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것을 통일에

 

이전 쏘련의 속담에 《량심의 종이 되고 의지의 주인이 되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선과 멀리 떨어진 해외에서 고국의 통일을 위해 활동하고있는 저에게 있어서 이 말은 퍽 교훈적인 의미로 새겨지고있습니다.

사실 스스로의 민족적량심과 본분에 따라 민족의 통일을 위한 길에 나선 우리들이였지만 변심없이 그 길을 이어간다는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이역의 어려운 조건에서 조선의 통일을 위해 활동하는 동포들의 앞길에는 참기 어려운 괴로움과 시련의 고비들이 수없이 많았으며 그로 하여 마음이 나약해지는 때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들의 량심의 거울이 되고 드놀지 않는 의지의 기둥이 있었으니 그것은 위대하신 김일성주석님의 자애로운 영상이였습니다.

김일성주석님은 《민족의 파편》으로 이역땅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던 동포들도 차별없이 조선민족의 일원으로 품어주시고 겨레를 위한 참다운 애국의 한길로 이끌어주신 민족의 어버이, 위대한 스승이시였습니다. 그이의 품에서 우리 고려인들도 진정한 조국을 알게 되였고 조선민족된 긍지를 한껏 체험하였으며 통일애국의 참뜻을 새겨안았습니다.

조선의 통일을 념원하는 온 겨레의 마음들이 한곳에 모여지는 력사의 땅 판문점에는 통일위업에 쌓아올리신 김일성주석님의 업적과 로고를 전하는 기념비가 정중히 건립되여있습니다.

통일각에서 판문각으로 오르는 나지막한 릉선에 사철 푸른 숲을 배경으로 거연히 서있는 화강석기념비에는 주석님의 친필이 새겨져있습니다.

김 일 성

1994. 7. 7.》

 

김일성주석님께서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에 조국통일과 관련한 문건에 남기신 친필글발입니다.

력사의 증견자인듯 존함밑에 숭엄하게 새겨진 년월일은 그대로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모든것을 조국통일을 위해 바쳐오신 주석님의 로고와 심혈의 고귀한 증표입니다.

이곳을 찾을 때마다 매번 느끼는 감정이지만 저는 살아 약동하는듯 한 글발을 바라보며 민족의 통일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위대한 주석님의 불멸의 업적과 로고에 대하여 가슴뜨겁게 되새겨보군 합니다.

주석님께서 늘 겨레에게 당부하신 간곡한 념원은 조국통일이였습니다.

생전에 우리 겨레에게 주실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조국통일이라고 하시면서 나라가 분렬된 때로부터 근 반세기에 걸치는 기나긴 세월 조국통일위업에 바쳐오신 그이께서는 심장의 마지막고동까지도 통일을 위해 바치시였습니다.

주석님께서 생애의 마지막시기에도 모든 심혈을 다 바치신 사업도 조국통일을 위한 사업이였고 생애의 마지막순간에 남기신 친필도 조국통일과 관련한 글발이였습니다.

그이께서 심장의 고동을 멈추시던 그 시각에 집무실 책상우에는 위인의 한생에 대한 력사의 증견자인양 활달한 친필존함이 새겨진 조국통일관계문건이 놓여있었습니다.

위인의 한생과 애국애족의 고결한 세계를 그대로 담고있는 그 문건은 주석님의 심중에 깃들었던 천만가지 사연을 다 말해주고있었습니다.

아마도 그이께서는 그토록 사랑하신 7천만겨레와 심장의 대화도 나누시고 통일의 환희에도 젖어보시였을것이였습니다.

통일은 곧 온다고 말씀하시며 온 겨레가 힘을 합쳐 통일의 그날을 앞당겨오자고 고무의 말씀도 하시였을것입니다.

력사에는 생을 마감하면서 뜻깊은 말이나 유지를 남긴 위인도 있었지만 김일성주석님처럼 민족의 운명을 두고 그토록 마음쓰시며 마지막순간까지 온 정력을 바쳐가신 그런 수령, 그런 위인은 없었습니다.

새겨보면 주석님께서 생애의 마지막시각에 력사적인 통일문건에 서명하신것은 한순간이였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비낀 주석님의 로고와 심혈의 날과 달은 그 얼마인지 헤아릴 길 없습니다.

통일을 위해 바치신 그이의 헌신의 나날속에는 통일이 이루어지면 밀렸던 잠도 푹 자고 마음놓고 휴식도 하겠다고 하시면서 지새우신 밤들과 인민들에게 주실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조국통일이라 하시면서 자신의 생신날에마저 쉬지 않으시고 하나된 조국을 안아오시기 위해 마음쓰신 날들이 수없이 많고도 많습니다.

이전 쏘련지역에 사는 우리 동포들을 민족애의 넓은 품에 안아주시고 통일의 길로 이끌어주신 로고는 또 얼마였습니까.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뒤늦게야 통일의 길에 들어선 우리 고려인들이 시대와 력사앞에, 민족앞에 지닌 자기의 사명을 다할수 있도록 더욱 마음쓰시며 사랑과 믿음으로 이끌어주시였습니다.

언제나 그립던 고국을 찾아오는 동포들에게 있어서 김일성주석님을 만나뵙고 가르치심을 받는것은 일생의 더없는 영광이며 행복이였습니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나라일의 크고작은 일을 돌보시는 바쁘신 속에서도 이전 쏘련에서 살고있던 우리 동포들도 친히 만나주시고 사업과 생활을 따뜻이 보살펴주시였습니다.

그이께서 안동수동포가정에 돌려주신 은정은 재쏘동포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축도라고 할수 있습니다.

주석님께서 안동수동포와 그 가족들을 위하여 마음써오신것은 1947년말부터였다고 합니다.

새 조선건설로 들끓는 해방된 조국에 나와 정규무력건설에 참여하고있던 안동수를 친히 만나주신 주석님께서는 그간 해외에서 고생이 많았겠다고 하시며 안해와 자식들은 다 잘 있는가, 조국에 나올 때 가족들을 데리고 나오지 못했는가고 다정히 물어주시였습니다. 그리고 그후 그에게 새로 조직된 첫 땅크려단의 문화부려단장의 중임을 안겨주시였습니다.

안동수는 주석님께서 안겨주신 믿음과 사랑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조선전쟁의 첫 시기에 영웅적위훈을 세우고 전사하였습니다.

남편이 없이 이역이라는 여의치 못한 환경과 조건에서 안해인 정일심동포가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고 가정을 유지한다는것은 조련치 않았습니다.

부인이 이런 생활의 모대김속에 날을 보내고있던 1952년말 어느날이였습니다.

따슈껜뜨주당위원회에서 일한다는 한 일군이 찾아와 조선대사관에서 전하는것이라고 하면서 편지와 함께 유지에 싼 두툼한 봉투 하나를 내놓는것이였습니다. 의아한 눈길로 봉투를 받아쥔 부인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의 글줄을 읽어내려갔습니다.

《조국에서 정 이리나에게 전하는 소식입니다.

얼마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께서는 작전대우에서 밤을 지새우시다가 안동수영웅의 부인이 지금 해외에서 어떻게 지내고있는지 몹시 걱정된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전쟁을 겪고있다 하더라도 그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영웅의 유가족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쏘련돈으로 많은 액수의 루블을 보내주고 다달이 생활보조금을 보내주도록 은정어린 배려를 돌려주시였습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첫 생활보조금을 따슈껜뜨의 주당위원회를 통하여 보내니 정히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감격없이, 흥분없이는 읽을수 없는 편지였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부인은 그만 땅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고야말았습니다.

그때까지는 자기를 낳아키워준 부모들이나 오빠들도 어려운 생활을 이어오다나니 단돈 몇잎 쥐여주지 못했고 친척, 친우들도 걱정이나 하였을뿐 별로 관심을 두지 못하고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나라의 국사를 돌보시는 령도자께서 그것도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판가리되는 가장 준엄한 전화의 나날에 이역땅의 이름없는 한 동포를 걱정하시며 거액의 보조금을 보내주시였던것입니다.

부인은 눈에 흙이 들어간들 잊을수 없는 어버이주석님의 그 사랑을 가슴에 새기고 또 새기며 어느때든지 그이를 만나뵈옵고 감사의 큰절을 올릴 그날만을 학수고대하며 살아왔습니다.

그의 소원은 수십여년의 세월이 흘러 비로소 풀리게 되였습니다.

1989년 9월 어느날이였습니다.

평양을 찾아온 정일심동포와 가족들을 따뜻이 맞아주신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그들의 인사를 받아주시고나서 감사하다고, 부인이 지금까지 고생하면서 아들딸들을 잘 키운데 대하여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그날 안동수는 자기 수령을 받들줄 알았고 언제나 군인들을 자기 수령과 자기 조국, 자기 인민을 위해서 몸바쳐 싸워야 한다는 사상으로 교양하였다고 하시면서 아들딸들도 아버지의 뒤를 따라 훌륭한 사람이 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습니다.

그리고 민족의 넋을 안고 살라고 정 이리나라고 부르던 부인의 이름을 정일심으로, 자식들의 이름을 안향산, 안향란, 안향진으로 손수 조선식이름까지 지어주시였습니다.

그날 영웅의 안해와 그 가족들을 오찬회장으로 불러주신 주석님께서는 민족음식들을 하나하나 짚어가시며 어서 많이 들라고 권하기도 하시고 해방직후 쏘련에서 나온 사람들가운데서는 안동수가 로어를 제일 잘했고 혁명성도 높았다고, 그는 조선을 위해 한몫하겠다는 결심이 확고한 사람이였다고 감회깊은 추억도 더듬어주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동무들은 비록 쏘련국적을 가지고있어도 사람들은 조선사람이 아닌가고 그리고 조국땅은 조국통일을 위해 싸우다 희생된 남편의 피와 뼈가 묻힌 땅이라고 하시면서 안동수가 다하지 못한 일을 우리가 맡아해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시였습니다.

해외의 이름없는 한 동포를 위하여 수십년간이나 마음써오신 김일성주석님께서는 1989년 9월부터 몇해사이에만도 정일심동포와 그 가족들을 4차례나 만나주시고 크나큰 영광과 사랑을 베풀어주시였을뿐아니라 생활의 구석구석을 세심히 보살펴주시였습니다.

정일심동포는 김일성주석님을 만나뵙던 감격에 대하여 동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은 자애롭고 인자하신분입니다.

우리는 수령님께서 어찌나 다정하게 대해주시고 알기 쉽게 이야기해주시는지 생각하면 꿈만 같았습니다.

저는 위대한 수령님의  접견을  받으면서 우리 수령님이시야말로  혁명전사들에 대한  가장  높은  혁명적의리를 지니신 위대한분이시라는것을 심장깊이 느끼게 되였습니다. 저는 그이와 함께 찍은 이 기념사진을 볼 때마다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던 그날의 영광을 되새기며 미력한 힘이나마 조국통일에 한몸 깡그리 바치고 그 길에 자식들모두를 내세우겠습니다.》

어찌 정일심동포에게만 한한 일이겠습니까. 이것은 동포들에 대한 주석님의 믿음과 사랑의 인력을 전하는 하나의 사례일뿐입니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민족의 통일을 위해 나선 동포들의 민족적량심과 통일의지를 중히 여기시고 힘과 믿음을 안겨주시고 사업에서 지침으로 되는 고귀한 말씀을 주시였습니다.

주석님께서는 1990년 4월 어느날 고국을 방문한 4. 15경축재쏘조선인축하단을 반갑게 맞아주시고 그들의 사업성과를 높이 평가해주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오늘 4. 15경축 재쏘조선인축하단을 만나게 된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재쏘조선인들이 쏘련조선통일촉진위원회를 조직한데 대하여 축하를 드린다고, 재쏘조선인들이 쏘련땅에서 조선통일촉진위원회를 조직하고 조국통일을 위하여 투쟁하는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날 주석님께서는 이번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6개나 되는 재쏘조선인예술단이 참가했는데 이것은 결코 적지 않은것이라고, 쏘련조선통일촉진위원회본부를 조선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우즈베끼스딴가맹공화국의 수도 따슈껜뜨에 둔것도 아주 잘한 일이라고 치하해주시면서 모두가 조직의 두리에 굳게 뭉쳐 조선사람의 넋을 지켜가며 조국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애국운동을 힘있게 벌려나가리라는 믿음도 안겨주시였습니다.

재쏘조선동포사회에 대한 주석님의 깊은 분석과 해외동포운동에 대한 철의 론리, 우리의 운명에 대한 그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책임감의 열도에서 동포들은 크나큰 감동을 금치 못했습니다.

주석님께서는 축하단성원들을 위한 오찬까지 마련해주시고 친히 참석하시여 어버이의 따뜻한 정을 가슴가득 안겨주시였습니다.

갓 시작을 뗀데 불과한 아쏘크사업에 대해 축하를 주시고 고무를 주시는 주석님의 은정깊은 사랑에 축하단성원들은 뜨거운것을 삼켰습니다.

주석님께서는 그후에도 강일위원장을 비롯하여 고국을 방문하는 동포일군들을 자주 만나주시여 따뜻한 사랑과 고무의 말씀을 주시며 자신의 곁에 세워 기념촬영까지 해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거듭 베풀어주시였습니다.

1990년 8. 15범민족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이전 쏘련을 비롯한 해외의 여러 지역에서 온 동포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주석님께서는 조국통일의 뜨거운 열망을 안고 조국에 온 여러분들은 해외에서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기 위하여 헌신분투하여온 애국자들이라고, 자주와 통일을 바라는 조선사람은 누구나 다 민족대단결의 기치밑에 단결하여야 하며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조국통일위업에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습니다.

저도 김일성주석님을 직접 몸가까이에 뵈옵고 가르치심을 받는 영광과 행운을 지니게 되였습니다.

저는 주석님을 만나뵈온 동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깊은 감동을 받으며 부러워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저도 그러한 영광을 지닐수 없겠는가 하고 소망도 가지군 하였습니다. 하지만 민족앞에 아무것도 한 일도 없고 갓 고통련사업을 시작한 저로서는 실현될수 없는 한갖 꿈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꿈이 너무도 가깝게 현실로 다가올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감회도 새로운 1991년 4월 14일, 고국방문의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있던 저의 일행은 그날 뜻밖에도 김일성주석님께서 접견해주신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달받게 되였습니다.

그때 고국에서는 주석님의 탄생일을 맞으며 온 나라가 흥성이고있었습니다.

주석님의 탄생 79돐을 축하하기 위하여 여러 나라의 친선사절들과 많은 해외동포들이 앞을 다투어 평양으로 달려왔습니다.
주석님께서는 매일같이 외국손님들을 만나주시는 몹시 바쁘신 속에서도 시간을 내시여 우리 해외동포들을 만나주시는 은정을 베풀어주시였습니다.

저의 일행이 일본과 미국, 카나다 등 여러 나라와 지역에서 온 해외동포들과 함께 김일성주석님께서 계시는 곳에 당도하니 그이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 마주 걸어나오시며 우리들 한사람한사람을 반갑게 맞아주시는것이였습니다.

저는 주석님의 존안을 넋을 잃고 우러러보았습니다.

온 겨레와 인류가 그토록 흠모해마지 않는 위대한 김일성주석님, 우리 해외동포들이 마음의 기둥으로, 희망의 태양으로 높이 받들어온 주석님을 이처럼 지척에서 뵙게 되니 꿈인지 생시인지 알수 없었습니다.

그이앞에 다가섰을 때 저는 그만 목이 꽉 메고 눈물이 왈칵 솟구쳐올라 축원의 인사말도 변변히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주석님께서는 우리 동포들을 위해 기념사진도 찍어주시고 성대한 연회도 베풀어주시였습니다.

그날 제가 주석님의 접견을 받으면서 시종 가슴뜨겁게 느낀것은 그이께서 매우 인정깊고 다심하신분이라는것입니다.

그이께서는 총련의 한덕수의장의 일신상문제에 대하여서도 세심히 관심해주시고 조국과 멀리 떨어져 얼마나 고생했겠는가고 이국살이에 응어리진 동포들의 마음도 헤아려주시였으며 년로하신 몸이심에도  여러 나라와 지역의  동포조직대표단을  일일이 자신의 곁에 세워주시고 기념사진도 찍어주시였습니다. 언감자국수를 비롯하여 연회상에 놓인 음식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주시고 매 사람들의 잔도 손수 찧어주시였습니다.

그날 주석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한생에 잊혀지지 않을 고귀한 말씀도 해주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동포들에게 오늘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가장 초미의 문제는 조국의 통일이라고 하시면서 여기 모인분들은 그 어디에 있던간에 모두 조선사람들이라고, 조선민족이라면 그가 누구든 조선의 통일을 위해 이바지하여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습니다.

조국의 통일에 대하여 얼마나 심려하시였으면, 분렬로 인한 민족적비극과 고통이 얼마나 사무치셨으면 한해의 가장 기쁜 생신날까지 나라의 통일문제때문에 그토록 마음쓰시는것이겠습니까.

조국통일에 대한 열의로 그토록 가슴끓이시며 해외의 동포들도 조국통일의 길로 불러주시는 주석님의 절절한 말씀을 들으며 저는 그이께서 지니신 애국애족의 세계가 얼마나 높고 민족을 안아주는 품이 얼마나 넓은것인가를 심장으로 새겨안았습니다.

연회석상에서 주석님께서 잔을 찧어주실 때 저는 그이께 목숨이 진하는 마지막순간까지 자신의 모든것을 민족의 통일을 이룩하는데 깡그리 바쳐나갈 굳은 결심을 말씀올리였습니다.

그러자 주석님께서는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저의 어깨를 다정히 두드려주시고 제 잔을 손수 찧어주시였습니다.

그이의 따스한 체온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순간 저는 광휘로운 태양가까이에 선것처럼 모든것이 후더워오는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김일성주석님의 인자하신 영상, 해빛같은 미소와 인민적인 풍모, 애국애족의 숭고한 뜻에 완전히 매혹되고말았습니다.

위대하신 김일성주석님을 만나뵈오면서 저는 어째서 우리 민족과 온 세상 사람들이 그이를 민족의 태양, 인류의 태양이시라고 칭송하는가를 페부로 절감하였습니다.

그러니 이 몸이, 아니 우리 고려인들이 김일성주석님의 품에 안긴것은 정말 행운이고 영광이라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절세의 위인이시며 민족의 어버이이신 위대하신 김일성주석님을 한자리에 모시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고 기념사진까지 찍는 최상의 영광은 그 누구에게나 차례지는 행운이 아닙니다.

세계정치무대에서 복잡한 사태들이 련이어 벌어지고있던 그 준엄한 나날에 해외에서 사는 조선동포들을 고국에 불러주시고 영광과 행복을 안겨주신 주석님의 은정어린 사랑에는 동포들에게 모국을 알게 해주고 민족의 본분을 잃지 않게 깨우쳐주며 통일의 길로 내세워주시려는 그이의 크나큰 믿음과 기대가 담겨져있습니다.

실로 김일성주석님은 사랑과 은정으로 여기저기 널려사는 동포 한사람한사람을 하나의 애국애족의 기치아래 묶어세워 참다운 삶의 길로 내세워주시고 조국통일의 길로 이끌어주신 민족의 어버이이십니다.

주석님께서 남기신 당부와 불멸의 통일업적은 우리모두의 혈맥속에 쉼없이 흐르는 피와 같이 온 겨레를 통일의 길로 힘차게 떠밀어주고있습니다.

지금 저의 집에는 잊을수 없는 그날에 김일성주석님께서 찧어주신 사랑의 술잔이 가정의 둘도 없는 가보로 보관되여있습니다. 저는 매일 그 술잔을 바라보며 저에게 따뜻한 어버이정과 애국애족의 넋을 부어주신 주석님의 사랑과 은정을 되새겨보며 그이의 당부대로 한생을 통일의 길을 따라 꿋꿋이 걸어갈 결심을 가다듬군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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