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만 아는 수전노, 깍쟁이들의 말로

 

민담들중에는 돈만 아는 부자, 린색한과 깍쟁이의 추악한 몰골과 수전노적인 기질을 해부하고 비판한것들이 적지 않다. 돈을 위해서는 무슨짓이든지 못하는것이 없으며 많은 재산과 돈을 가지고있으면서도 친척들에게는 물론 제 자식들에게조차 돈 한푼 줴주기 아까와하는 린색한들을 수없이 보게 된다.

돈많은 부자나 지주, 장사군치고 남을 속이지 않고 돈을 긁어모은자가 없다.

하기에 돈많은 수전노나 깍쟁이의 말로는 더욱 비참할뿐아니라 풍자해학적이여서 인민의 저주와 규탄을 받는것이다. 이로부터 수전노나 깍쟁이들의 말로에 대한 설화가 하나의 주제령역을 이루게 되였다.

 

황깍쟁이의 재산욕과 비참한 최후

 

한때 황해도 어느 한 고을에 《황깍쟁이》란 별명을 가진 수전노가 살고있었다. 긁어모은 재산만 하여도 고을에서 두번째 자리를 차지한다면 서러워할 정도인데 자기가 먹고 쓰는 돈도 아까와 하루 세끼 맨밥에 소금을 찍어먹는것이 일상사였다.

하루는 동네젊은이들이 황깍쟁이를 놀려주려고 청어 두두름을 가지고 찾아들었다.

《황주사님, 요즘 듣자니 주사님이 입맛이 없어 맨밥에 소금만 잡수신다기에 입맛을 돋구어드리려고 청어를 구해왔습니다.》

황가는 그 소리를 듣자 성을 벌컥 내며 《이놈, 사람이 하루 세끼 밥에 짭짤한 소금을 찍어먹으면 됐지 청어까지 먹는단 말이냐? 염청어는 밥도적중에서도 상도적이니 썩 가져가지 못할가.》라고 하였다.

젊은이들은 그 소리에 놀라는척 하면서 청어 두두름을 그냥 놓고 문밖에 나와 동정을 살피였다.

황가는 청어를 보니 구미가 바짝 동하는지라 한마리를 슬쩍 빼놓더니 《밥도적이야!》하고 소리치며 나머지 청어를 울바자너머로 내던졌다. 그리고는 부엌에 들어가 청어를 혼자서 몰래 구워먹었다.

고을의 젊은이들은 이런 황깍쟁이를 골려줄 심산으로 거짓을 꾸며 관가에 송사하였다.

《황깍쟁이가 원님의 자리를 탐내여 서울에 줄을 놓고 대감들에게 진상품을 바치고있습니다. 며칠전에는 청어장사군을 불러 생신한 청어 한바리를 서울로 보냈습니다.》

고을원은 그 말을 곧이듣고 황깍쟁이를 불러들여 며칠전 청어장사군을 불러들인적이 있는가고 따져물었다.

황깍쟁이는 청어 한마리를 빼내여 구워먹은것을 묻는줄 알고 그런 일이 있다고 대답하였다.

고을원은 백성들의 《고소》가 틀림없다고 단정하고 이틀후에는 형틀에 묶어놓고 황깍쟁이를 직접 문초하였다.

황깍쟁이는 벼슬자리를 탐내여 뢰물을 바리로 실어 서울대감에게 바쳤다는 말은 허위라며 부정하였다.

고을원은 죄를 짓고도 숨기려 하니 옥에 처넣고 곤장을 매일 스무대씩 안기라고 하였다.

이 소문이 항간에 퍼져나가 그의 일가친척들의 귀에도 들어갔지만 누구 하나 옥에 갇힌 그를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에게는 시집간 딸자식이 둘씩이나 있었는데 어머니가 죽은 다음부터는 아버지가 홀로 있지만 너무도 린색한 수전노이기에 집에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그러니 면회오는 친척 하나 없고 다만 부실하다고 하는 사촌조카가 찾아올뿐이였다.

황가는 어느날 자기가 매일 이렇게 매를 맞다가는 언제 숨이 끊어질지 몰라 남은 재산을 사촌조카에게라도 넘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래일 올 때는 벼루에 먹을 갈아 붓과 종이를 가지고 오라고 하였다.

그러던차에 임금에게 경사가 생겨 나라에서는 대사령을 내렸고 황가는 그 덕에 간신히 출옥하게 되였다.

출옥하는 날에도 누구 하나 얼씬하지 않아 사촌조카가 업고 와서 정성껏 간호해주었다.

이에 감동된 황가는 《내가 재물을 모으기만 하였지 쓸줄을 몰랐댔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니 너무했다. 너만이 이 삼촌을 리해하고 옥살이할 때도 그렇고 오늘까지 이처럼 구완해주니 내 죽은들 잊겠느냐. 너에게만은 무엇을 아끼겠니. 재물을 얼마간 넘겨주겠으니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을 불러오라.》하고 말하였다.

황깍쟁이의 이 소문을 듣고 친척들은 물론 동네사람들도 정말 희한한 일이라며 따라와 방에는 사람들로 차고넘쳤다.

황가는 눈물이 글썽하여 조카의 소행을 렬거하고는 이런 조카에게야 무엇이 아까울게 있는가고 하면서 좌상로인에게 자기가 부르는대로 쓰도록 하였다.

《첫번째로 노란 발쪽 암닭 한마리…》하고 불렀다가 흠칠 놀라며 암닭은 매일 알을 낳으니 암닭대신 차돌배기 수닭 한마리를 준다고 하였다.

그 소리에 글을 받아쓰려던 로인장과 친척들, 마을사람들까지도 황깍쟁이는 죽어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니 남은 재산을 차라리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에게 바치고 칭찬을 받는게 나을거라고 하였다.

그후에는 누구도 찾아와서 병구완을 해주지 않아 시름시름 앓던 황깍쟁이는 끝내 홀로 외롭게 죽고말았다.

민담은 황깍쟁이의 수전노적인 본성을 발가놓고있으며 그것이 인민의 증오와 규탄을 받는것으로 하여 그의 운명과 최후도 비참한 종말을 맺게 된다는 교훈성을 주고있다.

 

다섯냥을 목숨과 바꾸다

 

부자일수록 목숨보다 돈을 귀중히 여기고 돈을 위해서는 못하는짓이 없을뿐아니라 수전노로서의 추악한 몰골을 드러내보인다.

부자나 수전노들이 몇냥 안되는 돈이 아까와 제 목숨까지 바치는 추물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그 말로에 대한 다양한 설화들이 생겨나게 되였다.

민담 《돈 다섯냥을 줄바엔 내가 죽겠다》에서는 돈많은 부자, 수전노의 말로를 풍자해학적으로 생동하고 통쾌하게 보여주고있다.

옛날 어느 강변마을에 큰 부자가 살고있었다. 그는 돈벌이에서는 한다하는 장사치들도 혀를 차는 정도였다.

돈벌이에서 얼마나 포악스러웠던지 장마당에 드나들며 물건값을 상세히 알아가지고는 수요가 높고 잘 팔리는 물건이 나오면 그것을 전부 당겨놓았다가 시세가 버쩍 오를 때 내놓아 폭리를 얻군 하였다. 이렇게 되여 그는 큰 부자가 되였다.

그는 돈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지만 동전 한잎 쓰는것조차 아까와 벌벌 떠는 린색한이였다.

언제인가는 아들과 마누라를 거느리고 장에 갔다가 점심시간이 되여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음식값이 비싸다며 가장 눅거리음식 한그릇만 사서 둘이서 맛보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집에서 싸온 점심밥곽을 펴놓고 먹다가 음식점주인에게 들켜 쫓겨나고말았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장사군들도 그 부자를 보고 무서운 수전노라고 흉질하였다.

그러던 어느해 여름이였다.

비가 억수로 퍼붓더니 강물이 갑자기 불어나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되였다.

큰물이 밀려오자 사람들은 동뚝에 올랐다. 그런데 이 부자는 돈을 세여 돈궤에 넣느라고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하였다.

어린 아들이 동뚝에 올라 살펴보니 돈궤를 안고 헤염쳐나오던 아버지는 물살에 휘감겨 점점 멀리로 떠내려가고있었다.

아들은 떠내려가는 아버지를 가리키면서 돈 한냥을 줄테니 구원해달라고 사람들에게 소리치며 애걸하였다. 그러나 돈 한냥을 보고 사품치는 물속에 뛰여들 사람이 없었다.

아들은 동뚝을 따라 내려가면서 이번에는 두냥을 줄테니 아버지를 구원해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급해난 아들은 이번에는 세냥… 그래도 응답이 없자 네냥을 줄테니 구원해달라고 울음섞인 말로 애걸하였다.

아들은 이번에는 다섯냥을 줄테니 빨리 구원해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떠내려가는 아버지를 불렀다.

그러자 돈궤를 안고 떠내려가던 부자가 아들이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던지 《다섯냥을 줄바에는 내가 여기에서 그대로 죽고말겠다.》라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돈궤를 안고 영영 수장되여 생전에 번 돈을 한푼도 써보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물귀신이 되여버렸다.

민담은 돈 다섯냥이 아까와 자기 목숨까지 바치는 수전노, 돈미치광이의 말로를 생동하게 보여준다. 백성들이 수전노, 돈벌레를 얼마나 증오하였으면 그 운명의 말로를 돈때문에 죽는것으로 이야기를 매듭짓게 하였겠는가.

돈이나 재물에 눈이 어두운자는 필연코 그것으로 하여 일을 망치거나 지어는 비참한 말로를 면치 못하는것이 보편적인 일로 된다. 하기에 적지 않은 민담들이 재부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곬으로 엮어주고있다.

례하면 《범가죽을 탐내던 홍부자》에서는 남이 하는 일에 욕심을 부려 일확천금을 꿈꾸다가 결국 말뚝에 궁둥이를 박고 죽고마는 수전노, 부자의 말로를 통쾌하게 풍자하고있다.

 

수전노의 생일잔치

 

옛날 평양성으로 드나드는 남쪽켠 길목옆에 려인숙이 하나 있었는데 그 주인은 손님들의 돈을 잘 빨아낼뿐아니라 많은 돈을 가지고있으면서도 린색하기 그지없어 수전노로 널리 알려졌다.

이자는 생일잔치를 한다고 크게 소문을 내서 부조를 받아먹고는 손님을 치르는데서는 평상시 먹는 음식외에 지짐 몇짝과 풋고추에 된장지지개를 내놓아 많은 사람들에게서 소문에 비해서는 먹을것이 너무도 없는 《수전노의 생일잔치》라고 비난을 받았다.

그날 저녁때가 되여 길손 여러명이 찾아들었는데 주인집의 생일잔치날이라지만 색다른것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값만 비싸게 받아내는것이였다. 그 길손중에는 미처 산으로 올라가지 못하여 찾아들어온 승려도 있었다.

승려는 돈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지라 려인숙비는 물지 못해도 생일잔치를 한다니 음식대접은 후히 받을줄 알았다.

그런데 승려는 주인이 자기에게 돈이 없다고 괄세하자 불도도 알아보지 못하는 무지막지한 수전노라고 쑹얼거리였다. 그러자 주인은 승려를 흘겨보다가 초라하기 그지없는 제일 웃방을 내주었다.

승려는 창고같은 방에서 밤이 이슥해지자 중얼거리더니 허리춤에서 동으로 만든 작은 황소 다섯마리를 꺼내여 목침우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너희들도 생일집에 들었으니 어찌 입다심질 하지 않고 가겠느냐.》하고는 첫째 황소는 고간에 들어가 쌀을 먹고 둘째 황소는 돈궤를 찾아 거기에 있는 돈을 다 먹어치우라, 셋째 황소는 빚문서를 찾아내여 다 먹어치우고 넷째 황소는 옷가지와 비단필을 다 먹어치우라, 다섯째 황소는 이 집 논밭에 나가 베여놓은 곡식을 다 먹어치우라고 하였다.

주문이 끝나자 작은 황소들은 저저마다 문턱을 넘어 달음질쳐갔다. 밤시간이 퍼그나 흐른 뒤 문턱앞에 작은 황소들이 모이는 소리가 나자 《이젠 다들 들어오너라!》하고 승려가 중얼거렸다.

작은 구리황소들은 배가 똥똥 불러서 문턱을 넘어섰다.

새날이 밝아오자 승려는 배부른 작은 구리황소들을 괴춤에 한마리씩 정히 집어넣고 조용히 방을 나서 산중깊은 곳으로 사라져버리였다.

이른아침이 되자 려인숙집에서는 아침밥을 지으려고 쌀독을 열어보았는데 쌀이 하나도 없는지라 도적이 들었다고 소동을 피웠다.

온 집안을 발칵 훑었는데 돈궤에 돈이 한푼도 없었고 비단필과 빚문서장까지 종적없이 사라졌다.

눈이 휘둥그래진 주인장은 잔치에 모여든 손님들중에 도적패당이 끼여들어 기회를 엿보고있다가 털어간것이 분명하다고 소리지르며 분통을 터쳤다.

그러자 중간방에 들었던 한 손님이 《간밤에 마당가에서 웬 도깨비소리같은게 났는데 아마도 잔치에 왔다가 제대로 못 먹고 간 사람들의 몫을 찾아주느라고 한짓이 아닐가요?!》하고 빈정댔다.

그 소리를 들은 주인령감은 《그러면 부조돈만 채갈것이지 집재산을 다 털어가다니… 어이구, 생일잔치를 하여 재산을 불구려 하다가 이런 변을 당하였으니 누굴 탓할고…》하고 가슴을 치며 한탄하였다.

그후에 이 사실이 온 동네와 고을에 알려져 려인숙주인령감의 생일잔치에 대한 이야기가 풍자해학적인 민담으로 전하여지게 되였던것이다.

민담은 의인화된 구리황소의 신비한 거동을 통하여 악을 징계하고 인민적인 조소와 풍자를 실현시키고있으나 그것은 민담에서 흔히 보게 되는 환상적수법일따름이다.

민담은 인민들이 깍쟁이의 수전노적인 본성을 발가놓고 그의 패망을 통쾌하게 야유조소하기 위한데로부터 꾸며진것이라고 볼수 있다.

 

그 아버지에 그 딸

 

옛날 어느 산골에 욕심많고 린색하기 그지없는 한 지주가 살고있었다.

외진 벽촌 지주이지만 산판을 독차지하고 땅과 산림은 물론 거기에서 사는 산짐승까지도 다 제것으로 만들어버려 사람들은 원성이 높았다.

그놈은 얼마나 악착하였던지 작인들로부터 소작을 받을 때에 쭉정이가 하나라도 섞여있어도 내던지며 다시 골라바치라고 하였다. 하기에 그놈의 창고에는 오곡이 독마다 가득차있고 산짐승고기들도 주런이 걸려있었다.

지주는 그것도 성차지 않아 옥백미와 물고기를 더 걷어들일 심산으로 중매군을 어촌에 보내며 맏딸을 선주의 며느리로 그리고 둘째딸은 벌방지주의 며느리로 들여보냈던것이다.

딸들을 그쯘히 시집을 보내면 크게 대접을 받으리라고 생각한 지주는 잔치도 요란히 차린다고 소문을 냈다. 그러나 얼마나 린색하게 음식상을 차렸던지 잔치집에 따라왔던 아이들도 그 작은 배를 채우지 못하였다.

심지어 중매군에게 품값으로 주기로 한 다섯말 쌀도 소작료에서 공제하기로 한 보기 드문 린색한이였다. 그가 얼마나 깍쟁이였으면 딸들이 시집간 후 로친네가 시름시름 앓으면서도 약 한첩 똑똑히 써보지 못하고 끝내는 죽고말았겠는가.

그래서 처음에는 아버지의 환심을 사느라고 손에 무엇을 좀 들고 오던 딸들이 이제는 아예 빈손으로 오는 때가 드문하였다.

그때마다 산골지주는 딸들이 쌀만 축낸다면서 다음날에는 무턱대고 쫓아버리였다.

그러던차에 산골지주의 생일날이 다가오고있었다. 지주는 생일날에는 두 딸이 희귀한 음식과 특산물을 잔뜩 가지고 오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생일이 지난지 사흘이 넘도록 오지 않았다. 화가 난 지주는 마름을 시켜 아버지가 죽었다고 딸들에게 기별하라고 하였다.

그 소식을 듣고 처음에 달려온 딸이 맏딸이였다. 딸이 곡을 하며 대문에 들어서자 지주는 이미 갖추어놓은 병풍뒤에 가서 백포를 쓰고 누웠다.

맏딸은 이것이 웬일인가고 서럽게 곡을 하면서 《자식들앞에서 한마디 유언도 못하고 가시다니… 원통해라, 지난봄 내 집에 오셨을 때 노랗게 구운 참가재미에 볶은 섭조개, 명란젓과 왕새우튀기를 그렇게도 맛있게 잡수시더니… 생전에 〈내 아무렴 맏딸 너를 내놓고 누구에게 금궤를 줄소냐. 아무때건 꼭 가져가거라.〉 하시였는데 이렇게 빨리 돌아가시다니…》하고 통곡하였다.

이어 둘째딸이 달려와서 병풍앞에 엎드려 《지난여름 우리 집에 오셨을 때 암송아지를 잡아 오리오리 잘게 썰어 흰밥과 함께 대접시키니 그리도 좋아하시고 흰 무명천으로 바지저고리를 해입히니 너무도 감격하여 〈둘째딸아, 내가 죽으면 가산을 누구에게 물려주겠니, 네가 와서 산전을 소작 주어 낟알을 걷어들이고 가축도 세를 주어 삯전을 받아서 재산을 불쿠어가거라.〉 하였건만 이렇게 일찌기 돌아가시다니…》하고 넉두리를 하였다.

지주령감은 병풍뒤에서 두 딸의 넉두리를 듣고있다가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면서 《이년들, 네년들의 울음소리가 진짜였다면 내 죽음이 이렇게 가짜죽음이 아니였을것이다. 상제가 되여 진짜 울음을 터칠 대신 재산부터 긁어가자고 애달파하니 나를 닮아도 정도가 있어야지. 괘씸한 년들…》하고 노하여 소리쳤다.

두 딸은 너무도 놀라 일어서면서 하는 말이 《어쩐지 울음이 잘 안된다 했더니… 이런 변이라고야.》 하며 뒤걸음쳐 그길로 집으로 달아나버렸다. 그 광경을 보며 마을사람들은 그 애비에 그 딸이 분명하다고들 하였다.

그후 이 이야기가 전하여지는 과정에 민담으로 이루어져 야담집과 여러 설화집들에 옮겨지게 되였다.

민담은 재산욕과 공짜에 이골이 난 산골지주와 그 딸들의 정신도덕적저렬성을 해학적으로 생동하게 보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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