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쏘련조선통일촉진위원회

 

쏘련조선통일촉진위원회는 국제고려인통일련합회의 전신입니다. 독자들의 리해에 혼란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미리 이에 대해 밝히게 되니 량해를 바랍니다.

1980년대 중엽부터 시작된 고려인들의 고국방문은 날이 감에 따라 끊임없이 늘어났습니다.

1989년 7월초에 평양에서는 온 겨레와 세계인민들의 커다란 기대와 관심속에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진행되였습니다. 이 축전을 보기 위하여 이전 쏘련지역에서만도 수백여명의 조선동포들이 평양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들속에는 쏘련의 중앙아시아지역에서 온 동포들도 있었습니다. 축전기간에 있은 이야기들은 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옮기는것으로 대신할가 합니다.

축전기간에 동포들은 륭성번영하는 사회주의조선의 활력넘친 모습과 조선인민의 높은 정신세계, 상상을 초월하는 예술의 높은 경지에서 진정한 조국을 알게 되였고 복잡다단한 세계정세의 흐름속에서도 끄떡없이 전진할 조선의 미래를 내다보았습니다.

한편 그들은 외세에 의하여 분렬된 민족의 불행과 비극, 그것을 하루빨리 끝장내려는 조선의 북과 남 그리고 해외의 온 겨레의 통일열망에 대해서도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언어와 피부색, 신앙과 정견은 달라도 세계 5대륙의 청년학생들이 평양의 축전장에 함께 모여 서로 손과 손을 잡고 친선과 단결의 노래를 부르고있는데 같은 민족인 남조선청년학생들은 제 나라의 북녘에서 열리는 축전마당에도 오지 못하고 나어린 녀대학생만이 사선을 헤치고 멀리 대륙과 대양을 에돌아 축전에 참가하였던것입니다. 남녘의 청년학생을 에워싸고 얼싸안으며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평양시민들, 축전장을 뒤흔든 10여만명의 함성은 갈라진 민족이 당하는 불행과 아픔의 척도를 가늠케 하는 현장이였습니다.

더우기 나어린 남녘의 녀학생대표의 소행을 기특하게 여기시며 그에게 따뜻한 격려의 손을 흔들어주시던 김일성주석님의 자애에 넘치신 어버이의 모습과 개막연설에서 하신 그이의 말씀은 동포들의 뇌리에 민족분렬의 아픔을 깊이 새겨주었습니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축전개막식에서 한 연설에서 남조선청년학생대표에게 뜨거운 동포애적인사를 보내시면서 유구한 력사를 두고 단일민족으로 살아온 조선인민에게 거의 반세기동안이나 분렬된 비극을 강요하고 평양축전에 참가할것을 그처럼 열렬히 희망한 남조선청년학생들의 지향을 폭력으로 가로막아나선 분렬주의자들을 단죄하시였습니다.

주석님의 말씀을 들으며 동포들은 국토의 분렬로 하여 당하는 겨레의 불행과 아픔을 더더욱 절감하였으며 민족분렬의 비극을 강요하는 반통일세력을 타매하고 통일을 위한 투쟁에 떨쳐나설 충동으로 달아오르는 가슴을 억제할수 없었습니다.

고국방문의 나날 동포들은 분렬의 비극을 끝장내고 민족의 통일을 기어이 이룩하려는 겨레의 열망과 의지를 매일 매 시각 가슴뜨겁게 느끼였습니다.

세계의 방방곡곡에 흩어져 사는 해외동포들도 분렬된 민족의 운명을 함께 걱정하며 전민족적인 통일대장정에 적극 합류해나서고있었습니다.

그해 7월 9일 평양에서는 해내외동포들의 조국통일촉진대회가 진행되였습니다.

대회에는 공화국인민들과 함께 일본과 쏘련, 중국, 유럽, 오스트랄리아 등 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에서 온 3 000여명의 해외동포들이 참가하였습니다.

대회장은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민족최대의 숙원인 조국통일위업을 성취함으로써 시대와 력사앞에 지닌 숭고한 민족적의무와 사명을 다해나갈 우국충정의 일념으로 차고넘치였습니다.

대회에 참가한 해외동포들은 한결같이 단일민족으로 한강토에서 살아온 우리 겨레가 거의 반세기동안 겪고있는 민족분렬의 비극을 어찌 보고만 있을수 있겠는가고 절절히 토로하면서 그 어느 나라, 그 어느 땅에서 살든 민족의 량심과 본분을 지켜 조국통일의 환경을 조성하는데 열정을 다 바쳐갈 확고한 결의들을 표명하였습니다.

대회에서는 조국통일에 관한 선언과 해내외동포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였습니다.

평양에서 고국의 인민들과 함께 수천명의 해외동포들이 한자리에 모여 통일촉진을 위한 결의와 현실적인 대책을 토론하는것을 목격하면서 동포들은 민족의 통일은 조선민족의 손으로 쟁취하여야 할 투쟁의 목표이며 조선의 북과 남, 해외가 따로없이 공동으로 앞당겨야 할 절박한 민족의 대업이라는 사명감을 깊이 자각하게 되였습니다.

심장과 혈관속에 진정한 조선민족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면 민족이 겪는 불행과 아픔을 외면할 사람이 없을것입니다.

고국방문의 나날에 이 모든것을 직접 목격, 체험하며 동포들은 평양을 운명의 기둥, 희망의 등대로 여기고 민족의 통일을 위한 활동을 벌려나갈 결심을 가다듬었습니다.

따슈껜뜨로 돌아온 그들은 많은 동포들을 만나 평양에서 받은 인상을 감회깊이 이야기하면서 조선통일을 지지하는 조직을 내올데 대하여 합의하였습니다.

발기인들은 조직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직의 강령을 작성하는 문제들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실무적문제들을 구체적으로 토의한 다음 우즈베끼스딴가맹공화국의 대의원이며 주택관리국 총국장인 김 웨체슬라브, 따슈껜뜨려객운수총국 총국장인 김 에풀린, 우즈베끼스딴가맹공화국 체육협회 대외담당 지도원인 리 이고리 등 동포들속에서 영향력있던 핵심동포들을 만나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도 약속받게 되였습니다. 발기인들속에도 쏘련내각직속 중앙아시아 농업 및 처녀지개간성 부상으로 있었던 강일선생을 비롯한 영향력있는 동포들이 망라되였습니다.

저는 그때 중앙아시아지역의 유일한 조선말신문인 《레닌의 기치》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고있던 마경태동포와 함께 조직의 강령초안작성에 참가하였습니다. 강령초안에서 우리는 조직의 기본사명에 맞게 기본조항에 조선의 통일을 촉진한다는것을 성문화하고 규약외에 규정세칙들도 통일을 지향하여 구체화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이러한 준비에 기초하여 1989년 8월 12일 발기인들은 조선동포조직 결성준비위원회를 내왔으며 8월 24일에는 조직의 명칭을 쏘련중앙아시아조선통일촉진위원회로 하기로 의견일치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조선대사관에 통보하고 준비위원회대표단을 조선에 파견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 목적은 준비위원회 성원들이 고국의 현실을 직접 목격하고 조선통일을 위한 활동을 진행하는데 필요한 대책적문제들을 토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하여 1989년 9월에 13명으로 구성된 쏘련중앙아시아조선통일촉진위원회대표단 성원들이 평양을 방문하였습니다.

평양에 체류하는 기간 대표단은 공화국의 여러곳에 대한 참관을 진행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41돐 기념보고대회에도 참가하였습니다. 또한 대표단성원들은 정무원(당시)부총리와의 담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일군들과의 담화를 통하여 통일운동을 벌리는데서 나서는 대책적문제들을 협의하였으며 성대한 환영연회에도 참가하였습니다.

15일간의 조선체류일정을 마치고 따슈껜뜨로 돌아온 대표단은 쏘련조선통일촉진위원회(아쏘크)결성을 위한 마감준비를 다그쳤습니다.

그러나 조직결성사업은 결코 순조롭게 되지 않았습니다.

아쏘크를 결성하려고 한다는 소문을 듣고 일부 불순분자들은 아쏘크결성을 무산시키며 동포사회를 분렬와해시키려고 책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쏘크결성준비위원회 일군들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자기 사업을 힘있게 내밀었습니다.

11월 15일 결성준비위원회는 회의를 열고 정부가 아쏘크결성모임을 승인하는 문제, 강령과 규약작성, 대회참가증 인쇄, 회의장소와 날자, 참가자들이 숙박할 려관과 운수수단보장, 회의장에 걸 구호와 선전포스터 등을 다시금 확정하고 그에 따르는 조직사업을 하였습니다.

그후 모든 준비사업은 동포들의 성의있는 노력에 의하여 원만히 해결되였습니다.

17일 저녁 10시, 아쏘크결성준비위원회 성원들은 협의회를 소집하고 아쏘크결성모임준비정형을 최종검토한 다음 간부조직안구성을 가결하였습니다.

1989년 11월 18일 우즈베끼스딴가맹공화국의 수도 따슈껜뜨에 있는 국제문화회관에서는 아쏘크결성모임이 성대하게 진행되였습니다.

여기에는 우즈베끼스딴과 까자흐스딴, 우크라이나, 따쥐끼스딴, 끼르기즈스딴, 로씨야에서 온 각 지역 대표 150여명의 동포들이 참가하였습니다.

모임장소 정면우에는 《쏘련조선통일촉진위원회결성을 열렬히 축하한다》라는 글이 새겨진 붉은 천이, 아래에는 《조선은 하나다》라고 쓴 글과 함께 조선지도가 걸려있었습니다.

오전 10시 사회자의 발언으로 결성모임이 시작되였습니다.

이어 조직결성준비위원회 위원장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는 보고에서 쏘련조선통일촉진위원회결성의 필요성과 그동안 결성준비정형을 개괄하고나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 조선동포들에게 있어서 11월 18일은 영원히 잊을수 없는 력사의 날입니다.

우리는 비록 이역에 살아도 나라와 민족의 분렬로 인한 비극을 더는 보고만 있을수 없어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앉았습니다.

조선은 반드시 하나로 통일되여야 합니다.》

그의 연설은 대회참가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어 대표들의 토론이 있었습니다.

토론자들은 한결같이 조선통일의 구성이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을 높이 모신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민족의 통일과 륭성번영을 위한 성스러운 애국운동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칠 결의를 다지였습니다.

회의에서는 아쏘크의 간부들을 선출하였습니다.

회의후 조직에서는 아쏘크 제1차리사회를 열고 각 공화국들의 주, 시 등 아래단위들에서의 조직결성문제, 결성된 조직이 쏘련정부의 법적승인을 받는 문제 등 구체적인 실무적문제들을 토의하였습니다.

조직에서는 회의결정에 따라 아쏘크대표를 모스크바에 파견하여 문건상으로 정식 쏘련정부의 등록승인을 받기 위한 활동을 벌리도록 하였습니다.

12월 28일 아쏘크일군들은 따슈껜뜨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아쏘크가 결성되여 자기 사업을 시작한다고 세상에 선포하였습니다.

아쏘크는 결성된 다음 조직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에 힘을 넣었습니다.

아쏘크위원장이였던 강일선생은 조직과 동포들의 기대에 맞게 일을 잘할 일념을 안고 조직을 확대강화하며 민족의 통일위업실현을 위하여 적극 노력하였습니다.

아쏘크중앙이 결성된데 이어 각 가맹공화국과 주, 구역들에서 아쏘크조직을 확대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 벌렸습니다.

먼저 핵심들로 중앙조직을 공고발전시키고 동포들이 집중되여있는 지역들에 그 산하조직형태로 지부를 내오고 동포대중을 묶어세우기 위한 사업을 벌리도록 하였습니다.

저도 그때 아쏘크사무국장의 신분으로 깝까즈와 레닌그라드(당시)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 나가 동포들을 계몽시키고 조직을 내오기 위한 활동을 벌렸습니다. 그 나날 저는 고국에 대한 동경과 겨레를 위한 길에 마음과 힘을 보태려는 동포들의 순결하고 열렬한 동포애의 정을 뜨겁게 느끼였습니다.

아쏘크는 창립 1돐을 맞는 1990년말에 이르러 6개의 가맹공화국과 23개 주, 2개 변강, 27개 도시, 39개 구역에 위원회의 지방조직을 가지고 8만여명의 회원을 망라한 조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또한 아쏘크결성 2돐을 맞이하는 1991년에 이르러서는 중앙아쏘크산하에 8개의 가맹공화국과 36개 주, 2개 변강, 29개의 도시, 39개 구역들에 지부조직들과 9개의 예술단체들 그리고 로병위원회와 녀성회 등이 꾸려졌습니다.

이 시기에 와서 9만여명의 회원이 망라된 아쏘크에는 쏘련최고쏘베트 대의원급의 인사들만 하여도 62명, 사회주의로력영웅 23명, 과학자, 박사, 교수들 114명, 큰 공장, 기업소, 련합기업소의 현직일군들과 가맹공화국 정부의 부상 등 93명이 포함되여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아쏘크는 결성후 불과 2~3년기간에 권위있고 합법적인 조직으로, 힘있는 해외동포통일운동조직으로 자라났습니다.

이전 쏘련지역에 참다운 동포조직이 무어지게 됨으로써 우리 고려인들도 자기들의 운명을 주동적으로 개척해나가며 조선의 통일을 위한 온 겨레의 통일대행진에 합류할수 있는 길이 열려지게 되였습니다.

제가 이렇게 아쏘크의 창립경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서술하게 되는것은 겨레와 민족을 위한 일도 운명을 맡기고 의탁해나갈 마음의 기둥, 희망의 품이 있을 때 목적의식적으로 실현해나갈수 있다는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울러 아쏘크의 창립을 위해 애쓴 선각자들과 그들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기에 밝히지는 않았지만 김성선생이나 오가이선생도 아쏘크창립을 위해 공헌한분들이며 특히 리 이고리선생의 공로가 컸습니다.

아쏘크의 결성과 강화발전으로 하여 고려인들의 사상정신과 생활은 새로운 변혁의 문어귀에 들어서게 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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