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포조직들의 방조와 련대속에

 

아쏘크가 결성되여 일정하게 성과도 있었지만 동포사업경험이 없다나니 이러저러한 편향들도 나타나고있었습니다. 적지 않은 일군들이 사회단체를 책임지고 사업해본 경험마저 없었던데로부터 해당 나라의 변화되는 정세와 활동조건에 맞게 동포조직활동과 동포대중과의 사업을 능숙하게 조직진행하지 못하고있었습니다.

아쏘크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많은 연구와 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그 과정에 다른 나라와 지역에 있는 동포조직들의 활동에 주목을 돌리게 되였습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와 지역의 조선동포들이 살고있는 곳마다에는 여러 형태의 동포조직과 단체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해외동포조직들은 주재국의 사회정치적조건과 환경, 구체적실정이 다르고 해외동포들의 구성과 의식상태가 각이한것으로 하여 그 형태와 양상 또한 각이합니다. 그것은 그만큼 동포들과의 사업에서 자기식의 경험을 가지고있다는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혈통이 같은 한동포들을 대상으로 하고있다는것과 적지 않은 동포조직들이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투쟁하는것을 자기 단체의 활동목적의 하나로 하고있다는 공통성도 있습니다.

아쏘크는 세계 여러 지역과 나라들에 있는 동포단체들과 조선통일을 위해 서로의 련대와 행동의 통일을 실현해나가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의 사업경험을 따라배우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였습니다.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총련)와의 련계를 강화해나간 과정이 그 한 실례로 됩니다.

동포일군들이 총련의 활동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것은 1990년 8월에 평양에서 진행한 범민족대회때부터였습니다.

당시 범민족대회에는 세계의 여러 지역과 나라들에서 온 해외동포들도 많이 참가하였는데 그들의 활동중에서 가장 주목을 끈것이 총련이였습니다. 총련은 범민족대회에 자기 산하의 여러 단체들을 망라한 규모가 큰 대표단을 구성하여 참가하였고 행사 전기간 강한 조직성과 규률성, 단결력을 시위하며 해외측 활동을 주도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사람들이 언행이 겸손하고 정신도덕적수양정도가 높은 수준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아쏘크의 발전과 활동에 대하여 고심하고있던 동포일군들의 눈길을 끌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아쏘크일군들은 총련의 일군들을 만나보는 한편 고국의 관계부문 일군들을 만나 총련의 실태에 대한 료해를 진행하였습니다. 그 과정에 총련이 수십년의 활동력사와 각계각층의 동포들을 망라하고 일본 각지에 정연한 조직체계를 갖춘 강력한 해외동포단체라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아쏘크일군들은 총련의 활동경험을 현지에서 직접 료해할것을 결심하고 이 문제를 상정시켰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아쏘크에서는 총련의 일군들과 여러번 접촉하면서 총련방문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991년 11월 아쏘크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3명의 일군들을 망라한 아쏘크대표단이 일본을 방문하였습니다.

현지에서 목격한 총련의 성과는 말로 듣고 예상했던것보다 몇곱절 더 놀랍고 경이적인것이였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실물을 통하여 인식하는것은 백마디의 말보다 더 설득력이 있는 법입니다.

총련에 대한 참관을 진행한 후 아쏘크에서는 총련의 경험을 아쏘크활동에 구현해나가는 한편 모든 일군들이 총련의 성과와 경험을 직접 보고 느끼도록 하기 위하여 그에 따르는 조직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1992년 10월 이전 쏘련지역의 8개 가맹공화국의 14개 주, 5개 시의 아쏘크위원장들을 비롯하여 81명의 아쏘크간부들을 망라한 큰 규모의 아쏘크대표단이 일본을 방문하였습니다. 아쏘크사무국장이였던 저는 그때 대표단의 부단장으로 동행하였습니다.
방문전에 방문준비의 일환으로 재일동포들에게 맛이라도 보이자는 소박한 심정으로 여러종의 중앙아시아산 과일들을 준비하였습니다.

중앙아시아지역은 건조하고 무더운 일기조건이 년중 많은 기간 지속되는것으로 하여 다른 지역보다 과일이 특별히 잘되고 맛도 괜찮습니다. 특히 포도나 참외는 다른 지역의것과는 특이한 형태와 맛을 가지고있습니다. 듸냐에라고 하는 참외는 수박만큼 큰데 맛은 다른 지역에서 자라는 참외와 다를바 없이 달고 시원합니다.

선생에게 배우러 가는 제자의 심정으로 말하면 너무도 소박하고 보잘것없는것이기는 해도 재일동포들에게 색다른 과일을 맛보인다는 생각으로 자신들을 위안하며 려행과정에 정성껏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일로 하여 예상치 않던 일이 생겼습니다.

대표단이 비행장에 내려 짐에 대한 세관검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있을 때 참외로 하여 생각지 않던 말썽이 생겼습니다.

비행장세관경찰이 하는 말이 과일품명이 참외라는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것입니다. 물동이만 한 참외를 생전 처음 보니 그럴만도 한 일이였습니다. 아마 무슨 폭탄이라도 되는가 한것 같습니다. 그래서 옳다거니 아니라거니 하면서 한동안 싱갱이가 일어나고 나중에는 세관들이 물건 전량을 회수하겠다는것이였습니다.

그 광경을 보니 밸이 울컥 났습니다.

(저런 얼뜨기들이라구야. 참외도 분간 못하는것들이 무슨 세관이야.)

세관에게로 다가간 저는 손칼을 꺼내들고 누가 어쩔 사이도 없이 참외를 절반 갈랐습니다. 그리고는 경찰에게 그것을 보이며 《이보시오, 세관나으리. 따슈껜뜨참외맛이 어떤가 보라구.》라고 소리쳤습니다. 얼결에 참외를 받아들고 그 맛을 본 세관경찰은 너무도 놀라 한동안 어리둥절해있다가 《정말 참외로군, 이렇게 큰 참외도 있소?!》 하며 외마디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짐은 더 보지도 않고 모두 통과시켰습니다.

자칫하다가는 과일을 모두 떼울것만 같아 가슴을 조이던 대표단성원들은 그것을 다시 찾게 된 기쁨에 참외 하나를 세관에게 기념으로 주었습니다. 그는 희귀한 참외를 받아안고 고마운지 일행의 짐운반을 도와나서기까지 하였습니다.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오늘도 이따금 참외를 보면 그때의 광경과 총련방문의 인상이 떠오르군 합니다.

비행장에서 대표단은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서만술부의장(당시)의 따뜻한 마중을 받았습니다.

대표단의 일본방문을 축하하여 총련에서는 따뜻한 동포애의 정으로 성대한 환영연회를 마련하고 우리들의 방문성과를 기원하였습니다.

일본에 체류하는 한주일동안 총련의 일군들과 동포들은 거의 100명에 달하는 대표단의 체류에 필요한 모든 물질적부담을 스스로 도맡아 동포애의 정으로 우리를 따뜻이 보살펴주었습니다.

총련의 한덕수의장(당시)은 년로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총련중앙청사를 찾은 아쏘크일군들을 문밖까지 나와 친절하게 맞이해주고 사업경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려주었습니다.

서만술부의장은 우리의 체류기간 늘 대표단과 동행하면서 참관에 필요한 모든 편의를 보장해주고 동포사업경험에 대하여 사심없는 조언을 주었습니다.

조선대학교, 조선신보사 등 이르는 곳마다에서 재일동포들은 모두가 떨쳐나와 우리를 열렬히 환영해주고 자기들의 사업성과와 경험에 대하여 알려주었습니다.

총련동포들의 뜨거운 정성과 환대를 받으며 저희들은 실로 많은것을 목격하고 배우게 되였습니다.

무엇보다 총련의 규모가 상상외로 큰데 대하여 놀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총련은 일본 각지에 중앙으로부터 분회에 이르기까지 정연한 조직체계를 갖추고있었습니다. 사상과 정견, 신앙, 직업, 재산, 지식정도, 과거의 경력을 불문하고 총련의 강령과 규약을 승인하는 각계각층 동포들이 여기에 망라되여있었습니다.

총련산하에는 재일본조선인상공련합회, 재일본조선청년동맹, 재일본조선민주녀성동맹, 재일본조선청년상공회, 재일본조선인교직원동맹, 재일본조선인교육회, 조선신보사, 조선통신사, 구월서방, 금강산가극단, 재일본조선인의학협회,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 조선총련중앙학원, 동포결혼상담중앙쎈터, 동포취직정보쎈터를 비롯하여 동포들의 민족적권리와 리익을 옹호하고 실현하는데 기여하는 단일단체와 사업체들이 그쯘히 조직되여있었습니다.

또한 총련은 일본의 립지조건에 맞게 11개 지구에 유치원으로부터 초급학교, 중급학교, 고급학교, 대학에 이르기까지 정연한 교육망을 꾸려놓고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을 실시하고있었습니다.

총련은 세계 여러 나라 인민들과의 친선, 련대사업도 활발히 벌리고있었습니다. 총련이 가입한 국제기구 및 단체는 세계민주청년련맹, 국제민주녀성련맹, 국제상업일군직업동맹, 세계과학자련맹, 국제민주법률가협회, 국제학생련맹, 아시아학생협회, 아시아불교도회의, 아시아불교도평화회의 등 9개나 되였습니다.

총련의 규모를 료해하면서 우리는 하나의 국가를 보는듯한감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강력한 조직적토대에 의거하여 총련은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쟁취하고 조선의 통일을 위한 활동을 활발히 벌려나가고있었습니다.

총련은 중앙에서 분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동포들에게 애국애족의 사상을 심어주어 한마음한뜻으로 뭉쳐나가도록 하고있었습니다.

그리고 민족교육과 민족문화, 민족풍습을 활짝 꽃피우고 금강산가극단과 재일조선학생소년예술단의 공연을 통하여 재일동포들은 물론 일본인민들속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민족의 슬기와 기개를 떨치고 민족성을 고수해나가고있었습니다.

매 지부마다 꾸려진 동포생활상담쎈터를 통하여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권을 비롯하여 인권, 생활권, 기업권 등 동포들의 제반 권리를 지켜주며 동포들의 고민과 걸린 문제를 진심으로 풀어주고있었습니다.

또한 민족적단합의 구호를 높이 들고 미조직동포들과 민단계동포들도 포함한 각계각층 동포들을 조선통일을 위한 투쟁에로 불러일으키고있었습니다.

이상의 총련활동정형을 료해하면서 아쏘크일군들은 조직의 활동에서 견지하여야 할 원칙적이며 방도적인 문제들에 대한 리해를 깊이하게 되였습니다.

아쏘크일군들은 총련에서 산하조직과 계층별, 직업별단체를 내오는 문제, 조직의 지도핵심을 꾸리는 문제, 동포들에 대한 선전계몽사업 등 조직을 강화해나가는데서 나서는 방도적문제들에 대한 경험들도 적지 않게 체득하였습니다.

총련은 우리 동포조직들의 본보기일뿐아니라 세계해외동포운동의 본보기로서 나무랄데 없는 조직이였습니다.

현실적으로 많은 나라 사람들이 한결같이 《모든 해외동포조직의 귀감》이라고 찬탄하고있었습니다. 전 모잠비끄대통령 마셀은 《총련이 참으로 훌륭하다. 모잠비끄사람들도 다른 나라에 많이 나가 사는데 그들도 총련과 같은 조직을 뭇고 단결하여 자기 조국을 위하여 투쟁하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하였고 전 유고슬라비아대통령 찌또는 《유고슬라비아도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 해외동포들을 많이 가지고있지만 그들이 조직을 결성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총련을 부러워하였다고 합니다.

총련에 대한 참관을 진행하면서 동포일군들은 하나의 공통적인 의문을 품게 되였습니다.

다른 민족에 대한 배타와 질시가 지독한것이 일본이라는 나라입니다. 오죽했으면 외국의 한 정치인까지도 일본의 이러한 사회풍조를 가리켜 타민족을 동화시키는 《독바람》이라고 비유했겠습니까.

그러한 일본땅에서 어떻게 강력한 해외공민조직이 존재하고 그 성원들이 조선사람으로서의 긍지를 안고 당당히 살고있는가?

이것이 참관자들 누구나가 가지게 된 의문점이였습니다.

참관과 담화를 심화시키는 과정에 우리들은 재일동포들속에 세심하게 미쳐있는 민족의 어버이, 조국의 따뜻한 손길에 대하여 가슴뜨겁게 느끼게 되였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한덕수의장과의 담화과정에도 깊이 새겨안게 되였습니다.

체류일정이 끝나갈무렵 대표단의 일부 성원들이 한덕수의장을 또다시 만나게 되였습니다.

한덕수의장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며 일본에 와보니 감상이 어떤가고 물어보았습니다.

이때 제가 그에게 우리는 일본을 본것이 아니라 총련을 보았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럼 일본을 보여주겠다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는것이였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우리모두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안에 거대한 해외동포조직을 꾸려놓고 조선민족의 존엄을 당당하게 떨쳐가는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이 한껏 차넘치는 순간이였습니다.

한동안 지나 한덕수의장은 지금은 이렇게 모든것이 그쯘하고 일이 잘되고있지만 처음 일을 시작할 때에는 정말 힘겨웠다고 하면서 일본당국의 극심한 민족차별정책으로 하여 겪은 고충과 애로에 대하여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럴 때마다 김일성주석님께서 걸음걸음 자기들을 이끌어주신데 대하여, 그 품속에서 재일동포들은 일본당국의 가혹한 탄압과 박해속에서도 굴함없이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지켜 투쟁한데 대하여 감회깊이 회고하였습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것은 우리 수령님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총련도 없었을것이라고, 그래서 일본에 사는 재일동포들은 대부분이 남조선에 고향을 두고있지만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진정한 조국으로 여기고있다고 눈물이 글썽하여 말하던 의장선생의 모습이였습니다.

이야기마감에 의장선생은 우리들에게 해외에서 동포조직을 꾸려가는 사람들에게서 제일 중요한것은 조국애와 민족애라고, 조국과 운명을 같이하고 겨레를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바칠 각오를 지닐 때만이 겨레를 위해, 동포들을 위해 참다운 일을 할수 있다는 실로 교훈적인 말을 해주었습니다.

한덕수의장선생의 말을 들으며 우리들은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을 민족의 어버이로 높이 모시고 총련에서와 같이 모든 활동을 고국의 발걸음에 맞추어 진행하며 민족의 통일성업에 한몸바쳐 나갈 결의를 다지였습니다.

이것은 총련에 대한 참관과정에 거둔 중요한 성과로 되였습니다.

일본에 체류하는 기간 대표단은 이밖에도 범민련 해외본부 사무실과 민단본부도 방문하여 조선통일운동에서 공동보조를 취할데 대한 문제들도 토론하였으며 히로시마, 나가사끼도 방문하여 핵참화의 후과에 대하여서도 직접 목격했습니다.

아쏘크일군들은 《과일배낭을 지고 갔다가 보배덩이를 얻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며 총련방문성과에 대하여 기쁨을 금치 못해하였으며 아쏘크를 잘 꾸려나갈 결의를 가다듬었습니다.

귀국후 강일선생은 이러한 내용에 대하여 동포일군들에게 이야기하며 《우리들은 총련에 대학으로부터 유치원에 이르기까지 정연한 민족교육체계가 서있으며 신용조합과 조선신보사, 조선통신사 등 모든것이 다 갖추어진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총련중앙과 하부말단조직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고국과 꼭같이 숨쉬고 한결같이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을 따르고있는데 대하여 깊은 감동을 받고 같은 조선사람으로서 가책되는 점이 너무 많아 잠을 제대로 잘수 없었습니다. 앞으로 동포들과의 사업을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하는 명백한 견해를 가졌습니다. 우리 앞으로 정세가 어떻게 되든지 평양을 우러러보면서 어렵지만 조직을 잘 꾸려갑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의 이 말은 총련을 방문하였던 방문단성원모두의 심정을 대변한것이였습니다.

우리들은 그후에도 총련동포들로부터 활동경험과 함께 필요한 물질적방조도 적지 않게 받았습니다.

지금 저의 사무실에는 그때 재일동포들로부터 받은 탁상시계가 놓여있습니다. 그 시계를 볼 때마다 저는 우리 함께 시계의 초침처럼 겨레를 위하여, 조국통일을 위하여 시간과 발걸음을 맞추어가자고 하던 그들의 말을 새기며 마음을 다잡군 합니다.

아쏘크는 총련뿐만아니라 다른 나라와 지역의 동포조직들과의 련대를 실현하고 경험도 교환하였습니다.

아쏘크는 2차대회와 3차대회를 비롯한 대회들에 축하단으로 온 여러 동포조직대표단들 그리고 통일행사장들에서 만난 여러 나라와 지역의 동포들과도 경험을 교환하였습니다.

또한 중국에 있는 재중조선인총련합회도 여러차례 방문하고 그들을 초청도 하면서 사업성과와 경험도 나누었습니다.

그 과정에 얻은 경험은 아쏘크를 강화해나가는데 귀중한 밑천으로 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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