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려들의 뒤생활에 대한 풍자

 

스님이란 승려를 존대하여 부르는 말로서 보통 자기의 스승되는 승려를 가리키는데 흔히 쓰인다.

성현의 《용재총화》에는 《스님 속인 상좌》라는 제목을 달고 세가지 이야기를 엮어주고있는데 그것은 모두가 불도를 닦고 부처앞에 꿇어앉아 념불을 외워대고있지만 돌아앉아서는 못된짓을 하는 스님을 상좌승이 거짓을 꾸며 통쾌하게 골려주는 내용을 담고있다.

승려의 뒤생활을 파헤쳐 풍자해학한것은 그들의 행실을 목격하였거나 체험한 평백성이나 녀인들속에서 나온것이 적지 않다.

 

스님 속인 상좌

 

민담 《스님 속인 상좌》는 세 제목으로 되여있는데 이 세가지 이야기는 모두가 안팎이 다른 스님을 그 상좌승이 거짓말로 속여넘겨 망신시키거나 골려주는것으로 되여있다.

《스님 속인 상좌》의 첫번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 한 상좌가 스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까치가 은숟가락을 물고 문앞의 스무나무에 있는 제 보금자리로 들어갔습니다.》

스님은 그 소리를 곧이듣고 은숟가락이 욕심났던지 그 나무우로 기여올라갔다. 그러자 상좌승이 《우리 스님이 까치새끼를 잡아서 구워잡수려고 나무에 오른다.》하고 소리쳤다.

스님은 상좌승이 하는 소리를 듣고 당황하여 급히 미끄러져 내려오다가 나무가시에 찔리여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였다.

화가 난 스님은 상좌승을 욕질하며 때려주었다. 그러자 상좌승은 이번에는 스님이 드나드는 문앞에 큰솥을 달아매놓고 큰소리로 《불이야!》하고 웨쳤다.

스님이 놀라서 뛰여나오다가 솥에 머리를 받고 땅에 쓰러졌다.

한참후에 일어나보니 불붙는것이 없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한다고 되게 꾸짖으니 상좌승은 《먼산에 불이 난것을 알리느라고 소리친것이예요.》라고 둘러맞추었다.

스님은 한대 때려주고싶었지만 또 무슨 거짓말을 꾸밀것 같아 《이제부터는 가까운 불이나 소리치지 먼데 난 불까지 소리칠것은 없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당시 승려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 민심을 반영한것이라고 볼수 있다.

《스님 속인 상좌》의 두번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한 상좌승이 스님을 골려주기 위하여 거짓말을 꾸며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집 이웃에 젊고 고운 과부가 살고있는데 나를 보면 늘 너의 사찰에서 따는 감을 너의 스님이 혼자 자시느냐고 묻군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혼자 다 잡숫겠는가고 하면서 종종 남을 주기도 한다고 하자 자기도 먹고싶다면서 좀 달래오라고 하였습니다.》

상좌승은 젊은 과부가 마치도 스님과 상종하고싶어 감을 달래오라는듯이 능청스레 꾸며대였다.

스님은 상좌승의 소리를 듣고 그러면 네가 나를 대신하여 감을 후히 따다주라고 하였다.

상좌승은 스님의 승인을 받은지라 감을 몽땅 털어서 자기 부모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는 돌아와서 《그 과부가 스님이 보낸것이라고 하니 너무도 좋아서 맛있게 다 받아먹었습니다. 그리고는 부처님께 공양하는 흰떡도 너의 스님이 혼자 자시느냐고 또 물었습니다. 그래서 남을 주기도 한다고 하니 자기가 스님을 고맙게 생각한다면서 흰떡도 먹고싶으니 좀 달래서 가져다 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스님은 그 말을 곧이듣고 상좌승에게 《그러면 네가 마음껏 가져다 주려무나.》 하였다. 상좌승은 흰떡을 몽땅 담아서 자기 집에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는 돌아와서 말하기를 《그 과부가 감사히 받아먹고나서 스님께 답례를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하기에 우리 스님은 서로 만나보기를 원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과부가 자기 집에는 친척도 많고 하인도 많아서 스님을 오시라 할수 없으니 자기가 틈을 타서 사찰에 와서 만나보겠다고 하기에 날자까지 약속하여놓았습니다.》라고 거짓말을 꾸며댔다.

스님은 그것도 모르고 과부가 만나러 오겠다는 날에 상좌승을 과부네 집에 다시 보내였다.

상좌승은 마을에 사는 한 과부에게 《우리 스님이 지금 가슴앓이로 고생하는데 의원이 이르기를 부인네의 비단신을 얻어다가 불에 쪼여 배를 문지르면 낫는다고 하기에 비단신 한짝을 얻으러 왔습니다.》라고 공손하게 말하였다.

과부는 스님의 몸이 불편하여 안되였다면서 비단신 한짝을 얼른 내주었다.

상좌승이 돌아와 스님방옆에 몰래 숨어서 엿보느라니 스님이 방을 깨끗이 쓸고 이부자리까지 펴놓고는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는것이였다.

《내가 여기에 앉고 그는 저기에 앉히고 음식을 권하여 맛있게 먹은 다음 그의 손목을 잡고 이불속에 들어가 이밤을 즐겁게 보내야지! …》

이때라고 생각한 상좌승은 스님의 방문을 급히 열고 들어와 신 한짝을 내보이면서 《일이 다 틀렸습니다. 과부가 문밖에까지 왔다가 스님이 하는 말과 행동을 보고는 성을 발끈 내면서 〈너의 스님이란게 미친녀석이구나.〉 하고 달아나버렸습니다. 제가 쫓아가 붙들려 하였으나 따라잡지 못하고 이 비단신 한짝을 겨우 주어가지고 왔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스님은 몹시 후회하면서 얼굴을 들지 못한채 상좌승에게 속죄하듯 말하였다.

《네 수고를 알지 못하고 내가 방정맞게 중얼거렸으니 내 입을 짓찧어주게나. …》

그래서 상좌승이 목침으로 스님의 입을 힘껏 짓찧어주니 스님은 이발까지 다 부러지고말았다고 한다.

이처럼 민담은 이른바 청백하다고 자처하면서도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하는 스님을 상좌승이 거짓말로 속여넘기는 풍자해학적인 내용을 재치있게 보여줄뿐아니라 꾸밈수에서도 인민적인 기지와 재능을 충분히 엿볼수 있게 한다.

《스님 속인 상좌》의 세번째 이야기는 《물건느는 중》이다.

이 민담도 스님이 과부를 꾀여 재미를 보려다가 여러가지 봉변을 당하여 결국 욕망을 실현하지 못하고 망신만 당하게 되는 통쾌한 이야기를 담고있다.

옛날 한 스님이 과부를 꾀여 재미를 보게 된 날 저녁이였다.

이미전에 이 사실을 알고있던 장난군 상좌승이 스님을 망신시킬 목적으로 거짓말을 꾸며대기를 《날콩을 갈아 물에 타서 양념을 치고 마시면 양기를 돋군답니다.》라고 하였다.

스님은 그 말을 곧이듣고 날콩을 갈아 물에 타서 량껏 마시고 그날 저녁 길을 떠났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배가 끓기 시작하여 기다싶이 하여 겨우 과부집에 당도하였다.

그는 방에 들어가 앉아서는 발뒤꿈치로 밑구멍을 고이고 꼼짝달싹하지 않았다.

과부가 왜 돌부처처럼 그렇게 앉아있는가고 하면서 손을 잡아 끌자 막혔던 홍문이 열리여 온 방안에 썩은내가 꽉 차넘치였다.

과부는 스님이란게 어디 저따위 미친놈인가고 하면서 몽둥이로 내쫓았다.

그래서 쫓겨나온 스님은 겨우 어두운 밤길을 더듬어 사찰로 돌아오게 되였다.

오는 길에 눈앞에 흰것이 보이기에 물이겠거니 하고 바지가랭이를 걷고 들어섰는데 그것은 물이 아니라 꽃이 하얗게 핀 메밀밭이였다.

스님은 화가 치밀어 분통이 터질 지경인데 조금 지나 또 흰것이 앞에 나타나기에 이번에도 메밀밭으로 알고 터벅터벅 들어섰더니 그것은 진짜 강물이여서 옷을 몽땅 적시였다.

스님이 강안에 이르렀을 때는 새날이 밝아 아침녘이 되였는데 웬 아낙네 두셋이 강가에서 쌀을 씻고있었다.

스님이 젖은 옷을 입고있은지라 혼자말로 《에, 시다. 에, 시다.》하고 중얼거리자 그 아낙네들이 달려와서 《남이 술쌀을 씻고있는데 왜 시다고 하는거냐?》 하면서 스님의 옷을 찢어놓고 두들겨팼다.

스님은 기력이 쇠진하여 쓰러졌다가 정신을 차리고나니 배가 고파났다. 그래서 산등성이에 올라 마를 캐먹고는 가면서 먹으려고 여러 뿌리를 안고 행길에 나섰다.

그런데 그때따라 원의 행차와 맞다들어 할수없이 다리아래에 내려가 피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던차에 생각되기를 마를 원에게 바치면 밥이나 얻어먹을수 있을것 같았다. 그리하여 다리우로 불쑥 뛰여올랐는데 그 바람에 원이 놀라 말에서 떨어졌다. 그러자 화가 난 원과 그 사령들이 달려들어 스님을 죽도록 때려주고 다리밑에 처박고말았다.

그때 고을을 돌던 순찰사 두사람이 스님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쟁기쓰는 련습을 해보자고 하였다. 처음엔 작대기를 쓰는 련습을 하고 다음엔 칼을 쓰는 련습을 하자는것이였다.

그러다가 한사람이 말하기를 《승려의 신체는 약에 쓴다고 하니 내가 좀 베여가야 하겠네.》하고는 달려들어 칼질하려 하였다. 이때 죽은체 하고있던 스님은 소리를 꽥 지르며 도망을 쳤다.

과부하고 재미를 보려고 길을 떠났다가 갖은 망신과 뭇매를 얻어맞은 스님은 죽을고비에서 벗어나 저녁늦게야 간신히 사찰에 당도하게 되였다.

사찰은 밤인지라 문이 다 닫겨져있어 큰소리로 상좌승을 불러 문을 열라고 하였다. 안에 있는 상좌승은 애당초 내다보지도 않고 《우리 스님은 처가집에 갔는데 어떤 놈이 밤에 와서 야단이냐!》하고 짜증을 냈다.

스님은 할수없이 개가 드나드는 구멍으로 기여들어가려 하였다.

그러자 상좌승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어느 집 개가 어제 밤에도 부처님앞에 놓은 기름을 다 핥아먹고 뺑소니치더니 오늘 또 왔느냐?》하고는 몽둥이로 두들겨팼다.

결국 스님은 자기 사찰에 와서도 또 졸경을 치르었다고 한다.

성현은 《용재총화》에 이 이야기를 실으면서 무슨 일에 랑패를 당하여 갖은 고생을 다 겪는 사람을 《도수승》(물건느는 중)과 같다고들 말한다고 평하였다.

물론 민담에는 지나치게 과장된 측면들도 적지 않으나 사람들앞에서는 불경을 외우는척 하면서 속으로는 주색을 가까이 하고 《금욕》을 제창하면서도 과부나 녀승을 끌어들이는 그들의 모순된 생활상을 비교적 납득이 가게 해부해주고있다. 뿐만아니라 당시 그러한 주지를 비롯한 승려들에 대한 감정이 일정하게 반영되여있다고 볼수 있다.

 

주지라고 욕망이 없을가

 

옛날 금강산 장안사는 큰 사찰로서 여러개의 암자를 가지고있었으며 주지와 그밑에 수많은 상좌승과 녀승, 동자승들이 있었다.

장안사의 주지는 한때 밤마다 남쪽켠에 떨어져있는 장경암에 가서 녀승과 놀고는 늦게야 돌아오군 하였는데 주지의 심부름을 하는 젊은 승려는 그가 장경암에 갈 때마다 같이 따라가고싶었으나 한번도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이였다.

보름달이 휘영청 떠올랐는데 주지가 장삼을 걸치고 녀승이 있는 장경암으로 갈 차비를 하고 자기 방을 나섰다.

그래서 젊은 승려는 《주지님, 이밤에 어데로 가려고 하시나이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주지는 머뭇거리다가 《저 안양암에 다녀오련다.》라고 하였다.

안양암은 장경암의 반대쪽에 있는데 주지는 젊은 승려가 지켜보고있으므로 할수없이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것을 본 젊은 승려는 주지가 안양암으로 가니 오늘은 자기가 녀승이 있는 장경암에 가서 대신 재미를 보리라 생각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달려가 장경암에 들어섰다.

그러자 녀승이 놀라며 《네가 어떻게? 주지님은 안계시느냐?》하며 당황해하였다. 젊은 승려는 《주지님은 오늘 밤엔 안양암에 볼일이 있다며 갔습지요. 그래서 내가 대신 왔소이다.》라고 말해주었다.

녀승은 다 늙은 주지보다 젊은 승려에게 인차 정이 통하게 되였다.

이렇게 되여 그들이 한창 재미를 보고있을 때 밖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벌써 자느냐?》 하며 불쑥 문을 열고 한사람이 방으로 들어섰다. 안양암으로 간다던 주지였다.

젊은 승려는 너무도 놀랍고 당황하여 벌떡 일어나 알몸으로 주지앞에 엎드린채 절을 하였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왔느냐?》

주지가 묻자 녀승이 일어나앉으며 《주지님이 못 오신다고 알리러 왔소이다.》하고 능청스레 대답하였다.

젊은 승려는 녀승이 변명해주는지라 용기를 내여 《안양암에 가시느라고 여기에 못 오시기에 주지님을 대신하여 제가 잠간…》하고 솔직히 고백하였다.

그러자 주지는 더 할 말이 없어 《그렇다면 여기에 온다고 말해야지 내가 안양암에 갔다가 일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오게 하느냐!》하고 나무람을 하였다.

젊은 승려는 주지의 말이 떨어지자 좋은 구실을 얻은듯 《그럼 안양암에 가서 일을 마저 보고 오시오이다. 여기 일은 소승에게 맡기시고…》라고 말하였다.

젊은 승려의 말을 듣고있던 녀승이 주지가 더는 할 말이 없어 되돌아서게 되자 웃으며 이렇게 칭찬하였다.

《주지님은 참으로 훌륭한 제자를 두었습니다. 모든 일을 미리 알고 다 맡아나서니 공연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젊은 승려를 떼버리고 재미를 보려던 주지의 욕망은 수포로 되고말았다. 결국 주지는 망신만 당하고 늘 입버릇처럼 주색을 멀리하라던 말도 이제는 할수 없게 되였다.

민담은 큰 사찰을 관할하고 승려들을 통솔하는 주지들속에도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하는 주지가 있고 승려들속에도 주색을 버리지 못하는 그런 승려들도 수다하다는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밖에도 주지가 녀승과 재미를 본 이야기들은 적지 않으며 그 내용구성도 어슷비슷하다. 특히는 아이를 못 낳는 녀인이 부처에게 기도를 드려 자식을 보게 되였다는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

례하면 강원도의 산간에 주지 고달이 세웠다는 《고달사》라는 사찰이 있는데 자식을 보려는 녀인들이 많이 찾아와 기도를 드리고 자식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있다.

한때 《고달사》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져 타지역에서도 녀인들이 많이 찾아왔는데 100여일간 기도를 드리고 아들을 보고는 그 사찰 주지의 이름을 따서 《고달》이라고 지었다는것이다.

이것은 실상은 주지의 불칙한 행위와 관련되여있는것이다. 그것은 주지도 《금욕》을 한다고 외워대지만 주육과 색을 멀리할수 없어 남의 눈을 속여가며 즐긴다고 볼수밖에 없는것이다.

주지나 《생불》로 자처하는 도승도 천하절색의 미녀나 기생, 과부와 맞다들면 불교에서는 금하게 되여있는 색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보인다.

이것은 16세기 유명한 녀류시인이며 관기인 송도3절의 하나로 일러온 황진이와 관련된 이야기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당시 10여년간 천마산에 들어가 불도를 닦아 《생불》이 되였다고 자처하는 지족선사라는 도승이 있었다. 그는 불도에 도통하고 불교계률을 지키는데서는 자기를 첫 손가락에 꼽지 않으면 좋아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계률을 어기고 파계승이 된자들을 항간에서 민간극에 담아 풍자할 때면 자기는 그 어떤 미희요첩이 아양을 떨어도 넘어갈 일이 없을것이라고 장담하였다. 그런데 송도(개성)의 유명한 기생 황진이를 만나보고 그의 절색과 시문장에 대번에 반하여 끝내는 파계승이 되고말았다.

그래서 한때 《만석중놀이》도 생겨나고 주지와 《생불》의 리면생활을 발가놓는 민담들도 적지 않게 창조되여 교훈을 되새겨보게 하였다.

주지에 대한 이야기에는 《먹으면 죽는다는 곶감》도 있다.

이 이야기는 주지가 불공을 드리려고 제물로 가져온 곶감을 걷어다가 작은 자루속에 넣어 숨겨두고는 다른 승려들이 훔쳐먹을가봐 이르기를 《이속의것은 먹으면 죽는것이니 다쳐서는 안된다.》하고 엄포를 놓았다. 그리고는 소승들의 눈을 피하며 저 혼자 몰래 몇알씩 꺼내먹군 하였다.

하루는 꾀있는 동자승이 주지가 곶감을 몰래 꺼내먹는것을 보고 군침이 돌아 그가 암자들을 돌아보느라고 나간 사이에 몰래 훔쳐먹어보았다. 그랬더니 그것이 별맛인지라 여러 상좌승들을 불러내여 몇알씩 먹어본다는것이 그만 거의다 먹어버리였다.

주지가 돌아오면 졸경을 치를것 같아 상좌승들이 몹시 불안해하고있을 때 동자승은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주지방에 들어가 그가 아껴쓰던 벼루를 가지고 나와 상좌승들이 보는데서 돌바닥에 떨구어 두쪼각나게 깨여버리였다. 그것을 본 상좌승들은 주지가 애용하는 벼루까지 깨였으니 더 큰죄를 졌다고 야단법석이였다.

그러자 동자승은 자기 방에 들어가 이불을 쓰고 누우면서 이제 주지님이 오시면 내가 벼루를 깨뜨려 죄를 졌기에 먹으면 죽는다는 곶감을 먹고 죽기를 기다린다고 말하라고 하였다.

저녁이 되여 주지가 돌아와보니 동자승의 둘레에 상좌승들이 모여앉아 법석 고아대고있었다.

주지는 이게 어찌된 일인가고 다급히 물었다.

그러자 한 상좌승이 일어나 아뢰기를 《저 소승이 주지님의 벼루를 부주의로 깨고는 저렇게 곶감을 다 집어먹고 지금 숨넘어가기를 기다리고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주지가 들어보니 너무도 황당하여 이불을 와락 벗기며 《죽기는 왜 죽을고? … 너희들이 다 훔쳐먹을가봐 죽는다 하였더니 극성스레 마지막 한알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버렸군.》하고는 자기방에 올라가버리였다.

그리하여 동자승의 꾀로 졸경을 치를번 한 일을 무사히 넘기게 되였다.

여기에서 보는바와 같이 주지나 로승일수록 웃음거리나 풍자대상으로 되는것이 더 많다는것을 잘 알수 있다.

 

남들도 좋아하는데

 

불도를 닦자면 살생을 금해야 하고 고기와 술을 먹지 말아야 하며 녀자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한다는것이 불교에서 제창하는 설교이다. 그러므로 주지는 물론 로승이나 《생불》이라고 하는 승려들도 이 불도의 계률을 어겨서는 안되였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인것으로 하여 주육과 색을 좋아하여 불도를 어기게 되는 일들이 적지 않았다.

그리하여 민간에서는 승려들의 리면생활을 발가놓는 민담들이 적지 않게 생겨나게 되였다.

민담 《승려를 골려준 과부》에서는 색을 좋아하는 승려가 과부를 허술히 보고 재미를 보려다가 된욕을 당하는 해학적인 이야기를 담고있다.

옛날 어느 한 산골 작은 마을에 과부가 있었다. 산에서 내려온 승려는 이마을저마을 돌아다니며 시주쌀을 동냥하다가 저녁이 되여 산밑에 따로 떨어져있는 과부네 집에 들어섰다.

이 집은 일찌기 남정을 여읜 과부네 집인지라 목탁도 두드리지 않고 주인부터 찾으며 부엌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과부더러 가마를 좀 빌려달라고 하였다.

과부가 승려의 행색을 보고 가마를 어데다 쓰자고 그러는가고 묻자 강냉이 한 이삭과 감자 두알을 삶아먹으려고 한다고 대답하는것이였다.

과부는 《그러면 저 작은 솥이면 되겠구만…》하고는 그것을 빌려주려 하였다.

그러자 승려는 과부앞에서 스스럼없이 바지를 내리우고 밑의 《쟁기》를 가리키면서 《이 강냉이와 감자 두알을 삶자면 자네가 차고있는 가죽가마가 있어야 하겠는데…》하고 말하였다.

과부는 자기가 혼자 산다고 승려까지 업신여기는지라 《늘 차고다니는 가죽가마인데 스님이라고 공짜로 빌려줄수 있겠소이까?》라고 말하였다.

승려는 일이 성사되는것 같아서 《공짜야 어떻게… 이 시주쌀이 있지 않소.》하고는 그것을 다 내놓았다.

과부는 승려가 끈질긴지라 《혼자 사는 몸에 쌀이야 없겠소이까. 그밑에 달린 감자 한알만 주시오이다.》라고 하자 승려는 깜짝 놀라 《그거야 어찌 떼여줄수 있겠소?》 하며 뒤걸음쳤다.

과부는 승려가 보라는듯 식칼을 들고는 《별걱정을 하십니다. 주겠다면야 이 식칼로 한알만 잘라내면 될것 아니겠소이까.》 하며 당장 그것을 잘라낼듯이 다가섰다.

승려는 과부를 허술히 보고 재미를 보려다가 《쟁기》까지 잃을번 하자 기가 죽어서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테니 제발 그 가죽가마를 빌려달라고 했다는 소리만 하지 말아주시오.》하고는 문을 차고 달아나버리였다.

민담은 이처럼 승려의 리면생활을 과부와의 관계에서 생동하게 드러내보이고있다.

겉과 속이 다른 승려들의 리면생활을 반영한 민담중에는 승려가 주육을 멀리한다고 거짓소리를 자랑삼아 하여 생긴 민화도 있다.

실례로 민담 《승려야 술과 안주를 먹나?!》를 들수 있다.

옛날 산골에서 고사리만 먹으며 념불을 외우던 승려가 하루는 시주쌀을 동냥하러 마을에 내려갔다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음식점을 그냥 지날수 없어 들어가 앉고말았다.

그러자 음식점주인이 식객인줄 알고 술과 안주를 가져다주었다. 이렇게 되여 승려는 난생처음으로 술에 안주를 받쳐서 배불리 먹어보았다. 그러나 돈이 없는지라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달아나려 하였다.

음식점주인은 그가 승려인줄도 모르고 쫓아가 돈을 내라고 법석 고아댔다. 난처하게 된 승려는 생떼를 쓰며 《나는 주육을 멀리하는 사람이니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주고는 나를 의심하지 않는가?》하고 소리쳤다.

음식점주인은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어 그 승려를 끌고 관가에 가서 고소하였다.

원은 승려에게 사실대로 직고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승려는 《소인이 그곳을 지나다가 추워서 잠간 들어가 불을 쪼이고 나왔는데 이런 루명을 쓰게 되니 억울합니다.》라고 하소연하면서 자기가 어찌 법도를 어기고 함부로 주육을 입에 대겠는가고 발뺌을 하였다.

옆에 서있던 음식점주인은 승려가 겉과 속이 다른지라 형틀에 매여 곤장을 안겨야 실토할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고 승려에게 곤장을 안길수 없어 한참 생각하던 원은 묘한 수를 찾아냈다. 원은 하인에게 랭수 한사발을 떠오라고 이르고 이어 승려에게 그 랭수를 한모금 량껏 물고 입가심하여 그릇에 도로 뱉아놓도록 하였다.

승려는 원의 령인지라 별수없이 그대로 하였다. 그러자 물그릇에 고기기름이 뜨고 비린내가 확 풍기였다.

노발대발한 원은 형리를 불러 승려를 형틀에 묶어놓고는 곤장 열대를 안기게 하였다.

그때야 승려가 직고하기를 《소승이 불도를 어기고 주육을 한것은 사실이오나 어찌 부처를 믿는다고 남이 다 좋아하는 주육을 한번도 입에 대보지 못하리오이까.》라고 하는것이였다.

그러자 원은 크게 웃으며 《너는 불도를 어긴데다가 남의 돈까지 떼먹으려 하였으니 그 죄가 더욱 엄중하다. 하지만 돈 한푼도 없는 너를 형틀에 매놓아야 나올것이 없으니 음식점주인은 새겨들으라. 다시는 이런 송사는 하지 말지어다.》하고 판결을 내리였다.

민담은 보는바와 같이 불도를 어기고 먹지 말라는 주육을 공짜로 삼킨 승려를 풍자해학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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