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부의 설음

 

봉건사회에서는 혹심한 남존녀비의 그릇된 도덕륜리로 하여 녀성들이 멸시당하는데다가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면 임의로 재가를 못할뿐아니라 《절개》를 지키는것을 《부덕》으로 응당한 범절로 여겨왔다.

그러니 애어린 나이에 청상과부가 된 녀인의 설음과 외로움이란 더 말할나위 없었다.

량반관료집에서까지도 딸이 시집가서 인차 과부가 되면 재가시키지 못하였다. 만약 용단을 내려 재가시키면 봉건륜리도덕에 어긋난다고 비난받고 벼슬자리까지 떼우는것이 일쑤였다.

과부를 재가시키는것이 얼마나 심한 죄로 취급당했으면 당시 봉건사회의 페풍을 글에다 옮겨놓은것이 그리도 많았겠는가.

어숙권은 《패관잡기》에서 이런 페습을 두고 《과부딸을 재가시킨것도 죄》라는 제목을 달고 다음과 같이 썼다.

《중종때 정가성을 가진 관리 한분이 젊어서 과부된 딸을 가엾게 여기여 딴데로 시집을 보냈더니 조정에서는 풍속을 못쓰게 만든다 하여 일생동안 그의 벼슬을 떼여버리였다.》

그 페습이 얼마나 지독하였으면 이런 구체적인 기록을 남기였겠는가.

이렇게 량반집 청상과부는 재가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으며 상놈의 집 과부는 더 말할것도 없고 홀아비인 경우에도 상놈의 집 과부를 강제로 메와야 홀아비나 과부신세를 다같이 면할수 있고 비난도 적게 받았다 한다.

하기에 청상과부와 머슴총각 아니면 홀아비와 관련된 소화가 많은것은 당연하며 특히 재미를 몰래 보는 육담적인 우스개소리가 나오게 된것은 짐작할만 한 일이 아닐수 없다.

특히 애젊어 과부가 된 녀인에게 있어서는 외관상 《정절》과 《부덕》에 매여있지만 그 페습을 저주하며 설음에 차서 한탄하거나 몰래 재미를 보는 일이 드문하였다.

그래서 민간에 그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고 널리 소문이 나서 우스개소리로 《과부는 설음만 있고 재미는 보지 말라는건가?》 하는 불만의 한숨소리와 함께 우스개소화도 생겨났던것이다.

 

까마귀가 과부를 알아보다니

 

옛날 어느 량반집 젊은 과부가 집에 들어박혀있기 싫증나서 산천구경을 떠났다. 때는 봄절기인지라 바람도 청춘을 희롱하듯 하니 사람구경도 하고 운수가 나면 재미도 볼겸 처녀차림새를 하고 천하절승인 금강산어구에 들어섰다.

갓 스물을 넘긴 청상과부인지라 머리를 틀어올리지 않으면 누구나 숙성한 처녀로 보았다. 그래서 틀어올린 머리를 마을을 벗어나자 내리우고 처녀처럼 땋아드리웠다.

금강산에 유람오는 선비들과 젊은 량반도 미녀에게는 눈독을 들이는지라 운수좋으면 남자들과 말을 건네보거나 재미를 볼상싶었다. 그러나 혹시 아는 사람이나 동네어른들을 만나면 야단칠것 같아서 사위를 살피며 조심스레 산입구에 들어섰다.

그런데 아니나다를가 어데선가 《꽈욱부, 꽈욱부, 꽈부》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녀인은 흠칠 놀랐으나 분명 《과부》라고 부른것 같아 사위를 두루 살펴보았다.

가슴을 조이며 간신히 저쪽 산마루를 쳐다보니 소리임자는 분명 사람이 아니라 까마귀였다. 녀인은 놀란것을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고 분하기도 하여 까마귀를 향해 연신 돌총질을 하다가 《까마귀놈도 나를 과부라 부르며 못살게 굴어… 너같은 미물도 과부를 알아보니 처녀차림을 한들 무슨 락을 보겠나. 팔자도 사납지.》 하고는 세상을 원망하듯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한참 설음에 겨워 푸념을 하다가 까마귀가 날아가는것을 보고 《까마귀의 울음소리도 〈꽈욱부〉하고 나를 부르는듯하니 과부는 설음만 있고 재미는 보지 말라고 비웃는게지?!》 하고는 제 방귀에 놀라 어리석게도 까마귀에게 돌총질한것이 우스워 혼자 웃고말았다.

그리고는 재수가 없는 날이여서 집으로 되돌아갈가 하다가 내친걸음이니 과부의 설음은 새길수 없어도 산천구경이라도 하고 가리라 마음먹고 등산길에 올랐다고 한다.

보는바와 같이 소화는 처녀차림새를 하고 유람길에 올랐다가 까마귀소리에 놀라 자기가 한 행동이 어리석었음을 자책하며 웃고마는 간단한 이야기를 통하여 은유적으로 봉건사회의 《부덕》을 조소해학하고있다.

 

괜한 송사

 

이 소화도 지주집 과부가 《부덕》을 어긴것이 죄가 될가봐 제가 재미를 본것도 잊고 송사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거지를 해학조소한 우스개소리이다.

어느 한 고을에 지주집 과부가 나이찬 총각머슴을 부려먹으며 호화롭게 살고있었다. 과부에게 불편한게 있다면 밤이 되면 외로워 깊이 잠들지 못하는것이였다. 그래서 이따금 머슴을 불러 물을 떠오라 하고 더운 때면 문을 활짝 열어놓으라고 앙탈을 부리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해 여름 무더운 날 밤이였다.

너무 더워 잠을 못들고 뒤척거리던 지주집 과부는 더벅머리 머슴총각을 불러 가까이에 와서 부채질을 해달라고 하였다.

과부는 속옷만 입고 누워 머슴총각의 부채질하는 시원한 바람을 쏘이며 잠들듯 하다가 또 더워났던 모양인지 속옷을 아래로 내리끌어 허벅다리를 훤히 드러내보이였다.

머슴총각도 부채질하다가 너무나도 졸려 머리를 꺼덕거리며 부채질을 하는둥마는둥하였다.

과부마님은 잠이 들듯 하더니 또 뒤채기며 아래옷을 더 내리끌고서는 잠소리처럼 《더 부쳐라, 부쳐.》 하고 꾸짖었다.

머슴총각은 졸다가 그 소리를 듣고 눈을 번쩍 뜨고는 부채질을 빨리 하려고 손을 부지런히 놀리는데 지주마님이 홀랑 속옷을 내리끄어놓았는지라 그 밑의것이 환히 들여다보였다.

지주마님은 그런데는 관심이 없는듯 눈을 감고는 《더 부쳐라, 부치라는데…》 하고 이번에는 다급하게 말하는것이였다. 그래서 머슴총각은 자기가 주인마님의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 그러는줄 알고 처음 보는 그 희한한데다가 자기의 큰 쟁기를 붙여놓았다. 그러니 쟁기가 그곳으로 저절로 미끄러져 들어가는것이였다. 머슴군총각은 하는수없이 과부를 안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과부는 잠결에 더 시원하게 해달라고 《부쳐라, 부쳐.》라고 독촉하듯 말했는데 머슴총각이 씨원스레 엉덩방아를 찧어주니 오랜만에 그 맛을 보는지라 얼싸 좋다며 성수가 나서 《빨리! 빨리!》 하고 소리쳤다.

그날 밤 과부는 깊이 잠들었다가 아침늦게야 깨여났다. 그런데 마당에서 머슴총각이 동네총각들과 함께 나무하러 가려고 떠날 차비를 하고있었다.

지주집 과부는 머슴군총각에게 어제 저녁 일을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오금을 박으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런데 방안에 홀로 앉아있느라니 마음이 개운치 않고 기분이 흐려지면서 걱정이 앞섰다. 저 자식이 간밤에 있은 일을 동네총각들에게 자랑삼아 터쳐놓지나 않겠는지?!… 철없이 다른 총각들에게 너도 한번 지주마님과 그렇게 해보라고 충동질하면 이게 무슨 망신이람, 더구나 그 소문이 관가에까지 알려지면 지주집 과부의 행실을 두고 그것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텐데? 하고 이리저리 속생각을 굴리다가 선손을 써야 한다며 끝내는 머슴이 간밤에 자기를 겁탈했다고 송사해버렸다.

다음날 머슴총각은 관가에 불리워가 심문을 받게 되였다.

관리는 머슴총각에게 눈을 부라리며 《네 이놈, 종살이를 하는 주제에 감히 주인마님의 몸에 손을 대다니? 이 망측한 놈 같으니.》 하고 된욕설을 퍼부었다.

그 자리에는 지주집 과부가 증인으로 와있었다.

머슴총각은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 과부를 한번 더 골려주고싶은 생각이 들어 이렇게 꾸며댔다.

《나리님, 어찌 소인이 감히 무작정 주인마님을 욕보이겠나이까. 제가 마님의 곁에서 부채질하다가 너무 졸려 정신을 가다듬느라고 발을 쭉 폈던 일이 있는데 혹시 소인의 발가락이 그 짬으로 들어가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오이다.》

그러자 옆에 앉았던 지주집 과부가 성을 발끈 내면서 소리쳤다.

《야, 이 머슴놈아, 내가 수절하기로서니 아무렴 발가락맛과 그 맛을 가늠 못할줄 아느냐? 그건 분명 우리 령감이 살아있을 때 맛보던 그 씨원한 맛이였단 말이다.》

머슴총각은 과부가 자기의 창피를 숨기려 하지 않자 사실대로 진실을 털어놓겠다고 하면서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사실은 제가 졸면서 부채질을 하고있는데 주인마님이 속옷을 내리끌어 보이면서 〈붙이라, 빨리 붙이라는데…〉 하고 요구하기에 마지못해 갖다댔더니 아니 그렇게도 좋아하면서 빨리 엉덩방아를 찧으라 하지 않겠소이까. 나도 처음 당해보는 일이였나이다. 이자 주인마님도 그 맛을 선명히 말하지 않았소이까. 나만 손해를 보고 좋기는 누가 좋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 떨어지려고 하는데도 한번만 더 한번만 더 하면서 장밤 껴안고있고서는…》

머슴이 더 털어놓으려 하자 관리는 이젠 알만 하니 그만하라고 헛기침을 하였다.

관리는 이런 송사를 처음 당해보는지라 한참 머뭇거리다가 다시 과부를 쳐다보고는 판결하기를 《듣거라, 그 동기와 목적은 어찌했든지간에 결과는 둘이 다 재미를 보았으니 이건 강간이 아니라 화간이라 하겠다. 더 들을 소리가 없으니 그만 물러들 가거라.》 하고 관청에서 쫓아냈다.

그제야 지주집 과부는 괜히 청백한것처럼 송사하였다가 망신만 당하고 더는 그 좋은 맛도 보지 못하게 되였으니… 하고 되뇌이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디디였다고 한다.

소화는 보는바와 같이 기지있게 육담식으로 엮어져있지만 봉건적인 《절제》밑에서 과부들이 얼마나 구속되고 《정절》을 강요당하였으면 그것이 《법도》를 어기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죄의식을 모면하기 위해 제가 좋아한 일도 소문이 두려워 송사까지 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였겠는가 하는것을 충분히 엿볼수 있게 한다.

물론 육담적인 색채가 진한 제한성을 가지고있지만 봉건사회현실에서 남존녀비로부터 오는 그릇된 륜리관이나 《부덕》 특히 과부의 《절개》에 대하여 통쾌하게 해학조소하고있다.

 

《홀아비가 과부를 메고 왔대요》

 

이 소화는 과부가 눈맞은 남자가 있어도 뻐젓하게 재가를 하지 못할뿐아니라 홀아비가 되여 후처를 맞아들이자 해도 남보는데서 억지다짐으로 과부를 훔쳐메고 와야 하는 봉건적인 페습을 우스개소리로 해학조소한것이다.

어느 한 산골동네에 해마다 부지런히 산전을 일구며 살아가는 한 농군이 살고있었다.

그는 말주변이 좋아 밤이면 한적한 산골마을에 마실을 다니며 우스개소리를 들려주군 하였다. 마을사람들은 그 농군의 이야기를 듣느라고 밤가는줄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안해가 급병으로 돌아가 상처를 한 다음부터는 말이 적어지고 마실도 다니는 일이 없어 그의 우스개소리도 들을수 없었다.

농부가 남자의 손으로 모든 살림살이를 하다나니 그 정상이 말이 아니였다.

옷도 제때에 빨아입지 못하여 어지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다나니 생활관습도 거칠어져 한숨속에 담배대만 빨고 앉아있다가도 어데서 술이 생기면 량껏 마시고 취해 자군 하였다. 그래서 동네어른들도 홀아비의 가긍한 정상을 헤아려 빨리 후처를 구해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수소문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 소문이 널리 퍼져 아래동네에 혼자 사는 과부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였다.

그 녀자로 말하면 여러해전에 량반집 둘째아들에게 시집을 가서 세간났는데 애어린 신랑이 덜컥 죽다나니 신혼맛도 보지 못한채 애젊은 나이에 숫처녀나 다름없는 청상과부가 되였다. 그래서 아무런 사는 맛도 모르고 과부의 설음속에서 호젓하게 살아가고있었다.

과부는 우스개소리를 잘하는 웃마을 그 장씨가 상처를 하였다니 그 신세 또한 자기만 못지 않게 외로우리라 생각되였다. 그리고 우스개소리를 잘하는 그런 서방을 데리고 사는 녀인은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도 났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한들 그 홀아비가 자기를 훔쳐메고 달아나지 않는한 자기 생각은 너무나도 부질없는것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웃마을 홀아비가 아래마을 청상과부네 집옆을 지나게 되였다. 때마침 그 과부는 밖에 나와 나무단을 쌓아올리고있었는데 지나가는 홀아비를 알아보고 《아주버니, 어딜 그렇게 바삐 가시우?》 하고 말을 건네였다.

홀아비도 과부를 알아보고 우스개소리를 하듯 《어딜 가긴… 신선이 되러 가지.》 하고 웃어보였다.

그러자 과부는 홀아비의 말이 잘 리해가 되지 않는지 재차 물어보았다.

《신선이 되다니? 어떻게 하면 신선이 되우?》

그러자 홀아비는 《맑은 정신에서야 어떻게 이야기하나? 얼근한 김이라면 몰라도…》 하고 능청스럽게 말하였다.

그러자 과부는 호기심이 동하여 《그러면 내 오늘 저녁 술상을 차려놓고 기다릴터이니 그 비결을 대주시오이다.》 하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홀아비는 밤이 이슥하여 과부네 집 술상에 마주앉게 되였다. 홀아비는 부어주는 술을 연거퍼 마시고나서 《임자도 한잔 들라구, 온전한 정신으로는 신선으로 되지 못하네.》 하고 과부에게도 술잔을 건늬였다. 이쯤되자 두 외짝은 다 혼미한 상태에 빠지고말았다.

홀아비가 먼저 《이거 취하는게 진짜 신선나라로 가는게 아닌가?!… 내 잠간 웃방에 올라가 누웠다가 대주지.》 하고는 웃방으로 들어가더니 털썩 드러눕는것이였다.

과부는 우스개소리라도 한마디 들어보려 하였는데 홀아비가 저렇게 잠들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웃방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홀아비의 아래것이 방치만큼 곤두서있는것이 아닌가. 전에 애기서방에게서는 볼수 없었던 호함진것이여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것이구나 하고 우뚝 솟은것을 꽉 잡았다.

홀아비는 그제야 신선이 되는것을 대주겠다면서 잡고만 있지 말고 아래것을 대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내가 먼저 배우에 올라타고 신선놀음을 하면 당신도 자연히 따라 신선이 되는거야.》 하더니 엉덩방아를 찧었다.

과부는 그 맛을 처음 보는지라 정말 신선이 된듯 하여 《이제는 신선이 되는것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그것을 대주지 않아도 돼요. 늘 그 신선맛을 보았으면 오죽 좋으련만 혼자 사는 과부다나니 어쩌면 좋담!》 하고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들은 홀아비는 《내가 있지 않소. 뭘 걱정할게 있소.》 하고 나무람하듯 말하였다.

그러자 과부는 어떻게 남의 눈속임을 하며 밤마다 《신선놀음》을 할것이며 그러다 들키면 또 어쩌는가고 울상이 되여 말하였다.

거사가 끝난 다음 홀아비는 과부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그렇게 걱정스러우면 래일 밤 동네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보라는듯이 임잘 자루에 넣어 메고 가겠네.》 하고는 그 집을 몰래 나와 제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저녁 마을로인장을 찾아간 홀아비가 《아래동네에 홀로 사는 맞춤한 과부가 있다는데 나서줄수 없겠는지요?》 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로인장은 기뻐하며 《량반집 과부이니 가풍을 보아서도 거저 데려와서는 안되네. 몇명 장정들을 데리고 가서 그 녀자가 싫다고 하여도 무작정 메고 오라구!》 하고 한시름 놓은듯 시원스레 말하여주었다.

그래서 그날 밤 홀아비가 아래동네 과부를 메왔고 그 소문이 퍼져 《홀아비가 과부를 메고 왔대요.》라는 우스개소리가 생겨나게 되였다.

그후 홀아비는 과부를 메고 오게 된 이야기를 우스개소리로 하여 사람들을 더 크게 웃기였다고 한다.

보는바와 같이 봉건적인 《부덕》으로 하여 청상과부라 할지라도 설음속에 승려와 같이 《금욕》에 얽매여있어야 하고 홀아비도 눈맞은 과부가 있더라도 강다짐으로 메고 와야 하는 페습이 당시에는 관례로 되여왔으니 어찌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수 있겠는가.

소화는 이런 실상을 기지있는 꾸밈새와 내면세계의 독백, 우습강스러운 행동거지를 통하여 생동하고 실감있게 보여줌으로써 봉건적인 페풍을 해학조소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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