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조직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 민족애의 기치밑에

 

고통련은 이전 쏘련지역에 사는 조선동포들이 민족의 넋을 간직하고 살아나가도록 하며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활동하는것을 기본임무로 내세웠습니다.

내세운 목적과 리상은 숭고하였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긴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그것은 그 성격상 각계각층의 광범한 동포대중을 묶어세울것을 필수적과제로 제기하고있기때문입니다.

사상과 정견이 각이하고 생활처지도 서로 다른 동포들을 조직에 묶어세우자면 그 누구에게나 납득되고 쉽게 받아들일수 있는 사상정신적기초가 있어야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동포들 누구나가 납득될수 있는 사상정신적기초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에 대한 대답을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밝혀주신 민족대단결사상에서 찾았습니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자면 민족애와 민족자주정신에 기초하여 단결하여야 한다고 밝혀주시였습니다.

민족애와 민족자주정신에 기초하여 민족적단합을 이룩할데 대한 사상은 해외의 우리 동포들의 근본요구와 공통적인 심리도 반영된 아주 명철한 사상입니다.

사상과 정견도 각이하고 직업도 천태만상이지만 민족을 사랑하고 옹호하려는것은 동포들의 공통된 사상감정이며 지향입니다. 비록 이역땅에서 살고있지만 대다수의 동포들이 민족적존엄이 유린되거나 민족이 불행을 당하게 되는것을 결코 원치 않으며 자기 민족이 번성하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이전 쏘련시기에 따슈껜뜨에서 조선팀과 우즈베끼스딴가맹공화국팀간의 축구경기가 진행된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축구경기를 보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자기 땅에서 진행되는 경기인것으로 하여 선수들이나 관람객들이나 다같이 제 나라 팀을 응원하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상외로 조선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관람객들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경기시작부터 조선팀과 한마음이 되여 기세를 돋구며 열광적으로 응원하였습니다. 조선팀이 우즈베끼스딴팀의 꼴문에 공을 차넣었을 때에는 환성을 올리며 얼싸안고 서로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우리 고려인들이였습니다. 쏘련에서 태여나 쏘련공민권을 가지고있었어도 민족의 피는 속일수 없는가 봅니다. 우리들이 비록 고국과 멀리 떨어져 살고 조선선수들중에서도 아는이가 없었지만 한동포라는 생각으로 남같지 않았고 내 민족이 남만 못지 않고 더 잘되기를 바라는 심정은 하나같았습니다. 그래서 누가 시킨 사람은 없었지만 고려인들스스로가 너나없이 떨쳐나 조선팀을 응원하고 경기에서 이기기를 바랐던것입니다. 그때 어떤 사람들은 우리 고려인들을 보고 의아해하면서 당신들은 쏘련사람이 아닌가, 왜서 조선팀을 그렇게 열심히 응원하는가 하면서 질책하였습니다. 그러는 그들에게 우리는 당신들도 남의 나라에 가서 살아보라, 그러면 우리들의 심정을 리해하게 될것이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하나의 체육경기였지만 민족을 사랑하고 제 민족이 잘 되기를 바라는 민족적감정과 심리가 표현된 사례라고 봅니다.

우리가 조선의 통일을 위해 활동하는 조직을 내오게 된것도 민족을 사랑하고 겨레가 당하는 불행과 고통을 외면할수 없었기때문입니다.

민족애와 민족자주정신에 기초하여 각계각층의 동포들을 하나로 묶어세울수 있다는것은 이렇듯 우리의 생활과 현실속에서 체득한 옳은 방도였습니다.

따라서 고통련에서는 창립초기부터 민족애와 민족자주정신에 기초하여 광범한 동포대중을 조직의 두리에 묶어세우기 위한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여기서 선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나선것은 동포들속에 자기 민족을 잘 알도록 하는것이였습니다.

이전 쏘련지역에서 살고있는 동포들의 절대다수는 1930년대이전에 조선에서 이주해간 사람들의 후손들로서 3세, 4세, 5세가 그 주류를 이루고있었습니다.

고국과 멀리 떨어져 오랜 기간 이국에서 살아온 실정으로 하여 이전 쏘련지역의 동포들은 다른 지역의 동포들보다 민족성이 희박하고 자기 민족과 모국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하였습니다.

사실 조선민족은 하나의 피줄을 잇고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하나의 강토에서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창조하며 화목하게 살아온 지혜롭고 애국심이 강한 민족입니다.

민족사에 강성국으로 이름떨치였던 고구려사람들은 슬기롭고 용맹하였을뿐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한몸바치는것을 가장 영예로운 일로 여겨왔으며 우리 민족의 력사에서 첫 통일국가였던 고려 역시 무예가 발달하고 경제문화가 발전하여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였습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발명하였고 측우기와 철갑선을 만들어 그 명성을 떨친 지혜로운 민족도 바로 우리 민족이였습니다.

더우기 지난 세기에는 미국과 일본이라는 강대한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을 물리치고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지켜냈으며 온 세상이 경탄하는 주체의 사회주의강국을 일떠세운 민족입니다.

그러나 자기의것보다 남의것을 더 많이 보며 살아온 우리 동포들속에서는 이러한 민족의 력사와 문화를 잘 모르는데로부터 어떻게 하는것이 민족의 넋을 지켜가는 조선사람으로 사는 길인가를 잘 모르고있었습니다.

동포들이 자기 민족을 잘 알고 자기 민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도록 하여야 그들이 민족을 사랑하고 겨레를 위한 통일성업에 떨쳐나서도록 할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곧 고통련의 운명과 관련되는 문제였습니다.

그리하여 고통련에서는 동포들이 자기 민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조선에 대한 방문을 자주 조직하여 고국의 현실을 직접 체험하도록 하는데 관심을 돌리였습니다.

이것은 당시 동포들의 사회정치적심리를 반영한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전 쏘련지역 동포들은 모두가 사회주의제도하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리념을 지지하고있습니다. 그러한 그들이 사회주의참모습이 펼쳐진 고국의 현실을 목격한다면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더욱 높이고 민족의 넋을 깊이 간직할것이였습니다.

고통련일군들과 동포들은 그립던 고국을 방문하는 기회에 조선중앙력사박물관과 조선민속박물관을 참관하고 력사유적, 유물들을 보며 조선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에 대한 상식도 넓히며 조선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더욱 두터이 하게 되였습니다.

특히 사회주의조선의 위력과 민족의 위대한 령수를 모신 긍지와 자부심을 새롭게 지니게 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는 시기적으로 보아도 동포들이 자기의 모국과 민족에 대한 인식과 자부심을 보다 깊이 새겨안게 된 때이기도 하였습니다.

1991년 12월 25일 저녁 크레믈리에서 쏘련국기가 내리워졌습니다.

세계최강의 군사력을 가지고있던 나라가 총소리 한방 울린 일이 없이 무너져버린것입니다.

사람들은 기존의 리념과 가치관이 일시에 무용지물로 되였다고 개탄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있었습니다.

그야말로 《기발은 내려지고 우러러볼 별이 없》고 《동상은 파괴되고 부를 이름이 없》어 모두가 망연자실하던 때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기인 1992년 4월 조선에서는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탄생 80돐을 많은 국가 및 당수반급대표단을 비롯하여 세계 130여개 나라에서 온 420여개의 대표단들이 참가한 가운데 인류공동의 대정치축전으로 경축하고있었습니다.

만민의 열렬한 축원속에 성대히 진행된 김일성주석님의 탄생 80돐 경축행사는 우리 민족이 얼마나 위대하신분을 령수로 모시고있으며 조선식사회주의가 얼마나 우월한가 하는것을 생동한 현실로 보여주었습니다.

주석님께서는 전례없는 국제적대정치축전으로 진행되는 80돐 기념행사의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이전 쏘련지역에서 온 축하단과 대표단, 안동수영웅의 가족일행, 조선인로병대표단을 만나주시고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시였으며 오찬회에까지 불러주시는 더없는 영광과 행복을 안겨주시였습니다.

다음해인 1993년 7월 27일에 진행한 조선전쟁승리 40돐경축행사 역시 사회주의조선의 위력, 령도자의 두리에 일심단결된 인민들의 굳센 의지를 다시한번 내외에 과시한 대정치축전이였습니다.

그때 평양의 김일성광장에서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일장군님을 모시고 진행한 조선인민군 륙해공군, 로농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 열병식 및 100만군중시위는 그 시기 극도에 달한 미국과 반동들의 반공화국책동을 짓부시며 사회주의를 지켜가고있는 조선인민군대, 인민들의 불굴의 기상을 훌륭히 펼쳐보였습니다.

이것을 목격한 로씨야로병대표단 단장 라쉔꼬는 이런 경축행사는 조선에서만 조직할수 있고 볼수 있다고 하면서 《조선에서는 전쟁로병들이 대오의 맨 앞장에 서있다.

오늘 인민군열병식과 100만군중시위에 참가한 군인들과 인민들이 한사람같이 발을 맞추어 씩씩하게 행진하면서 만세를 불렀는데 이것은 수령의 두리에 군민이 굳게 뭉쳤다는것을 말해준다.

지금 미국이 핵문제를 들고나오면서 조선정세를 긴장시키며 압력을 가하고있으나 어림도 없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엄동설경이 소나무의 푸르름을 더욱 부각시키는 법입니다.

고국방문과정에 민족의 얼이 맥박치고 령도자의 두리에 일심단결된 사회주의조선의 위력과 참모습을 목격하면서 동포들은 조선민족의 일원이라는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깊이 새기게 되였으며 비록 해외에 살아도 민족의 넋을 꿋꿋이 지켜 조선사람답게 살아갈 굳은 결의들을 다지였습니다.

이런 결의를 다지며 고국을 다녀온 동포들의 수는 수천명이나 되였습니다.

고통련조직에서는 고국방문자들이 동포들에게 자기들이 고국방문에서 느낀 생동한 체험담들을 이야기하도록 하는 사업을 자주 조직하였습니다.

아쏘크부위원장이였던 엄경심동포는 김일성주석님탄생 80돐을 맞으며 그이를 모시고 진행한 집단체조 《수령님 모신 내 나라》를 관람한데 대한 영광과 흥분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지난 제12차 세계청년학생축전때 모스크바에서 2 500여명의 학생들이 배경대를 하느라고 몇달동안 품을 넣었는데 어떻게 되였어요? 배경대가 란장판이 되여 관중들의 비난을 받지 않았는가요. 그런데 조국의 집단체조는 그 몇배나 되는 인원이 배경대를 펼치는데 꼭 영화를 보는 기분이였어요. 그뿐인가요. 수만명의 청년학생들이 기계와 같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데 체조가 아니라 거대하고 황홀한 예술작품이였어요. 내 조국의 문화예술이 얼마나 발전하였는지 말로는 다 표현할 길 없군요.》

로씨야고려인청년련합회 위원장은 고국의 여러곳을 참관하고 느낀 감정에 대해 격정에 넘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정말 이번에 조국에 가서 많은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판문점에 가서는 온 민족의 높은 통일열망에 대하여 느끼였으며 묘향산에 가서는 참으로 위대한분을 민족의 령도자로 모시였다는것을 국제친선전람관에서 알게 되였으며 또한 서해갑문을 보고는 조국의 힘, 우리 민족의 무궁한 힘과 재능에 대하여 새롭게 느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여 이번 조국방문과정에 조선사람된 긍지를 느꼈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더욱 깊은 감동을 자아낸것은 김일성주석님을 만나뵈온 영광과 행운을 지닌 동포들의 인상담이였습니다.

저도 그때 조선을 방문하여 김일성주석님을 직접 만나뵈온 영광에 대하여 흥분에 넘쳐 그 세부에 이르기까지 이야기하며 이렇게 계속하였습니다.

《이전에 나는 위인전을 보면서 위인들에 대한 제나름의 견해를 가지였는데 소박성과 덕행을 위인의 가장 중요한 미덕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러한 위인만이 인민의 지지와 인정을 받을수 있다고 보았기때문입니다.

그런데 김일성주석님은 이전에 내가 상상하던 그러한 위인들과 대비할수 없는 위인중의 가장 위대한분이시였습니다. 항상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 저희들과 아무런 격식도 없이 담화를 나누시는데 억양 또한 부드럽고 진정이 넘치시였습니다. 말씀을 얼마나 구수하고 알기 쉽게 하시는지 모국어를 잘 모르는 저도 그이의 말씀 한마디한마디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데 참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연회석상에서 손수 잔도 찧어주시는 김일성주석님을 우러르며 저는 솟구치는 격정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제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고국을 위해 민족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이고 이 쏘련땅에서조차 날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러한 저를 그렇듯 뜨겁게 대해주신 주석님은 정녕 민족의 어버이, 위인중의 위인이십니다. 그이의 위인상을 여러분들께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제자신이 불민하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그이를 뵈오면서  조선의  위력의  원천을  알게  되였으며  그렇듯 위대한분을 민족의 어버이로 모신 민족의 한없는 긍지를 가슴에 새기였습니다.》

그때 제 이야기를 들으며 동포들모두가 김일성주석님에 대한 한없는 경모와 흠모의 마음을 금치 못해하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고국방문을 통한 계몽사업은 이렇듯 본인들은 물론 다른 동포들에게도 커다란 자극을 주었습니다.

고통련에서는 또한 가능한 모든 선전형식과 방법을 적극 리용하여 선전을 진행하였습니다.

국제고통련기관지인 신문 《통일》과 뷸레찐 《통일》에 사회주의조선의 실상과 조선민족의 력사와 문화, 민족적풍습과 관련한 내용들을 적절히 배합하여 편집발행함으로써 동포들속에 민족에 대한 리해와 민족성을 발양시켜나가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모스크바고통련동포교양실, 끼르기즈스딴고통련조선쎈터, 원동 우쑤리쓰크조선인문화쎈터 도서관과 원동출판사 등 선전거점과 출판물보급기지를 적극 활용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집필능력이 있는 동포들을 료해장악하고 그들을 발동하여 자신들의 체험담을 담은 글들을 써내도록 하였습니다.로씨야에 살고있던 한 피미나동포는 기사 《조선인민의 수령》, 《4월 15일은 김일성동지의 탄생일》을 써서 김일성주석님의 거룩한 영상과 함께 로씨야신문 《웨쩨란》 4월 14일부에 발표하였습니다.

따슈껜뜨에 사는 한 동포는 《통일문》이라는 글을, 다른 한 동포는 《조국땅 멀리에서》라는 기사를 써서 발표하였습니다.

이들이 쓴 글들은 동포들속에서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의 위인적풍모를 깊이 인식시켜 그들의 흠모심을 높여주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습니다.

까자흐스딴조선말방송, 우즈베끼스딴 TV조선말방송 등 주재국 선전기관들과의 사업도 진행하여 그들이 조선에 대한 선전을 하게 하는데도 주의를 돌렸습니다.

동포들에게 민족의 넋을 되살리고 민족애를 북돋아주기 위한 사업의 성과는 고국의 사심없는 방조를 떠나 생각할수 없었습니다.

동포들에 대한 사상계몽사업을 진행하면서 우리가 제일 애로를 느낀것은 동포들에게 민족의 넋을 안겨주는데 필요한 자료가 부족한것이였습니다.

이미전부터 이전 쏘련지역에서 조선민족의 문화와 전통과 관련한 자료를 찾아보기 어려웠던데다가 쏘련붕괴후 조선과 관련한 자료는 극히 편파적이고 외곡된 소식이 대부분이였습니다. 간혹 쥐여보는 고국의 출판물도 많은 동포들이 조선말을 몰라 리용하기도 힘들었습니다.

고통련에서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하여 로씨야와 우즈베끼스딴에 주재하고있는 조선대사관을 통하여 혹은 고국을 방문하는 동포일군들을 통하여 고국에 방조를 줄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고국에서는 우리들의 이러한 고충과 애로를 헤아리고 해당한 대책을 취해주었습니다.

고국에서는 조선의 사회주의제도의 참모습과 조선로동당의 조국통일방침, 조선민족제일주의를 내용으로 한 록화 및 록음카세트, 출판물들을 비롯하여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선전물과 학습자료들을 수많이 보내여왔습니다. 그리고 당시 적지 않은 동포들이 모국어를 모르고있는 실정을 고려하여 조선어와 함께 로어로 번역하여 보내주었습니다.

고국에서는 또한 평양민족예술단을 비롯한 고국의 예술단들을 중앙아시아지역과 로씨야 원동지역에 여러차례나 보내주어 동포들속에서 민족의 넋을 심어주었습니다.

고국의 아낌없는 방조는 우리 고통련의 활동에 커다란 힘과 고무를 주었습니다.

동포들속에 민족의 넋을 안겨주기 위한 이러한 활동속에서 고통련의 활동에서는 커다란 진전이 이룩되였고 동포들의 사상의식상태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동포들의 일부 반영들에도 이러한 의식상태가 여실히 반영되여있습니다.

《나는 김일성주석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두번씩이나 보았다. 보면 볼수록 더 보고싶은것이 이 책이다. 여기에는 우리 민족의 현대사가 집대성되여있다. 진정 김일성주석님은 우리 민족을 구원해주시고 빛내여주신 민족재생의 은인이시다. 조선민족이라면 그가 누구든지 김일성주석님을 민족의 어버이로 모시고 따라야 한다.》

《평양의 예술이 제일입니다. 평양의 예술은 우리 동포들에게 조선민족의 넋을 심어주고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었습니다.

나는 정치와 경제, 군사를 비롯한 모든 분야의 사업을 령도하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우리 민족의 문화전통을 고수하시고 세계만방에 빛내여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진정 뜨거운 감사를 드리고싶습니다.》

《공화국창건 50돐경축 열병식과 군중시위광장의 높은 연단에 서계시는 우리 장군님의 환하신 태양의 모습을 우러르니 내 조국땅에 강성대국이 솟아오르는 그날이 눈앞에 펼쳐지는것만 같습니다. 정말 우리 조국은 이 세상에 대고 통장훈을 부르고있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조국통일의 그날을 앞당겨오기 위해 뛰고 또 뛰여야 하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을 믿는데 나는 김정일장군님을 믿습니다. 김정일장군님만 믿고 따르면 반드시 승리하기때문입니다.

나는 해외에서 살면서 김정일장군님이 미국놈들을 옴짝 못하게 하는것을 보고 박수를 쳤습니다. 얼마나 통쾌한지 몰랐습니다. 큰 나라들도 미국놈들이 이래라저래라 하고있지 않습니까. 오직 김정일장군님앞에서만 옴짝 못하고있습니다. 그것만 놓고보아도 인민이 김정일장군님을 믿지 않을수 없고 따르지 않을수 없습니다. 하늘이 낸 장군님이 아니시고서야 그렇게 할수 없습니다.》

이것은 동포들속에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에 대한 존경과 흠모의 마음, 사회주의조선에 대한 동경심이 급속히 늘어났고 막을수 없는 거센 흐름으로 되였다는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생활상요구였고 새로운 지향의 분출이였습니다.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것은 동포들속에 민족의 넋이 심어져 조선사람의 체취가 풍기기 시작한것입니다.

동포들속에서 모국어학습열의가 높아지고 잃어버렸던 민족고유의 노래선률과 춤가락이 되살아나게 되였으며 치마저고리와 같은 민족의상도 즐겨입게 되였습니다.

고국인민들과 같이 태양절과 2월의 명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기념일 등을 함께 기념하고 설, 추석과 같은 민속명절도 같이 쇠게 되였습니다.

그 과정에 동포들은 민족을 알고 민족의 령수를 아는 참된 겨레의 한 성원으로 변모되여갔습니다.

조직의 확대와 강화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것은 두말할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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