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혼이 빚어낸 웃음거리
중세기 봉건사회에서는 성년이 되기 전에 자식들을 조혼시키는 페습이 만연되고있었다. 지어 생남생녀를 보자마자 앞으로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번져질지도 알지 못하고 혼사를 정하고 사둔을 맺는가 하면 어린 자식을 조혼시켜 웃음거리를 빚어내는 일이 적지 않았다.
특히 량반집 자식들이 조혼하는 률이 더 많았으며 민며느리까지 삼는 페습이 끊기지 않았다.
하기에 신랑감은 어리고 철들지 못했으나 신부감은 나이차고 철들어 결혼생활에서 억이 막힌 일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니 조혼으로 하여 빚어진 웃음거리는 또 얼마였겠는가.
그 많은것들이 페습적인 조혼으로 하여 빚어진 우습강스러운 일들이기에 한입 건너 두입 건너 전하여지는 과정에 우스개소리를 만들어냈고 그것이 다듬어지면서 설화유산의 양상을 이채롭게 하였다.
특히 중세기 봉건사회에 와서 조혼의 페습을 해학하는 소화류형으로 굳어진것들이 적지 않다.
물론 이야기를 심히 해학적으로 꾸며내는데서 일부 육담적인 덧옷을 입는것도 있으나 이 주제의 소화는 그모두가 봉건적인 조혼페습을 해학하고 돌이켜보게 하는 교훈성이 슴배여있는것으로 하여 유산적가치를 가진다고 볼수 있다.
어느 호박을 따라나
이 소화는 봉건사회에서의 조혼페습을 어린 신랑의 장난꾸러기다운 행동을 통하여 해학한것으로서 《팔도재담집》에는 간략되여 기사화되여있으나 여러 《야담집》에는 보다 전개되여있다.
옛날 어느 벌방마을에 사는 량반이 늙기 전에 손자를 일찌기 보고싶어 아직 애티도 벗지 못한 자기 아들보다 다섯살이나 우인 처녀를 며느리로 맞았다.
어느날 시어머니는 새로 맞은 며느리에게 《내가 장보러 갔다올테니 채 짓지 못한 시아버지 옷을 깨끗이 지어놓거라.》 하고 나가버리였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바느질솜씨를 알아보려고 그러는가 생각하고 부지런히 다그쳤다.
그런데 남편되는 어린 신랑이 밖에 나가 동네아이들과는 놀지 않고 집안을 맴돌다가 안해곁에 와서 말을 시키며 방해를 하였다.
신부가 말없이 바느질을 다그치자 신랑이 볼기짝을 꼬집더니 치마속에 손을 넣고 옴지락거리였다.
신부는 아직 남자구실을 못하는 신랑이 그러거나말거나 개의치 않으려다가 시어머니가 돌아오기 전에 옷을 다해놓으려는 생각에 더는 범접을 못하게 하였다.
그러자 어린 신랑은 나와 놀자고 너를 데려왔지 밥술이나 축내라고 데려온줄 아는가고 하면서 더 극성스럽게 달라붙으며 바느질을 못하게 하였다. 그래 너무 화가 나서 어린 서방을 닁큼 들어 호박넝쿨이 뻗어간 지붕꼭대기에 올려다 놓았다.
시간이 펴그나 흘러 장을 다 보고 집대문으로 들어서던 시어머니가 아들이 지붕꼭대기에 앉아있는것을 보고 《네가 지붕우에는 왜 올라가있니?》 하고 물었다.
아직 철없는 어린 서방이라 할지라도 제 안해에 대한 보호의식은 있었던지 지금까지의 일은 묻어버리고 제꺽 《여보, 어느 호박을 따라오?》 하고 집안에 대고 소리쳤다.
새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들어선것을 보고 마중나오면서 《애기호박을 따라요. 만만한것을 골라서…》 하고 얼결에 대답해주었다.
이 희한한 광경을 본 시어머니는 속으로 외우기를 《그래도 어린것이 남편구실을 하느라고…》 하고 흡족해하였다 한다.
보는바와 같이 소화는 봉건사회에서 조혼으로 하여 흔히 보게 되는 세태생활의 일면을 기지있게 엮어줌으로써 혼인페습이 낳은 웃음거리를 경쾌하고 맛이 나게 살려내고있다.
특히 중세기적인 조혼페습이 가져다주는 생활단면을 재치있게 꾸며줌으로써 사람들의 입을 거쳐 다듬어지고 세련되여 웃음과 함께 교훈성도 잘 살려내고있다.
《망가졌다》
이 우스개소리는 조혼의 후과를 기지있게 해학한데서는 앞에서 본 우스개소리와 다를바가 없다.
옛날 늙은 부부가 자식을 보지 못하고있다가 늦게야 아들을 본지라 손자를 빨리 두고싶어 열살 되는 아들을 장가들게 하였다.
너무도 일찌기 조혼시키다보니 신랑은 아이때를 벗지 못하였으나 신부는 다 자란 16살의 미녀였다.
신부가 시집올 때 어머니가 하는 말이 신랑이 어린애나 다름없으니 《그것》을 자래우는 련습을 시켜야 한다고 귀띔해주었다.
그런데 아니나다를가 잔치를 치른 첫날밤 애어린 신랑은 아무런 기색도 없이 신부옆에서 곤드라져 잠만 자고있었다. 아마 잔치례법에 치워 피곤해서 그러겠지 하였는데 다음날도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누나가 어린 동생을 껴안고 잠재우듯 하다가 시집올 때 어머니가 하던 말뜻을 새겨보게 되였다. 그제야 깨닫고 곤히 잠든 어린신랑의 밑의것을 만져보며 깨워보려 하였으나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제 며칠 더 참으면 락을 보리라고 생각하고 그밤따라 극성스레 만져주었다.
다음날 아침 신랑이 오줌을 누고 들어오면서 《엄마, 이것을 어쩌니? 내 꼬토리가 망가졌어.》 하고 울상이 되여 말하는것이였다. 시어머니는 당황한 기색으로 《망가지다니? 어디 다쳤냐?》 하고 물었다.
그러자 어린 신랑은 창피한줄도 모르고 《아니야, 저게 밤새껏 만져주면서 못살게 굴어 아픈것을 참고 넣었더니 껍질이 벗겨졌어.》 하고 말하였다.
그 말을 들은 시어머니가 혀를 찼다.
《지독스럽기도 하지. 아직 채 여물지도 않은것을 생콩껍질 벗기듯 하다니 쯔쯔…》
이 말을 들은 어린신랑은 자기 안해에게 다가가서 《고쳐내라…》 하고 응석을 부리였다.
그러자 령감은 너무도 화가 나서 어린 아들의 귀쌈을 후려치며 《이 못난 녀석, 사람구실을 하라고 일찍 장가를 보냈더니 그것도 짐작 못하고 신방에 들어갔니? 정 싫으면 네 어머니곁에 가 자던지 해라. 손자를 일찍 보기는 다 틀렸군…》 하고 탄식하였다.
신랑의 어머니는 또 어머니대로 《아이에게 손찌검은 왜 하오. 그런것도 모르고 일찍 장가를 보내자고 복닥소동을 피웠소?》 하여 결국은 집안싸움으로 번져가게 되였다.
그들 늙은 부부는 일찌기 어린것을 장가보낸것을 후회하며 말이 퍼질가봐 걱정하였으나 숨겨지지 못한채 한입 건너 두입 건너 결국은 우스개소리를 낳게 하였다.
소화는 봉건사회에서 있게 되는 조혼의 페습을 해학조소한것으로서 교훈을 찾도록 기지있게 꾸며지고 다듬어져 인민적인 재능을 엿보게 한다.
민며느리의 설음
이 소화는 량반집 민며느리로 들어온 가난한 집 딸이 어린 서방을 키워서 신랑감이 되게 한 우스개소리로서 봉건사회에서 있게 되는 조혼이 가져다주는 페습을 가벼운 웃음으로 해학조소하고있다.
옛날 세도있는 량반집에서 부엌일을 도맡아시키려고 못사는 집의 딸을 일찌기 민며느리로 데려와 어린 아들과 부부로 정해놓고 궂은일 마른일 가림없이 다 시켜먹었다.
끌려오다싶이 한 민며느리는 아침일찍 일어나 밥을 짓고 찬을 만들어 밥상을 차려놓았는데 조무래기남편이 일어나지 않고 쿨쿨 잠만 자고있었다,
그러자 시어머니가 화가 났던지 《어서 네 서방을 깨워라.》 하고 호령했다.
민며느리는 할수없이 방에 들어가 《여보, 어서 일어나 진지드시오이다.》 하고 흔들어깨웠다.
그러나 열살인 어린 서방은 일어날념을 안했다. 며느리는 그러는 어린 서방을 안아일으켜 겨우 아래방으로 데려내왔다.
그 정상을 살펴보던 시어머니가 아들에게 《넌 무슨 늦잠이 그리도 많으냐. 전에 없던 버릇이 생겼구나.》 하고 꾸짖었다.
그러자 어린 서방이 하는 말이 《밤새껏 내 꼬토리를 주무르니 어디 잘수가 있나요. 이젠 따로 잘래요.》 하고 투정을 했다.
그제야 로친네도 옛날 자기 생각이 났던지 《나도 저 령감을 만나 밤새껏 주물러주며 방치만큼 키워서 재미를 보았는데 너도 아직 몇년은 주물러 키워야 그 맛을 알게 되니 그때 실컷 자거라.
지금이야 자래우는 기간이니 잠을 덜 잔들 뭐라니. 이제 그게 크면 락을 볼테니 자꾸 만지게 내버려두렴. 제것을 키우는데 좀 좋다구!》 하고 타일렀다.
그러자 어린 서방은 그 말귀도 알아듣지 못하는지라 《그러면 내가 밤낮없이 주물테니 저 사람 손만 대지 말게 해줘요.》라고 하였다.
로친네는 제가 덕을 보려고 민며느리를 일찌기 데려왔는데 어린 아들녀석이 하는 소리를 듣고보니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너 잠자리를 옮기자고 그러느냐? 그것을 주물러 키우는 손이 따로 있다. 저 며느리의 손이 그걸 키우는 약손인줄 알아라.》 하고 오금박듯 말하였다.
보는바와 같이 가난한 집 딸이 일찌기 민며느리로 끌려온것이 부엌데기로 온것이나 다름없어 그 설음이 하많은데다가 봉건사회의 페습으로 자기 서방의 사랑도 받지 못하니 그 억울한 심정을 누구에게 하소한단 말인가?!
하기에 민간에서는 민며느리로 들어온 가난한 집 딸의 서글픈 신세를 두고 동정하면서 봉건적인 조혼의 페습을 해학조소하거나 우스개소리로 조롱한 소화와 재담들이 적지 않게 생겨났던것이다.
이젠 두드리지 않아도 돼요
이 이야기는 홀아비인 가난한 늙은이가 손자라도 보아 기쁨을 누려보려고 미련한 어린 자식을 조혼시켜 우스개소리를 낳게 한 우와 비슷한 소화부류의 하나이다.
옛날 한 마을에 일찌기 안해를 잃은 홀아비가 살고있었다.
그의 기쁨이라고 하면 어리석고 미련하기는 하나 아들자식 하나를 둔것이였다.
집이 하도 가난하여 어디 가서 과부를 메고 올수도 없어 그 아들이 자라는것을 락으로 삼으며 손자를 볼 생각까지 하였다.
그러던 어느해, 어린 자식을 장가보낼 생각이 들어 여러곳에 물색하던중 가난하게 살고있는 집 딸을 며느리로 삼게 되였다.
두 사돈집이 모두 못살다나니 자식들의 성례도 잘 치르어주지 못하고 혼인시켰는지라 아버지는 그들사이가 어떠한지 몹시 궁금해났다.
어느날 아버지는 거북스러웠으나 아들에게 《너 장가가니 어떠냐?》 하고 물었다. 어린 아들이 그 말뜻이 무엇인지 알길없어 하기에 《색시맛이 어떻더냐?》 하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아들이 《그 맛을 어떻게 보는거예요?》 하고 되물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 쓸개빠진 놈같은게 어리석기로서니 그 맛도 보지 못하고있단 말이야?》 하고는 미련한 어린 자식에게 그 방법을 대주었다.
《오늘 밤 잠자리에 들면 내가 아래방에서 곰방대를 딱딱 두드릴테니 그 소리에 맞추어 방아를 찧어라. 그러면 알 도리가 있을게다.》
한밤이 되여 아들이 아버지가 가르쳐준대로 《거사》를 시작하니 신부도 이제야 신랑이 제구실을 하는듯 하여 좋아하였다. 아들은 아버지의 딱딱소리에 맞추어 방아를 찧으며 성수가 나서 제나름으로 씨름질하고는 네 활개를 쭉 펴고 너부러졌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아직도 《거사》중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곰방대를 두드려댔다. 아들은 신부가 거북해하는것 같아 큰소리로 아래방에 대고 소리쳤다.
《아버지, 이제는 곰방대를 두드리지 않아도 돼요!》
그제야 아버지는 아들녀석이 제구실을 한줄 알고 대통에 담배를 쑤셔넣고 한대 피우면서 이젠 손자를 볼려나 하고 속으로 달수를 세여보았다 한다.
이 소화도 육담적인 덧옷을 입고 웃음을 더해주지만 조혼이 낳은 페습으로부터 나오는 해학적인 웃음이라는것을 홀아비의 행동을 통하여 엿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