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평양역 널다란 려객홈은 군사복무를 탄원하여 입대하는 군인들과 그들의 가족, 친척, 친우들과 함께 일하던 직장사람들로 인파를 이루었다. 군인 한명에 열명, 스무명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켜 돌아가는 모양이 흡사 날바다에 동시에 일어난 수많은 소용돌이를 련상시켰다.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라!》라는 대형구호판이 려객홈의 한쪽면을 차지하고있었고 《신입병사들을 열렬히 환송한다!》라는 구호들이 려객렬차의 방통마다 나붙어있었다.
떠나는 군인들에게 사람들이 무엇인가 군용배낭에 넣어주고있었다. 로병인듯 한 어떤 로인이 공화국기발을 넣어주는데 보매 그 기발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포연에 끄슬린 기발 같았다. 군인들을 싣고갈 렬차의 지붕에도 위장망이 덮여있었다.
떠나는 군인들속에는 진웅이도 있었다.
신지글자연구에서 중요몫을 맡고있는것만큼 그의 입대를 사회과학원 당위원회에서는 신중히 토의하였으나 진웅의 완강한 주장을 굽힐수 없었다. 나이가 많다고 기웃거리던 해당 부문 일군들도 진웅의 진정어린 제의에 감동되고말았다.
탄원서를 낸 후에 그는 고향 강동에 가서 아버지를 만났다. 진웅이가 대학때 불치의 병으로 어머니가 돌아간 뒤 아버지는 혼자몸으로 농사일을 하고있었다. 이제는 나이가 지나 쉬여도 되련만 아버지는 농장부업반에서 일손을 놓지 않고있었다.
입대탄원서를 쓰면서 제일 마음에 걸린것이 아버지였다. 이제는 며느리를 맞아 손자를 놓고 즐겨야 할 여생인데 자기는 아직 장가를 안갔을뿐더러 이제 군대에 나가게 되면 아버지의 기대는 또 몇년으로 늦어지게 될것인가.
진웅의 아버지 신영균은 오래간만에 집에 온 아들을 위해 오후한겻을 꼬박 바치였다. 닭도 잡고 떡도 쳤다. 진웅이가 만류했으나 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생의 말년에 아버지의 소원은 손자를 안아보는것이 아니라 아들인 진웅이가 력사연구에서 한몫 하여 자기의 지난 시절의 잘못을 씻어주는것이였다. 그 아들이 고조선의 신지글자연구를 주제로 잡고 심혈을 기울여 론문을 완성함으로써 어버이수령님을 직접 만나뵈왔으며 그이께 다소나마 기쁨을 드리였다고 한다. 영균은 생의 여한이 말끔히 가셔지는것 같았다.
《박진규선생은 잘 계시냐?》
밥상을 마주하고 진웅이가 술병을 꺼내들었을 때 영균은 물었다.
《예.》
《그 선생이 끝내 민족앞에 큰일을 했구나.》
진웅이만이 아버지의 고민을 알고있었다. 단군릉발굴로 하여 아버지의 죄책감은 더 커졌던것이다. 바로 아버지는 30년전에 그 릉을 허황한것이라고 하면서 추석에 낫을 들고 나선 박진규선생을 문제시하였고 그때문에 한생을 자책속에 살아오고있다. 만약에 이번 발굴에서 그 무덤이 실지로 우상에 지나지 않았다는것이 판명되였더라면 아버지의 그 죄스러움이 한결 덜어졌을가. 아니, 그렇지 않다. 그렇기때문에 발굴이 시작되기 전날에 남모르게 그곳을 찾아와 부디 성과가 있기를 념원했던것이다. 아버지는 그때 자기에게 말했다.
《조상을 욕되게 한 죄는 그 무엇으로도 씻을수 없는거다.》
아버지는 지금 자기가 저지른 죄를 수령님께서 씻어주셨다고 믿는것이다.
아버지도 역시 혈육과 혈통과 조상앞에 경건한 한 가정의 성원이고 이 나라의 공민인것이며 민족의 한 성원인것이다.
진웅은 아버지앞에서 탄원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해야 했다.
《저, 아버지, 전 인민군대에 탄원했습니다.》
아버지의 술잔이 허공에서 굳어졌다.
한참만에 그는 술잔을 입가에 가져갔는데 그답지 않게 술 한잔을 단숨에 내였다.
천천히 저가락을 상앞으로 뻗치며 신영균은 입을 열었다.
《네가 과학을 전공하도록 떠밀어준 아버지로서 아들이 한다하는 연구사가 된 오늘 한가지 아쉬운것이 있었다. 그것은 너에게 고생을 못시켜본것이였다. 사람은 고생을 겪어봐야 진짜사람 구실을 할수 있다. 특히 군대물을 먹어봐야 한다. 그런데…》
진웅은 머리를 수그리고 아버지의 말을 듣고있었다.
《네 나이가 너무 늦지 않았니. 이제 군사복무를 한다는게 헐치 않을거다.》
《아버지, 아버지도 자신의 잘못을 씻기에 늦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저를 오늘 이렇게 박진규선생곁에 세운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일손을 놓지 않고있는것이고…》
《그래, 네 말이 옳다.》
영균은 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진웅이가 떠나올 때 그는 《늦어서 떠난 길은 다우쳐 가야 한다.》라고 한마디 당부를 하였었다.…
다른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진웅이도 여러 겹의 사람들로 둘러싸여있었다. 제일 안쪽 그의 가까이에는 과학원처녀들이 서있었다.
고성기에서는 전시가요가 울리고있었다.
가슴에 끓는 피를 조국에 바치니
영예로운 별빛이 머리우에 빛난다
나가자 인민군대 용감한 전사들아
인민의 조국을 지키자 목숨으로 지키자
이때 역홈지붕을 고이고있는 커다란 원형기둥뒤에서 몸을 숨긴채 이 광경을 바라보고있는 처녀가 있었으니 그는 례영이였다.
발차를 알리는 기관차의 기적소리가 역구내에 길게 울려퍼졌다. 뒤늦게 나와 바래줄 대상을 미처 찾지 못한 사람들이 들고나온 물건을 맞다들리는 아무 군인에게나 서슴없이 쥐여주었다. 례영이도 들고나온것이 있었지만 그것은 아무에게나 쥐여줄것이 못되였다.
기관차의 기적소리가 연거퍼 울리자 례영은 결심하였다.
만나자! 만나서 따뜻한 말로 바래주자. 전선으로 떠나는 군인들을 바래주는거야 누구나의 권리이고 의무가 아닌가. 허나 다음 순간 그는 자기가 그런 권리와 의무조차 잃은 가련한 존재임을 의식하였다.
그의 검고 큰 두눈에 핑하니 눈물이 고였다. 눈물속에 바라보니 진웅이 렬차에 오르려고 하고있었다.
례영은 황급히 인솔자인듯 한 상위의 령장을 단 한 군관에게 자기의 편지를 넘겨주며 이미 렬차에 올라 환송나온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있는 진웅이를 가늘고 흰 손가락으로 가리켜보였다.
인솔군관이 승강대에 올라 그것을 진웅에게 넘겨주는것을 보고난 례영은 비로소 기둥뒤에서 나왔다. 그리고 머리를 짧게 깎고 빨간 령장이 달린 새 군복을 입어서 10년은 더 젊어보이는 진웅의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렬차가 떠나고 사람들도 흩어져간 텅 빈 역홈에 처녀는 오래도록 홀로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