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우스개인 소화와 그 갈래

 

우스개인 소화는 항간에서는 《우스개소리》라고 불러왔으며 중세말 이후 근대에 들어오면서 수집하여 서사화하는 과정에 《소화》로 제목화하여 전하여온다.

하기에 《우스개소리》와 《소화》는 언어표기에서 다를뿐 본질상 같은 의미를 담고있으며 다같이 우습강스러운 이야기로 크게 웃음을 자아내는 해학화된 설화류형으로 일러온 명명이다.

따라서 민화류형에서 풍자적인 재담과 달리 우습강스럽고 심히 희극화된 설화를 강조하는 의미에서 《우스개인 소화》라고 표제화하였다.

소화는 재담과 같이 민화권에서 독자적인 체질과 양상을 가진 설화류형으로서 항간에서 우스개소리의 판을 벌리고 저저마다 한가지이상의 우스운 이야기를 엮어가는 과정에 생겨나게 되였다.

그런가 하면 민간의 재담가, 이야기군에 의하여 심히 해학적인 이야기로 꾸며진것도 적지 않다. 그리하여 근대에 들어와서 이런 우스개소리를 출판물들에 《소화》로 항목을 달아 소개하는가 하면 《앙천대소》라고도 하였다.

그후에는 《팔도소화집》이나 《명랑소화집》 같은것을 묶어내게 되면서 《소화》라는 명명이 우스개소리와 함께 통용되게 되였다.

소화는 웃음거리가 될만 한 생활소재를 가지고 웃음을 터칠수 있도록 기지있게 이야기를 꾸며간 해학적인 우스개소리이다.

웃음을 야기시킨다는 측면에서는 재담과 상통한 점이 없지 않으나 풍자해학의 색갈과 비판성에서 차이가 있다.

풍자재담은 주로 비판대상에 대한 풍자해학이라면 소화는 익살이 숨겨져 이야기가 구수하면서도 선의적이며 보다 교훈성을 위주로 하여 꾸며진다는데서 양상적차이를 보여준다.

물론 풍자적인 재담과 우스개인 소화는 웃음의 질적차이에 따라 양상이 구별되나 어리석은자나 그 희극적인 행동을 엮어간 이야기에서는 엇비슷하여 구별하기 어렵거나 혼탕되여있는것이 적지 않다.

례하면 《풍산수의 계산방법》이나 《한정승의 벼농사》와 같이 량반통치배들의 어리석은 행동을 풍자해학한 풍자재담들은 세태생활에서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평백성을 조소한 소화 《본안해와 두번째혼인》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있는것으로 하여 엇갈리는수가 적지 않다.

여기에서 기본은 대상에 대한 풍자비판인가 아니면 사회생활적인 교훈을 주려고 하였는가 하는데서 웃음의 질과 대상성의 차이를 찾아보아야 할것이다.

소화는 사회적악페로 하여 빚어지는 세태생활에서 있게 되는 웃음거리를 대상으로 하여 웃음으로 교훈을 주거나 고되게 살아오던 사람들이 한번 크게 웃어보려는 욕망에서 기지있고 흥미있게 엮어지는것이 일반적이다.

력사적으로 보면 소화, 우스개소리에는 육담도 적지 않으나 그중에도 웃음을 위한 웃음이 아니라 사회적악페로부터 빚어지는 요인에 의한 웃음이 적지 않다.

따라서 소화속에 들어있는 육담중에서 사회적색채가 짙게 배여있는 육담을 엄격히 갈라보아야 하며 그런 류형은 일반소화와 함께 사회비판성에 돌려진것으로 하여 유산적가치를 가진다.

소화는 주제별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다.

편의상 그것을 갈라보면 우선 자기의 처지를 잘 알지 못하고 어리석게 행동하여 웃음을 자아내는 이야기가 적지 않다.

또한 녀자로서의 범절을 어기여 웃음을 자아내는 이야기, 조혼의 후과로 빚어지는 해학적인 이야기도 있다.

그외에도 머슴총각이 량반집 과부의 상전이 된다든가, 과부가 봉건적인 《부덕》을 어기고 재미를 본 이야기라든가, 홀아비가 신선놀음을 하는 희극적인 이야기와 갖가지 세태생활에서 있게 되는 여러가지 웃음거리들이 소화의 유산으로 전해오고있다.

 

- 자기 처지를 모르다

 

이 계렬의 소화에는 주로 천치이거나 자기의 처지를 자각하지 못하는자들이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데로부터 나오는 웃음거리를 기지있게 엮어간 설화류형이 속하게 된다.

 

소경의 두번째 혼인

 

이 소화는 성현의 《용재총화》에 실려있는데 제목은 《본안해와 두번째혼인》으로 표기되여있다. 그 내용을 아래에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 한 장님이 이웃에 사는 친구에게 본처 몰래 미인을 하나 중매해달라고 청하였다.

며칠후에 그 친구는 장님의 안해와 내통을 하고 찾아와서 《우리 옆집의 한 녀인이 가늘지도 않고 뚱뚱하지도 않고 참 절색일세. 자네 말을 했더니 싫어는 안하는데 단지 재물을 좀 과히 달라는 눈치이던데…》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장님은 그렇다면 살림이 거덜이 난들 아까울것이 있겠는가고 대답하는것이였다. 그리하여 다음날 안해가 어디 나가고 없을 때 장농과 상자를 털어내여 그 녀인네 집으로 보내주고 만날 날자까지 약속받았다.

약속한 날에 이르러 장님은 새옷을 갈아입고 만날 장소로 갔다.

그의 안해도 분세면을 고쳐하고 먼저 방에 들어가있었다.

장님은 사랑스러운 정을 못이기여 녀인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말하였다.

《자네같은 좋은 배필을 만나니 이런 기쁜 날이 어디 있겠나. 음식으로 비유해 말한다면 자네는 고기반찬에 흰쌀밥이요, 우리 집 사람은 잡곡밥에 나물국일세.》

그리고는 또 재물까지 많이 쥐여주었다. 이렇게 한밤을 재미나게 지내고 새벽이 되자 그 안해는 먼저 제 집으로 돌아와서 이불을 덮고 자는척 하고있다가 장님이 들어서자 물었다.

《어제 밤에 어데 가서 잤소?》

장님은 어떤 대감댁에 가서 경을 읽었는데 날이 차서 배탈이 났다고 하면서 술을 좀 데워서 약으로 먹어야겠다고 거짓말을 꾸며댔다.

그러자 안해가 소리를 꽥 질렀다.

《고기반찬과 흰밥, 나물국에 잡곡밥까지 창자가 꽉 차도록 먹어놓으니 병이 안 날 까닭이 어데 있겠소?》

그 소리를 들은 장님은 안해에게 속은것을 알고 《미인》을 주선해준 자기 친구를 나무람하기 전에 장님인 자기 처지도 모르고 두번다시 장가들어보려고 어리석게 행동한것을 후회하였다고 한다.

소화는 사람의 얼굴을 가려보지 못하는 장님을 설정하고 《미인》맛을 보려고 허영에 들떠 두번째로 혼인하려다가 친구의 꾀에 넘어가 본처와 다시 《결혼》맛을 보게 되는 해학적인 이야기를 통하여 자기의 처지도 모르고 욕망을 앞세우는 어리석은자들을 교훈적으로 타일러주고있다.

소화는 웃음을 환기시킬수 있는 요인과 바탕이 적절하게 주어져있고 어리석은자의 욕망과 그 해학적인 결과와의 대조대립적인 꾸밈새로 경쾌하면서도 교훈성을 돌이켜보게 할뿐만아니라 우스개소리로서의 양상적인 특성도 잘 살려내고있다.

 

풍산씨 장가들기

 

이 소화는 리제신의 《청강쇄어》에 실려 전하여오는것이다.

옛날 경상도 비안현의 한 관리가 병신아들을 두었는데 이름을 풍산이라고 불렀다. 이름은 풍요한 산이라고 하였으나 키와 몸집은 매우 작아 광대판에서 노는 난쟁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가계로 보면 리왕조의 종실이였고 아버지는 한개 현의 관리이지만 그가 난쟁이 병신이다보니 나이차서도 장가가기가 힘들었다.

한때는 그 집 가문과 아버지의 세도를 보고 청혼이 적지 않게 들어왔다.

중매군들은 그와 비등한 세도집의 딸과 혼사시키려고 찾아들었다가 당사자를 보고서는 녀자켠으로부터 뺨을 얻어맞을가봐 달아나군 하였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는 자기 말을 곰상곰상 듣는 한 아전을 시켜 한 처녀의 부모들을 속여 청혼을 받아내게 하였다. 그리고는 이제야 우리 풍산이가 장가들게 되였다고 기뻐하였다. 그래서 세도집답게 례장감도 후히 보내고 잔치상도 요란스레 차리도록 하였다.

결혼식날에는 신랑의 옷차림도 유별나게 하여 시선을 모으려 하였으나 신통히도 광대놀음판에 나선 난쟁이 형색이였다.

드디여 신랑의 요란한 행차가 신부의 집에 도착하였다. 신부네 집에서는 세도집 량반자식을 사위로 맞아들인다는 소문이 퍼져 온 동네사람들이 다 모여들었다.

그런데 신랑이 말에서 내리는것을 보니 난쟁이인데다가 볼품없이 생겨 모두는 실망하여 《량반집 자식이라고 난쟁이 병신짝을 사위로 맞다니?》 하면서 혀를 찼다. 그러니 그런 사람을 사위로 맞아들인 녀자집 부모들의 심정이야 오죽하였겠는가.

창피와 한탄이 뒤섞여 신부네 집에서는 신랑을 맞아들일 생각도 못하고있다가 더 구경거리가 되지 않으려고 할수없이 방에 들여다 앉혀놓았다. 매파에게 속은 생각에 분을 삭이지 못하고있던 안주인의 머리속에 기발한 계교가 떠올랐다.

두 집은 다같은 량반가문인데다가 서로 속이고 속히우는것이 봉건사회의 풍조이며 혼사도 보지 못하고 하는 조건에서 이제 그를 쫓아낸다고 하여 법도에 어긋나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그래서 신부집 어머니가 웃방에 올라가 신랑에게 《우리 가문에는 팔십이 된 로할머니가 계시는데 기별이 오기를 신랑이 보고싶다고 하니 얼른 찾아가 인사를 올리고 오세나.》 하고 부추겼다. 그러자 신랑은 자리에서 일어나 집머슴의 손에 이끌려 산등성이로 올랐다.

머슴은 사위가 어두워져 분간하기 어려운 절호의 기회를 타서 난쟁이신랑을 뿌리치고 제 집으로 달려내려왔다.

신부집에서 쫓겨난 신랑은 처음 와보는 길이라 온밤 헤매이다가 새벽녘에야 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는 동네 늙은이들이 신랑을 신부집에 보내놓고 잔치음식을 먹으면서 《풍산씨도 장가가는 날이 있구만!》 하고 다행인듯이 말했고 풍산씨의 아버지는 량반집 자식인데야 장가 못 갈가 하며 으쓱해하였었다.

그런데 그 신랑이 첫날밤도 지내지 못하고 쫓겨와 마당가에 서있으니 아무리 량반세도집타령을 한들 알아줄 사람이 있었겠는가.

그리하여 이 소문이 삽시에 퍼져 그후로는 사람들이 무슨 일이든지 제 마음대로 안되면 《풍산씨 장가들기》라고 일러오는통에 나중에는 속담으로까지 굳어졌다고 한다.

소화는 세도집 량반자식인 풍산씨가 장가들려다가 쫓겨나게 된 웃음거리를 통하여 량반관료들의 욕망과 허세를 비판하는 한편 당시 혼례법식의 불합리성을 희극적인 결과로 조소해학하고있다.

 

어리석은 사위 쫓겨나기 일쑤이지

 

이 이야기는 성현의 《용재총화》에서 《어리석은 사위》로 제목화되여 전하여온다.

옛날 어떤 선비가 사위를 맞아들였는데 그는 너무도 어리석고 불민하여 콩과 보리도 분간할줄 몰랐다.

혼인한지 사흘째 되는 날이였다.

신랑이라는 사람이 신부가 상우에 빚어놓은 만두를 가리키며 《이것이 무엇이요?》 하고 물었다.

신부는 너무도 창피하고 부끄러워 신랑의 입을 막으며 《쉬, 쉬》 하면서 말하지 말라는 흉내를 냈다. 그런데 신랑은 그 이름을 《쉬쉬》로 안 모양이였다.

신랑은 만두를 먹다가 그속에 잣이 있는것을 보고 또 《이것은 또 무엇이요?》 하고 물었다.

신부는 또 《쉬, 쉬》 하면서 《말말아요.》 하고 그의 입을 막았다. 그로부터 며칠 지난 어느날이였다.

신부를 데리고 집에 돌아온 신랑에게 그의 부모가 처가에 가서 무엇을 먹었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신랑이 하는 말이 《쉬쉬》속에 《말말아요》가 들어있는것을 먹었다고 하였다. 그의 아버지도 장가까지 보낸 아들이 그처럼 천치일줄은 몰랐다.

이 사실이 밝혀지자 처가집에서는 어리석은 천치를 사위로 삼았다고 근심과 후회가 막심하였다. 그래서 이 사위가 진짜 천치인가를 시험해보기로 하였다.

장인은 쌀이 쉰말이 차있는 나무궤를 사다놓고 여기에 무엇이 들어있는가를 알아맞추면 내쫓지 않고 알아맞추지 못하면 즉시 내쫓겠다고 하였다.

이미 써놓은 죽이요, 신랑이 쫓겨나면 자기 망신도 큰지라 신부는 할수없이 밤을 새워가며 그안에 들어있는 비밀을 대주고 외우게 하였다.

그 이튿날이였다.

장인은 약속대로 사위를 불러내여 궤안의 비밀을 말해보라고 하였다.

그러자 신랑은 막대기로 나무궤를 두들겨보고는 《이 나무궤에 쌀이 쉰말이 들어있습니다.》 하고 신통히도 알아맞추었다. 그 말을 듣고 장인도 너무 기뻐 사위가 불민하다고 잘못 생각한것이 아닌가고 의문을 가지였다.

그래서 또 같은 나무궤를 하나 더 만들어오게 하고 빈통을 내다놓으며 이안에는 무엇이 들어있는가고 물었다. 사위는 이번에도 전같이 막대기로 두들겨보고는 《이 나무궤에도 쌀이 쉰말이 들어있습니다.》 하고 같은 대답을 하였다.

장인은 그제야 사위가 천치임을 알고 어서 빨리 네 집으로 돌아가라고 쫓아냈다. 신부는 할수없이 제 집으로 쫓겨가는 불민한 신랑을 버릴수 없어 멀리 바래우다가 시집문가까지 따라서게 되였다.

그후 장인이 근심끝에 콩팥에 병이 나서 그 사위가 병문안을 오게 되였다. 그는 장인의 배부위를 살펴보다가 막대기를 찾아들고 그곳을 두들겨보더니 《여기에 쌀이 쉰말은 들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옆에 서있던 장모가 《저런 사위를 얻자고 내가 금딸을 키웠단 말인가?!》 하고 울음절반, 탄식절반 섞어가면서 사람이 불민하고 온전치 못한것을 고칠법은 없는가보다 하고 한탄하였다.

그리고 다시는 그 어리석은 사위를 문전앞에 나타나지도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보는바와 같이 소화는 인물설정으로부터 시작하여 천치나 다름없는 어리석은 사위의 행동거지를 모두 해학적으로 엮어주고있을뿐아니라 그 웃음을 통하여 봉건적혼인관계의 불합리성을 밝혀주고있다.

 

소경 제 닭 잡아먹기

 

이 이야기는 《팔도재담집》에 실려있는데 풍자재담이라기보다는 해학적인 우스개소리인 소화에 가깝다.

옛날 두 친구(장상과 리사)가 앞뒤집에서 살았는데 남을 골려먹기로 소문이 난자들이였다.

어느 하루 두사람은 같은 동네에 사는 소경을 얼려서 닭을 잡아먹을 생각을 하였다.

소경은 례의범절이 밝았다. 그러나 앞을 보지 못하는것으로 하여 남에게 속히워 골탕먹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것을 안 두 건달뱅이는 소경을 찾아와 《봉사님, 요사이 고기생각이 안 나시우?》 하고 물었다.

그러자 소경은 무슨 고기말인가고 되물었다.

이때라고 생각한 두 건달뱅이는 거의 동시에 《닭고기생각말이요.》 하고 말하였다.

소경은 무슨 닭이 많아서 닭고기생각을 다하겠는가고 하였다. 그 말에 먹고싶은 생각이 있다는 느낌을 받은 두 건달군은 건너마을 리생원네 집에 닭이 많으니 같이 가서 먹어보자고 하였다.

두 건달군은 앞 못 보는 소경의 손을 잡고 그 집으로 끌고가는체 하다가 도로 소경의 집 닭우리에 와서 닭을 잡아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는 소경에게 자네를 위해서 한 일이니 입밖에 내지 말며 그 《은혜》를 잊지 말라고 하였다.

밤이 되여 두 건달군의 손에 이끌려 제 집에 돌아온 소경은 만족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이 되여 날이 밝아오는데도 이상하게 닭우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닭우리에 나가서 손더듬질하며 찾아보았는데 한마리도 없었다.

그제야 소경은 어제 잡아먹은 닭고기가 자기 집 닭이라는것을 알고 《속히웠구나. 괘씸한 놈들, 어디 두고보자!》 하고 한탄하였으나 제 손으로 제 집 닭을 잡아먹었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후 집식구들에 의하여 이 사실이 밝혀져 두 건달뱅이에게 야단을 치자 그자들이 하는 말이 소경이 제 손으로 제 집 닭을 잡은것인데 무슨 송사질인가고 도리여 제편에서 역정을 냈다.

그리하여 이 소문이 널리 퍼져 《소경 제 닭 잡아먹기》라는 속담도 생겨났다고 한다.

이와 같은 해학적인 일화는 속담 《소경 제 호박따기》나 《소경이 넘어지면 막대탓이라 한다》에도 잘 반영되여있다.

소화는 소경이 남을 속여먹으려는 상대방의 속심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제 집 닭을 잡아먹는 희비극적인 행동을 통하여 교훈적인 웃음을 환기시킨다.

이것은 소경일수록 자기의 처신과 판별을 심사숙고해야 한다는것을 보여주며 한편 두 건달뱅이와 같이 남을 속여먹는자들을 비난조소한것이라고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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