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력사의 소용돌이속에서
이전 쏘련령토에는 근 200개의 민족 및 준민족, 소수민족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민족들이 15개의 가맹공화국을 비롯하여 110여개의 민족단위들에서 살고있었습니다. 종족구성 또한 복잡하였는데 8 000㎢의 넓이를 가진 로씨야련방내의 자그마한 북부오쎄찌야공화국 령토에만도 무려 수백개의 민족 및 준민족, 소수민족, 종족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민족들이 1980년대 중엽 고르바쵸브의 《개혁》과 《개편》, 《공개성》의 바람을 타고 제각기 민족분리를 제창하여나섰습니다.
1990년 3월에 리뜨바가 쏘련으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한데 이어 라뜨비야, 에스또니야가 독립을 선포하고 그뒤를 이어 로씨야와 우즈베끼스딴, 몰도바, 우크라이나, 벨라루씨, 뚜르크메니스딴 등 나머지 가맹공화국들모두가 주권선언을 발표하였습니다.
가맹공화국들안에서도 민족분리주의경향이 생겨났습니다. 아제르바이쟌의 한 자치주로 있던 나고르노-까라바흐가 분리주의구호밑에 공화국을 선포하였으며 쏘련해체를 전후하여 리뜨바에서는 빌리나-쌀리친까이공화국과 사회주의우크메르게공화국, 에스또니야에서는 에스찌니 우꼬구제 쏘뜨씨알리스크 바바리크공화국이, 따쥐끼스딴에서는 고르노-바다흐샨공화국이 생겨났습니다. 로씨야와 우크라이나, 몰도바, 그루지야 등 나라들에서 민족들의 분리기운은 더욱 심화되였습니다.
수많은 민족들이 민족분리를 지향하는 속에 민족간 분쟁도 첨예화되였습니다. 1993년 전문가들의 추산에 의하면 이전 쏘련지역에서 발생한 민족간 분쟁은 164건에 달하였으며 그중 약 30건은 무장충돌로까지 번져졌습니다. 민족간 분쟁이 어찌나 심각한지 한마을, 한가정내에서도 민족의 징표에 따라 가정과 마을이 갈라지고 서로 남남처럼 되는 기막힌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습니다.
민족단위를 이루지 못하고있던 여러 민족, 소수민족, 준민족들은 그들대로 여러 형태의 민족단체들을 조직하고 활동을 진행하고있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제가 살고있던 우즈베끼스딴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근 100개의 민족들이 살고있는 우즈베끼스딴안에도 까라깔빠끼야자치공화국이 생겨나고 형형색색의 민족단체들이 생겨나 활동하고있었습니다. 많은 민족들과 공존하여 살아왔지만 과연 이렇게도 많은 민족들이 있었는가고 놀랄 정도였습니다.
련맹을 이루었던 민족국가들이 흩어지자 그처럼 강력하던 쏘련은 하루아침에 물먹은 담벽처럼 자기의 존재를 마치고말았습니다.
이전 쏘련에서 일어난 이러한 비극적인 사태는 이 지역에서 살고있던 모든 사람들의 생활과 운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였습니다.
고려인들도 례외로 될수 없었습니다.
주위에서 벌어지고있는 민족간 분쟁을 목격하면서 동포들은 오래전에 자신들과 부모들이 당한 수모와 불행을 그대로 답습할수도 있다는데 대하여 또다시 상기하게 되였습니다.
저도 처음 벌어지는 사태를 두고 우려는 되면서도 관망하는 자세로 지켜보았습니다. 설마 하던 우려가 돌이킬수 없는 사태로 번져지는것을 목격하면서 자신의 생활관도 졸지에 허물어지는것을 어쩔수없이 느끼게 되였습니다.
(민족이란 무엇인가? 어제날 그처럼 화목하던 사람들이 어째서 서로 등을 돌려대고 원쑤처럼 대하는가?)
다민족국가인 쏘련에서 살면서 대학을 졸업한 저는 그 어떤 민족적자각이나 의무감보다 지식으로 제가 살고있는 사회와 집단앞에 지닌 의무, 한마디로 《공민적의무》를 다하는것으로 성실히 살자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곧 지나온 저의 생을 관통하고있었던 생활관이였다고 보아야 할것입니다.
그러나 주변에서 벌어지고있는 정치적변화의 급류는 자신의 생활관을 랭정하게 되돌아보고 검토하게 만들었습니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변화된 현실을 놓고 저는 자신에 대하여 돌이켜보았습니다. 이 문제는 저에게 있어서 심중한 문제가 아닐수 없었습니다. 또한 저의 운명뿐아니라 자식들의 운명과 전도와도 관련되는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분명 조선민족의 피를 받은 사람이였습니다. 저의 량부모도 저의 선조들도 모두 조선사람이였습니다.
아무리 살아가는데 편리한 방편으로 로씨야인이나 우즈베크인이 되고싶어도 타고난 검은머리와 눈동자, 혈관에 흐르는 조선민족의 피는 속일수 없는것입니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면 저의 운명 또한 조선민족과 뗄수없이 련결되여있었습니다.
이전 쏘련지역의 고려인들은 모두 부모, 조부모때 또는 본인이 조선을 떠나 살길을 찾아온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며 나라잃은 민족의 설음도 함께 나눈 사람들입니다.
저 역시 부모님들에게서 다섯 형제를 잃은 이주의 비참상을 자주 들으며 나라없는 민족의 설음을 체험하였고 낯설고 물설은 타지방에서 피땀으로 생활터전을 개척하던 동포들의 눈물겨운 정상을 목격하며 성장하였습니다. 타향이지만 동포들의 마을에서 자라면서 조선말을 배우고 민족음식도 맛들이였으며 민족의 풍속도 익히였습니다.
설사 그 어떤 다른 민족이 받아준다 하여도 민족의 피는 어떻게 숨기고 조선민족의 체취는 어떻게 가실수 있겠습니까.
(그렇다. 나는 조선민족이다.
그럼 변화된 사태앞에서 고려인들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인생의 중년기에 이르러 뜻하지 않게 저의 심리에는 고민의 파동이 일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이 시기 저만이 아닌 이전 쏘련지역의 대다수 고려인들이 겪은 심리적과정이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변화된 대세의 흐름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깨닫고 자기의 운명에 대하여 자각하게 된것입니다.
하기에 고려인들도 민족적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동포들이 사는 곳곳에 각이한 명칭과 형식을 갖춘 동포조직들이 무어져 활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매 조직이 내세우고있는 강령과 규약, 활동방식도 서로 달랐습니다. 경제적협력과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하거나 자녀교육, 생활권, 기업권 등 순수 생존권의 옹호만을 추구하는 단체들이 있는가 하면 직업과 직종, 계층별로 조직된 단체들도 있었으며 애국애족의 리념을 표방하는 단체들도 있었습니다.
각양각색의 단체들가운데서도 민족성을 고수하고 애국애족의 리념을 실현하기 위한 활동을 벌리고있는 단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 산하에 각계각층의 많은 동포들이 망라되고있었습니다.
민족간 분쟁의 와중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자각하게 되면서 동포들의 눈길은 자연히 조상의 나라, 민족의 나라인 조선으로 쏠리게 되였습니다.
누구나 태를 묻은 고향과 보금자리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느 민족이나 다 그 민족의 형성과 발전의 자양분이 되여준 생활터전이 있습니다. 조선민족도 조선이라는 자기 나라, 자기 강토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 조선사람들은 오랜세월 하나의 혈통을 이어오면서 자기의 고유한 문화와 력사를 창조하여왔습니다. 이 땅에는 우리와 생김새나 풍속, 감정도 같은 겨레가 살고있고 친척, 친우들도 있으며 선조들의 넋이 깃들어있습니다. 몸은 비록 고국과 멀리 떨어져있었다 할지라도 혈관에 흐르는 민족의 피는 달리될수 없고 대대로 이어진 정과 혈연적뉴대는 끊어질수 없는것입니다.
허나 오랜 세월 고국과 멀리 떨어져 살아온것으로 하여 많은 동포들이 조선에 대하여, 그곳의 사람들에 대하여 아는것보다 모르는것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조선은 부모들의 고향, 내 민족이 살고있는 나라이다. 고국에 대한 동포들의 표상은 대체로 이러한 정도였습니다.
저 역시 당시까지만 해도 고국에 대한 표상이 별로 없었습니다. 모국에 대해서는 부모님들로부터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단지 인상에 남는것은 어릴적에 토질과 기후가 맞지 않아 푸념조로 조선만큼 살기 좋은 나라도 없을것이라고 늘쌍 외우시던 할머니의 말씀이였습니다.
제가 그래도 고국에 대한 단편적인 표상이나마 가지게 된것은 고국의 소설을 통해서였습니다. 대학생시절의 어느날 저는 대학도서관에서 우연히 로문으로 된 고국의 소설을 보게 되였는데 그것이 리기영작가가 쓴 소설 《땅》이였습니다.
저와 같은 민족이 사는 나라의 소설이여서 그것은 대번에 저의 마음을 끌었습니다.
소설은 일제의 식민지기반에서 제땅이 없이 노예적굴종만을 강요당하던 조선의 이름없는 한 산골마을의 곽바위를 비롯한 농민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국가의 인민적인 정책에 의하여 무상으로 땅을 분여받고 땅의 주인, 나라의 주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고있었습니다.
저는 소설을 통하여 당시 민주개혁에 의하여 발전하는 조선의 사회상과 사람들사이의 관계와 생활풍습 등 고국에 대한 일정한 식견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특히 소설에서 묘사한 농촌마을의 풍경과 농민들의 생활풍습, 사람들의 말에서 풍기는 어감 등은 제가 어릴 때 자라난 고려인마을과 비슷한것으로 하여 저에게 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리해하는데 일정한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40여년전의 일이였습니다. 물론 흐르는 세월과 함께 그전과는 많이 달라졌으리라는 생각은 없지 않았으나 고국에 대한 저의 표상은 젊은 시절에 지어본 상상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저와 같이 고국에 대하여 그 정도의 표상을 가지고있는 동포들도 많지 않았습니다.
고국과 민족에 대한 인식을 깊이하는것은 민족의 넋을 되찾고 동포들의 권리와 리익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문제로 나섰습니다.
자기의 근본을 깨닫고 운명에 대한 우려가 깊어질수록 동포들의 가슴마다에는 떠나온 고국산천, 겨레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동포들이 만단사연을 안고 고국을 찾아 조선방문의 길에 오르게 되였습니다.
하다면 동포들이 찾은 고국은 어떤 나라였겠습니까. 동포들은 조선에서 무엇을 보았으며 무엇을 느꼈겠습니까.
그 이야기는 저의 첫 고국방문편답으로 대신할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