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정색적인 민담과 그 갈래

 

정색적인 민담이란 웃음보다는 정색적인것이 강한 전형적인 민화류형으로서 풍자재담이나 우스개소리인 소화와는 달리 천대받는 평백성의 가긍한 정상을 동정하거나 그들의 영특한 지혜와 기질을 찬양한것 그리고 꾀로써 악을 징계하고 선의 소원을 성취한 인민적인것에 대한 보편적인 설화부류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다시말하면 보다 정색적인 색갈을 가지고 평백성이나 천대받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여 선악관계를 밝혀낸 항간의 전형적인 민화류형을 두고 편의상 웃음으로 실현되는 풍자재담이나 소화와 구별하여 《정색적인 민담》으로 약속하여 명명한것이다.

민담에서는 봉건적사회관계가 폭넓게 반영되는것만큼 선악관계에 기초하여 여러 생활령역이 반영되며 소재에 따라 갖가지 민담류로 나누어진다.

우선 천대와 멸시를 당하는 사람들의 불우한 생활정상을 동정하여 이야기를 펼쳐나가다가 궁극에 가서는 선의 소망이 환상적으로 실현되는 내용의 민담계렬이 있다.

또한 가정에서 호상간 례의도덕과 의리를 지키며 맡은 일을 성의껏 할것을 바라는 교훈적인 민담도 있다.

그리고 천민이나 아낙네, 아전이 량반상전이나 고을원 그리고 왕까지 꾀로써 골려주어 보복하거나 횡재하고 지어 벼슬을 얻게 되는 내용의 정색적이면서 풍자비판이 섞인 민담계렬이 대상별에 따라 여러가지로 나누어진다.

이밖에도 량반관료뿐아니라 돈만 아는 부자와 수전노, 린색한 그리고 겉과 속이 다른 승려나 위선자들을 골탕먹이는 내용의 민담계렬도 적지 않다.

따라서 다양한 주제의 민담들을 부류별로 갈라내여 취급하려고 한다.

 

- 기구한 운명에 대한 동정과 악한것에 대한 고발

 

정색적인 민담형식에서 적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는것은 기구한 운명에 놓여있는 사람과 그 불우한 생활정상을 동정하여 이야기를 펼쳐나가는것이다. 원래 민담은 항간에서 있은 실화적인 소재에 기초하여 이야기가 발산되고 전하여지는 과정에 인민의 지향에 맞게 가공되고 채색되여 하나의 설화로 완성된다.

기구한 운명에 놓여있는 하층계급이나 천대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 대부분이 불우한 생활정상을 동정하고 불쌍하게 여긴데로부터 하나의 화제거리가 되여 구전화하게 되며 그 과정에 인민의 리념에 맞게 그리고 선악관계에 따라 설화의 매듭을 다양하게 결속지어준다.

우리 나라에서 널리 알려져있는 심청과 춘향, 장화와 홍련, 콩쥐와 팥쥐, 흥부와 놀부에 대한 이야기는 항간에 있었던 실화적소재로부터 발설되여 대중적으로 구전화되는 과정에 이야기가 선악관계에 기초하여 전개되고 동정의 씨앗을 묻으면서 확대되여나가다가 노래가 섞여 설창형식으로 판소리화되였으며 나중에는 그 대본이 서사화되여 국문소설로 전화되게 되였다.

때문에 18세기를 전후하여 구연형식을 설창형식으로 바꾸어 공연한 판소리 6마당(그후 12마당)의 설화자료는 그전부터 보편화되여온 민담들인것이다.

물론 판소리가 그 기초로 되는 민담과 이야기줄거리상에서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는가 하는것은 문헌상 기록된것이 없어 단정할수는 없다.

그렇지만 구술적인 이야기형식으로부터 설창형식으로 전화되는 과정에 기존이야기틀거리에다 노래를 섞어서 흥미있는 판소리를 만들어내고 그 대본도 가공정리하여 후배 판소리가수들에게 넘겨준것으로 하여 설화령역에서 볼 때에도 민담이 보편화된 이야기거리로 다듬어져 내려왔다는것을 알수 있다.

특히는 판소리의 초기작품으로 인정되는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등은 그 바탕으로 된 설화자료가 많이 구술되여 전하여왔다는것을 충분히 가늠해보게 한다.

 

효도와 절개에 대한 찬양

 

효도와 절개에 대한 이야기는 인물전설에도 적지 않지만 평백성에 대한 보편화된 민담에도 뚜렷한 자욱을 남기였다. 여기에서 대표적인것이 심청과 춘향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보편화된 민담은 그 기구한 운명과 가긍한 정상으로 하여 인민대중의 동정을 사고 구술되여오다가 판소리화되였으며 인민창작에 기초한 국문소설로 서사화되였다.

따라서 그 이야기줄거리는 널리 알려져있기에 여기에서는 설화의 연유에 대해서만 밝혀보려고 한다.

심청에 대한 이야기는 어머니를 일찌기 여의고 소경아버지를 모시고 빌어먹으며 근근히 살아가는 심청의 지극한 효도와 그 기구한 운명을 동정하여 구전화한 설화이다.

이 작품의 기본줄거리는 심청이가 소경인 자기 아버지의 눈을 띄우기 위하여 공양미 300석에 몸을 팔고 물에 빠져죽었다가 다시 살아돌아오는것이다.

심청에 대한 이야기는 당시 봉건사회에서 평민들 특히 녀성들의 기구한 운명과 지극히 효녀다운 행위를 동정하고 아쉽게 여기여 구전화한 실화적인 민담이다.

옛날 황해도 황주 도화동이라는 고장에 심봉사(맹인 심학규)로 불리우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모진 가난속에서도 안해와 의좋게 살다가 첫딸을 보았는데 그 이름이 청이였다.

첫딸은 금을 주고도 바꿀수 없는 금딸이라고 하여 아들 못지 않게 귀히 여기였다. 그런데 자식을 본 기쁨이 사라지기도 전에 안해가 산후탈로 끝내는 세상을 하직한지라 심봉사와 그 딸애의 가긍한 정상은 온 동네를 울렸고 설음은 하늘에 닿았다.

심봉사는 우는 애기를 동냥젖으로 달래며 막대기에 의지하여 피죽도 못 먹으면서 사는 자기의 가긍한 처지를 눈물속에 한탄하였다.

소경인 아버지등에 업혀 동냥젖을 먹고 자라난 심청이는 제발로 걸어다니게 되면서부터는 아버지의 손목을 잡고 이마을저마을로 돌아다니며 동냥하여 때식을 에워갔다.

그럴 때마다 이웃마을사람들은 심봉사 부녀의 가긍한 정상을 애처롭게 여겨 밥 한술이라도 더 떠주며 동정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하기에 그후에 심청에 대한 효도의 이야기는 아버지의 눈을 띄우기 위하여 몽운사 화주승에게 속히워 공양미 300석 값으로 남경장사군들에게 팔려 물귀신을 위하는 제물로 림당수에 빠져죽게 되는 실화와 함께 광범히 전파되면서 효도주제의 민담을 낳게 하였다.

심청에 대한 이야기는 실제 사실에 바탕하여 발설되고 전국적으로 광범히 류포되여 보편화된 민담으로서 심청이 죽은 다음에 설정된 룡궁장면이나 련꽃에 싸여 환생하고 왕비가 되여 전국맹인잔치를 베푸는것 그리고 감격적인 상봉장면에서 아버지가 눈을 번쩍 뜨는것 등은 그의 죽음을 애석히 여기고 지극한 효도를 찬양하여 환상적으로 재구성한것이다.

력사적으로 보면 많은 민담들이 실화적소재에 기초하여 이야기거리를 찾아내고 불우하고 가긍한 정상에 놓인 사람들을 동정하여 역경을 순경으로, 죽은 사람은 꽃이나 의로운 영물로 환생시켜 인덕과 천복을 받게 꾸미였다.

심청이가 효도를 다하기 위해 비록 죽었지만 련꽃으로 환생하여 왕비가 되고 맹인잔치에서 심봉사가 눈을 번쩍 뜨게 되는것은 그것이 모두가 인민적리념이 담긴 환상적인 재구성방법의 결실인것이다.

하기에 심청의 이야기는 실화적인데로부터 발설되여 광범히 전승되고 구술과 함께 설창형식을 결합해나가는 과정에 설화에 기초한 국문소설로 되였던것이다.

춘향의 절개에 대한 이야기도 실화적인데로부터 발설하여 판소리를 거쳐 국문소설화된것은 그 연유가 다를바 없다.

《송남잡지》의 기록에 의하면 전라도 남원에서 실제 있은 사실에 기초하여 민담이 창조전승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한때 남원지방에는 명기로서 이름이 자자하였던 월매라는 퇴기가 있었는데 그의 딸 춘향 역시 절색인데다가 문장도 잘하여 능히 량반사대부와도 대화를 나눌수 있었다고 한다.

어느해 봄 오월초닷새날에 춘향은 광한루에서 처음으로 이 고을 부사의 아들 리몽룡을 만나 알게 된것이 인연이 되여 그후 여러번 만나는 과정에 정이 들어 부모님의 승낙도 없이 백년가약을 맺게 되였다.

그러던차에 남원부사가 승진하여 서울로 올라가게 되면서 춘향은 리도령과 헤여져 남원에 남게 되였다.

리도령은 서울로 올라간 다음 무슨 연고인지는 알수 없으나 소식 한장 없었다.

춘향은 한해를 기다리고 두해를 기다렸으나 무소식이여서 3년째 되는 해에는 심화끝에 몸져 앓아눕게 되였다. 3년사이에 춘향의 검은머리는 백발이 되였고 끝내는 기구하게도 화병으로 세상을 하직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남원관내에 춘향의 불우한 인연사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게 되였는데 괴이하게도 처녀의 원혼이 비껴서인지 그후 남원지방에는 3년동안 흉재가 들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흉재를 두고 춘향의 원혼이 비껴 생긴 한재라고 입을 모아 일러왔다고 한다.

이상의것이 문헌기록에서 밝힌 실화적내용이다.

하기에 그것이 초기의 실화적소재인지는 가늠하기 어려우나 어쨌든 천한 신분인 기생의 딸 춘향과 권세높은 부자의 아들 리몽룡사이의 불우하고 원한서린 련정담이 발설되여 오랜 세월 전해오는 과정에 《고진감래》와 《기연기봉》의 구성법에 따라 전개되여나가다가 18세기에 이르러 설창형식을 도입하여 재구성하고 판소리대본을 다듬고 전개하여 서사화함으로써 국문소설로 전화되였던것이다.

초기 춘향의 기구한 운명 특히는 이제나저제나 하며 3년째 목마르게 소식을 기다리다가 끝내는 심화병에 걸려 세상을 하직하게 되는 기막힌 정상을 두고 구술자, 설화창조자들은 춘향이 살아서 모진 고생과 협박속에도 굴함없이 절개를 지켜 끝내는 사랑하는 님을 만나고 소원성취하는것으로 이야기를 역전시켜 전개해나갔다고 볼수 있다.

이것이 바로 효도와 절개에 대한 찬양과 그 소망의 실현을 반영한 민담의 보편적인 생리이며 구성방식인것이다.

 

계모의 학대와 그에 대한 징벌

 

전처자식에 대한 계모의 학대와 구박은 봉건사회에서 하나의 심각한 가정적모순문제로 나섰다. 특히 본처를 잃고 후처를 맞아들이면 전처소생들이 구박을 받고 기구한 운명에 놓이게 된다는것이 보편적인 인식으로 되였다. 따라서 계모의 학대와 전처소생의 기구한 운명을 전하는 민담들이 적지 않게 창조전승되게 되였다. 그런 대표적인것으로 《장화홍련전》과 《콩쥐팥쥐》를 들수 있다.

이 민담은 항간에서 오래전부터 실화적사실에 기초하여 전하여오다가 17세기이후에 필사본으로 서사화되면서 국문소설로 정착되게 되였다.

따라서 많이 알려져있는 이야기인것만큼 여기에서는 생활세태주제의 민담인 경우에도 례외없이 선악관계의 견지에서 사건이 제기되고 그에 대한 동정과 환상적처리, 악에 대한 징계가 주어진다는것을 밝혀보려고 한다.

《장화홍련전》은 평안도 철산군에서 실제 있은 이야기를 전하는 과정에 설화로 형성되였고 그후에 서사화되여 소설로 정착되였다.

이것은 《장화홍련전》의 서문에도 밝혀져있고 소설의 첫 부분에도 그 행적(주소성명)이 적혀있다. 그리고 문헌상에도 오래동안 비여있던 철산부사로 전동흘(소설에는 정동호)이 내려와 전처소생인 장화와 홍련을 학대하고 지어는 모해하여 죽이기까지 한 계모의 죄상을 밝혀내고 처형한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고있다.

《장화홍련전》은 후실로 들어온 계모가 전처소생을 음흉한 계책을 꾸며 모해하여 죽이기까지 하는 천하에 악착하기 그지없는 죄상을 밝혀내고 단호히 처형하여 가엾이 죽은 장화와 홍련의 원혼을 위로한 비극적인 가정세태설화이다.

봉건사회에서 계모의 학대와 모해 지어 살인에 이르는 악착한 행위는 가정세태생활령역이지만 심각한 사회적문제로 제기되였다. 하기에 실지 사실에 기초하여 이런 계모에 대한 징벌과 전처소생에 대한 동정의 설화들이 환상의 외피를 쓰고 적지 않게 생겨날수 있었다.

설화에서 보면 계모는 큰 쥐를 잡아 장화가 락태한것처럼 꾸미여 남편 배좌수를 속여넘기고 장화를 감쪽같이 없애버리려 한다. 그는 미련한 아들 장쇠를 시켜 장화를 깊은 산중의 못가로 데리고 가 누구도 모르게 물에 빠뜨려 죽이게 한다.

장화가 억울한 루명을 쓰고 물에 빠져죽자 청조 한마리가 날아올라 구슬피 울어옜다.

그후에는 장쇠를 얼리여 사연을 알게 된 홍련이 언니가 죽은 못에 몸을 던졌고 억울한 루명과 원한을 새겨안은 처녀귀신으로 환생하여 자정이 되면 철산부사의 방에 나타나 계모의 죄상을 고소하군 하였다. 그때마다 부사는 기절하군 하였는데 결국은 죽고만다.

하여 그 누구도 철산부사로 가려고 하는 사람이 없던차에 전동흘이 자진하여 부사로 내려와 그 사연을 알고 밤을 새우고있었다.

자정이 되자 아닌게아니라 처녀귀신(홍련의 원혼)이 나타나 자기 언니 장화에게 루명을 씌워 산중 못에 빠뜨려죽인 계모와 장쇠의 죄상을 고발하였다.

그제야 부사는 전처소생 장화와 홍련의 기구한 운명, 원한에 찬 진상을 알고 계모와 장쇠를 잡아다 죄상을 밝히고 단호히 처형함으로써 처녀귀신의 원한을 풀어주었다.

민담은 선악관계에서 그 운명을 《권선징악》식으로 처리하고있으며 그에 맞게 환상적수법을 적절히 쓰고있다.

억울한 루명을 쓰고 못에 빠져죽은 장화는 청조가 되였고 그 원한을 안고 홍련이도 못에 빠져 수중고혼이 되였다.

홍련은 언니의 루명을 밝히려고 처녀유령으로 환생하여 철산부사의 방에 자정이면 나타나군 하였던것이다.

그리하여 악녀인 계모의 흉계와 모해가 밝혀지고 단호한 징벌이 내려지게 된다. 뿐만아니라 몽매한 배좌수도 교훈을 찾게 되고 다시 맞아들인 후실에게서 딸쌍둥이가 태여나게 됨으로써 장화와 홍련을 환생시키는것이다.

이렇게 이 민담에서는 선에 대한 동정으로부터 억울한 루명을 쓰고 죽은 장화와 홍련을 배좌수의 딸로 다시 환생시키는가 하면 악에 대한 징벌도 환상적수법을 통하여 실현시킨다.

보는바와 같이 민담은 실화적소재에 의하여 발설되였지만 구전화과정에 전처소생의 기구한 운명을 동정하고 그 원한을 풀어주기 위하여 우에서 본바와 같은 환상의 수법을 쓰고있으며 《권선징악》식으로 구성처리를 실현하고있는것이다.

또한 장쇠가 장화를 못에 빠뜨려죽이자 어데선가 사나운 범이 나타나 그의 두귀와 한팔, 한다리를 떼여먹고 병신으로 만들었으며 그 죄상이 처녀유령에 의하여 고발되여 단호한 처형을 받게 된다.

민담 《콩쥐팥쥐》 역시 앞에서 본 민담과 같이 오랜 기간 말로 전해져오다가 서사화되여 국문소설로 고착되게 되였다.

이 민담은 앞에서 본 민담과 쌍벽을 이루는것으로서 이야기구성과 선악관계의 처리, 환상수법의 리용에서 어슷비슷하다.

심술궂고 악착한 계모는 전처소생인 콩쥐를 구박하다못해 고역적인 일을 시켜 말리워죽이려고 한다.

어느날 계모는 콩쥐에게 나무호미로 산등성이의 돌밭을 다 매라고 하고 자기 친딸인 팥쥐에게는 쇠호미를 주며 가까이에 있는 모래밭을 매라고 하였다.

콩쥐가 한여름 뙤약볕에서 나무호미를 가지고 김을 매다가 그마저 부러져 울고 앉아있을 때 그 가긍한 정상을 동정하여 어데선가 황소가 나타나 잠간사이에 김을 다 매준다.

또 어느 하루는 계모가 자기의 친딸 팥쥐와 함께 잔치집에 가면서 콩쥐에게 벼와 피 한섬씩 주면서 그것을 다 찧어놓고 명주 한필을 짜고 밑이 빠진 큰 독에 물을 채워넣고 따라오라고 한다.

콩쥐가 며칠을 해야 할 아름찬 일감을 앞에 놓고 안타까워하고있을 때 이번에는 뭇참새들이 날아와 쪼아주어 일을 빨리 끝내주고 선녀들이 베를 짜주며 밑구멍이 뚫린 독에 물을 길어넣을 때엔 어데선가 큰 두꺼비가 기여나와 그 구멍을 막아준다.

일을 끝낸 콩쥐가 잔치집에 가려고 하다가 옷이 람루하여 망설이고있을 때 선녀들이 화려한 옷을 가져다 입혀주고 꽃신을 신겨준다.

기쁜 마음으로 잔치집으로 달려가던 콩쥐는 뜻밖에 감사의 행차와 맞다들어 당황하던 나머지 꽃신 한짝을 떨어뜨리게 된다. 그후 감사는 꽃신 한짝을 찾아 임자에게 돌려주는 과정에 선하고 착한 콩쥐를 만나보게 되며 그것이 인연이 되여 그를 안해로 맞아들이게 된다. 그러자 심술궂은 계모와 팥쥐는 이것을 시기하여 음모를 꾸민다.

어느날 밤 계모는 팥쥐를 시켜 콩쥐를 꾀여 련못에 데리고 가서 죽여버리게 한다. 그리고는 팥쥐를 콩쥐로 변장시켜 감사의 안해로 들여보낸다.

그러나 어리석은 감사는 변장한 팥쥐를 콩쥐로 알고 그 흉심도 가늠해보지 못한다.

물론 이야기를 선악관계에서 계속 꾸며나가야 하였기에 감사도 그것을 판별할줄 모르는 어리석은자로 은유과장한것이다.

어느날 감사는 련못에서 아름답게 피여난 련꽃을 꺾어다 꽃병에 꽂아놓는다. 그런데 그 꽃은 팥쥐가 방에 들어올 때마다 그의 머리채를 잡아뜯었다.

그러자 심술궂은 팥쥐는 화가 나서 그 련꽃을 부엌아궁이속에 집어넣는다. 이때 이웃집 할머니가 불을 얻으러 왔다가 아궁이속에서 찬란한 빛을 뿌리는 구슬을 얻게 되는데 그것이 다름아닌 구슬색시 콩쥐로 환생하는것이다.

로파는 그제야 계모와 팥쥐의 흉책과 감사의 어리석음을 알게 되고 그것을 밝히려고 자기 집에서 잔치를 차리고 감사도 청하였다.

그리고는 감사의 상우에 저가락을 하나는 길고 다른 하나는 짧은것을 놓았다.

감사가 상에 앉아 저가락을 살펴보니 서로 다른 짝짝이인것이 놓여있기에 대번에 불쾌하여 얼굴을 찡그렸다.

이때를 놓칠세라 구슬색시로 환생한 콩쥐가 감사앞에 나타나 저가락의 길고짧음은 알면서도 콩쥐와 팥쥐의 분간은 왜 못하고있는가고 하소연한다.

그제야 감사는 자기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전후사연을 알아본 다음 흉녀 팥쥐모녀를 엄벌에 처하게 하고 콩쥐를 다시 안해로 맞아들여 해로하면서 잘살게 된다.

민담은 전처소생인 콩쥐의 불우한 정상, 계모의 구박과 학대, 살인행위를 인민적인 리념에 맞게 확대과장하여 고발하고있는 이야기로서 심히 환상적으로 전개된 측면들이 적지 않으나 그것은 선악관계를 해부하는데서 보편적으로 쓰이여온 수법의 계승인것이다.

콩쥐가 나무호미로 돌밭을 맬 때 황소가 나타났다든가 두꺼비가 독의 밑구멍을 막아준 세부들은 보은설화에서 흔히 보게 된다.

그리고 계모가 콩쥐를 련못에 빠뜨려죽게 한다든가 콩쥐가 련꽃으로 환생되고 감사의 방에 꽂혀있게 되는것 등은 심청에 대한 이야기의 세부와 비슷한것이다.

또한 콩쥐가 구슬색시로 환생하는것도 적지 않은 구슬색시의 이야기들에서 나오는 세부이다.

이 민담에서 콩쥐의 불우한 정상을 우연적인 계기인 꽃신 한짝과 결부시켜 감사의 후실로 환생시키려고 한것이 좀 기이하기는 하나 심청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왕후로 환생시킨것을 보면 선악관계에서 다만 복을 하사해주려고 한 인민들의 소박한 지향에서 꾸며진것이라고 볼수 있다.

특히 이 민담에서는 감사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고 교훈으로 삼게 한것, 말하자면 이웃집 로파가 잔치를 차려 감사를 청하고 짝짝이저가락을 놓아주어 감사로 하여금 그 사연을 알게 하는것 등은 이채롭고 기지적인 꾸밈새를 엿볼수 있게 한다.

콩쥐, 팥쥐에 대한 이야기도 력사적으로 항간에서 구전화되여온 계모의 학대와 그에 대한 징벌을 반영한 민담들과 함께 심각한 교훈성을 추구하면서 광범하게 류포전승되였으며 나중에는 서사화되여 국문소설로 고착되게 되였다. 따라서 이상의 두편의 민담을 통하여 이 주제의 설화발전의 실태를 가늠해볼수 있는것이다.

 

형제간의 미덕과 상반되는 인물상

 

옛날 속담에도 《형제는 잘 두면 보배이고 못 두면 원쑤이다》라고 하였다.

한피줄을 타고난 혈육으로서 서로 위해주고 화목하게 지내면 보배로 되지만 그렇지 못하고 서로 상반되면 남남이 되거나 원쑤지간이 된다는것이다.

민간세사에서는 형제간의 미덕과 상반되는 인물상이 적지 않아 그것이 화제거리가 되여 교훈을 주는 민담들이 적지 않게 전해오게 되였다.

그런 대표적인 민담으로 《어리석은 형과 똑똑한 아우》, 《방이와 그 동생》, 《형제의 재산욕》 등이 패설집들에 실려 전하여온다.

또한 말로 전해져오다가 판소리대본을 거쳐 국문소설화된 흥부와 놀부에 대한 이야기도 그 실례로 된다.

이 민담들은 형제간에 미덕과 의리가 없고 재산욕에 눈이 어두워 서로 속여먹거나 자기만 잘살려고 꾀하다가 천벌을 받게 되는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있다. 뿐만아니라 대부분이 두 형제중에서 한사람은 똑똑하게, 다른 사람은 불민하게 서로 대조를 이룬다.

재산욕과 흑심에서도 상반되는 형제간으로 설정되여있지만 그것은 봉건사회에서 보게 되는 선악관계를 뚜렷이 반영하고있는것이다.

민담 《어리석은 형과 똑똑한 아우》는 성현의 《용재총화》에 실려있는것으로서 형과 아우를 대조시켜 이야기를 해학적으로 끌고가면서 심각한 교훈을 보여주고있다.

옛날 한 고을에 형제가 살고있었는데 형은 어리석고 불민하였으나 그 동생은 똑똑하고 령리하였다.

어느날 밤 두 형제는 아버지제사준비를 걱정하다가 제물을 마련하기 위해 이웃 부자집의 창고벽을 뚫고들어가 곡식을 얼마간 꺼내오기로 작정하고 섬돌밑으로 다가섰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부자집 주인늙은이가 나오더니 섬돌곁에 와서 오줌을 누는것이였다.

동생은 형의 손목을 꼭 잡고 섬돌밑에 엎드려 순간을 넘기려 하였다. 그런데 불민한 형이 《얘! 뜨거운 비가 내 등에 떨어지니 어쩌면 좋겠니?》 하고 큰소리로 말하는것이였다.

눈을 감고 오줌을 누던 주인이 그 소리를 듣고 눈을 번쩍 떠보니 웬 녀석 둘이 엎드려있는지라 붙잡아들이고 그 사연을 알아보니 가긍한 처지이므로 관가에 송사는 하지 않고 교훈을 찾게 할 목적으로 《너희들에게 어떤 벌을 주면 좋겠느냐?》 하고 물었다.

그러자 동생은 죄가 크오나 훔치지는 않았으니 썩은 새끼로 동이고 겨릅가치로 몇대 때려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형은 칡으로 동이고 수정목(단단한 나무)으로 때려달라는것이였다.

늙은이는 그들의 말대로 각각 벌을 주고나서 《아버지제사를 도적질하여 지내려 한것은 자식으로 하여금 불칙한 일이로다. 그러니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 하고 엄하게 타일러주었다.

그리고나서 부모에 대한 너희들의 효도를 봐서 제물로 쓸 곡식을 얼마간 줄테니 가지고 가라고 하였다.

령리한 아우는 자기 힘껏 붉은팥과 흰쌀을 지고 돌아왔다. 그런데 미련한 형은 팥알 몇알을 새끼로 동여매고 질질 끌고오는것이였다.

이튿날 팥죽을 쑤고 다른 제물도 조금씩 갖추어놓은 다음 동생이 형에게 어서 산에 올라가 명복을 빌어줄 승려를 데려오라고 하였다.

형이 승려가 어떻게 생겼느냐고 묻자 동생은 산중에 들어가면 검은 옷을 입은것이 승려이니 어서 청해오라고 하였다.

형은 동생이 시키는대로 산중에 들어가 승려를 찾는데 때마침 까마귀가 나무가지에 앉아서 내려다보고있었다. 형은 그것이 승려일것이라고 생각하고 《대사님! 제를 올리러 갑시다.》 하고 청하니 까마귀는 《까욱까욱》 하며 어데론가 날아가버리였다.

그래서 빈손으로 돌아와 동생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더니 까마귀는 승려가 아니라면서 다시 가서 누런 옷을 입은것을 보면 청해오라고 하였다.

형이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니 꾀꼬리가 나무가지에 앉아있는지라 가까이 다가가서 청하였더니 그것도 《꾀꼴꾀꼴》 하며 날아가버리였다.

형이 돌아와 그 사연을 말하니 동생이 그건 꾀꼴새지 승려가 아니라면서 핀잔하고는 이제는 별수없이 내가 가서 승려를 청하여올테니 형님은 이 죽가마나 지키고있으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만약 죽이 끓어 넘쳐나면 오목한 그릇에 퍼서 담으라고 곱씹어 일러주었다.

그런데 동생이 산중에 들어가 승려를 데리고 집에 와보니 팥죽 한 가마가 다 없어졌다. 그래서 살펴보니 락수가 떨어져 처마밑에 오목오목 패인 곳마다 팥죽을 다 채워놓았던것이다.

물론 소재를 놓고볼 때 실제 있었거나 있을수 있는 형제간의 이야기이지만 여기에서 스쳐지날수 없는것은 동생에 비하여 손우의 형이 너무나도 미련하고 어리석게 과장해놓은것이다.

다시말하여 형을 천치나 다름없게 만들어놓음으로써 성격의 대조속에 웃음과 함께 교훈성을 추구해보려고 한것이다. 특히 민담에서는 선악관계의 대조가 아니라 지능적대조를 줌으로써 사회적문제에 대한 교훈을 추구하기보다는 세태생활에서 있은 하나의 웃음거리이야기를 통하여 추구하는 목적을 실현해보려고 한것이다.

민담 《방이와 그 동생》은 갖가지의 이야기를 묶어놓은 《유양잡조》속집 1권에 실린 형제간의 이야기로서 앞의 민담과는 달리 형은 선하고 어지며 동생은 악하고 흉물스러운 괴한으로 그리고있다.

옛날 김씨마을에 방이라는 사람이 살고있었다. 그에게는 동생이 있었는데 큰 부자였다. 그러나 동생은 밥을 빌어먹다싶이 하면서 근근히 살아가는 가난한 형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동네사람들이 방이를 불쌍히 여겨 그에게 뙈기밭을 마련해주었다.

어느 하루 형은 동생을 찾아가 누에종자와 곡식종자를 좀 달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동생은 그것을 모두 솥에 쪄서 형에게 주었다. 그러나 형은 불칙한 동생의 악스러운 행위를 알리 없었다.

그래도 찐 누에알에서 간신히 한마리만은 까나왔다. 그것이 점점 자라 큰 황소만큼 되더니 동생네 집 뽕나무잎까지 다 먹어치웠다.

이것을 안 동생은 틈을 타서 형 몰래 그 누에를 죽여버렸다. 그러자 사방 100리안에 있는 누에들이 모두 형 방이의 집에 모여들었다. 그래서 방이는 일시에 누에부자가 되였고 많은 누에고치를 이웃마을사람들에게 듬뿍듬뿍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동생이 준 곡식종자중에서도 한알만이 움터 크게 자라났는데 한 이삭의 길이가 한자가 넘었다.

방이는 그 곡식을 매일 지키고있었는데 어데선가 나타난 새가 그 이삭을 꺾어물고 날아갔다. 그래서 방이는 그 새를 쫓아 50~60리를 달려갔다.

그러자 새가 이번에는 큰 바위틈으로 들어가버리는것이였다.

저녁때가 되여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였으나 방이는 마음이 허전하여 바위곁을 떠날수가 없었다. 어느덧 하늘에는 반달이 솟아올라 마음은 더욱 처량하였다.

그런데 이무렵 어데선가 여러 아이들이 나타났다. 그애들은 붉은 옷을 입고있었는데 한 아이가 무엇을 먹고싶다고 소리치자 그 무리의 우두머리인듯 한 아이가 금방망이를 꺼내여 바위돌을 두드리니 이름부르는대로 갖가지 음식들이 줄줄이 나왔다.

아이들은 그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놀다가 밤이 깊어서야 헤여져갔는데 금방망이는 돌틈에 그냥 끼워져있었다.

방이는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아이들은 없는지라 그 신기한 금방망이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후로 방이는 금방망이덕으로 큰 부자가 되였다.

형이 큰 부자가 되였다는 소문을 듣고 어느날 동생이 찾아왔다. 집안을 돌아본 동생은 감탄하며 이런 보물이 어데서 생겨났는가고 물었다. 그때마다 형은 아무말없이 그 금방망이에서 나온 보물을 동생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러자 동생은 그전에 누에와 곡식종자를 쪄서 형에게 준것을 후회하면서 자기도 형님과 같이 금방망이를 얻게 해달라고 졸라댔다.

형 방이는 거짓을 꾸미면 천벌을 받는다면서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라고 타일러주었으나 종시 듣지 않으므로 네 소원이 정 그렇다면 내가 한대로 해보라고 하였다.

동생이 형의 말대로 하였더니 찐 누에알에서 정말 한마리의 누에가 나왔는데 그것은 보통누에와 다름없었다. 곡식종자도 나오기는 하였으나 한가지만 움터나와 무르익어가고있었다.

그무렵에 어데선가 새 한마리가 날아와 그 이삭을 물고 달아났다.

동생은 너무도 기뻐 새를 쫓아 산으로 달음박질쳐갔다. 날이 어두워 바위산밑에 이르렀는데 이번에는 붉은 옷을 걸친 아이들이 나타나는것이 아니라 도깨비무리들이 기다리고있다가 동생이 나타나자 에워싸고 《이놈이 우리 금방망이를 훔쳐간 놈이로구나.》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네가 우리를 위하여 여기에다 6자 높이의 담장을 쌓겠는가 아니면 네 코를 10자 길이로 늘구겠느냐고 따져물었다.

동생은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 담장을 쌓겠노라고 하였다.

사흘동안 담장을 쌓느라니 허기증이 나서 더는 쌓을수 없게 되자 사정을 좀 보아달라고 구걸하였다.

그러자 도깨비들은 이놈이 또 누구를 속여보자고 하는 수작이라면서 그의 코를 사정없이 길게 뽑아놓았다. 그리하여 동생은 코끼리모양이 되여 집으로 쫓겨왔다.

온 동네는 물론 고을사람들이 수많이 모여와 그 괴이한 모양을 구경하려고 발길이 끊기지 않았다.

동생은 자기의 흉측한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난지라 부끄러워 울화병을 앓다가 스스로 죽고말았다.

그후 세월이 흘러 형 방이가 얻은 금방망이는 그 자손들이 장난질하면서 이리똥이 나오라고 소리쳤는데 갑자기 뢰성벽력이 일면서 어데론가 날아가버리고말았다고 한다.

민담은 보는바와 같이 방이(형)는 가난하고 못사나 마음은 어질고 선량한 사람으로, 동생은 부자이나 심술궂은 악한으로 대조시켜 이야기를 기이하게 《권선징악》식으로 엮어주고있다.

하기에 민담의 결말도 선한자에게는 금방망이와 같은 귀물과 복이 내려지게 하고 악한자에게는 저지른 죄상으로 하여 벌과 죽음이 차례지는것으로 매듭지어주고있다.

형제관계이지만 철저하게 선악관계로 이야기거리를 풀어나간것으로 하여 인민적인 기지와 환상이 자유롭게 인입되여있으며 생활적으로는 허황한것 같지만 설화적인 납득을 줄뿐아니라 인민적리념을 충분히 엿보게 한다.

민담 《방이와 그 동생》을 두고 일부 연구자들은 그것이 《흥부전》의 원형설화라고 지목하기도 한다. 물론 이야기줄거리를 펴나가는 구성수법이나 그 내용상에서 비슷한 점은 있지만 사실여부는 알수 없다.

일반적으로 형제간의 이야기에서 형이 부자이고 악한이며 동생은 가난하고 선한자로 등장하는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방이와 그 동생》에서는 동생이 부자로, 악한으로 등장한다. 물론 선악관계를 밝히는데서 그것이 형이든 동생이든 주어진 주제가 달라질것은 없는것이다.

이야기의 꾸밈새에서도 비슷한것은 선에게 하사되는 복을 악한이 거짓으로 꾸며 받으려고 하는것이다. 례하면 민담 《방이와 그 동생》에서 착하고 부지런한 형은 금방망이를 얻어 부자가 되고 심술궂은 동생은 천벌을 받고 죽고마는것이다.

《흥부전》도 그 이야기의 꾸밈새가 엇비슷하다.

마음이 어질고 선한 흥부(동생)가 둥지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새끼제비를 불쌍히 여겨 정히 싸매주었더니 다음해 봄에 그 제비는 박씨를 물고 왔다. 흥부는 그것을 심어 박에서 갖가지 금은보화를 얻게 된다.

심술궂은 놀부(형)는 그 본을 따서 자기도 제비둥지에서 새끼제비를 꺼내여 인위적으로 다리를 꺾어놓고는 《정히》 싸매주었다. 그랬더니 다음해 봄에 그 제비가 박씨를 물고 왔다.

놀부가 성수가 나서 그것을 심고 가꾸니 큰 둥근 박이 줄줄이 달렸다. 박이 크자 놀부는 신이 나서 박을 따다 켜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안에서는 보물이 나오는것이 아니라 갖가지 흉물과 도깨비까지 나와 놀부의 가산을 다 털어가고 나중에 놀부는 기절해죽고만다.

흥부와 놀부에 대한 이야기도 결국은 형제간의 서로 상반되는 인물상을 엇비슷한 이야기의 꾸밈으로 엮어주면서 철저하게 선악관계의 견지에서 《권선징악》식으로 풀어나간것이다.

민담 《형제의 재산욕》은 《팔도재담집》에 그 변종이 실려있다. 이 민담은 같은 피줄을 타고난 형제이지만 재산욕에서는 서로 양보가 없음을 잘 보여준다.

옛날 한 고을에 마음씨 고운 늙은이가 살고있었는데 갑자기 병을 만나 세상을 하직하다보니 아들형제에게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하였다.

특히는 많은 집재산을 두 아들에게 상속시킨다는 그 어떤 말도 남기지 못하여 골치거리가 되였다. 장례차비를 하면서도 형제는 아버지의 재산상속문제로 제나름으로 골머리를 앓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형이 별안간 대성통곡하며 사설을 늘어놓았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여난 동생은 《형님은 나도 깨우지 않고 왜 혼자 곡을 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형은 방금 꿈을 꾸었는데 아버지가 전답과 세간은 모두 자기더러 차지하라고 하셨기에 감지덕지하여 곡을 하는중이라고 하였다.

동생은 형의 소리를 듣고 그 속심을 알아차리고 형이 잠든 다음 자기도 대성통곡을 하였다. 형이 놀라 깨여나 《왜 슬피 우느냐?》고 하였다.

동생은 비몽사몽간에 아버지를 뵈웠는데 집은 형님에게 드리고 세간과 전답은 모조리 나더러 차지하라 하시기에 너무나 감지덕지하여 슬피 울었노라고 하였다.

형 역시 동생의 속심을 인차 알아차리고 예로부터 춘몽은 일장허사이니 믿을바가 못된다고 하였다. 그러자 그 동생도 씩 웃어보이며 《형님의 꿈은 무엇이요. 이제 돌아올 겨울꿈을 미리 꾼것이 아니요?》 하고 물었다.

그리하여 형과 동생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욕심스레 서로 마주 얼굴만 쳐다보았다 한다.

민담은 보는바와 같이 재산욕에 눈이 어두워 상제로서의 도리도 지키지 못하는 형제의 불측한 소행을 기지있는 대사로 엮어주면서 교훈을 추구해보려고 하였다.

민담은 간단한 이야기거리를 포착하여 형제간의 미덕과는 상반되는 흑심을 기지있게 보여줌으로써 일정한 교훈성을 추구하고있다.

민담 《착한 아우와 금두꺼비》도 욕심사나운 형의 소행을 어질고 착한 동생과의 대조속에서 보여주면서 그 결말을 《권선징악》식으로 처리하고있다.

먼 옛날 어느 한 동네에 늙은 어머니가 두 아들을 데리고 구차하게 살고있었다. 어느덧 두 아들이 다 커서 장가를 가 세간나게 되였다. 그런데 형은 마음이 고약스러워 늙은 어머니를 갓 장가간 동생의 집으로 쫓아보냈다.

동생은 갓 살림을 펴나가면서도 어머니에게 다문 얼마만이라도 흰쌀밥을 대접해보려고 부지런히 산전을 뚜졌고 앞내가의 진펄까지 일구느라고 무던히 애썼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다락논에서 돌을 주어내는데 금빛색나는것이 보이기에 잡아보니 금빛두꺼비였다.

동생은 너무나도 희한하여 집에 안고 와서 물독밑에 놓아두었다.

그럭저럭 날이 지나 어느덧 어머니의 생일이 다가왔다.

동생은 그 기쁜 날에 어머니에게 흰쌀밥 한그릇에 찰떡이라도 몇짝 대접시키려고 생각다못해 형님을 찾아가 사정하였다.

고약하기 그지없는 형은 자기도 죽을 쒀먹는다면서 어머니의 생일이라니 마지못해 쌀 두어되박을 내주고는 그것도 가을에 다락논에서 거둔 쌀로 갚으라고 하였다.

동생은 고약하고 불효막심한 형을 두고 손이 떨렸으나 꾹 참고 돌아와 분을 삭이며 쌀을 씻으려 하는데 두꺼비가 독밑에서 불쑥 뛰여나왔다. 너무도 희한하여 잡으려 하니 동그란 금싸락알을 낳고 독밑으로 다시 들어가는것이였다.

금싸락을 손에 쥐고 너무도 기뻐 동생은 《네가 어머니를 위하는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하고 혼자소리로 중얼거리였다.

그후로 금두꺼비는 매일 금싸락을 한알씩 낳아주어 동생은 금부자가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효성이 지극한 동생이 큰 부자가 되였다는 소문이 형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였다.

몰인정한 형은 동생집에 찾아와 부자가 된 사연을 물었다.

동생은 친형제도 도와주지 않으니 하늘이 불쌍히 여겨 도와주었다고 하면서 앞수렁터를 논밭으로 일구어 덕을 보았다고 말해주었다.

미욱한 형이지만 동생의 그 말이 잘 믿어지지 않았는지 지금까지 도와주지 못한것은 제 잘못이니 앞으로는 절대로 그러지 않겠다면서 진상을 알려달라고 애걸하며 자리를 뜨려 하지 않았다.

마음씨 착한 동생은 형의 말을 더는 뿌리칠수 없어 할수없이 두꺼비이야기를 달리 꾸며 말해주었다. 말하자면 다락논을 일구다가 두꺼비 한마리를 얻었는데 독밑에 놓아두었더니 매일 쌀 한알씩 낳아 나중에는 독이 넘쳐나게 되였다고 하였다.

그러자 형은 자기 눈으로 직접 보게 해달라고 하였다. 하는수없이 동생은 형과 함께 독가까이에 갔으나 두꺼비는 숨어서 나오지도 않았다.

어리석은 형은 집에 돌아왔어도 흑심이 가라앉지 않아 그날 밤으로 동생집에 몰래 기여들어가 독밑에 숨어있는 두꺼비를 훔쳐다 제 집 독밑에 감추어두었다.

그리고는 며칠째 살펴보았으나 쌀은 고사하고 구데기만 욱실거렸다. 화가 난 형은 독을 제쳐놓고 두꺼비를 찾느라고 호미로 땅을 파헤치였다.

그 바람에 호미에 찢겨 죽으면서 뿜은 두꺼비의 독에 형은 죽고말았다.

민담은 형제간의 성격대조를 뚜렷이 하면서 형을 미욱하고 욕심이 사나운 악한으로, 동생은 착하고 부지런한 선한 인간으로 그리고있다. 특히는 금두꺼비를 매개로 하여 그들의 선악관계를 뚜렷이 드러내보임으로써 그 운명문제도 례외없이 《권선징악》식으로 처리하고있는것이다.

앞에서 본 형제에 대한 각이한 류형의 이야기들은 그 소재가 각기 다르나 성격본심은 대조대립된 선악의 체현자들로 특징지어져있다.

같은 형제간이지만 생활에 대한 태도와 도덕의리에서는 서로 상반되는 인물상을 체현한것으로 하여 대조대립되는 사회적인 선악관계를 반사시켜 뚜렷이 드러내보이려고 그 운명처리 역시 《권선징악》식으로 맺어지게 한것이다. 이것은 세태생활을 반영한 민담에도 례외없이 선악에 대한 인민적리념이 절실하게 반영되여있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주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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