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의에 대한 백성들의 지혜
민담에는 평범한 인물의 의로운 행동과 영특한 지혜, 선의 지향세계를 불의적인것, 흉악한것과의 대조속에서 뚜렷이 보여주면서 평백성의 지혜와 그 승리를 찬양하고 불행을 들씌우려는 악한자를 통쾌하게 징계한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
례하면 머슴군총각이 욕심사나운 지주나 량반을 꾀로써 골려주는 통쾌한 이야기들이 그것을 잘 말하여준다. 지어는 농군의 안해가 자기 랑군에게 들씌워지는 화를 막아낼뿐아니라 꾀로써 상전의 계책을 발가놓고 톡톡히 망신시키거나 다시 범접하지 못하도록 징계하는 이야기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농군총각이 거짓말내기를 걸어온 부자나 지주 그리고 상전들의 기를 꺾어놓고 그 값을 단단히 받아내는 통쾌한 이야기들도 많다.
특히는 농군총각이나 아전이 지주나 상전과 같은 어리석은자들을 골려주고 벼슬자리까지 얻는 통쾌한 이야기들도 수다한것이다.
머슴군이 지주와 량반을 골려주다
지난 시기 머슴군은 사회적으로 최하층에 속하는 천민이지만 미련하고 욕심사나운 지주나 량반보다는 더 영특하고 지혜롭다는것을 밝혀주는 민담들이 하나의 주제령역을 이루면서 풍부하게 창조전승되였다.
이런 민담들은 다양한 변종을 이루면서 확산되여온것으로 하여 비슷한 류형의 설화들이 적지 않게 생겨났다. 그 대표적인 민담으로 《머슴의 지혜》, 《머슴이 량반을 때린 이야기》, 《머슴군이 백부자를 골려주다》 등을 들수 있다.
이 민담들은 모두가 천민인 머슴총각이 지주나 량반보다 더 지혜롭고 령리하다는것을 인민적리념, 선악관계에 기초하여 밝힌것이라고 볼수 있다.
하기에 머슴군의 영특하고 지혜로움이 찬양되고 반면에 지주와 부자, 량반의 어리석고 무지함이 풍자되여 형상의 대조를 이루고있다.
민담 《머슴의 지혜》는 머슴총각의 꾀에 속히운 욕심많은 지주가 나중에는 《지혜단지》를 자기것으로 만들려다가 바위돌에 치여 죽고마는 통쾌한 이야기를 담고있다.
먼 옛날 한 산골에 황가성을 가진 지주가 있었는데 소작인들의 고혈을 악착스럽게 짜내여 벌방지주 못지 않게 풍청대며 살았다.
황지주는 재산을 늘구는데서는 사리가 밝았지만 자기에게 손해되는 일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린색한이였다.
언제인가 아들잔치를 하였는데 얼마나 린색하면 사람들이 올가봐 대문을 닫아매고 저들끼리 혼례를 치르었겠는가. 그리하여 그는 《깍쟁이 황지주》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어느해 가을이였다. 그해따라 산짐승들의 피해가 컸다. 황지주는 산짐승들한테 낟알을 도적맞히는것이 너무도 아깝고 억울하여 가슴을 쥐여뜯다가 덜컥 앓아누웠다.
그러던 지주가 하루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마름과 아들, 며느리를 거느리고 밭으로 나가 부산을 피웠다. 이젠 누구도 믿을 놈이 없으니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까지 저들끼리 지켜야 한다는것이였다.
이러한 때 그 집 머슴총각이 미련하기 짝이 없는 황지주의 우환거리를 덜어주겠다면서 자기의 소견을 여쭈었다.
《주인님, 다른것은 몰라도 곡식을 해치는 뭇새와 산짐승은 소인이 혼자서 다 막아치울테니 너무 상심하지 마시오이다. 저에게 소 한짝과 바줄 열발, 쌀 한되박만 마련해주신다면 어김없이 그 우환거리를 덜어드리겠나이다.》
황지주는 머슴이 자신있게 하는 말을 듣고 귀가 번쩍 띄여 그러면 재간껏 해보라고 쾌히 승낙하였다.
머슴총각은 소 한짝을 끌고 가 밭머리에 매놓은 다음 엉덩짝에 소똥을 발라놓고 거기에 쌀알을 골고루 뿌려주었다. 그리고 소꼬리에 나무방망이를 달아매놓았다.
잠시후에 새들이 날아와 낟알을 쪼아먹자 엉뎅이가 가려워난 소는 꼬리를 휘둘러 참새를 쫓았다. 그러자 그때마다 소꼬리에 매달아놓은 방망이에 맞아 새들이 땅에 떨어지군 하였다.
저녁때가 되여 머슴총각은 땅에 수두룩이 떨어져 죽은 참새를 한자루 가득 담아가지고 가서 지주앞에 내놓았다. 황지주는 참새가 가득 담긴 자루를 보고나서 너무도 좋아 입을 다물줄 몰랐다.
머슴이 이렇게 며칠을 하니 참새는 말끔히 없어졌다. 참새가 없어지자 황지주는 머슴군총각에게 참새는 그만하면 됐으니 이제는 곰을 잡아보라고 하였다.
다음날 머슴총각은 산에 올라 곰이 오르내리는 길목에 바줄로 그네를 매놓고 거기에 큼직한 돌을 매달아놓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곡식을 먹으러 내려오던 곰이 그만 그네에 매달린 돌에 머리를 맞았다. 성이 난 곰이 돌을 안아 뿌리쳤는데 그것이 다시 되돌아와 이마빡을 쿵하고 되게 때렸다.
약이 오른 미련한 곰은 다시 돌을 힘껏 내동댕이쳤다. 그러나 그때마다 돌은 되돌아와서 곰을 사정없이 때렸다.
그렇게 몇번 하자 곰의 머리는 부서지기 시작하였고 마침내는 죽고말았다. 그래서 머슴총각은 잡은 곰을 끌고 와 황지주에게 보이였다.
황지주는 그 숱한 참새와 무서운 곰을 며칠사이에 알짜무식한 머슴총각이 잡았다는것이 너무나도 믿어지지 않아 머슴군을 불러다 놓고 어떻게 그것을 잡았는가고 캐여물었다.
그러자 머슴총각은 《내가 무슨 힘이 있어 이런 일을 할수 있겠나요. 그것은 저 산신이 가지고있는 〈지혜단지〉의 조화이지요. 헌데 다른 사람이 알면 천벌을 받을수 있사오니 다시는 더 묻지 말아주시오이다.》 하고 말하는것이였다.
황지주는 그 《비밀》에 더욱 호기심이 동하여 《자네와 나는 남남이 아니지 않나. 그러니 나한테 말하는건 산신을 노엽히는것이 아니야. 그러니 주저말고 대주게나.》 하고 애걸하였다.
머슴은 잠시 생각에 잠긴듯 하다가 말하였다.
《산신을 노엽혀 벌을 받아도 개의치 않겠다면 주인님에게만은 대드리리다.》
황지주는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면서 자초지종을 캐여물었다. 그래서 머슴총각은 그 《지혜단지》가 뒤산의 깊은 골 움푹바위밑에 파묻혀있다고 하였다.
황지주는 그 이야기를 듣자 속에 흉심부터 생겨나 《지혜단지》를 머슴총각 몰래 파올 생각을 하였다.
어느날 밤 남몰래 혼자서 괭이와 삽자루를 둘러메고 산으로 올라 《지혜단지》가 묻혀있다는 바위밑을 파기 시작하였다. 새벽녘이 되여서야 한길 되게 팠으나 《지혜단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때 바위돌이 움씰거리기 시작하였다.
황지주가 《지혜단지》를 꺼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머리를 바위밑에 박고 손더듬질하여 찾아보는 순간 쿵하고 큰 바위돌이 내려앉았다.
황지주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위돌에 치여 저세상으로 가버리였다. 그리하여 흉측하고 욕심사나운 황지주의 흑심은 바위돌밑에 영원히 묻혀버리고말았다.
민담은 이처럼 머슴총각의 영특한 지혜를 찬양하는 한편 욕심사나운 지주의 종말을 통쾌하게 풍자하고있다.
민담 《머슴이 량반을 때린 이야기》도 머슴총각이 꾀로써 량반을 골려준 이야기를 담고있다.
옛날 번화한 고을에 늙은 량반이 살고있었는데 백성들에게서 긁어낸 많은 재산과 돈을 놀음에 탕진하고있었다. 하루는 흉내놀음을 벌려놓고 흉내를 잘 낸다는 사람들을 청해들였다.
그러나 찾아든 많은 사람들마다 흉내를 생큼하게 내지 못하여 그 량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지 못하였다.
그러자 또 한패의 놀이군들이 찾아들어 오리흉내, 토끼흉내, 고양이흉내를 비롯하여 갖가지 짐승흉내를 냈으나 그것도 늙은 량반의 환심을 사지 못하여 《상》을 받을수 없었다.
이런 동향을 살펴보던 한 머슴군총각이 량반앞에 나타나 제가 한번 재간껏 해보겠다며 나섰다. 그러자 량반은 자네는 무슨 흉내놀음을 가지고 왔는가고 물었다. 머슴군총각은 자기는 량반어른들의 흉내놀음을 하는것이 기질로 되여있다고 하였다.
늙은 량반은 생전처음 듣는 소리인지라 그러면 한번 해보라고 쾌히 승낙하였다. 그런데 머슴군총각은 흉내는 하지 않고 두눈을 부릅뜨고 늙은 량반을 흘겨보기만 하였다.
량반은 머슴군의 행동이 고약하기 짝이 없어 《저런 고현놈, 너 이놈 누구를 감히 노려보느냐?》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머슴군총각은 더 큰소리로 《저런 고현놈, 너 이놈 누구를 감히 노려보느냐?》 하고 꼭같이 소리쳤다.
늙은 량반이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어 《허, 이놈 봐라.》 하자 머슴총각도 손가락질을 하며 《허, 이놈 봐라.》 하고 소리쳤다.
늙은 량반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 《이놈, 주둥이를 닥치지 못할가!》 하고는 벌떡 일어나 머슴군총각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러자 머슴총각도 벌떡 일어나 그가 한대로 량반의 뺨을 드세게 후려갈겼다. 량반은 그 자리에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머슴군총각은 량반과의 흉내놀음에서 비록 《상》은 받지 못하였으나 천대받던 치욕을 복수한것이 더없이 기뻐 가벼운 걸음으로 어데론가 유유히 사라졌다.
민담은 할짓이 없어 나중에는 흉내놀음으로 한가한 시간을 보내며 쾌락을 즐기는 량반을 보기 좋게 따귀를 먹인 통쾌한 이야기를 통하여 머슴군총각의 지혜와 기지를 찬양하고 놀고먹는 속물들을 골려주고 풍자하고있다.
민담 《머슴군이 백부자를 골려주다》도 우에서 본바와 같은 주제의 민담이다.
옛날 평양근방 어느 한 고을에 장사를 하여 벼락부자가 된 백가성을 가진자가 있었는데 그는 욕심사납고 게걸스러워 《백돼지》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백부자는 고을에서 손꼽히는 부자인지라 새로 부임해오는 원들도 늘 안중에 두고있었던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백부자는 고을원으로부터 자기 나이 50살 되는 날에 와줄것을 청하는 초청장을 받게 되였다. 지금까지 관가를 끼고 흑심을 채워온 백부자인지라 원의 생신날에 큰 뢰물꾸레미를 싸가지고 가야 할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였다.
그런데 전날에 잔치집에 가서 포식한 후과로 련 사흘째 설사증을 만나 운신조차 할수 없는 상태였다.
그리하여 자리에 누워서는 《군수령감의 생신날에는 꼭 가야겠는데…》하면서 머슴더러 평양성에 가서 용한 의원을 데려오라고 호령질하였다.
머슴군총각은 죽어가면서도 쌍욕을 퍼부으며 호령하는 백부자가 밉광스러웠으나 주인의 분부이니 할수없이 《제가 한달음으로 평양성에 올라가 용한 의원을 데려오리다.》 하고 여쭈었다.
머슴군총각은 부자를 좀 골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던 길에 자기 딱친구를 찾아가 《평양의원》노릇을 한번만 해달라고 청하였다.
그가 쾌히 승낙하자 머슴은 백부자의 병증상을 낱낱이 알려주면서 톡톡히 망신시켜주자고 약속하였다.
얼마후 머슴군총각은 친구를 데리고 백부자앞에 나타나 명망이 높은 《평양의원》을 데려왔다고 아뢰였다.
백부자는 늙은 몸에 연신 뒤간에 드나들면서 지쳐 쓰러져있다가 들어서는 《평양의원》의 손을 잡으며 죽을것만 같으니 명처방을 써서 꼭 살려달라고 애걸하였다.
《평양의원》은 머슴에게서 병증상을 자상히 듣고온지라 머리를 끄덕이며 그의 맥도 짚어보고 배도 어루쓸며 뭘 잘못 먹은것은 없는가, 언제 누구네 집에 갔다온적은 없는가 하며 아는체 하였다. 그러자 백부자는 그가 진짜명의 같았는지 정말 신통하다며 안도의 숨을 내쉬는것이였다.
《의원》은 이때라 생각하고 부자를 반듯이 눕혀놓고 우선 침부터 맞고보자며 복부에 서너대 꽂고 동정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백부자가 숨차할 때마다 배를 타고 내리누르니 령감은 태질을 하다가 그만 기절하고말았다. 그제야 《평양의원》이 백부자의 배우에서 내려앉으며 하는 말이 《〈부동과식〉(가만히 앉아서 먹기만 하는것)에서 온 병이므로 아직 죽기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으니 안심하소이다.》라고 하면서 이제 좀 나을 기미가 보이면 침대가 기울어진 방향에 고추밭이 있을터이니 그 밭의 고추뿌리를 남몰래 캐여 달포가량 하루 세번씩 달여먹으면 알 도리가 있을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꼬집어 이르기를 남의 손을 빌면 부정이 올테니 그때는 아무런 약효도 바랄수 없으므로 그리 알고 처신을 잘하기 바란다고 하였다.
《의원》의 말을 듣고나서야 백부자는 병을 고칠수 있다는 신심이 생겼는지 막혔던 숨을 후- 하고 내쉬며 꼭 그렇게 하리라고 다짐하였다.
백부자는 그 다음날부터 날이 어두워지면 남몰래 동쪽켠 고추밭에 어정어정 기여가서 고추뿌리를 캐여 자기 손으로 달여먹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고추가 없어진것을 안 밭주인이 도적을 잡으려고 야경을 서다가 백부자와 맞다들게 되였다.
농부가 자기 고추밭에 달려든 도적을 잡고보니 가난한 농군도 아닌 백부자였다.
그래서 모르는척 하고 귀뺨을 한대 갈기고나서 《아니, 이게 백부자가 아니요. 돈많은 부자가 고추가 무엇이라고 밤에 몰래 도적질한단 말이요?》 하고 핀잔하였다.
백부자는 난생처음으로 도적으로 몰린지라 사실을 그대로 털어놓을수도 없고 하여 두손을 모아 빌면서 사정을 보아달라고 애걸하였다.
농부는 백부자의 속대사를 알리 없는지라 다음날 아침 백부자의 머슴을 만나 그 사실을 물어보았다.
머슴총각은 백부자가 고추뿌리를 몰래 캐다가 들켜 소문나게 된것을 알고 그더러 병고치기는 다 틀렸으니 이제는 저승길에 갈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온 동네와 고을에까지 백부자의 도적행위가 소문이 퍼져 사람들이 그 흉심을 다 알게 되자 분통이 터진 백부자는 《평양의원》의 말대로 부정이 왔던지 피를 토하고 쓰러져 죽고말았다고 한다.
이처럼 민담은 머슴총각의 지혜로 제김에 분통이 터져 저승길로 간 백부자의 말로를 통쾌하게 보여준다.
녀인들의 기지
우리 나라 민담에는 고운 안해를 둔것으로 하여 상전이나 관료들의 마수에 걸려들어 안해를 빼앗기거나 화를 당하는 일을 설화화한것이 적지 않다.
《삼국사기》렬전에 기사화된 《도미와 그의 안해》만 보아도 잘 알수 있다.
설화는 포악무도한 개루왕(백제왕)이 천민 도미의 안해가 천하절색인데다가 정절이 굳세여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하다는 소문을 듣고 그의 정절을 꺾어보려는 흉심을 품는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개루왕은 녀인의 정절이란 어두운데서 달콤한 말로 꼬이면 꺾이는 법이라고 하면서 도미를 잡아가두게 하고 측근을 《왕》으로 변장시켜 도미의 안해에게 보내여 그를 시험해보게 한다.
도미의 안해는 《왕》더러 당장은 모실수 없사오니 몸을 깨끗이 정화한 다음 날이 어두워지면 모시겠노라고 하였었다. 그리고는 한 녀종을 아름답게 치장시켜 밤이 이슥해지자 침방에 들여보내였다.
그후 도미의 안해에게 속히운것을 알게 된 개루왕은 성이 독같이 올라 그 분풀이로 도미의 두눈을 뽑고는 쪽배에 실어 멀리 천성도에 떠내려보냈다.
그리고는 도미의 안해를 붙잡아다 야욕을 채우려고 하였다.
그러나 도미의 안해는 지혜로써 왕을 속여넘기고 거기서 빠져나온다.
그후로 도미의 안해는 천성도에서 랑군을 만나게 되며 함께 고구려에 가서 그곳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게 된다.
이외에도 농군의 안해가 영특한 지혜로써 관료의 음흉한 욕망을 통쾌하게 꺾어버린 내용의 민담들도 수많이 창조전승되였다.
그런 민담의 하나로 《볶은 콩 싹나라》를 들수 있다.
옛날 어느 한 고을원이 농군의 고운 안해가 탐나 그를 빼앗을 심산으로 언질을 걸어 삶은 닭알을 주면서 병아리를 깨워오라고 하였다. 농군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라 집에 돌아와 그 기막힌 사연을 안해에게 이야기하고 근심어린 날을 보내고있었다.
농군의 안해는 어쩔바를 몰라하는 남편을 안심시킨 다음 검정콩을 한되박 되게 삶아내는것이였다. 그리고는 동향을 살피다가 고을원이 행차하는 길목밭에 나가 큰소리로 《볶은 콩 싹나라!》 하고 거듭 외워대며 그 콩을 뿌려나갔다.
행차하던 원과 사령들이 그 소리를 듣고 황당하기 그지없는 소리인지라 그를 붙잡아 《볶은 콩이 어떻게 싹이 난다고 고아대는거야?》 하고 따져물었다.
원은 그 녀인의 신색을 살펴보고나서 농군의 안해라는것을 알았다. 그래서 다시 엄하게 왜 미친소리를 하는가고 다불러댔다.
그제야 농군의 안해는 원의 면상을 쏘아보며 《볶은 콩이 싹이 안 나오면 삶은 닭알에서 병아리는 어떻게 까나오리까?!》 하고 면박을 주었다.
아전과 사령들은 그제야 이 아낙네를 나꾸어보려고 원이 흉측한 계교를 꾸몄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말문이 막힌 원은 그 자리를 빨리 피하지 않으면 더 큰 망신을 당할것 같아 《어서 가자. 미친년과 말다툼할 사이가 없다.》하면서 줄행랑을 놓았다고 한다.
이처럼 민담은 원의 흉심을 꾀로써 통쾌하게 골려준 농군안해의 기발한 행위를 찬양하고있으며 원의 패배와 좌절을 선악관계의 리치에서 사실적으로 징계해부하고있다.
민담 《현명한 안해》도 우와 같은 주제를 가진 이야기이다. 말하자면 농부의 안해가 한겨울에 눈속의 버섯을 따오라고 한 상전을 보기 좋게 골려주어 창피를 당하게 한 통쾌한 이야기로 되여있다.
옛날 분수가 없는 평양감사가 한겨울에 시골(강동지방)에 나갔다가 그곳에 산채가 유명하다는 소리를 듣고 버섯을 먹고싶다면서 한 농부에게 눈속의 버섯을 따오라고 령을 내리였다.
또 다른 변종의 민담에서는 어느 한 고을원이 아전의 안해가 곱게 생긴것을 보고 수욕을 채워보려고 언질을 걸어 한겨울에 산에 가서 버섯을 따오라고 강박하였다고 한다.
그 농부는 어처구니없었으나 령을 정면으로 거역하면 된욕을 치르리라는것을 잘 알고있기에 꾹 참고 다시 호출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무슨 묘안이 없겠는가 궁리하던 끝에 밥맛까지 잃어 앓아눕게 되였다.
안해는 남편에게 들씌워진 화를 결연히 막아나서리라 다짐하고 어느 하루 이른아침에 관가의 대청마루에 나타났다.
원은 제발로 찾아온 녀인을 보고 흡족하였으나 그의 눈에 독기가 서린것을 보고 남편은 어디 가고 아녀자인 네가 관청에 찾아들었느냐고 엄하게 따졌다.
그러자 녀인은 사실을 직고한다면서 《어저께 랑군님이 산에 버섯따러 갔다가 눈속에 숨어있는 뱀에게 물려 죽을 지경이 되여 첩이 할수없이 이렇게 왔소이다.》라고 하였다.
원은 그의 말이 거짓말이 분명한지라 《한겨울 눈속에 뱀이 있을수 없으니 뱀에게 물리워 죽게 되였다는 소리는 분명 거짓이로다. 원, 발칙하기 그지없도다.》라고 하였다.
이때라고 생각한 그 녀인은 《겨울날 눈속에 뱀이 없다면서 엄동설한에 버섯을 따오라고 령을 내리는 처사는 삼척동자도 앙천대소할 일이 아니오이까?!》 하고 쏘아주었다.
그러자 농부안해를 업신여기고 욕망을 채워보려던 원은 더는 그런 흉심을 품지 못하게 되였다. 그후 그 소문이 점점 퍼져 원은 끝내 먼곳으로 쫓겨가고말았다고 한다.
민담 《농군의 안해》에서도 농군의 안해가 자기의 미모에 현혹되여 얼빠진짓까지 하는 어리석은 왕을 꾀로써 골려주고 망신시킨 통쾌한 이야기를 담고있다.
옛날 한 고을에 마음씨 착하고 일솜씨 부지런한 농군총각이 있었는데 나이들자 그 산골에서는 으뜸가는 녀인을 안해로 맞아들이였다.
농군은 살림이 어렵지만 인물 잘나고 마음씨 고운 안해를 맞아들인것으로 하여 산에 올라가 나무하다가도 쉴참이면 늘 안해의 화상을 그리군 하여 그 수가 몇달사이에 백여장이나 되였다.
그러는 사이에 부부간의 정은 더욱 두터워졌고 동네방네에 금술이 좋은 젊은 부부로 소문이 났다.
그러던 어느날 산에 나무하러 간 그는 쉴참에 또 안해의 화상을 그리였다.
어느덧 해가 기울어 산을 내리려고 지게에 나무짐을 올려놓는데 순간 돌개바람이 일어 안해의 화상이 하늘공중으로 날아나버리였다.
그런데 일이 별스럽게도 되였다. 바람에 날려간 안해의 화상으로 하여 이 금술좋은 부부에게 화가 미치게 되였던것이다. 그것인즉 이 산지대에 꿩사냥을 나왔던 왕이 그 녀인의 화상을 얻어보고 천하절색의 미인상인지라 사령에게 령하여 그 녀인을 찾아내여 대령시키라고 어명을 내린것이였다.
사령들이 그 화상을 가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그들이 사는 마을에도 나타났다. 사령이 화상의 임자가 누군가고 묻자 농군은 그것이 내가 그린 안해의 화상이라고 사실대로 말하였다.
그러자 사령은 상감마마께서 그 녀인을 즉시 대령시키라는 어지를 내렸다면서 안해를 무작정 끌고 가려 하였다. 자기가 안해의 화상을 바람에 날려보낸 후과로 일이 이렇게 번져졌으니 농부는 억이 막혔다.
사령들이 마당가에 벋치고있자 농부의 안해는 임금의 호출을 어찌 마다하겠는가고 하면서 이제 옷을 갈아입고 나가겠으니 잠간만 기다려달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남편을 데리고 웃방으로 올라갔다. 농문을 열어 옷을 꺼내며 안해는 걱정하는 남편에게 이제 내가 꾀를 써서 사태를 바로잡을테니 그 사이에 당신은 활쏘기와 춤추는 법을 익혀두었다가 왕이 방을 내여 잔치를 차린다고 하면 그때 새털옷을 해입고 나타나 춤판을 들썩하게 해놓으라고 당부하였다.
왕은 사령들이 데리고 온 농군의 안해를 직접 보니 화상과 같이 보기 드문 미녀인지라 그에게 제일 값진 비단필로 새옷을 지어입히고 첫선을 보일겸 궁중안에서 잔치를 크게 벌리였다. 그러나 왕옆자리를 차지한 그 녀인은 수심에 겨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왕은 이 기쁜 날에 무슨 연고로 수심에 잠겨 기분을 잡치게 하는가고 물었다.
농군의 안해는 그제야 절절한 소원이 있는듯 입을 열었다.
《저에게는 일찌기 어린시절에 헤여진 오라버니 한분이 있사온데 이런 즐거운 날을 맞고보니 못견디게 그리워져 청컨대 각 고을에 방을 놓아 걸인잔치를 차리면 혹시 만나볼수 있지 않겠는가 하나이다.》
왕은 그런 소원이야 못풀어주겠는가고 하면서 활쏘기와 사냥놀이도 할겸 만사람이 모여들게 방을 놓고 성대한 연회를 차리게 하였다.
농군은 안해와 한 약속대로 새털옷을 입고 사냥춤을 쟁기있게 추며 왕의 풍막가까이로 갔다. 그러자 수심에 잠겨있던 그 녀인이 너무도 좋아하는지라 왕은 《내가 그 새털옷을 바꾸어입고 춤을 추면 더 기쁠테지!》 하고는 왕옷을 벗어놓고 그 사냥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자네의 새털옷을 내가 입고 춤을 출테이니 그사이에 자네는 내 옷을 입고 왕좌에 앉아있게. 이 옷을 입으면 춤도 신선같이 추게 되여 모두들 좋아할것이니 한번 즐겁게 놀아보자는걸세.》 하고는 덩실덩실 춤추며 뭇사람들속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되여 그 농군은 왕의 옷을 입고 룡상에 가앉았는데 춤판이 신나게 벌어지다나니 왕좌에 앉아있는 사람이 농군인줄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새털옷을 입은 왕은 새로 맞아들인 녀인을 즐겁게 해주려고 련속 기세를 올리다가 기진맥진하여 그만 춤판 한가운데 쓰러지고말았다.
이때라고 생각한 농군안해는 《궁중놀이를 어지럽히는 저 사냥군을 옥에 잡아가두어라!》 하고 어명을 내리듯 소리쳤다. 무슨 판국인지 알수 없었던 사령들은 새 《왕비》의 분부이고 룡상에는 《임금》이 엄숙히 앉아있는지라 너부러진 《사냥군》을 옥으로 끌고 갔다.
농군과 그의 안해는 이렇게 되여 왕과 왕비로 둔갑하여 어가를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보는바와 같이 민담에서는 농군의 안해가 기발하고 영특한 지혜로써 어리석은 왕의 추악한 욕망을 꺾어버리고 죄인으로 옥에 갇히게 하는 실상을 재치있고 기지있게 꾸며냄으로써 선악에 대한 판결을 인민적리념에 맞게 실현시키고있다.
이런 류형의 민담에서는 관료나 소위 식자나 좀 있다고 으시대는 량반보다 평백성이 더 영특하며 지혜롭고 기발하다는것을 보편화하여 보여주고있다.
민담 《농부의 안해 고을원을 망신시키다》는 색광인 고을원을 농부의 안해가 꾀로써 톡톡히 망신시킨 세태설화의 하나이다.
옛날 산이 많은 한 고을에 젊은 농부가 어여쁜 안해를 맞이하여 재미나게 살아 그 마을사람들모두가 부러워하였다.
이러던차에 이 고을에 새로 부임되여온 원이 고을을 돌아보다가 어여쁜 농부의 안해를 보고 대번에 욕망이 동하여 수작을 걸어볼 생각을 했다. 방도가 떠오르지 않아 모대기던 원이 어느 하루는 그의 남편을 관청에 불러냈다.
새로 부임한 원의 부름을 받고 간 남편은 저녁이 되여서야 수심에 찬 얼굴로 집에 들어갔다. 그래서 무슨 일로 원님이 부르셨는가고 안해가 물었으나 남편은 종시 입을 열지 않았다.
안해는 속상하여 저녁상을 차려주고는 함께 살면서도 나에게 말 못할 사연이 따로 있는가고 울음섞인 말로 캐여물었다.
그러자 남편은 고을원이 자기가 내는 세가지 물음에 다 대답하면 벼슬자리를 주고 그렇지 못하면 안해를 관가의 심부름군으로 바쳐야 한다고 언질을 걸었다는것이였다. 그러면서 이것은 다 당신이 남보다 잘난탓에 입는 화라고 서럽게 토설하였다.
안해는 남편의 그 정상을 두고 분이 치밀어올라 참기 어려웠으나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당신이 이런 모욕을 당하는것은 제탓이니 제 재간껏 막아보리다.》 하고 안심시키였다.
그 이튿날 농부의 안해는 남편을 대신하여 고을원이 좌정한 대청마루에 나타났다. 원은 이외로 절색의 녀인이 제발로 찾아온것을 보고 일이 제대로 되는가싶어 속으로 흡족해하였다.
농부의 안해는 원에게 《저와 관련하여 제기된 문제이기에 제가 직접 풀어볼가 하나이다.》 하고 공손하게 아뢰였다.
그러자 원은 인사치레로 대화를 나누고 재미를 보는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첫번째 물음을 내놓았다.
《저앞에 흐르는 향암천의 물이 모두 몇말이나 되겠느냐? 어디 대답해보라.》
농부의 안해는 잠시 생각을 굴리다가 《향암천만 한 큰말이 있으면 한말이고 절반만 한 말이 있으면 두말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원은 다시 《그러면 저 하늘에 뜬 해는 하루에 몇리를 가겠느냐?》고 물었다. 농부의 안해는 《120리오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원은 《어째서 120리라고 하느냐?》 하고 되물었다.
농부의 안해는 《소녀가 녕변에서 시집오는 날 아침해가 뜰 때 집을 떠나 이 마을에 이르니 해가 졌습니다. 녕변에서 여기까지 120리이니 하루에 해가 120리 간다는것이 아니오이까.》라고 하였다.
농부의 안해가 두가지 물음에 거침없이 대답하자 원은 이번에는 서슴없이 바지안의것을 가리키면서 《이것이 몇근이나 나가겠느냐?》 하며 희롱하듯 히쭉 웃었다.
농부의 안해는 쑥스럽기 짝이 없었으나 얼굴 한점 붉히지 않고 한참 원의 상통을 쳐다보다가 《그것은 꼭 두근 반이올시다.》 하고 쏘아주었다.
그러자 원은 부끄럼도 없이 그것을 흔들어보이며 《어째서 두근반이라고 하는가?》 하고 되물었다.
농부의 안해는 《저의 친정아버님이 육고집을 차려놓고있사옵니다. 얼마전 죽은 송아지 한마리가 육고집에 들어왔는데 어떤 손님이 송아지의 밑의것을 약으로 쓰겠다고 하여 그것을 잘라 저울에 달아보니 꼭 두근 반이였소이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원은 화가 나서 《그럼 내것이 죽은 송아지것과 같단 말이냐?》 하며 푸르딩딩해서 날뛰였다.
그러자 농부의 안해는 원이 더는 언질을 못 잡게 당돌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정 같지 않다고 여기신다면 속씨원하게 한번 잘라내여 저울에 달아보시오이다.》
그제야 원은 《잘라내?…》 하고 외마디소리를 지르며 풀썩 주저앉더니 농부의 안해를 그 자리에서 쫓아버리였다.
그후로 이 사실이 한입두입 건너 소문이 퍼지자 원은 더는 머리를 들고 다닐수 없어 끝내는 쫓겨가고말았다고 한다.
민담은 원의 흉측하고 추악한 행위와 계책을 도담하고 기지있게 골려주고 톡톡히 망신시키는 농부안해의 영특한 지혜를 생활론리에 맞게 잘 보여준다.
특히 이야기꾸밈수에서 재담적기질과 인민적재능을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다음의 민담 《백쉰가지 음식》과 《십리국》은 쌀 몇되박 꾸어간 값으로 지주가 세상에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음식을 해오라고 억지를 부리는것을 농부의 안해가 꾀를 써서 보기 좋게 골탕먹이는 통쾌한 이야기를 담고있다.
민담 《백쉰가지 음식》은 제목이 보여주는바와 같이 지주가 흰쌀 몇되박 꾸어주고는 섣달그믐날에 그 소작인 농부를 불러 래일은 설날이니 꾸어준 쌀값대신 백쉰가지 음식을 해오라고 강박하였다.
농부는 걱정끝에 안해에게 그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안해는 고약하기 그지없는 지주를 되게 골탕먹이리라 마음먹고 자기 남편을 안심시켰다. 그리고는 다음날 음식상을 자기 집에 차려놓고 지주를 불러오게 하였다.
지주가 소작인농부를 따라 방에 들어서니 상우에는 흰 김치(백김치)와 쉰 가지채가 놓여있었다.
그것을 본 지주는 분통하여 《이놈, 그래 두가지 음식을 차려놓고 백쉰가지 음식을 차렸다고 나를 불러왔느냐?》 하고 호통질을 하였다.
그러자 상옆에 서있던 농군의 안해가 나서며 하는 말이 《백가지(백김치) 김치에다 쉰 가지채를 마련하였으니 백쉰가지가 아니오이까?! 나라의 임금님도 백쉰가지의 음식은 잡수어본 일이 없사온데 하물며 작은 촌락의 지주어른이 백쉰가지의 음식을 찾으시니 백성들은 백김치에 쉰 가지채를 찾는줄밖에 알 도리가 있겠나이까.》 하고 죄목을 짚어가며 송사하듯이 엮어대는것이였다.
지주는 농군 안해와 맞섰다가는 창피를 당하는것은 둘째치고 역적죄에 걸려들것 같아 아무 말도 못하고 입만 쩝쩝 다시며 줄행랑을 놓았다고 한다.
민담은 지주의 유치무도한 강도적인 본성을 통쾌하게 발가놓는 녀인의 도담하면서도 지혜로운 행위를 선악관계에 기초하여 비교적 진실하고 기지있게 보여준다.
민담 《십리국》은 앞에서 본 설화와 비슷한 생활소재를 가진것으로서 한말의 쌀을 꾸어주고는 소작인의 귀여운 딸자식까지 머슴으로 빼앗기 위해 언질을 걸어 《십리국》을 끓여오라고 강박하는 지주를 통쾌하게 골탕먹이는 이야기이다.
옛날 어느 한 마을에 마음씨 착하고 고지식한 농부가 영특한 안해와 다 큰 딸자식을 데리고 소작살이를 하며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고있었다.
그러던 어느해 늦은봄에 안해가 중병에 걸려 앓아눕게 되자 흰쌀미음이라도 쒀먹이려고 할수없이 지주집에 가서 쌀 한말을 꿔오게 되였다.
그런데 그해에도 다음해에도 흉년이 들어 빚을 갚지 못하고 석삼년을 넘기다나니 변이 붙어 열말값이 되였다.
그래서 늘 걱정을 안고 살아오던 어느해 봄 소작인농부는 딸과 함께 풀뿌리를 캐고있는데 지주령감이 지나다가 그들을 보고 《자네 딸 하나는 잘 두었구만!》 하고는 그 딸을 넘겨다보면서 그전에 꾸어간 쌀값은 어떻게 할셈이냐고 물었다.
농부는 이른봄부터 풀뿌리를 캐여 겨우 연명하고있는 형편인지라 아무런 대답도 주지 못하였다.
그러자 지주는 고양이 쥐생각 하듯 지금 당장 물기는 어려울테니 그것은 차후로 계산할셈 치고 우리 마누라가 요즘 앓고있는데다가 이틀후에 생일도 쇠야 하니 딸에게 《십리국》을 끓여 보내주면 빚을 후히 처분해주겠노라 하였다.
농부는 집에 돌아와 안해에게 지주가 한 말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영특한 안해는 《십리국》이란 난생처음 듣는 소리인지라 그 지주가 《십리국》을 못 끓여오면 그것을 언질삼아 자기 딸을 머슴으로 써먹고 욕보이자는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생각을 굴리다가 《십리국》이라면 오리 두마리를 합친 국이 아니겠는가, 그것이야 힘들게 없지 하고는 강가에 나가 사공더러 오리 두마리를 잡아달래서 끓여가지고 지주집으로 달려갔다.
농부의 안해는 공손히 례의를 표하고 분부대로 《십리국》을 끓여왔으니 어서 마님께 대접시키라고 하였다.
지주는 농부의 딸이 올줄 알았는데 그의 안해가 나타난데다가 자기도 알지 못할 《십리국》을 끓여왔다니 미심쩍은 생각이 들어 국가마뚜껑을 열어보았다. 가마에는 뜻밖에도 오리 두마리가 대가리를 숙인채 둥둥 떠있는것이였다.
지주는 분이 치밀어올라 《이거야 오리국이지 〈십리국〉인가? 어찌 이것으로 쌀 열말값을 대신한단 말이냐!》 하고 호통쳤다.
농부의 안해는 이때라고 생각하고 국가마를 다시 지주의 눈앞에 들어올리며 《똑똑히 보시와요. 오리 둘이면 십리가 되니 〈십리국〉이 아니고 무엇이오이까? 그것이 아니라면 〈십리국〉이 어떤것인지 말씀해보시오이다.》
지주는 할 소리가 없는지라 오리 둘이면 십리가 되니 《십리국》이라고 할수 있지 하고는 로친에게도 자기의 그 음흉한 속심이 드러날가봐 더는 캐여묻지 못하고 벙벙해 서있었다. 그제야 농부의 안해는 《〈십리국〉을 놓고 갑니다.》 하고는 한시름을 덜어버린듯 집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보는바와 같이 민담은 농부의 안해가 영특한 지혜로써 지주의 음흉한 계책과 욕구를 신랄히 단죄하고 통쾌하게 골탕먹이는 인민적기지를 찬양하고있다.
다른 주제의 민화에는 천민인 기생이 세 젊은 량반을 문장짓기로 통쾌하게 골려준 이야기도 있다.
옛날 칠보산의 청계골에는 살길이 없어 작은 술집을 차려놓고 유람객을 봉사하는 천민기생이 있었다.
어느 화창한 봄날 한낮에 세 젊은 량반이 칠보산구경을 가다가 이 술집에 찾아들었다.
얼근해진 그들은 녀인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여 다음로정을 구경할 생각도 잊고 눈치만 보면서 누구든 먼저 자리를 뜰것을 바라고있었다.
그러던중 한 량반이 《다음곬을 구경하러 떠납세!》 하고 일어서자 다른 두 량반도 체면상 일어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데 저녁녘이 되자 그들은 똑같이 되돌아왔다. 그러나 세 량반이 작은 술집에서 함께 묵을수는 없는 일이여서 더는 못 가겠다며 저들끼리 자리다툼을 하였다.
천민기생은 젊은 세 량반의 처사가 미련한지라 그 식자된 도리도 알겸 하나부터 열까지의 수자에 맞추어 문장을 짓는 어른은 묵어가도 될것이라고 하였다.
세 젊은 량반은 기생의 호감을 사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그 모두가 넷까지도 맞추어내지 못하였다.
천민기생은 문장도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색에만 미쳐돌아가는 량반네들을 한바탕 골려주고 쫓아버릴 생각으로 일사천리로 열자리수까지 엮어내려갔다.
하나도 아니시고
둘도 아니신 여러분들이
삼월도 다 지나고
사월이 다가오는 화창한 봄날에
오장만이 아니라
륙부도 건장하시다면
칠보산구경이나 할것이지
팔자가 사나운 이 계집의
구멍에만 침을 흘리면서
열어보겠다고 싱갱이질하니
참으로 헛량반이 아니오이까
세 젊은 량반은 천민기생이 문장에 달통한데다가 자기들의 흉심을 그토록 신통히도 꿰뚫어보는 그 훈시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산이 유명하여 칠보산이라 했거늘 천민기생도 그 명산의 명기로다!》라고 감탄하며 자기들의 부질없는 행동을 탓하였다고 한다.
이 민담에서는 천민녀인(기생)이 량반행세를 하며 저들의 욕구를 채워보려고 거들먹거리는자들을 통쾌하게 골려준 내용뿐아니라 그 매듭도 재치있게 꾸며나가고있다.
이처럼 이 주제의 민담은 농군의 안해나 천민출신의 녀인들이 그 상전이나 지주, 량반, 관리보다 더 지혜롭고 현명하다는것을 선악의 대조속에서 생활적으로 실감있게 보여주고있는것이다.
거짓말내기로 횡재를 하다
세태생활민담에는 거짓말내기와 관련하여 선악관계를 기지있게 밝힌 통쾌한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
옛날에는 한가한 량반, 벼슬아치나 돈많은 부자, 놀고먹는 지주나부랭이들이 주색을 즐기는것만으로는 성차지 않아 나중에는 심심풀이로 거짓말내기까지 벌려놓고 돈과 벼슬로 사람들을 희롱하였다.
그래서 거짓말내기판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나 그중에서도 농군총각들이 거짓말을 기발하게 꾸며내여 대상을 통쾌하게 골려주고 그 값을 받아 횡재하는 이야기가 하나의 민화류형으로 생겨나게 되였다.
그중에서 대표적인것들은 《팔도재담집》에 2건이 실려있고 기타는 《야담집》들에 실려 전하여온다.
민담 《재상을 속여넘긴 농군총각》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있다.
옛날 한 재상이 조정에서 벼슬을 맡아보고있었는데 들고 오는 뢰물이 너무 많아 처치하기가 어려운 형편이였다.
그래서 부귀영화를 누리는것마저 싫증나 생각다못해 자기를 속여넘기는 이야기군이 있으면 그에게 고을원의 벼슬까지 하사하겠노라고 하였다. 그 소식을 듣고 숱한 량반나부랭이들이 거짓말을 꾸며가지고 찾아들었으나 원래 물계가 밝다고 자처하는 재상인지라 모두가 퇴짜를 맞고 돌아갔다.
서울장안에서 들려오는 그 소문을 듣고 이웃고을 농부총각이 재상과 맞서볼 생각으로 대청마루에 나타났다.
재상이 농부총각의 아래우를 훑어보고나서 무슨 용건으로 왔는가고 묻자 총각은 거짓말내기로 벼슬을 얻어볼가 하여 왔노라고 하는것이였다.
재상은 탐탁치 않은 눈으로 총각을 보며 만일 나를 속이지 못하면 벼슬은 고사하고 곤장신세를 톡톡히 볼줄 알라고 하면서 어디 재간껏 거짓말을 해보라고 하였다.
농부총각은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재상님, 소인이 방금 이리로 오다가 이상한것을 보았나이다.》 하고 첫마디를 뗐다. 재상은 그게 무언가고 물었다.
그러자 총각은 《다름아니라 방금전에 하늘공중에서 큰 기러기가 날아가다가 앵두 한개를 떨어뜨렸는데 어찌도 큰지 독만 하였소이다.》라고 하였다.
재상은 《너 무슨 황당한 소리를 하느냐. 앵두가 독만 한것이 어디 있단 말이냐?》라고 반문하였다.
농부총각은 《아니올시다. 사발만 했소이다.》 하고 제꺽 고쳐 대답하였다. 재상이 그것도 믿기 어렵다고 하자 총각은 《사실은 도토리만 했소이다.》 하고는 《이것이 죄다 거짓말이 아니오이까?》 하고 들이대는것이였다.
재상은 《앵두가 도토리만 한것은 사실인데 왜 거짓말이라고 하느냐?》 하고 노려보았다.
그러자 농부총각은 《앵두가 도토리만 하다는것은 사실이라 치더라도 한여름날 기러기가 어디에 있어 앵두를 물고 날아간단 말이오이까? 기러기는 구시월에 남으로 날아가옵는데 한여름철 앵두를 어떻게 물고 날아간단 말이오이까? 그러니 이것이 거짓말이 아니고 사실이란 말이오이까?》 하고 련속 말꼬리를 잡아챘다.
재상은 이러다가는 더 큰 망신을 당할것 같아 입을 쩝쩝 다시며 그럼 내가 속은셈 치고 무슨 벼슬자리를 원하는가고 물었다.
농부총각은 그제야 통쾌한 웃음을 터치며 《한마디 말에 속히우는 재상 아닌 〈재상〉이 주는 벼슬자리라야 속히워서 사는 〈벼슬〉자리일터인즉 그런노릇을 제정신을 가지고 한단 말이오이까?》 하고는 다시는 거짓말내기로 벼슬자리를 준다는 말을 꺼내지 말라고 오금을 박아주고는 대청마루를 나섰다고 한다.
민화는 보는바와 같이 남에게 속히우지 않는다고 거짓말내기놀음을 벌리는 어리석은 관료배를 영특하고 기발한 지혜로 통쾌하게 골려준 농부총각을 선의 체현자로 인민의 지향에 맞게 적극 찬양하고있다.
민담 《거짓말 세마디로 딸을 빼앗다》도 《팔도재담집》에 실려있는 이야기이다.
옛날 한 부자가 거짓말내기를 즐겨하며 한가한 세월을 보내다가 장난삼아 신통한 거짓말 세마디를 들려주는 총각에게는 자기 딸을 주겠노라고 장담하였다.
그리하여 이웃고을에 사는 많은 총각들이 찾아들었다. 그러나 부자가 첫번째, 두번째 거짓말만 인정하고 세번째 문제는 무턱대고 거짓말이 아니라고 잡아떼는통에 누구도 승산을 보지 못하고있었다. 그러던차에 한 농군총각이 부자의 꾀임수를 알아가지고 이 집에 찾아왔다.
농군총각은 부자와 인사를 나누고 첫번째 거짓말을 엮어댔다.
《내가 보건대 여기에서는 농사짓는 법을 잘 모릅니다. 우리 고장에서는 밭의 치수에 따라 점방에 가서 삿자리를 사다가 밭에 씌워놓고 구멍을 뚫어 씨를 꽂아넣지요. 그러면 싹이 나와 자라나 김도 매지 않고 한가히 지내다가 가을에 삿자리를 들어 낟알을 훑어내면 한알도 허실함이 없이 수확하게 됩지요.》 하고 자랑하였다.
부자는 듣고보니 신통히도 꾸며낸지라 그것은 거짓말이 틀림없다고 하였다.
농군총각은 이번에는 두번째 거짓말을 하겠노라고 하고는 주인령감에게 여기에서는 한여름날에 무더위를 어떻게 막는가고 물었다.
주인장은 부채질하는것밖에 특별한 방법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총각은 《우리 고을에서는 추운 겨울에 많은 독을 준비해서 독마다 찬바람을 한가득씩 채워넣고 종이로 꽁꽁 봉인해둡니다. 그랬다가 여름이 되면 거리 여기저기에 그 독들을 드문히 세워놓고 동침으로 구멍을 숭숭 뚫어놓으면 찬바람이 나와 온 고을이 선선해지지요.》라고 신나서 이야기하였다.
부자는 듣다못하여 불쑥 그런 거짓말도 있는가고 따져물었다.
이리하여 총각은 두번째 거짓말까지 인정받게 되였다.
부자령감은 어떤 일이 있어도 우겨야지 이제 세번째 거짓말까지 인정하게 되면 이 능청스러운 총각녀석에게 딸을 주거나 돈을 섬겨바쳐야 했다.
총각이 부자에게 세번째 거짓말을 하겠노라고 아뢰니 부자는 아무튼 마음대로 하라면서 배심이 든든한 기세였다.
총각은 그러자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안주머니에서 문서 한장을 꺼내보이면서 《이것은 로인장의 선친께서 우리 선친께 빚진 문서장인데 그 빚돈이 300냥이나 되였은즉 이제는 물 때가 되였는가 봅니다.》 하였다.
부자령감은 그 액수가 너무도 엄청나기에 옳다그르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안절부절하였다.
부자령감의 동태를 살피던 농군총각은 《어때요. 이것도 거짓말같지요?》 하고 묻자 《그래, 거짓말이야. 우리 선친이 그 많은 빚을 언제 졌단 말이냐. 온통 거짓말만 꾸며대는구나!》 하고는 자기가 총각에게 딸을 주게 된것을 한탄하였다고 한다.
이 민담도 할일없어 거짓말내기로 쾌락을 즐기며 사람들을 우롱하는 부자나부랭이들을 골탕먹이는 농군총각의 지혜와 영특함을 찬양하고있다.
다음의 민담 《우스개소리 세마디로 외동딸을 빼앗아내다》도 앞에서 본 민담과 같이 한 령감이 늘그막에 옛말을 잘하는 사위를 얻겠다고 소문을 냈다가 끝내는 외동딸을 농군총각에게 떼우는 통쾌한 이야기를 담고있다.
옛날 어느 한 시골에 돈개나 있는 늙은 령감이 로친을 잃고 홀로 외동딸을 데리고 살다보니 심심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늘그막에 로친네를 얻어와야 재미도 못 볼것 같아 그보다는 옛말이나 우스개소리를 듣는데 더 취미를 가지게 되였다.
그래서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재미나는 옛말을 듣군 하였는데 그것도 성차지 않아 이제는 집에 틀고앉아 우스개소리내기를 한다는 소문을 내여 사람들을 불러들이였다.
그런데 찾아오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인즉 거의나 이미 듣고 지나간 소리이고 흥미를 끄는 우스개소리는 하나도 없으므로 다 퇴짜를 놓았다.
그래서 진짜 우스개소리를 하는 총각이면 농군이든 머슴이든 관여치 않고 자기 사위로 삼겠다는 소문을 내돌렸다.
한 농군총각이 그 소문을 듣고 이웃고을에 사는 한담군의 도움을 받아 우스개소리 세가지를 꾸며가지고 령감집에 찾아들었다.
령감은 총각이 농군임을 대뜸 알아보고 시답지 않은 투로 우스개소리를 세마디만 해보라고 하였다.
총각은 이것은 엊그제 우리 아래동네에서 실지로 있은 사실이라고 하면서 말꼭지를 뗐다.
《먼길을 떠난 한 길손이 날이 어두워지자 찾아들어간것이 우리 아래동네에서 혼자 사는 박과부집이였습니다. 과부는 이 손님이 자기가 과부인줄 미리 알고 찾아온것으로 믿고 허물없이 말을 나누다가 한이불속에 들어 재미까지 보고서야 잠들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나그네가 나서려 하자 과부는 잔 값을 물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길손은 어처구니가 없어 이렇게 물었습니다.
〈임자 귀쑤시개로 귀구멍을 쑤실 때 귀구멍이 씨원한가 아니면 귀쑤시개가 씨원한가?!〉
그러자 과부도 보통내기가 아닌지라 맞받아 되물었습니다.
〈여보시오, 꿀단지를 핥으면 단지가 달콤해할가요 아니면 혀가 달콤해할가요?!〉
그러자 두사람은 얼굴을 쳐다보다가 그것이 다 맞는 말이라고 인정하고 서로 그 값을 치르기로 하였습니다.
길손은 꿀단지를 핥은 값은 내가 치르고 그대신 귀쑤셔준 값은 임자(과부)가 물면 될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과부는 〈둘이 씨원한 맛도 같이 보았으니 값도 똑같이 물어야 하겠지만 서로 주고받고 할게 있어요?!〉 하고는 길손을 바래워주면서 또 찾아오라고 하였답니다.》
총각의 이야기를 다 듣고난 령감은 그것이 사실 같으면서도 신통히도 잘 꾸며낸 우스개소리로구나 하고 감탄하기까지 하였다.
총각은 신이 나서 두번째 이야기를 하였다.
《옛날 조물주가 사람을 만들 때 처음엔 녀자의 아래것을 배꼽과 홍문 중간쯤에 놓여있게 하였는데 겉모양이 엽전처럼 동그랗고 물이 차있다고 하여 〈동글우물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자 〈배꼽집〉과 〈홍문집〉은 우리도 다같이 둥근 모양인데 〈우물집〉만 동글자를 붙여 부르는가고 항소하여 빼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점차 〈배꼽집〉과 〈홍문집〉의 사이가 나빠지면서 서로 흉질을 하다가 자기편으로 〈우물집〉을 끌어당기려고 서로 싸움을 벌리게 되였습니다.
〈홍문집〉은 내장에 포알을 가득 장탄하고있는지라 포를 연방 쏘아대며 〈배꼽집〉을 위협하여 〈우물집〉을 자기 집 가까이에 끌어당기였습니다. 그통에 동그란 모양을 하였던 〈우물집〉이 찌그러져 오늘과 같이 길죽한 모양으로 〈홍문집〉가까이에 와붙게 되였습니다.
그런데 이로 하여 더 난처한 일이 생겨났습니다. 두 집은 가까이에 와붙었으나 서로 다른 냄새를 풍기는 바람에 옥신각신 싸우게 되였습니다. 그러자 끌어당기기에서 진 〈배꼽집〉은 너무도 깨고소하여 혼자 깔깔대며 웃다나니 그 모양이 쭈글쭈글하게 되고 웃을 때면 나왔다들어갔다 한답니다.》
총각이 하는 말에 령감도 웃음이 나서 신통하다고 실토해버렸다.
그러자 총각은 신심에 차서 세번째 이야기를 꺼냈다.
《오랜 옛날에 남자들은 아래에 붙은것을 남들이 보라는듯 이마에 붙이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축 늘어져 흔들거리면서 눈앞을 가리우기에 그것을 쑥 뽑아서 코와 한짝이 되라고 코밑에 붙여놓았답니다. 이번에는 그것이 입앞에서 흔들거리면서 밥먹는데 불편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적당한 자리를 골라보았는데 그것이 량다리사이인지라 거기에다 자리를 정하게 되였습니다.
그후로 량다리사이에 붙은 좌지라고 하여 그 이름을 〈자지〉라고 하였고 달아오르면 불을 뿜는 좌지라고 하여 〈불두덩〉이라고도 불렀답니다.》
령감은 듣던중 제일 흥취나는 우스개소리인지라 그만 무릎까지 치면서 신통하다고 총각을 칭찬까지 하였다.
그러고보니 농군총각이라고 하여 퇴짜를 놓자고 하였던노릇이 약속대로 외동딸을 주어 사위로 삼을수밖에 없었다.
부자는 농군총각이 령리하고 언변술도 대단한지라 《자네야말로 나의 사위감이로다!》라고 상쾌한 기분으로 쾌히 승낙하였다.
그리하여 농군총각은 우스개소리내기로 부자집의 외동딸과 혼인하게 되고 령감은 사위가 하는 구수한 옛말이야기를 들으며 늘그막에 심심치 않게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민담에서 우스개소리자체는 신통한것이 못되나 농군총각의 이야기꾸밈수에서 가난한 평민들의 지혜와 인민적인 기지를 엿볼수 있다.
같은 주제의 민담으로 《농군한테 속은 지주》도 있다.
옛날 한 고을에 할 일이 없어 한담듣기를 좋아하는 늙은 지주가 살고있었다.
지주는 매번 공짜로 이야기를 들으려고 거짓말내기놀음을 벌리기로 하였다.
그래서 누구든지 거짓말 세가지를 신통히 하여 자기를 속여넘기면 재산 절반 아니면 논밭을 세마지기 뚝 떼주겠노라 소문을 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거짓말을 하게 되였는데 지주령감은 그때마다 다 듣고나서는 《음, 그럴수 있지, 옛날에는 그랬을테지.》 하고 긍정해버림으로써 그 누구도 거짓말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러던차에 한 농군이 찾아와 내기를 걸었다. 농군은 지주령감이 장부책을 꺼내여 족제비꼬리로 만든 붓에 먹을 묻혀 무엇인가 써넣는것을 보고 붓이 좋다면서 자기 할아버지가 족제비사냥을 하던 이야기부터 시작하였다.
《우리 할아버지는 해마다 마가을이면 족제비가 많이 다니는 곳에 말뚝을 박아 무수한 땅구멍을 뚫어놓고 땅이 얼면 거기에 구운 쥐를 한토막씩 넣어두었습니다. 그러면 족제비들이 구멍마다 들어가 쥐를 먹고 나오려다가 미끄러져서 나오지 못해 조이삭처럼 그 꼬리만 구멍마다 솟아있습니다. 그것을 낫으로 베여 나무단처럼 묶어 숱한 족제비붓을 만들어 큰돈을 벌었습니다. 이 붓도 아마 그때의 붓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지주령감은 성이 독같이 올라 방정맞게도 거짓말을 한다고 그만 토설해버렸다.
그리하여 농군은 두번째 거짓말을 하게 되였다.
농군은 자기네 집에서는 조상대대로 돼지 한마리를 길러 매일 돼지고기를 떨구지 않고 먹는다고 신나서 엮어댔다. 그러자 지주령감은 마음이 동했던지 《어떻게 돼지 한마리를 길러 매일 고기를 먹는단 말이냐?》 하고 따져물었다.
농군총각은 《왜 못한다구 그러시우?》 하고는 잘 들으라면서 그 방법을 엮어대기 시작하였다.
《돼지 한마리를 사다가 다 크게 자래운 다음 쇠그물옷을 해입힙니다. 그후에 돼지를 잘 먹여 살찌우면 그물구멍마다 큰 주먹만 한 고기덩어리가 나오는데 그것을 하나씩 베여먹으면 일년내내 돼지고기를 떨구지 않고 먹게 된답니다.》
지주령감은 듣기가 너무도 싱거웠던지 거짓말도 들을만 한 거짓말을 하라고 성을 와락 냈다.
농군은 지주령감이 성을 내든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거짓말 한마디를 또 했소다 하고 오금을 박아놓았다.
그리하여 농군총각은 세번째 거짓말을 하게 되였다.
《에, 우리 고장에서는 봄에 밭을 간 다음 삿자리를 사다가 밭에 씌워놓고 구멍을 뚫어 씨를 꽂아넣으면 싹이 구멍으로 돋아나와 김도 매지 않고…》하고 총각이 신나서 엮어대는것이였다.
지주령감은 그 소리를 들어보니 전번에 누가 한것과 똑같은것이여서 《그만두라구, 그것은 전번에 들은 거짓말이야.》하고 면박을 주었다.
농군은 《전번에 들었든 안 들었든 거짓말이라고 방금 말하지 않았소이까.》 하고는 세번째 거짓말도 명백히 확인시켰다.
그러니 속히우지 않으려던 지주령감도 제 입으로 거짓말이라고 뱉아놓은터라 농군에게 재산 절반이 아니면 논밭 세마지기를 떼주어야 하는 꼴이 되였다.
그러니 어찌 실성하지 않았겠는가.
지주령감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쓰러진것을 보고서야 농군은 유유히 지주집을 나섰다고 한다.
민담은 할 일이 없어 거짓말내기를 하는 지주령감을 통쾌하게 골려주고 다시는 그런짓을 못하게 망신을 시킨 농사군의 재간과 지혜를 찬양하고있다.
거짓말내기는 량반선비들사이에 안해바꾸기놀음으로 번져진것도 있다.
《팔도재담집》에는 거짓말내기로 안해바꾸기놀음을 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옛날 한 동네에 두 량반이 살았는데 김씨량반의 안해가 절색이여서 늘 리씨량반이 눈독을 들이고있었다.
그러던차에 하루는 둘이 술을 취하게 마시고나서 거짓말내기를 하였는데 리씨량반이 말하기를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의 안해를 데리고 노는것이라고 하였다.
김씨량반은 그 음흉한 속심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취한김에 좋도록 하라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되여 리씨가 먼저 거짓말을 시작하였다.
《나는 어제 길에서 바늘 한개를 얻었는데 그것으로 야장간에 가서 낫과 도끼를 한개씩 벼려왔네.》
그러고는 김씨량반더러 빨리 말하라고 독촉하였다. 김씨량반은 어제 배탈이 나서 죽을 먹다가 먹기 싫어 절반을 개에게 덜어주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리씨량반은 자네 말은 진짜 사실이고 내가 한 말은 거짓말이니 자네 안해를 래일 보내라고 하였다.
김씨량반은 술을 마시고 롱으로 한 말인데 안해를 보내라고 하는즉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가 집에 돌아와 안해한테 그 사연을 말하니 안해는 걱정할것 없다면서 자기가 처리할테니 안심하라고 남편을 위로하였다.
다음날 정말로 리씨가 와서 주인을 찾기에 김씨의 안해가 나가서 여쭈기를 《주인은 삼년 묵은 말가죽이 꼴을 달라고 소리지르기에 꼴 베러 갔소이다.》라고 하였다.
리씨량반은 그의 안해가 자기를 속이는지라 《삼년 묵은 말가죽이 어찌 꼴을 달라고 하리까.》 하고는 그런 거짓말을 하는가고 책망하듯 빈정거렸다.
그러자 김씨 안해는 《그것이 거짓말이라면 바늘 한개로 어찌 낫과 도끼를 만들수 있단 말이요.》 하고는 당장 무슨 일이라도 칠듯 쏘아보았다.
리씨는 이제 그 부인이 또 무슨 된욕을 퍼부을지 알수 없어 더 창피를 당하기 전에 도망치다싶이 그 집마당을 나섰다고 한다.
민담은 거짓말내기에서 량반선비들의 비루한 취미와 욕구를 풍자해학하면서 어리석은 량반보다 그 안해가 더 똑똑하고 지혜롭다는것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있다.
이처럼 이런 민담에서는 량반, 벼슬아치나 지주, 부자보다도 머슴이나 농부총각 그리고 남정보다는 그 안해가 더 지혜롭고 영특하며 물계가 더 밝다는것을 대비적으로 잘 보여주고있다.
따라서 거짓말내기류형의 민담은 풍자재담적인 기지와 함께 일정한 교훈성을 주는 설화계렬로 된다.
천민이 벼슬을 얻다
이 주제의 민담에는 밤마다 궁중후원에 날아들어 울어대는 부엉이를 농부의 아들이 잡아없애고 공주의 병을 낫게 함으로써 방어사벼슬을 얻게 되는 이야기라든가 산골 숯구이총각이 범에게 물린 홍판서의 딸을 구원해주고 그 집 사위가 되는것과 같은 희한한 이야기가 있다. 그런가 하면 불붙는 궁궐의 침방에 들어가 공주를 구원해냄으로써 평범한 왕궁수비군사가 일약 임금의 사위가 되는 예상밖의 이야기도 전하여온다.
이 이야기들은 다 꾸며낸 이야기이지만 례외없이 그들이 지혜롭고 영특하며 억센 힘과 용맹을 떨치고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민담 《방어사가 된 농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하고있다.
옛날 중부지방 한 산골마을에 농부의 아들이 있었는데 꾀많고 재주가 출중하며 대담한데다가 일솜씨가 빨라 소문이 자자하였다. 그렇지만 신분이 천하여 고달픈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이때 풍문이 돌기를 왕궁의 공주가 병을 앓고있는데 그의 병을 고쳐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벼슬자리를 후히 주겠다는 방이 나붙었다는것이다.
공주의 병으로 말하면 밤마다 공주의 별궁밖 나무가지에 부엉이가 날아와 울어대는통에 공주가 꿈속에 헤매이다가 이제는 부엉이귀신이 붙어 몸져앓아눕게 되였다는것이다.
그래서 나라안에 유명한 궁수들이 다 모여들어 밤마다 부엉이가 울어대는 곳에 화살을 련속 날렸으나 부엉이는 잡지 못하고 빈 화살만 산더미로 쌓였다고 한다.
왕은 그때마다 다시 방을 내게 하고 부엉이를 잡아낼수 있는 사람을 찾아오게 하였다. 그런 가운데 고을에서 꾀많기로 소문난 농부의 아들이 뽑혀가게 되였다.
그가 왕궁에 나타나자 왕궁수비대장이 아래우를 살펴보고는 《한다하는 궁수들도 못 잡는데 너같은 촌뜨기애숭이가 어떻게 부엉이를 잡는다고 왕궁에 들여놓는단 말이야?!》 하고 대번에 쫓아버리였다.
농부총각은 생각끝에 그길로 산발을 타고 포수막을 찾아헤매였다. 삼일째 되는 날에야 포수막을 찾아가니 일이 될세라 거기에 잡아온 새끼부엉이가 있었다.
그는 값을 후히 치른 다음 새끼부엉이를 안고 산에서 내려왔다.
밤이 이슥해지자 왕궁울타리에 다가가 화살에 새끼부엉이를 꽂아 궁안으로 내던지였다. 그리고는 한참있다가 왕궁정문에 나타났다. 수비대장이 왜 왔느냐고 묻기에 새끼부엉이를 화살로 쏘아맞혔는데 왕궁울타리안에 떨어진것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수비군을 시켜 찾아보게 하였더니 조금 지나 화살에 맞은 새끼부엉이를 손에 들고 왔다. 이어 그 사실이 왕에게 알려져 그는 왕의 부름을 받게 되였다.
왕은 《야밤에 날아가는 부엉이새끼를 맞혔으니 저 큰 느티나무에 앉아있는 늙은 부엉이는 틀림없이 맞히겠다?!》 하고 물었다.
농부총각은 《해보아야 알겠지만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고 자신있게 대답하였다.
그리하여 농부총각은 왕의 승낙을 받고 왕궁에 드나들며 밤이면 늙은 부엉이를 잡노라고 활과 살을 가지고 제 마음대로 돌아치게 되였다.
농부총각이 늙은 부엉이가 밤마다 날아와앉는다는 큰 느티나무에 올라가보니 그것이 구새먹은 나무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그의 머리에선 대번에 좋은 수가 떠올랐다.
그는 장마당에 가서 살진 수닭 한마리를 사가지고 왔다. 밤이 이슥하여 그는 구새먹은 나무통안에 쪼그리고 앉아 한손에는 수닭의 량다리를 모아잡고 한손에는 화살대를 잡고 늙은 부엉이가 날아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리고 수닭이 용을 쓰며 날개를 퍼덕이게 하였다.
그러자 언제 나타났는지 늙은 부엉이가 날아와 퍼덕거리는 수닭을 덮쳐 대가리를 쪼아대는것이였다. 순간을 놓칠세라 농부총각은 화살대로 부엉이를 찔렀다.
농부총각은 느티나무밑에 살에 찔린 부엉이를 내동댕이치고 다음날 아침일찍 수비대장에게 알리였다.
《간밤에 늙은 부엉이를 정확히 맞혀 떨구었으니 모두들 찾아봅시다.》
수비대장은 그것이 정말인가고 하면서 이젠 공주님의 병환이 낫게 되였다고 좋아하였다. 그래서 느티나무가까이에 가니 정말 화살에 맞은 늙은 부엉이가 떨어져있었다.
왕은 너무도 기뻐 농부총각을 데려오라고 하여 크게 칭찬하고 상도 후히 주었다. 그리고 그 묘한 궁술을 써먹을수 있게 왕궁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고을의 방어사로 임명하여주었다.
그리하여 농부총각은 꾀로써 일약 신분을 뛰여넘어 한 고을의 방어사가 되였던것이다.
민담은 상전보다도 농부총각이 더 지혜롭고 영특하다는것을 생동하게 보여주고있으며 방어사의 벼슬자리까지 따내는것으로 주제적과제를 더욱 뚜렷하게 강조해주고있다.
민담 《범을 때려잡은 숯구이총각》은 홍판서의 딸이 범에게 물려가는것을 숯구이총각이 발견하고 처녀를 구원해냄으로써 홍판서의 사위가 되는 이야기를 담고있다. 우암 송시렬(17세기)도 자기의 문집에 이 이야기를 싣고있다.
충청도 어느 한 고을에 늙은 부모를 모시고 가난속에 숯구이로 생계를 겨우 유지해가는 삼길이라는 총각이 살고있었다. 문집에도 그의 용맹과 위풍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있다.
《삼길은 어렸을 때 용맹스럽고 기운이 장사였다. 겨드랑이에 송아지를 끼고 높은 담장을 몇번씩 뛰여넘었으며 높은 곳에 줄을 매고 그우에서 달음박질하는것이 마치 말을 타고 달리는것 같았다.》
때는 단풍잎이 붉게 물든 가을날이였다.
삼길은 숯구이터에서 불을 지필 준비를 하고있는데 건너편 멀지 않은 곳에서 녀자의 이상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살펴보니 맞은편 산골짜기중턱에 있는 넙적바위우에 범 한마리가 웬 처녀를 간지럽히며 놀리고있는것이였다.
그 바위밑으로 다가간 삼길이는 높이 날아올랐다가 떨어지면서 범잔등에 올라타고 두팔로 모가지를 힘껏 조여댔다.
워낙 힘이 장사인지라 범은 잠간사이에 숨막혀 네다리를 뻐드럭거리다 죽어버리였다.
삼길이는 정신을 잃은 처녀를 업고 내려와 자기 집에 눕혀놓았다. 그리고 정성껏 간호하여 정신을 차리도록 하였다. 처녀가 정신을 차린 다음에야 그가 충청도 영동에 사는 홍판서의 무남독녀라는것을 알고 몹시 놀랐다.
처녀는 범에게 잡혀 다 죽게 된 자기를 구원해주었으니 그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 마음을 다잡을수 없다면서 빨리 자기 아버지를 찾아뵙자고 하였다.
삼길은 처녀가 은공을 갚겠다는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지라 자기의 신분과 생활처지를 밝히지 않을수 없었다.
《나는 산중에서 숯구이를 하는 가난한 집 자식입니다. 오늘 우연히 범에게 잡힌 아씨를 구원하였으니 세도 높은 집 가문의 귀녀도 뵈옵게 되고 칭찬도 받아보는것이랍니다. 이 산골에서 숯구이총각이 언제 한번 사람대접을 받아보았겠소이까?!》 하고 말하였다.
그제야 처녀는 몸둘바를 몰라하다가 《제 생명의 은인이신데 어찌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겠나이까.》 하고는 빨리 자기 집으로 가자고 재촉하였다.
그래서 숯구이총각은 처녀의 간절한 청에 못이겨 홍판서의 집을 찾아갔는데 딸에게서 사연을 전해들은 홍판서는 그를 사위로 삼게 되였다.
홍판서는 비록 천한 집 자식을 사위로 맞아들였지만 범을 잡아메친 그 억센 기개와 용맹은 능히 장군다운 기질인지라 장래를 크게 내다보면서 글공부하는것으로부터 새살림을 시작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힘장수인 삼길은 나이들어 천자문을 배우게 되였고 그후에는 당시 이름있는 학자인 우암 송시렬의 제자로 되였다.
송시렬은 자기 제자들가운데서 삼길이가 너무나도 유별나 자기 문집에 옮겨놓았던것이다.
민담은 천한 신분을 가진 숯구이총각이 홍판서의 사위로 되는 이례적인 인맥관계를 반영하고있지만 일관된 주제적과제는 량반사대부들로서는 도저히 따를수 없는 숯구이총각의 장사다운 용맹과 지혜, 의로운 행동과 의협심을 뚜렷이 보여주려는데 두고있다.
민담 《임금의 사위가 된 군사》도 왕궁수비군사가 화재속에서 공주를 구원해주고 일약 임금의 사위가 되는 희한한 이야기를 담고있다.
고구려가 수도를 평양에 천도한 몇해후였다.
임금에게 아름답기로 소문난 공주가 있었다. 궁실을 드나드는 재상들가운데서 아들을 가진 권세가들은 공주를 며느리로 삼아볼수 없겠는가고 늘 궁리하고있었으나 그것은 아름다운 먼산을 쳐다보는것이나 다름없었다.
임금도 공주가 나이찬것을 걱정하여 두해전부터 사위감을 고르느라고 과거시험장에도 나가보군 하였으나 인물 잘나고 세도가 뜨르르하고 문무를 겸비한 장군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한 때 왕궁의 대궐과 공주방에 화재가 나서 불길이 온통 뒤덮게 되였다.
임금은 불길속에서 못 빠져나온 사람이 없는가를 급히 살펴보다가 공주가 보이지 않자 어떻게 되였는가고 물었다.
옆에 섰던 측근신하가 《공주님의 방은 후궁 뒤채인데 저 불길을 헤집고 어떻게 나온단 말입니까?》 하며 맥빠진 소리를 하였다.
임금은 사태가 위급한지라 큰소리로 불길속에 들어가 내 딸을 구원하는 사람은 사위로 삼겠다고 소리쳤다.
그러자 한 젊은 장수가 나타나 자기가 구원해오겠다고 하고는 불길속으로 뛰여들었다. 그러나 란간의 불길을 뚫고 후궁에 이르렀을 때는 집체가 불길에 싸여 무너져내려 그 장수는 되돌아나와 왕에게 사연을 그대로 아뢰였다.
임금은 《공주방이 무너져내렸으니 이제는 내 딸을 볼수 없겠구나.》 하고 서러워 눈물을 쏟았다.
이때 《부왕마마!》 하며 공주가 달려오는것이였다.
임금은 《네가 어떻게 불길속에서 살아나왔느냐?》 하고 울음절반 기쁨절반 뒤섞인 소리를 하면서 공주에게로 다가왔다. 공주는 《이 군사가 불속에 뛰여들어와 저를 구원해주었나이다.》 하고 감격에 북받쳐 부왕에게 아뢰였다.
임금은 그 군사의 소행이 기특하기는 하나 그의 진속을 알수 없어 《너는 내가 공주를 구원하는 사람은 사위로 삼겠다고 해서 뛰여들었느냐?》 하고 물었다.
군사는 그 소리를 처음 듣는지라 불속에서 인적기가 나기에 들어갔는데 공주아씨가 사경에 처해있어 생명을 내대고 구원하였다고 하였다.
임금이 군사의 말을 듣고는 《불길속에서 공주를 구원할 때 무슨 생각이 나더냐?》고 다시 물었다.
군사는 말하기를 《왕궁수비는 군사의 본분이온데 화재와 같은 큰 재난을 막는데 목숨을 어찌 아끼리오이까. 더우기 공주를 불속에 그냥 두면 그것이 무슨 왕궁수비군사이겠나이까.》 하고 사리정연하게 자기 진속을 임금에게 터쳐보였다.
임금은 군사의 말을 듣고 너무도 기뻐 《그렇다면 너는 더욱더 내 사위로다.》 하고 엄정히 말하였다.
군사는 임금앞에 복지하고 아뢰였다.
《전하, 황송하오나 소인은 천한 백성의 자식이요, 조약돌처럼 굴러다니던 군졸이온데 어찌 부마가 되겠소이까.》
이때 옆에 섰던 공주가 그 군사를 일으켜세워 다시 두사람이 함께 임금앞에 례의를 올리였다.
이리하여 천한 신분의 왕궁수비군사가 화재를 계기로 일약 임금의 사위가 되게 되였다.
이것은 민담에서만 볼수 있는 이례적인 이야기로서 신분을 초월하여 평백성, 평군사의 의로운 행위와 용감성을 명문대작의 자식과의 대비속에 뚜렷이 밝혀주고 찬양하는데 이바지한것으로 하여 긍정적의의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