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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은 아이들이 리발기가 뜯는다고 하면서 머리를 깎지 않겠다고 달아빼는바람에 고개너머에서 숙영하는 8련대에 들렸다. 8련대에는 지방혁명조직에서 구입해들인 신품 리발기가 있었던것이다.
거기에서는 리발기란 한사람이 써야지 이사람저사람 손을 걸치면 못쓰게 된다고 하면서 좀처럼 내놓지 않는걸 강민이 사정사정하여 들고왔다. 리발기며 면도칼이며 가위며 하는 리발도구들이 든 광목주머니를 어깨에 걸치고 숙영지에 돌아왔을 때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었다. 웃쪽 골안에서 매캐한 연기내와 법석 떠드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바람결에 실려왔다.
(저기서는 또 무슨 일인가?)
강민은 가슴이 덜컥하여 리발도구를 손에 쥔채 달려가보았다. 거기서는 손탁이 센 주용길이란 소년이 동무들과 같이 불뭉치를 해들고 뛰여다녔다.
《너희들 여기서 무슨 불장난이냐? 엉?》
주용길은 연기때문에 눈물이 질적해진 얼굴을 들고 강민을 바라보았다.
《여기 오소리굴이 있어요.》
《오소리?》
《예, 오소리가 숨는걸 봤습니다.》
《그래?》
정말 둔덕이 진 비탈밑에 시커먼 굴아구리가 보이였다. 지금 주용길은 오소리가 빠질수 있는 뒤길을 막아놓고 굴속에 연기를 불어넣는중이였다. 굴주변에는 몽둥이를 손에 든 아이들이 오소리가 기여나오면 단방에 때려잡을 태세를 하고 서있었다.
《용길아, 오소리를 잡아서는 뭘 하려구 그러나?》
《총기름을 얻을려고 그럽니다. 군수처에 총기름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소리를 잡아서…》
그러니까 총기름을 얻자고 오소리를 잡기로 한 모양이였다. 강민은 아이들의 소행에 감동되였다. 군수처에 총기름이 떨어졌다는것은 강민이도 알고있었다. 그러나 오소리를 잡아서 기름을 쓸 생각은 못했던것이다.
강민은 얼른 군수처에 가서 삽을 가져다가 파헤치기 시작하였다. 주용길이랑은 서로 자기네가 판다고 벗고 나섰지만 강민은 그들에게 삽자루를 내주지 않았다. 그만큼 강민은 내심 그들의 소행을 대견하게 여겼다. 며칠 같이 지내보니 장난이 좀 세찬데가 있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참 돼먹었다고 할만큼 극성스럽기가 보통이 아니였다. 태반이 어려서부터 고생을 하며 세상사에 틔워나서 그런지 물계가 밝고 영특할뿐아니라 빨랑거리고 돌아가면서 무슨 일에서건 오륙을 아끼려 하지 않았다.
지금 역시 부대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자고 이 역사같은데 오소리를 잡기만 하면 횡재다. 오소리기름은 총기름 대용으로만 쓰는것이 아니라 겨울에 손이 트거나 덴 상처에 바르는 귀한 약재이기도 하다.
정작 파보자고 손을 붙이니 오소리굴은 깊기도 하였다.
강민이 여러 소년들과 같이 교대를 해가며 한시간 가까이 공사를 해서야 삽날이 오소리 한쌍이 웅크리고있는 끝방에 가닿았다. 그만 더 배겨낼수 없게 되자 살이 피둥피둥 진 오소리 두마리가 굴아구리밖으로 갑자기 뛰쳐나왔다. 그놈들은 연기를 먹었는지 비칠거리면서도 순순히 잡히지 않고 강민의 다리사이로 빠져서 뺑소니를 쳐보려고 했다. 그러나 본시 냄새는 잘 맡지만 잘 보지 못하는 오소리여서 얼마 빼지 못하고 아이들의 손에 잡히고말았다.
《야, 잡았다!》
아이들이 환성을 올렸다.
강민이가 아이들과 같이 오소리 두마리를 산채로 둘러메고 군수처에 나타나서 사연을 말하자 로상권은 입을 벌쭉거리며 좋아했다.
《녀석들이 참 기특한걸…》
사방에서 유격대원들이 오소리를 구경하러 와서는 아이들의 소행을 듣고 생각이 엉뚱하다고 기쁨에 넘쳐 칭찬을 하였다.
로상권은 오소리기름을 내서 경위중대에도 보내고 련대에도 조금씩 내려보냈다.
강민이가 성수난 로상권이와 헤여져 천막으로 와서 잠자리에 들었을 때는 밤이 퍽 깊었다.
자정이 지난지도 오래고 어린것들의 시달림을 받고난 피곤으로 치면 진작 깊은 잠에 들만도 했으나 마음이 뒤숭숭하다보니 어지러운 꿈만 달라붙었다. 밤이면 고요하던 숙영지도 오늘따라 이상하게 설레이는듯 한 감촉이 들었다. 분명 사람들이 급히 오가는 발자국소리와 어둠속에서 서로 나직이 불러대는 소리가 들려오는것 같은데 한 절반 잠에 취한 상태이다보니 생시같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씨원히 나가서 알아보고싶어도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종일 돌아친 피곤과 잠자리에 눕기만 하면 떠오르군 하는 잡생각으로 녹초가 되여버린것이였다.
밖에서는 좀전과 다름없이 그냥 술렁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번에는 천막가까이에서 인기척이 났다. 이어 누군지 천막문을 반쯤 들었다가 조심히 도로 놓았다.
이 밤중에 누가 왔을가?
강민은 비로소 정신이 펄쩍 들어 몸을 일으키며 출입문쪽을 내다보았다. 또다시 천막문을 들었다 도로 놓는다. 그러더니 아무일 없었던것처럼 이내 조용해졌다. 천막에서 자박자박 멀어져가는 녀자의 발자국소리가 대신 들려왔을뿐이였다. 귀에 익은 소리이다. 강민은 발자국소리 임자가 송순이라는것을 곧 알아차렸다.
그는 급히 천막문을 나서며 처녀를 멈춰세웠다.
《송순동무, 어떻게 왔소?》
어둠속에서도 송순의 돌아서는 모습은 또렷이 알리였다.
《강민동무, 저도 방금 봉석동무가 깨워서 알았는데 인수가 없어졌대요. 그래서 지금 장군님께서 찾고계셔요.》
《그럼 진작 깨웠어야지, 왜 왔다가 도루 가오.》
송순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였다.
강민은 말 못하는 송순이를 보자 그가 자기를 생각해서 뛰여왔다가 깨우지 못하고 그냥 돌아섰다는것을 알아차렸다.
마음속으로 송순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그때 천막에서 얼마간 떨어진 숲속에서는 아닌게아니라 번뜩이는 전지불이 보였다.
강민은 가슴이 옥죄여드는것을 느끼며 급히 달려갔다. 뒤에서 숨가쁘게 따라오는 송순이도 미처 돌아볼새가 없었다.
나무밑둥에 동그란 불그림자를 비쳐가며 주위를 살피던 장군님께서 발자국소리를 듣고 허리를 펴시였다.
《아니, 동무들은 왜 나왔소?》
《사령관동지, 죄송합니다. 인젠 저희들이 찾겠습니다.》
장군님께서 민망하여 어쩔바를 모르고 고개를 숙이고 선 강민을 보고 안심시키듯 빙긋이 웃으시였다.
《그럼 나왔던김에 함께 찾아보자구. 이쪽에 붙으시오. 저 웃켠은 방금 훑었소.》
장군님께서는 잠든 숙영지의 정적을 깨칠가봐 저어하듯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그러고는 다시 인수가 있음직한 곳을 찾아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엉겅퀴와 새초가 성한 수풀속도 살펴보고 등나무와 칡넌출이 얽힌 덩굴속도 들여다보시였다. 웅뎅이에 쌓인 잎사귀무지도 손수 헤쳐보시였다. 가시가 있는 덤불에 군복자락을 긁히우며 사람이 붙을만 한곳은 빠짐없이 찾아보시였다.
어둠은 대원들이 곤히 잠든 천막들을 포근히 감싸주고 정적이 깃든 숙영지주위로는 따스한 입김과도 같이 포근하게 스며들던 안개의 장막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차거운 이슬로 변하여 내려앉았다. 그러자 우중충한 숲은 소리없이 내리는 이슬에 함초롬히 젖어들기 시작하였다.
강민은 장군님 가까이에서 두시간나마 숲속을 샅샅이 뒤졌으나 인수는 종내 나타나지 않았다. 송구스럽고 미안하여 견딜수가 없었다. 눈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종아리를 쳐서 당장 쫓아버리고싶은 이 애군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민이 번거로운 생각을 좇는데 지척에서 봉석의 숨죽인 말소리가 들려왔다.
《장군님, 인수가 숙영지안에 없는게 아닙니까?》
《그건 무슨 소리냐?》
《집에 도루 가지 않았을가요? 어머니랑 있다는데… 와보고 유격대생활이 자신없으니까 겁나서 뺀것 같습니다.》
《빼다니? 제발로 찾아온 애가 졸장부같이 말도 없이 가겠느냐. 함부로 동무를 의심해서는 못쓴다.》
《그럼 이애가 어딜 갔을가요? 에이참, 아직 아이는 아이입니다. 저녁에 내가 좋지 않은 소릴 몇마디 했더니 혹 그게 내려가지 않아서 이러는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 이야긴 나도 들었다. 봉석이가 큰소릴 쳤다면서? 얘, 그렇게 떡떡거리지 않고는 안되겠느냐? 이제부터는 좀 부드럽게 대해주라구.》
《그런데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을 어루만질수는 없지 않습니까.》
《글쎄 비판이야 해야지. 하지만 주눅이 들게 너무 윽박지르진 말라구. 그애들은 봉석이와는 사정이 다르거든. 봉석이야 혁명을 많이 하지 않았나.》
봉석은 장군님의 말씀을 명심하겠다고 대답하였다. 유격대에 입대한지 얼마 안되는 자기에게 혁명을 많이 하였다고 말씀하실 때 그는 여간만 흐뭇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장군님의 말씀속에 인제는 총을 멘 유격대원답게 신중히 점잖게 처신하며 그들을 잘 이끌어주고 도와주라는 깨우침이 담겨있음을 새겨들었던것이다.
강민이와 송순은 밤중에 장군님께 수고를 끼쳐드리는 일이 더없이 송구스러워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갈라져 온 산판을 뒤졌으나 인수의 종적은 묘연하였다.
(이 맹추같은 녀석이 정말 숙영지를 뜬게 아닌가?)
강민은 장군님옆으로 다가서서 말씀드렸다.
《장군님, 아무래도 사람들을 더 깨워야 할가봅니다.》
장군님께서는 강민이가 대원들이 잠자는 천막쪽으로 달려가려는것을 보고 손을 저으며 만류하시였다.
《강민동무, 떠들지 마오. 무슨 큰일이 났다고 단잠을 자는 사람들까지 깨우겠소.》
《장군님, 이러다간 인수가 다른데 가있기라도 하면 문제가 아닙니까?》
《원, 무슨 그런 생각을 다 하오? 있겠지. 그애가 어딜 갔겠소? 저녁에 있은 일로 어린게 마음이 언짢아 뛰쳐난것 같은데 이 캄캄한 밤에 혼자 풀숲에서 자자니 지금쯤은 동무들이 그립고 서럽기도 할거요. 괜한 일을 가지고 소문내지 말고 조용히 찾아보자구. 조용히.》
말썽을 부리는 인수의 허물까지도 자신의 수고로 감싸주고싶어하시는 장군님의 심정이 헤아려지자 강민은 그만 목이 메여 더 말씀을 올리지 못하였다.
수림속은 아직 정적에 묻혀 고요하였으나 동녘하늘에 희미한 빛이 비끼기 시작하자 광막한 밀림은 차츰 바래져가는 별빛아래 검푸른 륜곽을 드러내고있었다.
밤사이 내린 이슬에 풀밭은 뿌유스름한 젖빛을 띠고 찬 이슬을 머금은 나무잎사귀에서는 선뜩한 감촉이 느껴졌다. 무성한 풀대와 나무아지를 헤칠적마다 비방울처럼 후두둑 떨어지는 찬 이슬이 장군님의 신발이며 군복자락을 화락하게 적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당초 그런것은 느끼지조차 못하시는듯 허리를 구부리고 길길이 자란 새초밭과 떡갈나무숲을 가로질러 바위틈이며 진대통, 사람이 들어가 누울만 한 곳이면 가리지 않고 죄다 살펴보다가 마침내는 애가 나서 나직이 불러보기까지 하시였다.
《인수야- 얘, 인수야-》
조용히 울리는 메아리가 수림속의 눅눅한 대기를 가르며 가슴에 흘러들 때 강민은 어디에 있는지 알수 없는 인수를 향하여 장군님 속을 그만 태우고 이제는 제발 좀 나와달라고 빌고싶은 심정을 어쩔수 없었다.
(좀 있으면 날이 밝겠는데 밤을 꼬박 새우시려나?)
강민은 속이 바작바작 타서 저도모르게 한숨을 지었다. 자기가 마저 찾아볼테니 이제는 들어가보시라고 장군님께 말씀드리고싶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말씀드린다 해도 장군님께서 들어주실것 같지도 않았다. 아직도 눈길이 미치지 못한 구석은 한두곳이 아니였다.
어느덧 불빛없이도 주위를 가려볼만큼 동녘이 푸름히 밝아오는 무렵 누군가 이슬을 차며 강민이옆으로 다가왔다.
《강민동무, 사령관동지께서 어디 계시오?》
강민은 숨소리 높은 챙챙한 목소리만 듣고도 사령부전달장이라는것을 알았다.
《왜 그러오?》
《2사에서 련락원이 도착했는데.》
《그렇소? 무슨 일로 그렇게 밤길을 왔다오?》
강민이 대답을 기다릴 사이없이 장군님께로 뛰여가려고 할 때 그이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지척에서 울렸다.
《련락원이 왔단 말이지.》
전달장이 장군님앞으로 달려갔다. 그는 이슬에 함뿍 젖은 그이의 군복을 눈이 둥그래서 바라보며 서둘러 말씀드렸다.
《사령관동지께 급히 보고드리고 결론받을 문제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 강민동무, 수고스럽지만 대원들이 깨여나기전에 동무네끼리 좀더 찾아봐주오.》
장군님께서 발길을 돌리기 아쉬워하며 전달장을 앞세우고 사령부천막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얼마 안있어 송순이도 식사준비때문에 작식터로 가고 강민은 봉석이와 둘이서 숙영지 변두리를 또 한식경이나 착실히 찾아보았다. 어디에 배겼는지 암만 찾아봐도 인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마침내 둘다 기운이 진해빠져 이슬이 깔린 풀밭에 주저앉았다. 더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자 오늘도 부지런한 로상권이가 산중턱을 가로질러 도끼를 차고 올라왔다. 휘파람을 슬슬 불며 거뜬한 기분으로 올라오는품이 숙영지에서 밤사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른채 실컷 자고 일어난것 같았다. 로상권은 온몸이 휘줄근해져서 금방 다투기라도 한듯이 등지고앉은 두사람을 보더니 입을 딱 벌리고 눈을 꿈벅거렸다.
《아, 이게 웬일입니까?》
강민은 떫은 개살구를 씹은 얼굴로 입맛을 쓰겁게 다시며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로상권은 영문을 알수 없어 고개를 기웃거리며 잠시 강민이와 봉석의 모습을 번갈아보더니 말벌한테 쏘인 뒤덜미를 새삼스럽게 다시 만져보면서 저만치 떨어져있는 진대통으로 스적스적 다가갔다. 화는 당했지만 소년들의 작식터에 땔나무를 해다줄 생각으로 이미 보아둔 진대통을 찾아나온 길이였다.
길에 누워있던 진대통은 굵기가 둬아름 실히 되여 어지간히 쳐서는 도끼날을 순하게 받을것 같지 않았다. 로상권은 허리춤에서 도끼를 뽑아들고 어디를 쳐야 할지 결을 보듯이 궁글은 진대통을 텅텅 울려보다가 물푸레자루에 손힘을 주며 쩡 도끼날을 내리박았다.
그런데 이때 괴이한 일이 생겼다. 시퍼런 도끼날이 쩡쩡 진대통에 떨어지자 그안에서 난데없이 째지는듯 한 웨침소리가 터져나왔다.
《사람 죽는다!-》
로상권은 처음에 비명소리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고 화뜰 놀라며 두리번거렸다. 흥심없이 앉아있던 강민이가 짚이는것이 있어 정신을 번쩍 차리고 봉석이와 같이 달려갔다. 그들은 서로 목을 빼여들고 궁글은 진대통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니나다를가, 인수가 그안에 박혀있는데 컴컴해서 얼굴형체는 보이지 않고 반짝반짝하는 눈만 보였다.
죽을것 같으면 나올것이지 한마디 소리만 지르고는 떡심좋게 드러누워 버티는것을 본 강민은 기가 막혀 몸을 뒤로 제끼며 허허 하고 웃었다. 애를 태우며 장밤 찾을 때 같아서는 눈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다리를 분질러놓을것 같았으나 너무도 어이가 없어 욕도 나가지 않았다.
로상권이가 허리를 굽히고 진대통안을 살폈다. 그는 고양이눈처럼 어둠속에서 반짝거리는 눈을 보더니 무릎을 잡고 주저앉으며 웃었다.
《소대장동무, 한턱 내시오. 소대장동무가 온밤 못찾은걸 내가 찾지 않았소. 미꾸라지같은 녀석이 내 손에 걸려들었단 말이요.》
진대통안에서 《헝, 걸려?》 하고 코방귀 뀌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다.
로상권이 《아니 저런, 저런》 하며 혀를 차는데 강민은 진대통에 대고 호령을 내렸다.
《당장 나오지 못할가!》
인수는 들었는지 먹었는지 셈평좋은 곰처럼 진대안에 드러누운채 움쩍도 하지 않았다.
원체 간밤부터 심사가 꿰여진 인수였다. 뺨을 맞고 동무들한테 몰린 일만 해도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인데 봉석은 기어이 비판을 해야겠는지 밤중으로 자기한테 꼭 와야 한다고 을러메였다. 인수는 자기가 코꿰인 송아지가 아니라는것을 보여주고싶었다. 그렇다고 가지 않으면 천막에 찾아와 성가시게 굴것 같아 취침구령이 울리자 아예 천막에서 빠져나와 저수리밑둥에 기댄체 쪽잠을 잤다. 그러다가 새벽무렵 펀뜻 인기척을 느끼고 자리를 옮긴 곳이 궁글은 이 진대통이다. 진대안에 들어가 틈사리로 내다보니 인기척을 내신분은 장군님이시였다.
인수는 풀숲을 헤치시며 자기를 부르시는 장군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어디로 가시는지 장군님은 보이지 않고 자기를 조용히 부르시는 그이의 목소리만 가슴을 흔들며 들려올 때 인수는 몇번이고 뛰여나가 그이앞에 잘못을 빌고싶었다. 그러나 나가지 못하였다. 밖에 다른 사람들, 강민이와 봉석이가 가까이 있기때문이였다. 인수한테는 이 두사람이 다 대하기 말짼 사람이였다. 강민은 엄하게 굴며 친절하지 못하고 봉석은 재세를 부리며 못살게 굴었다. 며칠 지내보니 그저 제일 대하기 쉽고 어렵지 않은분이 장군님이시였다. 밖에 장군님 혼자 계시면 주저없이 벌써 나갔을테지만 이 두사람이 있는데 나타나서는 무사치 못할것 같았다. 그래 여태껏 배겨있다가 난데없이 도끼날이 진대통에 떨어지는바람에 펄쩍 놀라 바쁜 소리를 친것이였다. 인제는 하는수없이 나가야 했지만 불호령이 떨어질것을 생각하니 진대안에서 나가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순순히 나올 잡도리가 아닌걸 본 봉석이가 진대통안이 울리게 손나팔까지 해대고 소리쳤다.
《너 이렇게 정말 찔통부리겠니? 당장 나오지 못하겠니?》
그래도 진대통안에서는 감감 기척이 없다.
안되겠다는듯 로상권이 눈을 한번 끔뻑하더니 시치미를 떼고 일부러 쩡쩡 소리가 나게 도끼날을 진대통에 다시 먹였다. 인수는 금시 시퍼런 도끼날이 이마빡으로 날아드는것 같았지만 한번 안에 사람이 있다고 알린 이상 아무려문 제가 사람상하게 도끼날을 박을텐가 하는 뜬뜬한 배심으로 찍소리 안하고 누워있었다.
기상하자마자 작식터로 가서 가마밑에 불을 넣어주던 관식이가 송순의 귀띔을 받고 이쪽으로 올라오다가 이 광경을 목격했다. 그는 대뜸 영문을 알아차리고 어른들을 보이는대로 전부 불러왔다.
《아저씨들, 이안에 곰새끼가 들어가있어요.》
《뭐? 아침부터 이게 웬 횡재냐?》
곰이 있다는 소리에 금방 일어나서 밖에 나와있던 대원들이 웅성거리며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소년들한테도 어느새 소문이 갔는지 법석 떠들며 전부 뛰여왔다. 장군님께서 온밤 주무시지도 못하고 인수를 찾으시였다는 말을 듣고 사연을 알게 된 소년들은 나가는대로 한마디씩 욕을 하였다.
《이 망종아!》
《나오너라, 되지 못한 후레자식아!》
《안나오면 벼랑밑에 굴러버릴테다!》
저마끔 한마디씩 소리치는데도 안에서는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여럿이 달려들어 아예 진대통을 통채로 둘러메고 달려갔다. 사정없이 벼랑밑으로 진짜 굴러뜨릴 기세로 발을 맞추며 달려갔다.
《얘들아, 거기 좀 섰거라.》
문득 우렁우렁한 장군님의 목소리가 멀지 않은 옆에서 들려왔다. 그이께서는 숙영지가 갑자기 술렁거리는것을 보고 인수가 나타난것 같아 이리로 올라오시던 걸음이였다.
웅성거리던 대원들은 떠들지 말라고 쉬쉬- 하며 당황하여 장군님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숙영지에서 처음보는 사건을 장군님께 보여드리기 거북스러워하는것 같았다.
장군님께서는 가까이로 다가와 소년들이 둘러메고있는 진대통안을 들여다보시더니 허리를 젖히며 큰소리로 껄껄 웃으시였다.
이어 안도의 숨을 쉬시는 그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기쁨이 실렸다.
《녀석이, 여기에 들어가있는걸… 얘 인수야, 이젠 그만하고 나와보지 않겠느냐?》
진대통안에서는 이때야 처음 한마디 온전한 대답이 나왔다.
《예, 나가겠습니다. 그런데 장군님, 이 진대통을 좀 내려놓게 해주십시오.》
《그야 물론.》
장군님께서 손짓을 하시자 소년들은 어쩔수없이 진대통을 땅에 도로 내려놓았다.
그러나 인수는 선뜻 진대통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요구대로 땅에 내려놓았으니 어서 나오라고 여러 대원들이 목을 빼여들고 진대통안을 들여다보았다. 인수는 반짝반짝하는 눈알을 어둠속에 굴리며 앞을 내다보기만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인수가 부끄러워 그런다는것을 알고 모두들 물러가라고 눈짓을 해보이시였다.
인수는 웅성거리던 주위가 조용해진 다음에야 엉금엉금 진대통안에서 기여나왔다. 그는 밖으로 나오자 넉살좋게 이마에 손채양을 해대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희떠운 모양을 보다 못해 덤불뒤에 봉석이와 같이 숨어있던 강민이가 뛰여나왔다. 그는 장군님을 온밤 애태워드리고도 이마에 손채양까지 해대고 멋을 내는 인수의 행동을 용서할수가 없었다.
《가자!-》
강민은 다가서자마자 인수의 손목을 꽉 틀어잡았다. 장군님께서 슬그머니 강민의 팔소매를 잡으며 봉석이를 향해 이르시였다.
《봉석동무. 인수를 데리고 먼저 내려가오.》
《알겠습니다.》
봉석이가 눈총을 인수쪽에 쏘며 말없이 턱짓을 하였다. 걸으라는 소리였다. 인수는 순하지 못한 눈길로 봉석을 치떠보고 군말없이 앞서 걸었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장군님께서 잡고있던 강민의 팔소매를 놓아주며 웃으시였다.
《강민동무, 왜 그리 성이 났소? 혹시 저애를 닦아세우자는게 아니요?》
강민은 황송하여 무엇이라고 눈길을 들어 말씀올릴수가 없었다. 간밤 일을 두고 인수한테 꾸중이나 하는것으로, 자기가 장군님앞에 몇마디 사과의 말씀이나 올리는것으로 그칠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말 못하는 강민의 심정을 헤아리고 그의 넓은 어깨에 손을 얹으시였다.
《강민동무, 물론 처음부터 신발은 바로 신겨야지. 인수가 잘못한 점은 원칙적으로 깨우쳐주어야 하오. 그렇지만 방법은 좀 생각해보자구. 그애들이야 아직 그럴수 있는 나이가 아니요? 더구나 사령부에 왔다구 우릴 믿구 응석이 생겨 그러는데 그걸 우리가 받아주지 않으면 누가 받아주겠소. 동무가 언성을 높이면 그애들을 데려오게 한 내 마음인들 뭐 그리 좋겠소. 날 봐서두 좀 참소.》
강민은 그만 눈굽이 젖어드는것을 느끼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씀드렸다.
《장군님,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절 다시 경위중대로 소환해주십시오. 전 아무래도 저애들을 맡아낼것 같지 못합니다.》
그것은 강민의 솔직한 심정이였다. 가뜩이나 복잡한 심정으로 새 임무를 접수한 그는 이 며칠사이, 특히 어제저녁과 간밤에 있은 일을 두고 생각하면 도저히 마음을 놓을수가 없었다. 벌써부터 이렇게 소동을 일으켜 숙영지를 들었다놓고 장군님께서 온밤 찾아다니시게 하는데 앞으로는 이애들이 그이께 또 어떤 걱정을 끼쳐드릴지 그것은 생각만 해도 겁이 났다.
《자신이 없단 말이지?… 각오가 부족한걸 보니 강민동문 아직 자기가 어떤 일을 맡았는지 잘 모르는것 같소. 들려오는 말이 무슨 뜬소린가 했더니 그랬음직도 하단 말이요. 강민동문 이번에 새 임무를 받고나서 그것을 책벌로 여기면서 부끄럽게 생각했다면서?》
장군님께서 그게 사실인가고 강민을 쳐다보셨다.
강민은 잠자코 대답이 없었다.
《말 좀 해보우. 도대체 누가 동무에게 책벌을 준다고 했소? 생각하는 본새를 보니 동무에게는 진짜 책벌을 주어야 할것 같애, 응. 저애들이 어떤 애들이요? 저애들가운데는 준오와 같이 우리와 함께 혁명을 하다가 희생된 전우들의 자식도 있고 인수와 같이 원쑤놈들 손에 아버지나 형님을 잃은 아이들도 있고 덕만이와 같이 어려서부터 고생을 하며 자란 불쌍한 고아들도 있소. 태반이 다 그런 아이들이요. 이 사실을 놓고 동무는 생각되는게 없소? 그런 아이들이 거리로 나가 밥을 빌어먹지 않고 우릴 찾아왔다는게 얼마나 좋은 일이요. 이것은 우리 혁명이 뿌린 씨앗이 그 어린 넋들속에도 뿌리를 내리며 움트고있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 아니겠소. 움트는 싹은 사나운 바람을 막아줄수 있는 든든한 보호자가 있어야 하오. 그래서 어느모로 보나 그애들을 잘 돌봐줄수 있는 동무의 방조를 받자고 중한 책임을 맡겼는데 그걸 책벌로 여기면서 부끄럽게 생각해서야 되겠소? 동무도 어려서 고아가 되여 부모없는 설음속에 외롭게 자란 사람이 아니요.》
강민은 장군님의 절절한 음성이 가슴속에 스며들어 눈굽이 달아오르는것을 느끼며 고개를 숙이였다. 그는 장군님의 말씀속에 깃든 뜻을 깊이 새겨보지는 못했지만 그이의 따뜻한 은정이 가슴속에 굽이치며 흘러 괴롭던 그 모든 일들이 일순간에 사라지는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