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량반치고 창피를 아는자 몇이나 될고

 

량반관료나 그 나부랭이들중에 제 성미가 괴벽하고 어리석음을 스스로 깨닫고 수양하려는자들이 많지 못했다. 하기에 높은 벼슬을 하면서도 성미가 조폭하거나 괴벽하여 웃음거리를 남긴자들이 적지 않았다.

하여 갖가지 풍자해학적인 이야기들이 생겨나 그 일부가 문인들에 의해 잡기록이나 패설집들에 실려 전하여오게 되였다.

성현은 《용재총화》에서 당시 재상이였던 신씨가 파리와 《싸움질》하다가 밥사발까지 땅바닥에 엎어버린 풍자일화를 전하고있다.

또한 그는 같은 책에 량반녀편네들이 《버섯소동》을 벌린 풍자해학적인 이야기도 담고있다.

리륙은 《청파극담》에 한 량반이 애꾸눈을 고치는것을 풍자해학한 이야기를 실었다.

리덕형은 《죽창한화》에서 《부화방탕한 윤생의 말로》를 전하고있다.

그런가 하면 야담집과 설화자료집에서는 어리석은 투정군을 풍자해학한 이야기도 실었다.

또한 옛날에 전라도 감사가 친척방문겸 전주에 내려가 전주관청기생을 불러들였다가 망신을 당하고 다시는 기생을 불러들이지 못하였다는 풍자해학적인 이야기도 있다.

이런 풍자재담은 봉건사회에서 민심의 반영으로 하나의 주제령역을 이루고있다.

물론 이 풍자재담들은 웃음을 환기시키는데서 소화와 엇비슷하여 그 부류에 넣고 취급할수 있으나 량반나부랭이들에 대한 비판적조소가 강한것으로 하여 풍자재담류에서 취급하는것이 더 합당하다고 본다.

 

파리가 네 서방?

 

이 풍자재담은 조폭하고 불민한 량반관료의 미욱스러운 행동을 통하여 고관대작중에도 몰상식하고 우둔하여 분별없이 아무 소리나 망탕하는 저능아들이 적지 않았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옛날 조정에 신씨 성을 가진 재상이 있었는데 그는 성질이 조폭한데다가 우둔하여 앞뒤를 가리지 않고 말을 망탕하여 늘 관원들의 뒤소리를 듣군 하였다.

재상이라는 그 량반은 일이 잘 안되면 사연도 알아보지 않고 신경질부터 내면서 욕설을 퍼붓고는 분을 참지 못하고 풀떡거렸다. 밖에 나와서 그처럼 조폭한 량반이 집에 들어가선들 고약한 그 성미를 버릴수 있겠는가.

어느 여름날 점심때였다. 집에 들어온 그는 안해가 차려놓은 밥상을 마주하고 밥사발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집안에서 맴돌던 파리가 밥그릇에 달라붙었다.

처음에는 손을 저어 쫓아버렸는데 쫓을수록 파리가 더 달라붙으며 성가스럽게 굴자 재상은 성이 독같이 올랐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재상은 파리를 잡느라고 덤벼치다가 밥사발을 통채로 방바닥에 엎어버리였다.

그것을 바라보던 안해가 어처구니없어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미물보고 그렇게 역정을 낼것은 무엇입니까?》 하고 핀잔하였다.

그러자 재상은 눈을 부릅뜨고 《그래, 파리가 네 서방이란 말이냐? 왜 두둔하는거냐?》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안해는 거기에다 대꾸질하였다간 큰 봉변이 날것 같아 참고있었지만 속으로는 재상이라는게 미물도 분별하지 못하고 한다는 소리가 《파리가 네 서방이냐?》 하고 신경질을 부리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안해는 앞뒤도 가리지 않고 분별없이 아무 말이나 망탕하는 몰상식한 사람을 서방으로 둔 자기의 신세를 두고두고 한탄하였다고 한다. 그후 이 이야기가 민간에 전해지면서 《용재총화》에까지 오르게 되였다.

 

남의 집 김치맛이 더 좋다

 

이 재담은 몰상식한 량반의 어리석은 행위를 풍자해학한것이다.

옛날 어느 한 마을에 벼슬길에서 물러나 놀고먹으면서도 투정질을 잘하는 량반이 살고있었다.

늙어 향촌에 내려왔으나 그는 동네돌이와 놀음놀이에도 끼우지 못하고 집에 들어앉아 아침저녁으로 하는 일이란 식찬타발뿐이였다.

어느 겨울날 점심때였다. 밥상에 받쳐들어간 찬을 살펴보다가 트집걸기를 《우리 집 김치는 왜 이리도 맛이 없는고? 이웃집 김선달이 자기 생일에 오라고 하여 가보니 그 집 김치맛이 유별나기에 김치 담그는 솜씨를 칭찬해주었지. 그랬더니 로친네가 너무 좋아 어쩔줄 몰라하더군. 그런데 같은 감을 가지고 담근 우리 집 김치맛은 절반도 못 따라가니 웬일인가?》고 투정질하였다.

늙은 마누라는 벌써 김치타발을 여러번 들었는지라 《그러면 맛이 유별나다는 그 집 김치를 바꾸어오리다.》 하고 밖으로 나왔다.

김치움에 들어가 김치를 퍼가지고 그 집 김치와 바꾸어오려고 하다가 그것도 한두번이지 매번 어떻게 신세지랴 하는 생각이 앞서 한참동안 주춤거리며 서있던 마누라는 방문을 열고 들어서서 《옛수다, 맛있다는 그 집 김치를 바꾸어왔수다. 맛은 잊지 않았겠지요?!》 하고 상우의 김치그릇과 바꾸어주었다.

그러자 령감은 그 집 김치맛을 어떻게 잊겠는가고 하면서 김치를 먹어보고는 《정말 그 집 김치맛은 별맛이야! 김치맛이 이쯤 돼야 맨밥이라도 슬슬 넘어가지!》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화가 치밀어오른 마누라는 제 집 김치인줄도 모르고 남의 집 김치라면 덮어놓고 좋다며 투정질하는 령감에게 《미시도 늘 마시면 쓴법인데 제 집 찬을 지나치게 나무라다가 입맛까지 잃겠수다. 남의 얽음뱅이 녀편네도 제 녀편네보다 곱다며 외입질하는것이 무엇때문인가 했더니…》 하고 큰소리로 핀잔하였다.

그제야 령감은 마누라의 핀잔에서 뭘 좀 느껴지는바가 있었던지 다시는 김선달네 집 김치를 바꾸어오라는 말을 입밖에 내지 못하였다고 한다.

재담은 보는바와 같이 어리석고 무지한 량반이 투정질에 이골이 나서 제 집 김치도 남의 집 김치인줄 알고 덮어놓고 칭찬하는 세태생활의 한 단면을 통하여 봉건사대부들의 괴벽한 성미와 무지몽매함을 생동하게 풍자해학하고있다.

 

제 가문의 창피도 모르고

 

옛날 전라도 감사가 려(呂)씨 집안 친척방문을 할겸 전주에 와서 여러날 묵고갈 때에 있은 일이다.

밤마다 감사는 한가한 시간을 보내려고 전주관청기생을 불러들여 재미나는 옛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였다.

그런데 수십일 지나자 기생의 이야기도 바닥이 나서 이제는 무슨 말을 꾸며댈가 하고 궁냥하는데 감사는 또 아무 이야기든지 재미나는 이야기면 하라고 강박하다싶이 말하였다.

기생은 감사를 골려줄 심산으로 옛날에 있은 일이라고 하면서 전라감사의 친척벌 되는 량반집 중년과부가 아들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몰래 재미를 보다가 끝내는 재가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적 이 가까운 동네에 나이 50이 넘은 량반집 과부가 있었는데 어느날 저녁 그는 시집을 가겠노라고 아들들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아들들이 설복하기를 그 행위는 량반집안의 망신이라며 홀아비가 몰래 메고 간다면 몰라라 재가한다는것은 사람들 보기에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였다.

《어머니가 우리들을 키우느라고 언제 한번 편안한 날이 있었습니까? 이제는 이 아들들이 다 커서 제구실을 하고 먹을 걱정도 없으신데 어찌하여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그러자 어머니가 하는 말인즉 《내가 량반집 과부이다나니 지금껏 참고 살아왔다. 너희들은 우의 입(口)을 더 중히 여기겠지만 나는 아래입(口)을 더 크게 여긴다. 내가 려(呂)씨의 성을 타고 나서 그런지 모르겠다만 려(呂)자도 입 구(口)자가 두개더라. 그것도 우의 입보다 아래입이 더 크지 않더냐!》고 하였다.

전라감사가 신통히도 맞는 소리라고 무릎까지 치며 다가서자 기생은 《이것은 실지 있은 려씨가문의 이야기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제야 전라감사는 자기 사촌누이에 대한 이야기인것을 알아차리고 《더는 너에게서 옛말을 듣지 않겠으니 이제는 가도 된다.》하며 쫓아보냈다.

전라감사는 그후에도 고을을 순행하면서 그때 당한 망신을 두고두고 새겨보았다고 한다.

이처럼 재담은 전라감사와 같은 량반관료들이 기생을 제 마음대로 불러들여 희롱하는것을 《옛말》로 창피를 주고 통쾌하게 풍자한 기생의 형상에서 인민적인 기지를 뚜렷이 보여준다. 뿐만아니라 《부덕》을 제창하면서도 뒤에 돌아앉아서는 딴짓을 하는 량반사대부들의 리면생활을 비판조소하고있다.

 

조폭한 성미는 애꾸눈탓

 

이 재담은 성질이 조폭한 애꾸눈량반에 대한 풍자해학적인 이야기로서 리륙의 《청파극담》에 실려있다.

옛날 김공(량일)은 한쪽눈이 먼 애꾸눈 량반선비였는데 성질이 조폭하기로 소문났다.

한때 같이 놀던 선비들은 우스개소리를 해도 그가 성을 잘 내기에 그의 비위에 거슬리는 말은 일체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가 성을 잘 내고 조폭한것은 한쪽눈이 멀었기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어느날 홍문관의 교리를 하는 사람이 김공에게 《사람은 도량이 넓어야 하지요. 공은 남들이 재미있게 노느라고 하는 롱담을 듣고도 성을 내시오? 그만한 지위에 있는 공이 도량이 협소해서 되겠소?》 하고 충고하였다.

그러자 김공은 내가 언제 그렇게 성을 냈는가며 루루이 변명하였다.

홍문관 교리는 그러면 내가 공을 보고 되게 욕할테니 성을 내지 않고 견디여보겠는가고 물었다. 김공은 참아보겠노라고 대답하였다. 홍문관 교리는 대뜸 큰소리로 모욕적인 욕설을 퍼부었다.

《이 애꾸놈아, 너는 반편으로서 한사람의 구실도 못하니 사람값에 가느냐. 뒈지지도 않고 무엇때문에 살아있느냐?》

그 소리에 김공은 분함을 이길수 없었으나 이미 약속한 뒤라 애써 참고 견디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한 친구가 그의 성미가 누그러졌으니 애꾸눈을 고칠 처방도 대주면 믿고 받아들일것이라고 생각하고 실담인듯이 말을 꺼냈다.

친구가 눈을 고치는 명처방이 있는데 한번 해보겠는가고 묻자 애꾸눈 김공은 자기의 성미도 고칠겸 그것이 진짜 묘방이면 빨리 말해보라고 재촉하였다. 그래서 친구는 잘 새겨들으라면서 이야기를 엮어댔다.

《우선 술을 량껏 마시고 정신없이 취한 후에 날카로운 칼로 먼눈(보이지 않는 눈)에서 병든 눈동자를 우벼내고 한살 난 햇강아지의 눈알을 급히 바꾸어넣으면 피가 아직 식지 않아 살이 곧 아물어붙고 성한 눈과 같이 보이게 된다오.》
김공이 그럴상싶어 머리를 끄덕거리자 친구는 더욱 신나서 더 큰소리로 좌중이 떠들썩하게 엮어댔다.

《그렇지만 눈은 고쳐 〈애꾸눈〉소리를 듣지 않아 좋은데 다만 한가지 결점은 사람의 똥만 보면 그것을 〈고량성찬〉(맛진 음식)으로 보이게 되는지라 이것만은 꼭 알고 해야 할것이외다.》 하였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듣고있던 선비들은 허리가 끊어지게 웃어대며 《개눈을 해넣고 똥만 보면 진수성찬이라고 좋아하는것도 일거량득이니 해볼만 한 일이지!》 하고 김공을 야유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재담은 실지로는 애꾸눈 김공을 은유적으로 신랄히 풍자해학하고있다.

그것은 애꾸눈을 고친다쳐도 사람의 똥을 진수성찬으로 보는 개와 다름없이 되고말거라는 이야기로 신랄한 조소와 폭소를 환기시키고있는것이다.

 

량반녀편네들의 《버섯소동》

 

이 이야기는 성현의 《용재총화》에 실려있는데 량반녀편네들속에서 실지 있은 사실을 풍자해학한것이다.

어느해 7월 보름날이였다. 산중에 있는 사찰에 모여 불교행사를 벌린 량반녀편네들이 더위를 피하여 뒤산 소나무그늘을 찾아들었다. 군데군데 먹음직스레 돋아난 송이버섯을 본 그들은 저저마다 몇송이씩 따다가 큰 가마를 걸어놓고 삶아서 먹어댔다.

그런데 송이버섯속에 독버섯이 섞여들어갔는지 게걸스레 먹어댄 녀편네들은 까무라쳐 쓰러지고 적게 먹은 녀편네들은 비칠거리며 죽는다고 야단을 부리였다.

소식을 전해듣고 달려온 량반녀편네들의 일가친척들과 이웃마을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면서도 좋은 처방이 떠오르지 않아 안절부절 못하였다.

그러던중 한 아낙네가 나서서 이런 때에는 독을 해제해야 한다면서 그릇에 물을 떠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똥을 주어오게 하여 그릇에 넣고 휘저어 푼 다음 그 물을 정신잃고 쓰러진 량반녀편네들의 입에 쏟아넣어주었다.

이렇게 촌녀인의 《명처방》으로 독을 해제하는 소동이 한나절을 거쳐 진행되였는데 량반녀편네들은 저녁녘에야 정신이 들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성현은 자기의 기록에서 촌아낙네들이 량반녀편네들을 구완하는 장면을 두고 《상하와 귀천이 없이 한데서 법석하였다.》 하고 표현하였다. 이것은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서는 귀천이나 상하의 신분적차이가 없다는것을 말해주는 새로운 광경이기에 그렇게 강조한것이라고 볼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독을 푼다면서 농부의 아낙네들이 량반집이라고 남을 깔보며 흔들대는 량반녀편네들에게 골탕을 먹이려는 의도를 반영하여 이야기를 엮어주고있다.

그리하여 성현도 풍자해학적인 이야기로 《용재총화》에 올리였을것이다.

 

부화방탕한 윤생의 말로

 

이 풍자재담은 리덕형의 《죽창한화》에 실린 이야기이다.

윤생은 부마의 손자이며 당시 재상으로 있던 사람의 사위이다.

그는 무위도식하면서 글 한줄 읽지 않아 무식한데다가 세상물정도 모르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량반족속이였다. 그에게 남다른 취미가 있다면 그것은 꽃과 새를 좋아하여 그 값의 경중은 가림없이 마구 사들이는것이였다.

언제인가 글공부를 열심히 하는 한 서생이 윤생에게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자치통감》이라는 책이 있다는것을 알고 그것을 얻으려 하였으나 묘안이 떠오르지 않아 모색하던중 그가 꽃이라면 아무리 소중한것이라도 서슴없이 바꾼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서생은 때마침 전라도의 어느 한 고을에서 원노릇을 하는 장인에게서 철쭉꽃화분을 얻어왔다. 당시만 해도 웬만한 명문가에도 이 꽃화분이 없었다.

그래서 서생은 윤생을 불러 그 꽃을 보여주었더니 그는 놀라며 《내가 언제부터 이 꽃을 구하려 하였는데 자네 어데서 이런것을 구해왔나?!》 하면서 요구하는것은 아무것이나 다 주겠으니 바꾸지 않겠는가고 물었다.

서생은 한수 더 떠서 《말도 말게, 내가 이 꽃을 구하느라고 숱한 돈을 썼는데 꽃의 아름다움과 그 진가를 모르는 사람에게 함부로 줄상싶은가!》고 하였다.

그러자 윤생은 《나만큼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또 어데 있겠나. 내 노비중에서 일 잘하는 노비 한 가족을 떼줄테니 그 꽃을 나에게 주게나.》 하고 애걸하였다.

서생은 그의 애원에 수긍하는듯 《자네와 무슨 값의 흥정을 하겠나. 나는 책을 좋아하니 자네 집에 있는 〈자치통감〉이나 주게나.》 하고 비쳐보였다. 그러자 윤생은 감지덕지해하며 책은 나에게 필요없으니 어서 가져가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서생은 화분 한개로 귀중한 책을 얻게 되였다.

언젠가는 또 한 고을에서 사는 사람이 윤생이 꽃과 함께 짐승도 좋아한다는것을 알고 사슴새끼를 채롱에 넣어가지고 윤생의 집에 찾아갔다.

어린 새끼사슴을 본 윤생은 대번에 그것을 자기에게 팔라고 하면서 무명 세필을 내보였다.

그러자 사슴임자는 《어느 재상집에서 청동화로와 바꾸자고 하는것을 화로가 작다고 뿌리치고 왔는데 무명필이나 받고 이 귀여운 새끼사슴을 준단 말이요?》 하고 짐짓 일어나 가는체 하였다.

그러자 윤생은 얼른 큰 청동화로를 가지고 나왔다.

사슴임자는 그 값이 엄청난지라 성화에 못이기는척 하면서 사슴을 내주었다.

윤생은 이처럼 무지하고 어리석었기에 꽃이나 짐승을 사들이는데 가산을 다 쏟아부었다. 그러다가 그것도 싫증났던지 나중에는 창기들에게 얼리워 전답을 팔고 그것마저 없어지자 집까지 팔아먹었다.

그리하여 끝내는 패가하여 너덜너덜한 옷에 풀로 엮은 갓을 쓰고 돌아다니며 빌어먹는데까지 이르렀다. 그의 처가에서도 윤생의 거지꼴을 보고 세도집 가문의 처자까지 몰락시킨 어리석은자라며 침을 뱉았다.

어리석고 무지한 윤생은 끝내는 로상에서 운명하고말았다.

리덕형은 《죽창한화》에서 부화방탕한 윤생의 말로를 전하면서 그 풍자해학적인 이야기가 주는 교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쓰고있다.

《세가(세도집)의 자제들이 부귀만 믿으면서 배우지 않고 부화방탕하게 살아온 말로가 무엇을 가져왔는가를 보여준다.》

이와 같이 재담은 꽃과 책을 바꾼 이야기, 사슴새끼와 청동화로를 바꾼 이야기 등을 통해 윤생의 천치다운 어리석음을 재치있게 비판함으로써 풍자재담으로서의 양상을 잘 살려내고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