도밭에 묻어두었겠소. 이것은 우리가 포도밭을 잘 가꾸지 못할것 같아 땅을 뚜져서 부드럽게 하라고 하신 유언인것 같애요!》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형은 《네 말에 일리가 있다. 아버지가 생전에 그렇게도 일러오던 말씀인데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였구나. 포도밭을 잘 가꾸라는 뜻이 분명하다.》라고 말하며 지난날을 후회하였다.
이렇게 되여 두 아들은 아버지가 남긴 유언의 참뜻을 알게 되였고 비록 은전은 찾아내지 못했어도 자기의 직심스러운 노력으로 해마다 많은 포도를 거두어들이게 되였다.
민담은 생활에서 흔히 볼수 있는 평범한 사실을 가지고 이야기를 재미나게 끌고나가면서 교훈을 주고있다. 특히 두 형제가 아버지의 유언에서 자기들의 지난날을 뉘우치는데서 인민적리념을 충분히 엿볼수 있다.
민담 《낡은 집 기둥밑에 돈 백냥》도 앞에서 본 민담과 같은 류형에 속한다.
여기에는 친구간의 의리가 첨부되여있다.
옛날 한 고을에 어릴적부터 막역한 사이인 두 친구가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대에는 생활이 풍족하여 고생을 모르고 자라다보니 노는데만 정신을 팔면서 공부도 하지 않고 늘 돌아치며 세상구경만 하였다. 그러다가 집에 돌아와서는 또 돈을 몰래 훔쳐가지고 놀음놀이에 뛰여들다나니 집가산도 남은것이 별반 없었다.
이런 나날속에 허송세월하다가 집에 돌아오니 한 친구의 부모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가산도 다 털리여 집지키는 개 한마리가 남아있었다.
그제야 그는 생전에 부모의 속을 태운것을 후회하며 무너져가는 집기둥을 안고 울음을 터쳤다. 돈 한푼 남은것이 없고 당장 살아나갈 길이 막연하여 낡은 집이라도 팔아서 얼마간 생계라도 유지해보려고 자기 친구에게 부탁하였다. 친구는 그의 정상이 가긍하여 그와 함께 집안일도 돌보지 않고 놀아댄 불효막심한 처사를 후회하며 집을 팔면 당장 어데 거처하여 살겠는가, 그러지 말고 무너져가는 낡은 집이라도 기둥부터 바로 세우고 벽도 수리하여 나와 같이 함께 살며 부지런히 일해보자고 하였다.
그래서 그 이튿날부터 집수리에 달라붙었다.
그들이 남쪽기둥이 심히 내려앉아 넘어질듯 하여 그것부터 바로 세우려 하는데 집의 개가 왕왕 짖으며 기둥뿌리를 발로 긁어내며 여러번이나 땅을 탕탕 구르는것이였다.
두 친구는 하도 이상하여 마루를 들어내고 그 기둥뿌리의 흙을 파내보니 주추돌옆에 작은 단지가 묻혀있었고 그속엔 돈 백냥과 유서 한장이 함께 놓여있었다.
《너는 제 아비가 림종에 이른것도 모르고 어데 가서 놀음놀이에만 미쳐돌아가느냐. 언제인가는 돌아와 이 삐뚤어진 기둥을 고칠줄로 믿고 돈과 함께 유서를 묻어둔다. 장차 오금을 놀리기 싫어 집을 팔아버리면 돈 백냥은 영영 잃게 되고 네 건달버릇도 고치지 못하고말것이다.》
유서를 읽고난 그는 일하기 싫어하고 놀음놀이에만 정신이 팔려 돌아쳤던 불효막심한 죄책감으로 하여 가슴이 미여지게 아팠다.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더는 노여워하지 않게 직심스레 밭도 가꾸고 집살림도 알뜰히 꾸리리라 다짐하였다.
친구도 이제부터는 놀음친구가 아니라 참된 친구가 되여 일을 잘해보자고 하였다.
다른 변종의 민담에서는 살아가자니 돈이 없어 할수없이 친구에게 집을 팔게 되였는데 친구가 기울어진 기둥을 수리하다가 단지에서 은전 백냥이 나온것을 그 주인인 친구에게 돌려주었더니 자기 집 돈이 아니라고 받지 않자 소송을 걸어 둘이 사이좋게 나누어가졌다고 전하여오는것도 있다.
이 민담은 그 까닭이 어떠하든 일하기 싫어하고 건달을 피우며 놀음놀이에 눈이 어두운자들을 일깨워주고 교훈을 찾게 하기 위하여 꾸며진것이다.
며느리의 시집살이
옛날부터 귀한 딸자식을 시집보낼 때면 시집가서 3년은 보고도 못 본체, 듣고도 못 들은체, 말하고싶어도 벙어리인체 하라고 일러보내였다.
하기에 시집살이와 관련한 속담과 함께 노래들도 적지 않으며 교훈적인 민담들도 적지 않게 전해오고있다.
다음의 민담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어느새 착한 며느리가 되였다》에서는 시집살이하는 녀인이 갖추어야 할 행실에 대한 교훈성을 보여주고있다.
민담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은 그 교훈성이 강하여 속담화되기까지 하였다.
옛날 어느 한 집에서 귀한 딸을 시집보내면서 부모들이 걱정되여 시집에 가서는 3년동안 보고도 못 본체, 듣고도 못 들은체 하고 그저 시키는 일이나 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시집에 온 딸은 부모들이 일러준대로 벙어리로 3년, 귀머거리로 3년을 살면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시키는 일만 직심스럽게 하였다. 그랬더니 시집에서는 어데서 벙어리며느리를 데려왔다고 끙끙 속을 태우다가 나중에는 친정집으로 돌려보내기로 작정하였다.
어느날 아침 시아버지는 본가집에 나들이가자고 하면서 며느리를 수레에 태우고는 자기도 함께 길을 떠났다. 며느리는 사연을 묻고싶었으나 시부모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벙어리처럼 살라고 곱씹어 당부하던 부모님들의 말이 생각나서 본가에 가서 입을 열리라고 마음먹고 꾹 참았다.
수레가 본가집가까이에 있는 어느 산기슭에 거의 이르렀을 때 꿩 한마리가 푸드득 하고 날아올랐다.
며느리는 너무도 반가와 《애고, 우리 집 뒤동산 푸드더기가 날아간다!》하고 얼결에 소리쳤다.
그러자 시아버지는 너무도 기뻐 《우리 며느리가 벙어리가 아니였구나!》 하면서 수레를 멈춰세우고 성수가 나서 며느리의 목소리를 처음 들어볼수 있게 한 그 꿩을 잡아왔다. 그리고는 어서 되돌아가자고 하면서 수레를 바삐 몰아갔다.
그날 저녁상을 푸짐히 차려놓고 집식구들이 모여앉자 시아버지는 삶은 꿩을 며느리앞에 놓아주었다.
이리하여 시집살이를 잘하느라고 《벙어리》로 지내던 착한 며느리를 처음으로 말을 시켜보았다고 한다.
민담은 봉건사회에서 시집살이의 고역과 낡은 페습에 얽매여 한마디 말도 제대로 할수 없었던 녀성들의 처지를 잘 보여주고있다.
특히 평범한 세태생활적인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기지있게 꾸며나간것으로 하여 인민들의 창작적재능을 충분히 엿볼수 있게 한다.
민담 《어느새 착한 며느리가 되였다》도 봉건사회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사이의 관계를 생활적으로 흥미있게 엮어주고있다.
옛날 한 동네에 시부모를 박대하는 며느리가 살고있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매일 잔소리를 한다고 몹시 천대하였다. 시어머니는 또 시어머니대로 며느리의 구박을 못이겨 아들에게 네 처를 빨리 쫓아버리라고 말하다못해 앓아눕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아들은 자기 안해를 불러다놓고 꾸짖기도 하고 지어는 손찌검도 해보았으나 효력을 보지 못한지라 궁리끝에 한가지 꾀를 꾸며내게 되였다.
아들은 어느 하루 장마당에 가서 밤 한말을 사다가 안해에게 주면서 《내가 의원을 찾아가 어머니의 병환을 이야기하였더니 밤 한말을 사다가 매일 20~30알씩 구워드리면 그것을 다 잡숫기 전에 돌아가실것이라고 하더구만. 그러니 어머니가 돌아가시기전에 노여움도 풀겸 잘 대접시키오.》라고 말하였다.
며느리는 그것을 사실로 믿고 매일 밤을 정성스레 구워서 밤낮으로 대접하였다.
어머니는 며느리가 너무도 극성스러운지라 마음이 편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동네마실까지 다니게 되였다.
동네아낙네들과 늙은이들이 어머니를 보고 혈색이 좋아진걸 보니 이제는 걱정거리가 없어진 모양이라고들 하였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요즈음 내 병이 걱정되여 밤낮 극성스럽게 밤을 구워주니 건강이 회복된것 같다면서 며느리자랑을 크게 하였다.
동네사람들도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는 며느리를 두었으니 얼마나 좋겠는가고 하면서 어머니는 며느리복이 있다며 부러워들 하였다.
우연히 이 말을 듣게 된 며느리가 남편에게 말하기를 《시어머니가 나를 귀하게 여기고 위하니 어찌 죽기를 바라리오. 이제는 의원에게 밤대신 불로초를 구해달라고 해보시지요. 시어머니가 오래 앉아계셔야 이 며느리의 허물도 벗고 화목해진 우리 집안의 소문도 더 날것이 아니겠어요.》 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안해의 말을 들은 남편은 당신의 그 마음이 바로 불로초라고 하면서 앞으로도 가정을 화목하게 꾸려나가자고 하였다.
민담은 봉건적가정내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사이의 불화를 없애고 가정의 화목을 가꾸어나가야 한다는것을 보여줌으로써 일정한 감화력을 주고있다.
이런 생활세태적인 실화적소재에 기초하여 엮어진 민담계렬은 이외에도 당시 잡사나 한화, 견문록들에 적지 않게 기사화되였거나 말로 전해오면서 오랜 기간 사람들에게 일정한 교훈을 주고있다.
불공드린 덕은 못 보아도
옛날 어떤 사람들은 병이 생기면 의원을 찾아가는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덕으로 병을 고쳐보려고 하였다. 또한 아이를 낳지 못하는 녀인들도 행여나 하고 불공을 드리러 사찰을 찾아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돌부처가 병을 고쳐줄리 만무하고 아들을 낳게 해주기는 더욱 바랄수 없는 일이였다.
하기에 항간에서는 불공과 관련된 민담들이 적지 않게 생겨나게 되였다.
우선 세 병신이 금강산 신계사에서 정성껏 불공을 드렸지만 아무런 효험도 보지 못하고 내려오다가 옥류동의 절승경개를 구경하고 병을 고친 희한한 내용의 민담부터 보려고 한다.
어느해 이른봄날에 외금강 신계사에 세 병신이 불공을 드리려고 찾아왔다. 한사람은 소경이고 다른 두사람은 귀머거리와 앉은뱅이였다.
신계사의 주지가 세사람을 만나보고 하는 말인즉 선친들이 지은 죄로 후대에 벌이 내려 병신이 된것이니 쌀 열섬씩 시주하고 백날을 불공드리면 쉬이 나을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세 병신은 배속에서부터 병신이 되였으니 죄를 짓고 태여난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주지의 말대로 부모들을 탓하며 쌀을 꾸어다 바치고 다음날부터 정성을 다하여 불공을 드리였다. 어느덧 100일이 되였으나 아무런 차도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세 병신은 주지를 찾아갔다. 주지는 이상한 일이라며 불공을 드리면서 잡생각을 하여 부처님께 정성이 미치지 못한것이 분명하니 다시 100일 불공을 드리는것이 어떠한가고 하였다.
세 병신은 이제는 쌀도 없는데다가 지금껏 열성스럽게 한 모든것이 수포로 되였으니 맥이 풀려 말도 나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성이 부족했다고 하는 주지에게 해볼수도 없고 말 못하는 돌부처에게 알아볼수도 없었다. 그리고 웬일인지 허망한 생각이 들면서 다시 불공을 드릴 마음이 생겨나지 않았다.
이때 두 동료의 동태를 살펴보던 앉은뱅이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병신인것은 타고난 팔자인데 불공을 드린다고 말도 못하는 돌부처가 병을 고쳐주겠는가? 먹을 쌀도 다 떨어졌는데 천하절승 금강산이나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가자.》
그리하여 세 병신은 금강산 옥류동골안으로 들어가게 되였다. 귀머거리는 앉은뱅이를 업고 소경은 막대를 짚고 그뒤를 따라섰다.
화창한 여름철이라 꽃이 만발한데다가 구슬처럼 흘러내리는 옥류동의 물소리 또한 유정하여 귀머거리와 앉은뱅이는 연신 감탄하였으나 소경은 그것을 보지 못하는것이 한스러워 그들이 감탄하는 소리를 듣고 절경을 가늠하였다.
이어 세 병신은 구룡폭포에 이르렀다.
쿵쿵소리와 함께 물안개가 뿌려지더니 칠색무지개가 비끼고 룡이 물줄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것만 같았다.
그래서 귀머거리의 등에 업혔던 앉은뱅이가 《야!》 하고 소리치자 귀머거리도 그 소리에 놀라 손으로 량귀를 문지르니 귀가 탁 열리였다.
그 순간 등에 업혔던 앉은뱅이가 땅에 떨어져 몇번 굴러내려가더니 벌떡 일어섰다. 소경은 자기도 희한한 경치를 구경하고싶어 눈을 비비니 눈앞이 번쩍 트이며 밝아지는것이였다.
그제야 세 병신은 서로 마주보며 백날불공을 드린 덕을 보지 못하고 금강산구경을 떠났더니 구룡폭포의 아홉룡이 우리를 도운게 아니냐고 기뻐하였다.
그들은 주지에게 속히우기는 하였으나 금강산구경도 하고 병도 고쳤으니 이제는 하늘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한다는 팔담이나 구경하자며 발길을 재촉하였다고 한다.
물론 당시로서는 흔히 볼수 있는 사실적소재에 기초하고있으나 교훈성을 주기 위하여 후반부를 과장하거나 역전시켜 금강산의 덕으로 결속시킨것은 불우한 정상을 동정하여 인민적인 지향과 소망에 맞게 풀어나간것이라고 볼수 있다.
다음은 《생불》이나 《점쟁이》도 아닌 한 로인장이 사람들의 일신상 문제에 대해 너무나도 신통히 맞추고 그때마다 교훈적인 이야기를 해주어 신임을 받게 되자 《말장사군》으로 소문이 났다는 한담적인 이야기를 보기로 하자.
한때 평안도 시골에 권세는 없으나 돈이 많아 거들먹거리며 사는 부자가 있었다. 그는 돈을 가지고는 못하는 일이 없다면서 시골에서는 재미를 볼만 한것이 없으니 견마잡이로 머슴소년을 데리고 서울구경길에 올랐다.
길을 떠나 구경거리가 있을만 한 곳은 다 돌아보며 가다나니 보름 남짓이 걸려서야 서울에 도착하였다. 서울의 이름난 유적들과 명승지, 장마당까지 구경하고 소문난 음식점도 샅샅이 다 들어가 보고나니 이제는 더 머물러있을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머슴소년에게 래일 아침에는 시골로 돌아가자고 일러주고 길차비를 하라고 하였다.
이튿날 성문을 나서서 한참 내려오는데 산등성이에 있는 고
래등같은 기와집옆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벅적 고아대고있기에 무슨 구경거리가 있는가 하여 머슴소년을 시켜 어서 알아보라고 하였다.
이윽고 소년이 와서 하는 말인즉 점쟁이는 아니고 《말하는 부처》라면서 말을 파는데 한마디에 천냥을 받는다고 하는것이
였다.
시골부자는 서울에 와서 처음 보는 희한한 일이라 호기심이 동하여 그곳으로 말을 몰아갔다.
자세히 살펴보니 허연 수염을 무릎까지 길게 드리운 백발로인장인데 《생불》을 보지 못하여 알수는 없으나 위풍으로 보아 그가 거짓말을 팔아먹을상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앞에 다가서서 《로인장님, 말 한마디에 천냥을 한다는데 사실입니까?》 하고 물었다.
로인장은 흰수염을 쓰다듬으며 그의 행색을 살펴보다가 하는 말인즉 《사실이 아니구요. 한입 가지구 뭣때문에 두말하겠소. 사리에 맞는 말 한마디는 교훈을 주는데서는 실히 삼천냥도 넘는데 천냥이면 헐값이지요. 보아하니 시골량반이 서울구경을 온것 같은데 로자도 떨어졌겠으니 어서 가보시오.》 하고 오히려 핀잔하였다.
시골부자는 돈때문에 업신받아보기는 처음인지라 천냥을 꺼내여주면서 《천냥값이 되는 말을 팔아주시오.》 하고 독촉하였다.
로인장은 그를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명심하여 꼭 새겨들어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참을수 있는것을 참는것은 참는것이 아니고 참을수 없는것을 참는것이 진짜 참는것이다.》
시골부자는 그 말을 들으니 너무나도 명백하고 단순한 말인지라 맹랑하여 그 자리에서 천냥을 도로 달라고 하면서 그 말은 촌녀자들이 시어머니와 싸울
때나 새겨볼 말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로인장은 말로는 쉬운것 같지만 행동으로 옮기기 힘든 법이니 앞으로 《금언》으로 될것이라고 하는것이였다.
시골부자는 돈달라는 말을 더는 하지 못하고 분을 새기며 말을 몰아 깊은 밤중에야 집에 들어서게 되였다.
그는 마구간에 말을 매게 하고는 조용히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런데 달빛이 어슴푸레 비쳐드는 방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자기 마누라옆에 웬 사나이가 코를 드렁드렁 골며 자고있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이런 불칙한짓을 하다니, 둘 다 요정내고말테다 하고 고간에 들어가 도끼를 들고 와서 먼저 남자녀석부터 내리치려고 쳐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천냥을 주고 산 말이 뇌리에 떠올랐다. 그것인즉 《참을수 없는것을 참는것이 진짜 참는것이다!》였다. 그래서 좀 참아보자고 쳐들었던 도끼를 내리웠다.
그때에 그의 안해는 악몽에서 깨여난듯 눈을 번쩍 뜨더니 반가워하며 《이제야 돌아왔구만요. 그런데 도끼는 왜 들고있어요?》 하고 물었다.
시골부자는 안해에게 《이런 불칙한 행위를 하고도 내가 도끼를 들고있는 까닭을 모르겠소?》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마누라가 벌떡 일어나 도끼를 잡으며 말하였다.
《큰일나겠수다. 자기 처남이 누워있는줄도 모르고 도끼를 쳐들다니 온전한 정신이 아니구려?!》
그때에 처남도 일어나앉았는데 사연을 들어보더니 천냥을 주고 산 말 한마디로 하여 자기 목숨도 붙어있게 된것을 알고 그 값을 자기가 열배로 물어주겠다고 하였다.
시골부자는 그 말 한마디를 천냥을 주고 산것이 그리도 아까워 후회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금언도 생활의 교훈으로 받아들일 때 그 값이 나가는것이라는것을 똑똑히 알게 되였다.
민담은 진실성이 부족한 약점을 가지고있으나 생활에서 매우 교훈적이다. 그리고 인민대중속에서 력사적으로 오랜 기간 경험과 교훈을 통해 창조된 속담과 금언, 명구와 명언들은 그 어떤 희귀한 물건보다도 값비싼것이라는것을 강조하려고 하였다.
또한 금언을 알고있어도 생활에서 활용하지 못한다면 교훈을 찾을수 없다는것을 암시해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