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건관료의 어리석음과 부패상에 대한 조소
봉건관료의 어리석은 행위와 백성들에 대한 수탈, 부패상을 고발하는 민담류도 하나의 설화권을 이루고있다. 여기에서는 어리석기 그지없어 정사를 바로하지 못하는데다가 부패타락하고 재물에 환장이 되여 나중에는 관청에서 쫓겨나거나 징벌을 받게 되는 봉건통치배 특히 고을원의 말로를 잘 보여주고있다.
아전이 상전을 골려주고 망신시키다
이 주제의 민담은 아전이 어리석은 상전을 골려주거나 망신시키는 해학적인 이야기를 담고있다.
이런 이야기에는 인민적인 지향이 독특하게 반영되여있다고 볼수 있다.
민담 《미쳐버린 고을원》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하고있다.
옛날 어느 한 고을에 새로 원이 부임하였는데 자기 혼자 먼저 내려와 독신생활을 하면서 조그마한 불쾌한 일이 생겨도 신경질을 부리며 노발대발하고 아전들을 불러내다가는 호통질하면서 못살게 굴었다.
아전들은 새로 온 원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큰 화를 입을것 같아 아예 내쫓을 묘안을 궁리해냈다.
어느날 아침이였다.
고을원이 대청마루에 올라설 때 제일 나이어린 통인이 아침인사를 올리는척 하다가 불의에 원의 귀뺨을 철썩 후려갈겼다. 그리고는 줄달음쳐 자리를 피하였다.
귀뺨을 얻어맞은 고을원은 펄쩍 뛰며 그 어린 통인을 당장 잡아들이라고 고래고래 소리쳤으나 아전들이 짜고 한짓이라 누구도 응하지 않았다.
원은 더욱 분통이 치밀어올라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이놈들, 나서지 못할가?》하고 당장 잡아먹을듯이 미쳐돌아쳤다. 그러자 온 고을이 원이 실성한 모양이라고 수군거리며 들끓었다.
이때를 기다렸다는듯 아전들이 《새로 부임한 원님이 지랄병에 걸렸소.》 하며 떠들썩하게 소문을 내고 감영에 알리여 교체해줄것을 상소하였다.
원은 통인아이에게서 귀뺨을 얻어맞은데다가 지랄병자취급까지 당하니 기가 막혀 고래고래 소리지르다가 끝내는 정신이 돌고말았다. 그러니 원자리도 내놓고 관청에서 쫓겨나 제 집으로 돌아갈수밖에 없었던것이다.
이처럼 민담은 통쾌한 사실을 인민의 지향에 맞게 풍자해학적으로 꾸며주고있다. 하기에 이와 비슷한 줄거리를 가진 민담들이 적지 않게 창조전승되였다.
다음의 민담 《쫓겨난 고을원》에서도 그것을 뚜렷이 찾아볼수 있다.
한때 평안도 철산고을에는 조정의 사헌부에서 큰 벼슬을 하다가 미움을 받고 쫓겨내려온 포악한 원이 있었다.
그는 고을에 내려오던 날 고을관리들이 마중도 안 나온데다가 인사차림도 없자 되게 다스려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다음날 아침 관가의 대청마루아래에 아전들을 다 불러앉히고 부임인사겸 욕설을 퍼부으며 자신의 포악성과 《위풍》을 드러내보였다.
그러나 아전들은 누구 하나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고 쫓겨내려온 주제에 《위풍》을 세우려 하는 원을 다시 쫓아버릴 생각들을 하였다.
원래 원은 사헌부에서 철산군수로 내려가라고 할 때 자기를 모해하여 강직시킨다고 며칠씩 분풀이를 하며 정신나간 놈처럼 고아대여 정신병자취급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가족들도 정말 정신이 들락날락하지 않는가고 몹시 걱정하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이였다. 원은 고을관원들이 관청에 나올 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미친놈처럼 혼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관원들을 불러냈으나 심부름군인 막동이밖에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원은 《관원들을 불렀지 네놈을 불렀느냐?》 하며 달려들어 따귀를 치려 하였다.
막동이는 나이는 어리지만 싸움을 잘하고 날파람이 있는 소년인지라 따귀를 치려는 원의 손을 막고 제가 먼저 원의 따귀를 철썩 치고 달아났다.
따귀를 얻어맞은 원은 《이놈, 이게 무슨짓이냐. 천하에 릉지처참할 놈!》하고 울분을 터치며 울그락불그락하였다. 그때에야 사령과 통인 등 륙방관속들이 동헌마당에 다 모이였다. 이때라고 생각한 막동이는 원앞에 나타나서 《원님, 저를 찾으셨습니까?》하고 공손히 허리굽혀 물었다.
원은 분통이 터져 《이 죽일놈, 네놈이 내 뺨을 치고 달아나? 이 버러지같은 놈.》 하면서 달려들어 막동이를 죽일것처럼 야단을 쳤다.
벼슬아치들은 원의 그 괴이한 행동을 보면서 《아마도 원님의 정신이 온전치 못한것 같애.…》하고 중얼거리고있는데 원의 아들이 그 광경을 보고있다가 《또 정신병이 도졌구만.…》하고는 관청안으로 끌고들어갔다.
이때부터 원은 《정신병자》로 고을의원한테서 치료를 받다가 끝내는 울화병이 도져 더는 원자리를 지켜내지 못하고 쫓겨나게 되였다.
민담은 앞에서 본 이야기와 그 상이 비슷한것으로서 당대 새로 부임하는 어리석고 포악한 원에 대한 인민들의 항의와 규탄의 목소리가 잘 슴배여있다고 볼수 있다.
민담 《고을원의 통인노릇》에서는 미련한 원이 분별이 없다보니 자기스스로가 통인노릇을 하여 웃음거리가 되는것을 보여준다.
옛날 어느 한 고을에 뢰물을 바치고 벼슬자리를 딴 원이 새로 부임하였는데 그는 미련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어느 하루 고을을 돌아볼 심산으로 아전들을 거느리고 길을 떠났다.
어느 한곳에 이르러 행인 세사람을 만났는데 그중 한사람이 사슴 한마리를 메고 가는것이였다.
원이 묻기를 《너희 세사람중에서 누가 사슴을 잡았느냐?》 하니 사슴을 메고 가던 사람이 자기가 잡았다고 하였다. 원은 그렇다면 그것을 저 사람들에게 메울것이지 왜 혼자 메고 가는가고 하였다.
그러자 그는 제것을 어찌 남에게 메우겠는가고 말하였다. 그 소리를 들은 원은 그렇다면 이 행차도 고을원의 행차인데 인장(印章)을 통인이 멨으니 사람들은 인장을 멘 통인을 혹시 원으로 알지 않겠는가고 생각하게 되였다.
그래서 궁리하던 끝에 통인을 불러 그 인장은 내가 쓰는것이니 고을원인 내가 메고 가겠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늙은 원이 앞장에 서서 인장을 메고 가운데는 젊은 아전이, 그뒤로는 종이 따라섰다. 번화한 행길에 나서자 사람들이 원의 행차를 보고 모두들 수군거리였다.
어떤 사람은 가운데 선 사람이 원이라 하였고 어떤 사람은 인장을 멘 통인이 차림새나 나이로 보아 원 같기도 한데 원이야 어찌 인장을 메고 갈수 있겠는가고 하였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새로 부임한 원이 젊기도 하다면서 종에게 례의를 표하였다.
고을원은 제가 인장을 메야 원인줄 알리라고 생각하였는데 오히려 통인취급을 당하고 반대로 종이 원대접을 받으니 분통이 터졌으나 우매한 자기의 불찰이니 어데다 하소할데도 없었다.
백성들은 그 행차를 보고 저렇게 어리석은 량반이니 제 직분을 다하기는 만무할것이라고 한탄하면서 이 이야기를 전하였던것이다.
민담은 고을원이 인장을 제가 메고 감으로써 원이 자기라는것을 알게 하려고 하였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은 행동인가 하는것을 풍자해학하고있다.
민담 《잔치집에 간 상전과 종》은 직분과는 상반되게 잔치집에 간 말몰이군이 상전에게 차례진 음식을 제 혼자 받아먹는 통쾌한 이야기를 담고있다.
옛날 한 상전이 잔치집 초청을 받고 종에게 길떠날 준비를 갖추라고 일렀다.
그러자 종은 잔치집 행차라면 자기는 못 가겠노라고 아뢰였다. 그러자 상전이 그 리유를 따져물었다.
젊은 종은 잔치집에 가면 어른께서는 술과 고기를 량껏 들면서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겠지만 자기는 바깥에 쪼그리고 앉아 때식을 넘기며 굶고 앉아있어야 하므로 못 가겠다고 하였다.
상전은 그것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고 하면서 이렇게 일렀다.
《이제 잔치집에 가면 음식상을 들여올터이니 그때 내뒤에 슬쩍 와 앉아있거라. 그러면 음식이 들어오는족족 내가 뒤에 넘겨주겠으니 너는 빨리 받아 먹어치우란 말이다. 내 상이 비면 또 가져오지 않으리.》
종은 상전의 분부대로 그의 뒤에 앉아있다가 음식을 넘겨주는대로 다 먹어치웠다. 그런데 음식을 나르는 녀인들은 한번씩 차례로 상우에 음식을 놓아준 다음에는 다시 들여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지막음식인 회 한그릇만이 상전의 음식상우에 놓여있게 되였다. 결국은 들여오는 음식을 뒤에 앉은 종에게 빼돌리는통에 상전은 술 한모금밖에 마시지 못하였던것이다.
화가 치밀어오른 상전은 뒤에 앉은 종을 보고 《이놈, 네가 앞에 나앉아라. 내가 차라리 받아놓은 음식을 먹고 네대신 채찍을 쥐고 말몰이를 하는것이 나을것 같다.》하고 분풀이를 하였으나 음식은 이미 종이 다 먹어버린 뒤였으니 어찌할수 없었다.
옆에 앉았던 손님들이 그 광경을 보고 상전과 종이 뒤바뀐게 아닌가고 수군거리자 상전은 더는 잔치집에 앉아있을수 없어 바삐 문턱을 넘어 도망치고말았다고 한다.
민담은 상전이 미련하고 어리석어 종의 꾀에 속히우고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후히 대접까지 시키는 해학적인 이야기를 담고있다.
민담 《재상을 속이고 대접까지 받다》에서도 앞에서 본바와 같은 해학적인 이야기를 엿볼수 있다.
옛날 서울에 있는 한 재상이 시골에 있는 한 통제사에게 좋은 벼루를 하나 만들어 올려보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리하여 통제사는 좋은 재질로 벼루를 특색있게 만들어 아전에게 주어 서울로 떠나보내였다. 그런데 아전이 서울로 가는 길에서 그만 벼루를 떨어뜨려 두쪼각이 나게 되였다.
아전은 시골로 도로 가자니 통제사에게 봉변을 당할것 같고 안 가자니 갈 곳이 없어 걸음이 내키는대로 서울로 가면서 한가지 꾀를 생각해냈다.
그는 서울 재상집에 이르러 야밤을 타서 대문이 아니라 뒤울타리를 뛰여넘어 앞마당에 들어섰다.
그러자 집을 지키고있던 종과 하인들이 몰려와 웬 도적놈인가고 넘어뜨리고 두들겨팼다.
아전은 얻어맞으면서도 《이거 야단났구나. 벼루가 떨어져 깨여졌으니 재상에게 무엇이라고 고한단 말인가.》 하며 대성통곡하였다.
마침 안방에서 그 소리를 듣고있던 재상이 달려나오며 무슨 변고인가고 물었다. 아전은 울먹거리며 《이 집 종들이 달려들어 때리는통에 재상님께 가져온 벼루가 그만 떨어져 깨졌으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소이까?!》 하며 더욱 목청을 돋구어 울었다. 그리고는 《이 사실을 통제사님이 아시면 저를 가만두지 않을테니 어떻게 돌아간단 말이요.》하고 말하였다.
재상은 자기가 속히운줄도 모르고 아전이 울며 사설질하는것이 진짜인줄 알고 《울지 말라구, 벼루는 깨여졌으나 내가 무사히 받은것으로 너희 통제사에게 편지를 써줄테니 크게 걱정할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깨여진 벼루를 보며 《우리 집 종들이 몰상식하여 그렇게 되였으니 너에게는 잘못이 없느니라.》하고 위로까지 해주는것이였다.
이리하여 고을아전은 깨여진 벼루를 바치고도 무사히 고을로 돌아설수 있었다. 이렇게 재상을 속여넘긴 아전은 시골로 돌아오면서 생각하였다.
(서울에 사는 재상도 불민하고 어리석기는 고을의 원보다 결코 못하지 않고나. 신통히도 속아넘어가니 모두 둔재들뿐이구나.…)
이렇듯 민담은 아전의 지혜롭고 기발한 행위를 보여줌으로써 상전보다 아전이 더 지혜롭다는것과 반대로 봉건통치배들은 미련하고 무지한 존재들이라는것을 풍자해학적으로 통쾌하게 대조시켜 보여주고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정승을 골려준 서당훈장》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옛날 한 정승이 미련한 아들을 장차 벼슬을 시켜보려고 서당에 보내여 《천자문》부터 공부시켰다.
그러나 삼년석달이 되였으나 《천자문》의 첫 네 글자의 뜻도 바로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서당훈장은 화김에 《너는 정승의 아들이라는게 미련한 소보다도 못하다.》하고 쌍욕을 퍼부었다.
이렇게 되자 정승의 아들은 서당에 안 가겠다면서 서당훈장이 자기를 보고 황소보다 더 둔한 놈이라고 욕질한것을 애비(정승)에게 고해바치였다.
정승은 제 아들이 아무리 불민하기로서니 황소에 비기는것이 고약스러워 어느날 서당훈장을 찾아가 으름장을 놓았다.
《이 고약한 놈, 보잘것없는 서당훈장노릇이나 하면서 감히 량반집 자식을 황소에 비긴단 말이냐. 내 네놈에게 황소를 가져다줄테니 어디 천자문을 배워줘보아라. 며칠후에 꼭 와보겠으니 그리 알라.》
정승은 다음날 서당에 황소 한마리를 보내왔다. 서당훈장은 정승의 아들이 너무나도 둔재여서 그런 욕을 퍼부었는데 정승을 노엽혀 봉변을 당하게 되였으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났다.
그리하여 골머리를 앓던차에 3년이면 서당개도 풍월을 하고 황소도 경을 외운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그는 먼 옛날부터 이런 사실이 있었기에 속담으로 굳어진것이 아니겠는가고 생각을 하면서 다음날부터 신심을 가지고 황소에게 《천자문》을 배워주기 시작하였다.
그는 《하늘 천》 하면 황소더러 하늘을 쳐다보게 하고 《따 지》 하며는 한발로 땅을 구르며 아래를 내려다보게 하였다.
이렇게 며칠 훈련시키니 미물인 황소도 제법 말귀를 알아듣고 그대로 척척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정승이 찾아와 황소를 가르친것을 보자고 하였다.
서당훈장은 황소를 끌어다 정승앞에 세워놓고 《하늘 천》하고 소고삐를 쳐드니 제법 하늘을 쳐다보았고 다음 《따 지》 하자 황소는 한발로 땅을 구르며 아래를 내려다보는것이였다.
옆에 모여섰던 사람들도 황소가 신통히 글을 알아맞춘다고 떠들썩하였다.
정승은 기가 죽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있는데 서당훈장이 깨우쳐주듯 이렇게 말하였다.
《대감님, 보십시오. 황소도 그 뜻을 알고 저렇게 알아맞추니 옛날 속담도 그른데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교훈을 찾으라고 한 소리인데 아들은 몰라도 대감님이야 알고도 남음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하는 소리인즉 《저 황소는 량반자식보다 글귀를 더 잘 알고 듣는구만!》하고 빈정댔다.
정승은 얼굴이 뜨거워 더는 서있지 못하고 달아나버렸다. 그후 소문이 돌아 더욱 창피를 당하자 정승은 황소를 돌려보내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미련한 아들때문에 얼굴이 깎이우는것을 한탄하였다고 한다.
민담에서는 소보다 더 미련한 정승의 아들을 통하여 서당훈장이 고관대작인 정승을 통쾌하게 골려주는 이야기로 엮어져있다.
이것은 당시 인민들의 지혜를 반영한것으로서 봉건관료배들의 어리석음을 풍자해학한 민화와 주제적으로 일치되여있는것이다.
고을원도 같은 도적이다
고을원은 한개 고을이나 군을 맡아 정사를 돌보는 봉건관료이며 그릇된것을 판별해주는 재판관이기도 하다.
고을원은 이런 직분을 가졌지만 도적을 잘못 판결하고도 그 돈이나 훔친 물건을 당사자에게 돌려줄 대신 제가 가로채여 삼켜버림으로써 도적보다 더한 놈으로 비난조소를 받군 하였다.
민담 《돈주머니에서 떨어진 깨》에서는 고을원이 상소를 받고 도적을 판결하면서 그 돈으로 제 호주머니를 채우는 날강도적행위를 폭로단죄하고있다.
옛날 한 농부가 깨 한마대를 장마당에 가서 거의 팔아버리고 남은 깨 한되박과 술 한병을 사가지고 돌아오고있었다.
길가에서 이웃에 사는 선비를 만났는데 자기도 장마당구경을 할겸 술생각이 나서 길을 떠났다고 하였다. 선비와 이야기를 나누던 농부는 한가지 놓쳐버린 일이 생각나서 선비에게 자루에 있는 술을 꺼내마시면서 짐을 좀 봐달라고 부탁하였다.
선비는 속으로 술이 생겼으니 장마당에 갈 필요가 없게 되였다고 좋아하며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그리고는 깨주머니에 들어있는 술병을 꺼내여 몇모금 마시고나서 주머니에 다른것이
없는가 하여 뒤적거리다가 은전주머니를 보게 되였다. 선비는 누가 볼세라 은전 절반을 털어내여 허리춤에 감추었다.
얼마후 농부가 일을 보고 뛰여와서 잊고 갔던 은전주머니부터 찾아 헤쳐보니 돈이 절반이나 없어졌다. 그러니 선비에게 도적혐의가 가지 않을수 없었다.
농부가 점잖게 돈을 내놓으라고 하자 선비는 《량반을 모독해도 분수가 있지 물건을 지켜준 사람을 도적으로 몰다니. 이놈, 관가로 가자.》 하며 제편에서 더 기승을 부렸다. 그래서 농부와 선비는 고을원을 찾아가 다같이 상소하게 되였다.
고을원은 두사람의 상소를 다 들어보고는 은전에 구미가 동하였던지 먼저 돈임자부터 닦아세웠다.
《이 무지막지한 상놈아, 량반을 도적으로 몰다니? 잃어버린 돈으로도 그 죄를 씻지 못한다.》하고는 형리더러 그 농부를 먼저 옥에 가두게 하고 량반을 불러낸 다음 그앞에다 흰종이 한장을 펴놓게 하였다.
그다음 원은 량반에게 《자네 허리에 차고있는 주머니를 풀어서 백지우에 털어놓게. 그러면 알 도리가 있을거네.》하고 말하였다.
선비는 원이 빤히 알고 하는 소리인지라 하는수없이 주머니를 풀어 백지우에 털어놓으니 은전과 함께 깨가 섞여 떨어졌다. 돈을 세여보니 농부가 잃어버렸다는 량과 맞아떨어졌다. 선비는 온몸을 떨며 잘못했노라고,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고을원은 명색이 량반인데 돈을 훔치다니 될 말인가고 하면서 그 돈을 관가에 바치면 도적으로 몰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다음 농부를 불러내여 그 돈은 출처가 정확치 않으니 줄수 없다고 하면서 내쫓고말았다.
농부는 나오면서 《량반이나 고을원도 다같은 도적놈이구나.》하고 한탄하였다. 그리고는 그런 도적들에게 돈을 맡기고 도적을 잡아달라고 상소한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하는것을 다시금 되새겨보았다.
민담은 죄를 공명정대하게 판별해야 할 원이란자마저 흑심을 가지고 공개적인 도적질을 하고있다는것을 신랄히 고발하고있다.
민담 《벼슬감투는 〈개감투〉》에서도 고을원의 무지하고 분별없는 수탈행위를 고발하고있다.
옛날 어느 한 고을에 최가성을 가진 과부가 살았는데 돈은 많은데 자식이 없어 개 한마리를 기르고있었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은 최과부의 집을 가리켜 황발이라는 개의 이름을 붙여 부르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사령이 나타나 고을원의 령을 받으라면서 사령장을 내주었다.
최과부는 그 사령장이 대체 무슨 증서인가고 캐여물었다.
그러자 그 관리가 하는 말인즉 《그건 바로 집의 아들 황발이에게 감역벼슬을 준다는 증서이니 부임비로 돈 200냥을 바칠지어다.》하고 외워댔다.
과부가 그 소리를 듣고 너무도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짓인지라 이것은 돈을 빼앗아낼 수작임을 인차 알아차리고 한마디 능청스럽게 쏘아주었다.
《돈은 줄테니 이 증서는 도로 가져가시오. 우리 집엔 사내아이도 없고 벼슬할 사람도 없소이다.》
사령은 과부의 반박하는 소리를 듣고 성을 내면서 《황발이가 이 집 아들이 아니요? 돈 200냥에 감역벼슬이면 괜찮은것이지 무엇이 부족해서 그러는거요?》라고 하였다.
최과부는 어이없어하며 《저 개의 이름이 황발이인데 개에게 벼슬감투를 주어요?》하고 다시한번 쏘아주었다.
사령은 원이 분명 최과부의 아들이 황발이라고 하였는데 개의 이름이라고 하니 이런 망신이 어데 있는가고 생각하다가 그냥 밀몰아버릴 심산으로 《저 개가 수놈이요, 암놈이요?》하고 물었다.
최과부는 수놈이라고 대답하여주었다. 그러자 사령은 《수개는 사내가 아니요?》하고는 마치도 이 집 개에게 벼슬을 준것이 옳은 처사인듯이 중얼거리였다.
최과부는 원과 사령이 노는 꼴이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어 《이놈의 세상에서는 돈만 있으면 개에게도 벼슬자리를 주니 벼슬감투가 〈개감투〉라는 말이 생겨난것이 우연치 않구만.》하고 한탄하였다고 한다.
그후 이 이야기가 널리 퍼져 봉건관료들의 무지막지한 수탈상을 고발단죄하는 하나의 민담을 낳게 하였다.
민담 《속아넘어간 고을원》에서는 아전에게 속히워 도적질까지 하게 되는 산골원의 처참하고 불법무도한 행위를 고발하고있다.
옛날 한 산골원이 임기가 끝나 퇴직하게 되였는데 모아둔 재산도 별반 없었지만 그마저 전부 도적맞혀 늘그막에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운 형편이였다.
워낙 산골원인데다가 물계에 밝지 못하여 이제는 원자리를 내놓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였으나 로자마저 변변치 못한 처지였다. 지금껏 원을 보좌해오던 아전이 그 가긍한 정상을 헤아려보고 어느날 저녁 원에게 이렇게 아뢰였다.
《이 고을에서 첫째가는 부자인 김좌수 집에 몰래 들어가 값진 물건을 채여내오면 당장 천냥금은 얻을듯 하나이다.》
원은 그 소리를 듣고 성을 벌컥 내면서 《아무리 재산이 없기로서니 도적질이야 어떻게 한단 말이냐?》하고 꾸짖었다. 아전은 《원님도 여러번 도적을 맞혔는데 그 봉창을 하는것이 무슨 죄로 되겠소이까. 더구나 김좌수의 가산을 한번 털어오는것쯤은 새발의 피와 같으니 그렇게 하는것이 로자를 마련하는데도 좋을듯 하나이다.》라고 력설하였다.
그리고는 도적질은 자기가 할터이니 원님은 따라가서 망이나 보아주십사 하였다.
마침내 아전과 원은 마음이 통하여 어느날 밤 김좌수의 집으로 도적질을 떠나게 되였다.
두사람은 사다리로 담장을 넘은 다음 고간에 이르러 벽에 구멍을 뚫고들어갔다. 고간에 들어가니 술냄새가 풍기는 독이 있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아니나다를가 그것은 술독이였다. 아전은 마침 속이 컬컬하던 참이라 국자로 연거퍼 떠마시고나서 다음엔 원에게도 권하였다.
원은 언제 술마실 사이가 있는가고 하면서 빨리 해치우라고 독촉하였다.
아전은 술기운이 오르자 무서움도 잊고 《원님이 생전에 남의 고간에 몰래 들어와 술맛을 본 일이 있었겠소이까? 한바가지 량껏 들고 거사를 합시다.》 하며 큰소리로 흥얼거리였다. 그러자 집지키던 장정이 달려오며 《도적이야!》하고 소리쳤다.
아전은 그 소리를 듣고 창고구멍으로 날래게 빠져나왔지만 당황해난 원은 빠질 구멍을 미처 찾지 못하여 독옆에 쪼그리고 앉아 벌벌 떨었다.
이윽고 머슴장정 두명이 홰불을 켜들고 창고안을 뒤지다가 한놈의 늙은 도적(원)을 잡아냈다.
두 머슴은 도적의 손발을 묶은 다음 자루속에 넣어 대문가의 큰 나무에 걸어놓았다. 날이 밝으면 감영에 보내여 죄를 다스릴 작정이였다.
한편 창고에서 빠져나온 아전은 숨어서 그 광경을 살피고있다가 원을 구원하지 못하면 자기도 잡히게 된다는것을 알고 한가지 기발한 꾀를 생각해냈다.
그는 이 집 뒤에 있는 사당(신주를 모신 집)에 불을 지르고 《불이야!》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김좌수네 집안에서 움직일수 있는자들은 모두 사당에 모여들어 불을 끄기 시작하였다.
이런 란장판속에서 아전은 그 집 안방에 뛰여들어가 90살 된 로인을 메고 나와 자루속의 원과 바꾸어넣고 다시 종전대로 나무가지에 매달아놓았다. 그리고는 원에게 량해를 구하고나서 래일 아침 김좌수를 불러앉히고 그앞에서 자루속에 든 《도적》(로인장)을 형틀에 매여놓고 죄를 다스리면 돈이 저절로 흘러들것이라고 말하였다.
날이 새자 김좌수는 자루속에 든 《도적》을 머슴을 시켜 먼저 바치게 하고 뒤미처 원을 찾아가 제소하였다.
원은 아전이 시킨대로 김좌수가 나타나자 자루속에 묶어놓은 죄인을 형틀에 결박하여놓으라고 령을 내리였다. 사령이 하졸을 시켜 자루를 풀어헤치고 죄인을 형틀에 매놓았다.
그러자 김좌수는 너무나도 놀라와 눈이 뒤집혀질 지경이 되여버렸다. 형틀에 매인 죄인인즉은 90살 난 자기 아버지였던것이다.
김좌수는 급히 섬돌밑에 엎드리며 원에게 아뢰였다.
《저 늙은이는 저의 로부(늙은 아버지)입니다. 집안사람들이 도적으로 잘못 알고 잡아넣었으니 그 죄 만번 죽어 마땅한줄 아뢰옵니다.》
고을원은 큰소리로 《네가 불효막심하다는 소문이 온 고을에 자자하더니 오늘은 백주에 제 아비를 도적으로 몰아 자루속에 묶어넣는 큰죄를 지었으니 살아날 길이 막연하다.》하고 엄포를 놓았다.
그리고는 사령을 불러 김좌수의 볼기를 스무대 치게 하고 칼을 채워 옥에 가두어넣게 하였다.
옥에 갇힌 김좌수는 아전을 조용히 불러 돈은 몇천냥이라도 바칠터이니 원에게 잘 여쭈어 죄를 면하게 해달라고 애걸하였다.
아전은 김좌수의 부탁이니 어렵기는 하지만 성의껏 해보겠노라고 안심시키고는 그더러 먼저 하인을 시켜 돈 2천냥쯤 원댁에 보내주라고 일렀다.
김좌수는 면회온 마누라에게 그렇게 일러 3일째 되는 날 원댁에 돈 2천냥을 소바리에 실어보내였다.
이렇게 되여 산골원은 퇴직전에 아전과 함께 도적질하러 나섰다가 잡히여 큰 망신을 당할번 한것을 그 아전의 묘책으로 구원되여 도리여 도적 아닌 생사람을 옥에 가두고 돈 2천냥을 손쉽게 받아넣게 되였다.
후에 이 사실이 밝혀져 민담으로 전하여지게 되였는데 보는바와 같이 원이나 그 아전도 다같은 도적패당이라는것을 신랄히 폭로단죄하고있다.
민담 《포교가 자루속에 들다》에서는 포도청의 포교가 도적을 단속통제할 직분을 가지고있으면서도 도리여 도적에게 놀리워 제가 묶이여 자루속에 들어가는 풍자해학적인 이야기를 담고있다.
옛날 포도청 포교의 집에 도적이 들었다가 들키는 바람에 달아나고말았다. 그러자 포교는 《뉘집이라고 도적놈이 들어온단 말인가?!》하고 큰소리를 치며 어떻게 하든지 도적패당을 잡아내리라 결심했다.
한편 도적패당의 두목은 포교의 그 소리를 듣고 《누군 저만 못해서 도적질하는줄 아는가?! 제놈도 수탈하는데서는 왕도적과 다름없는데 큰소리냐?》하고는 어떻게 하든지 포교네 집을 습격하여 성공을 보리라 마음먹었다.
포교는 그후부터 저녁이면 포승끈과 철퇴를 허리에 차고 대문뒤에 숨어서 도적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도적패당은 자기들대로 밤마다 울바자밑으로 기여와 안의 동정을 살피고있었다. 포교는 련 사흘동안이나 그러고있어도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만둘가 하다가 마지막으로 한번 더 지켜보려고 대문뒤에 숨어있다가 그만 깜빡 잠들고말았다.
도적패당은 이날도 포교의 행동을 지켜보고있었는데 그가 정신없이 졸고있는지라 급히 달려들어 포교의 머리에 마대짝을 씌웠다.
도적패당은 자루속에 든 포교를 움속에 처넣고 집안에 들어가 닥치는대로 걷어가지고 달아났다.
한편 포대안에 있던 포교가 고아대는 소리에 집안사람들이 달려나와 풀어준 다음 돌아보니 집안의 크고작은 물건들중에 남은것이란 하나도 없었다.
노기와 수치를 참을수 없어 애꿎은 집안사람들에게 분풀이를 하다가 남은 항아리마저 다 깨버린 포교는 남의 옷을 얻어입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말았다.
민담은 보는바와 같이 우둔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포교가 도적에게 놀림을 받는 망신스러운 이야기를 통하여 봉건통치배들의 무능과 허탈상을 재치있게 보여준다.
특히 이 주제의 민화들에서는 고을원이나 부사, 포교와 같은 벼슬아치들이 백성의 재물을 수탈하고 관청의 공금을 횡취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는것이 도적패당과 다름이 없다는것을 신랄하게 폭로해주고있다.
그런 이야기로서는 《정평부사의 말안장흥정》과 렴흥방의 수탈행위를 민간극화한 갖가지 설화소재들에서 여실히 찾아볼수 있다. 뿐만아니라 암행어사가 출동하여 악질관료의 수탈과 부화방탕한 행실을 고발하고 처형한 이야기들에서도 봉건관료들을 통쾌하게 징계해부하고있는것을 찾아보게 된다.
관료를 별명으로 풍자조롱하다
력사적으로 보면 어리석고 무지하며 부화방탕한 봉건관료들을 별명을 붙여 풍자조소한 내용의 일화들도 적지 않게 생겨났다.
한 고을의 목사가 파리잡이에 악착스레 백성들을 동원하여 《파리목사》로 별명이 붙었다는 내용의 민담과 문관출신의 경주제독이 부화방탕하기로 이름나 《궤제독》이라는 별명을 붙여 풍자해학한 민담들이 그 실례로 된다.
해학적인 별명에는 그모두가 사연을 안고있는데 그것이 다름아닌 어리석은 관리를 별명으로 풍자조롱한 민담인것이다.
민담 《파리목사》는 성현의 《용재총화》에 실려있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량씨성을 가진 무관이 한때 공주목사를 하였다.
그는 무관으로서 정사에 밝지 못하여 목사가 무슨 일을 주관해야 하는지도 잘 알지 못하고있었다.
그러던차에 여름철이 되면서 파리가 성하여 관청은 물론 민가에도 날아들어 성가스럽게 굴었다.
이렇게 되자 목사는 기본정사는 제쳐놓고 파리잡이를 고을의 중대사로 내세우고 아전과 농부, 광대와 기생 지어는 어린 집종에 이르기까지 파리를 매일 한되박씩 잡아바치라고 령을 내리였다. 누구도 목사의 그 령을 감히 어길수 없었다.
그래서 고을사람들은 다른 일을 전페하고 파리잡이로 쉴새가 없었다.
손이 딸려 미처 잡지 못한 사람들은 베와 파리를 바꾸는 현상들도 나타났다.
그리하여 온 고을이 파리잡이로 날을 보냈고 목사는 파리잡이를 정사로 삼았다.
그래서 고을백성들은 그 목사를 《파리목사》라고 별명을 붙여 조롱하였다. 그러면서 다른 정사도 파리잡듯 한다면 만백성을 위한 정사가 안될리 없을것이라고 한탄하며 어리석기 그지없는 목사를 저주규탄하였다고 한다.
민담 《발가벗은 〈궤제독〉》은 《해동방어》에 실려있는데 실제 있은 사실에 기초하여 꾸민 풍자해학적인 이야기이다.
여기에서는 제독으로 온자가 자기는 주색에서 《청백》한것처럼 거짓소리를 하는것을 실제 행동거지를 통하여 발가놓고 망신시키는 통쾌한 이야기로 꾸며져있다.
한때 경주제독으로 온자가 부임하자 거들먹거리면서 기생의 머리를 담배대로 톡톡 치며 희롱하기를 이런 간사하고 요망한것에 반하여 녹아나는자들이 많다면서 자기는 행실이 바른듯이 훈시질을 하였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듣고있던 기생들은 분을 새기지 못하였고 부윤마저 새로 온 제독을 아니꼽게 여기였다.
그래서 부윤은 《너희들중에서 제독을 크게 골려줄이가 있으면 내가 상을 후하게 주리라.》하고 령을 내렸다.
이에 나이 젊고 어여쁜 한 기생이 응해나섰다.
그때 제독은 집도 이사 못한지라 향교의 방 하나를 얻어 생활하면서 통인아이를 데려다 잔심부름을 시켰다.
예쁜 기생은 촌녀자차림을 한 다음 통인아이와 미리 약속하고 제독을 꼬여 망신시킬 계교를 꾸미였다.
어느날 기생이 통인아이와 재미나게 이야기를 나누는것을 본 제독은 통인아이에게 그 녀자의 래력을 물어봤다.
그래서 통인아이는 《저 녀자는 내 누이인데 매형이 장사하러 떠난지 1년이 돼오도록 돌아오지 않아 저렇게 홀로 지내고있사옵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델 좀 가볼데가 있다면서 집을 지켜달라고 찾아왔소이다.》라고 그럴듯하게 꾸며댔다.
제독은 남편도 집에 없다니 더욱 좋은 기회인지라 통인아이를 통하여 그 녀인을 자기 방에 불러들이였다.
그리고는 《내가 일찍 미인을 많이 보았지만 너같은 고운 녀자는 처음 본다. 너를 본 다음에는 침식을 잊고 네 생각뿐이니 밤을 타서 가만히 와주면 그 이상 좋은 일이 없을것 같다.》하고 애원하듯 주절거렸다.
녀인은 제독의 말을 다 듣고나서 《그것이 진심이라면 그 소원은 풀어드릴수 있지만 향교방에는 갈수 없나이다. 저의 집엔 저 혼자 있사오니 동생에게 전립과 갓저고리를 보내면 그것을 입고 밤을 타서 오시오이다.》라고 말해주었다.
그날 저녁 제독은 통인이 가지고 온 의상을 갖추고 그 녀인을 찾아갔다. 제독은 차려놓은 술을 퍼마시고 양기가 동하자 옷을 홀랑 벗고 웃방의 이불속으로 들어가며 빨리 재미를 보자고 하였다.
이때 갑자기 문밖에서 발자국소리가 나더니 《내가 왔소.》 하는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녀인은 깜짝 놀라는 기색을 지으며 제독에게 남편이 돌아왔으니 들키면 살인이 날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빈 궤짝에 발가벗은 제독을 밀어넣고 쇠를 잠그었다.
《남편》은 방에 들어와서 네가 딴 서방을 보고있으니 이제는 더는 같이 살수 없다면서 옷가지와 물건짝들을 각각 나누어가지자고 을러멨다.
그런데 궤짝만은 누구도 양보하지 않고 저마다 제것이라고 하다가 하는수없이 관가에 소송하여 《판결》받기로 하였다.
소송을 받은 부윤은 두사람이 저저마다 무명 한필씩 내고 샀다고 우기기때문에 어느 한사람을 편견해서 판결할수 없다고 하면서 아전에게 궤짝을 톱으로 똑같이 잘라서 나누어주라고 령하였다.
아전은 부윤의 령을 받고 큰 톱으로 궤짝을 자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별안간 궤짝속에서 《사람 살려주오!》 하는 소리가 났다.
부윤은 놀라는체 하면서 빨리 궤문을 열라고 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발가벗은 제독이 몸을 움츠리고 울상이 되여 나왔다.
그러자 모두들 그 모양을 보고 한바탕 웃어댔다.
부윤은 입이 쓰거워 옷을 가져다 주라고 하였다. 그런데 기생들이 가져다준 옷이라는게 장옷이였다. 제독은 옷을 살펴볼 사이도 없이 장옷을 입고 향교방으로 달아나버렸다. 그후에 제독은 창피하여 어디론가 영영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민담은 제독의 부패타락상을 생동하고 실감있게 해부비판하면서 겉으로는 점잖은체 허세를 부리지만 패덕한이며 인간추물이라는것을 신랄히 풍자해학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