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통일조선의 미래를 확신하며
□ 민족의 어버이, 통일의 구성
갈라진 조선을 통일하고 온 겨레가 함께 힘을 모아 세계에로 나아가려는것은 우리 민족의 한결같은 념원이며 숙원입니다.
오늘 우리 겨레는 력사의 모진 시련과 도전속에서도 굴함없이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심에 넘쳐 조국통일운동을 힘있게 다그쳐나가고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겨레에게 통일된 부강조선을 안겨주시려고 조국통일령도의 거룩한 자욱을 새겨가시는 탁월한 령도자를 민족의 수위에 높이 모시고있기때문입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조국통일유훈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철저히 관철하여 민족자주통일의 력사적위업을 반드시 성취하는것을 모든 사색과 활동의 중심에 놓으시고 온갖 로고와 심혈을 다 바쳐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
불면불휴의 정력적인 선군령도로 조국통일운동사에 애국헌신의 위대한 력사를 수놓아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러 온 겨레는 그이는 진정 주석님 그대로이시고 민족의 통일성업을 반드시 이룩해나가실 통일의 구성이시라는 확신을 심장으로 간직하고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마음의 기둥이 있으면 강해지고 마음의 기둥이 없으면 약해진다고 합니다. 이역에서 살고있는 해외동포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신념의 대들보, 마음의 기둥은 누구에게나 원한다고 하여 스스로 세워지는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기둥은 위대한 령도자를 모시고 따를 때 마음속깊이 뿌리내리는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동포들은 그것을 말이나 글로써가 아니라 실생활로써, 온몸으로 체득하였습니다.
저는 자신의 체험에 비추어 김정일장군님의 위인상에 매혹되고 그이를 민족의 어버이로, 통일의 구성으로 모시고 따르는 동포들의 마음을 일부분이나마 여기에 옮겨볼가 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되여 우리 동포들이 해외의 환경속에서도 통일의 전망에 대한 확신을 안고 활동해나가고있는가를 리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1994년 7월 8일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갑자기 심장의 고동을 멈추시였다는 청천벽력같은 비보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였습니다.
사실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믿어지지 않는 비보가 전해지자 50만 우리 고려인들은 평양하늘을 바라보며 가슴을 치고 땅을 두드리며 목놓아울었습니다.
이전 쏘련지역 우리 동포들이 사는 유라시아땅은 삽시에 울음의 바다, 눈물의 바다로 변하였습니다.
동포들은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가슴터지는 아픔을 달랠길 없어 자기들이 사는 공화국, 주, 시, 구역, 마을들에 조의식장을 꾸려놓고 비애의 눈물을 쏟으며 애도의 낮과 밤을 보내였습니다.
따슈껜뜨의 동포들도 시내의 중심에 자리잡고있던 전쟁로병관에 조의식장을 꾸려놓고 김일성주석님의 초상화앞에서 조의를 표시하였습니다.
조국통일을 자신의 필생의 위업으로, 우리 민족최대의 과업으로 내세우시고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통일위업실현에 자신의 모든것을 바쳐오신 민족의 어버이 김일성주석님.
주석님의 서거는 그이를 어버이로, 구세주로 믿고 의지해온 우리 고려인들에게 있어서도 최대의 손실이며 가장 큰 슬픔이였습니다.
우리들은 온 겨레와 함께 주석님을 통일의 광장에 높이 모시려던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이제는 다시 그이를 만나뵙지 못하게 된 통분한 상실의 마음을 안고 비애의 눈물을 쏟고쏟았습니다.
김일성주석님께서 서거하시였다는 비보를 받은 강일위원장은 자신의 심장이 멎는것 같다고 하면서 그전에 조국에 나갔더라면 한번 더 주석님을 만나뵙고 고통련사업과 관련한 가르치심을 받을수 있었겠는데 가슴이 아프다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저도 주석님의 서거에 대한 비보를 받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습니다.
그처럼 정정하고 정력에 넘치시던 주석님을 만나뵈온 일이 불과 몇년전의 일인데 북남간의 수뇌상봉을 며칠 앞두고 이렇게 가시면 통일은 어떻게 합니까.
너무도 비통하고 통분한 상실의 아픔에 못이겨 저는 심장쇼크를 일으켜 쓰러지고말았습니다.
후에 정신을 차리게 되였을 때 저는 제 건강을 걱정하는 조선대사관일군들의 손을 부여잡고 우리가 주석님께 마음을 의지하고 통일운동도 하는데 이제는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고 어린애마냥 매달려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것은 저만이 아닌 동포들의 한결같은 심정이였습니다. 사실 그때는 딛고 선 땅이 꺼지는듯 하였고 대들보가 무너지는듯 한 심정이였습니다.
그러는 우리들에게 대사관일군들은 념려하지 말라고, 우리에게는 위대한 수령님과 꼭같으신 김정일장군님께서 계신다고, 그이께서 수령님의 위업을 그대로 이어가시니 조국통일도 반드시 성취된다고, 그러니 통일운동을 계속 힘있게 내밀라고 절절히 당부하는것이였습니다.
김일성주석님과 꼭같으신 김정일장군님께서 계신다, 그이께서 계시면 조선의 통일은 반드시 성취된다. 이 말은 신심을 잃고 주저앉았던 우리들에게 생의 활력과 앞날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들이 그 말의 의미를 다 파악한것은 아니였습니다.
김정일장군님에 대하여 아는것보다 모르는것이 너무나도 많은 우리 동포들이였습니다.
그전에 우리가 김정일장군님에 대하여 아는것이란 그이께서 김일성주석님의 후계자로서 오래전부터 국가의 전반사업을 지도하시였다는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조선방문과 고국에서 보내오는 자료들을 통하여 접하게 되는 고국관련소식들은 대부분이 김일성주석님과 관련된 소식들이였습니다.
후에 알게 된바이지만 그 모든것이 다 주석님의 업적을 고수하고 빛내여나가는데 모든것을 복종시키고 자신에 대하여 내세우는것을 극력 사양하신 장군님의 고결한 성품때문이였습니다.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와 손길아래 통일운동을 벌려나가게 되면서부터 우리들은 우리 민족이 얼마나 위대한분을 민족의 수위에 모시게 되였는가를 격동의 나날과 더불어 가슴뜨겁게 체험하게 되였습니다.
인민이, 겨레가 민족의 어버이를 잃은 슬픔으로 흐느끼던 비운의 그 시기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누구보다도 상실의 아픔이 크셨으련만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먼저 생각하시고 주석님의 조국통일유훈을 받들어 위대한 통일령도의 길을 결연히 이어가시였습니다.
감회도 새로운 1994년 8월 어느날이였습니다. 그날 우리들은 뜻밖에도 제5차 범민족대회가 예정대로 진행되게 된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받게 되였습니다. 민족의 대국상을 당하고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있는 조선에서 범민족대회와 같은 통일행사를 여느때와 같이 치르다니, 보통 상식으로써는 상상할수 없는 일이였습니다.
믿기 어려운 소식을 받아안은 우리는 바삐 행장을 꾸려가지고 평양으로 떠났습니다. 주석님께서 서거하신지 한달이 지났건만 우리일행은 가는 곳마다에서 어버이를 잃은 슬픔에 몸부림치는 고국인민들을 목격하게 되였습니다.
이처럼 온 나라가 슬픔속에 잠겨있는데 어떻게 큰 통일행사를 진행할수 있단 말인가.
해당 부문 일군으로부터 우리들은 그에 담겨진 실로 가슴뜨거운 이야기를 전해듣게 되였습니다.
고국에서도 많은 일군들이 온 나라가 비분에 잠겨있는데 어떻게 범민족대회와 같은 행사를 벌리겠는가고 하면서 8. 15범민족대회를 그만두는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고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조국통일부문의 일군을 부르시여 범민족대회와 관련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고 합니다. 그이께서는 일군에게 이번에 진행하는 8. 15범민족대회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이후 처음으로 진행하는 범민족대회인것만큼 수령님의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사상을 받들어 통일운동을 힘있게 전진시켜나간다는것을 보여주기 위해 특색있게, 크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는것입니다.
그이의 말씀을 전해들으며 우리들은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나라의 통일문제때문에 로고를 바쳐오신 주석님의 유훈과 불멸의 업적을 고수하고 조국통일을 기어이 이룩하실 김정일장군님의 철석같은 신념과 의지를 가슴뜨겁게 느꼈습니다.
이렇게 되여 평양에서는 제5차 범민족대회가 성대히 열리게 되였습니다. 겨레의 불타는 통일열망과 의지를 담은 행진대오가 도도히 흐르는 평양시내의 연도마다에서는 《어버이수령님의 통일유훈을 기어이 실현하자!》, 《조국통일》, 《조선은 하나다!》라는 우렁찬 함성이 연방 울려나왔습니다. 통일행사장으로 달리는 겨레의 가슴마다에는 뜨거운 통일열기가 끓어넘치였습니다. 그 열기가 분출하는 눈물겨운 광경을 수없이 목격하며 저는 또 한분의 위인을 민족의 어버이로 모시고 통일운동을 벌려나가는 긍지와 자부를 한껏 받아안게 되였습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구상하신대로 제5차 범민족대회는 김일성주석님의 념원대로 민족의 대단결로 조국통일을 반드시 이룩하고야말 온 겨레의 확고부동한 신념과 의지를 내외에 힘있게 과시하는 력사적계기로 빛나게 장식되였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끊임없이 걷고걸으시는 선군길은 외세의 무분별한 침략소동을 단호히 짓부시고 나라의 평화를 지키며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하루빨리 이룩하기 위한 위대한 애국애족의 길이였습니다.
조국통일, 민족의 이 소원 이루어주시려 애국헌신의 자욱을 새겨가시는 그 나날 그이께서는 언제나 주석님께서 조국통일위업의 길에 쌓으신 불멸의 업적과 로고를 잊지 않으시였습니다.
1996년 11월 24일, 김정일장군님께서 한몸의 위험을 무릅쓰시고 판문점을 시찰하신 이날은 온 겨레의 가슴속에 김일성주석님의 조국통일령도업적을 길이 새겨주고 통일을 위한 투쟁에로 불러일으키신 뜻깊은 날로 우리 민족사에 기록되였습니다.
이날 판문점에 이르신 그이께서 먼저 찾으신 곳은 주석님의 친필비였습니다.
깊은 감회속에 주석님의 친필비를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조국통일을 위하여 쌓으신 수령님의 위대한 업적과 크나큰 로고를 우리 인민의 조국통일운동사와 함께 후세에 길이 전하려고 그 친필사적을 화강석에 그대로 새겨 여기 판문점에 비로 세웠다고, 나는 분렬의 상징인 판문점을 통일의 상징으로 바꾸어놓으려는 념원에서 이곳 판문점에 조국통일의 구성이신 수령님의 통일친필비를 세우도록 하였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나라가 분렬된 첫 시기부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민족의 분렬을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시며 조국통일을 위해 불면불휴의 로고를 다 바치신 주석님의 거룩한 영상을 그리시는듯 친필비앞에서 오래도록 걸음을 옮기지 못하시며 수령님께서 몸소 구상하여 내놓으신 조선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로선과 방침들을 하나하나 꼽아나가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조국통일3대원칙,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 이것이 조국통일의 3대기둥, 3대헌장이라고 밝혀주시였습니다.
이날 김일성주석님의 유훈대로 반드시 조국을 통일하려 한다고 하신 김정일장군님의 결심이 어린 말씀은 빛나는 현실로 이어지고있습니다. 새 세기에 기어이 자주통일의 전환적인 국면을 펼쳐놓으시려는 그이의 용단과 탁월한 령도에 의하여 마침내 민족분렬사상 처음으로 북남수뇌분들의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마련되고 불멸의 자주통일강령인 6. 15공동선언과 그 실천강령인 10. 4선언이 채택되여 자주통일, 평화번영을 위한 력사적인 리정표가 세워지고 해내외에서 민족의 통일열기는 더한층 고조되였습니다. 그이께서 이 력사적인 북남선언들마다에 새겨주신 우리민족끼리리념은 그대로 주석님께서 밝히신 위대한 민족대단결사상과 자주적평화통일로선의 빛나는 구현입니다.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의 대문을 열어나가는 자랑찬 현실은 김일성주석님의 조국통일유훈을 실현하실 일념으로 심장을 불태우시며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 애국헌신의 자욱을 새겨가시는 김정일장군님의 정력적이고도 세련된 령도가 낳은 빛나는 결실입니다.
그 거룩한 령도의 자욱을 따라 통일운동을 벌려나가는 과정에 우리 동포들의 가슴속에는 김일성주석님 그대로이신 김정일장군님께서 계시기에 민족의 앞길은 더없이 창창하다는 신념이 억세게 뿌리내렸습니다.
김정일장군님은 나라와 민족을 누구보다 열렬히 사랑하시는 애국애족의 화신이십니다. 사상과 리념우에 민족을 놓으시고 민족을 위해 모든것을 복종시켜나가시는 위대한 애국자가 바로 장군님이십니다.
그이께서는 한없이 넓은 포옹력과 숭고한 덕망을 지니시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가림없이 모두 한품에 안아 통일의 길로 이끌어주고계십니다.
그 위대한 사랑의 손길은 우리 고려인들에게도 뜨겁게 미치고있습니다.
우리 동포들속에는 그 어떤 보수도 명예도 바람이 없이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멀리 해외에서 사는 우리들이 오직 민족을 위해, 민족의 통일을 위해 모든것을 바쳐간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우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돈이 모든 가치를 규정하고 인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자본주의사회입니다. 돈이 모든것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장사를 하거나 기업을 하면 남들 못지 않게 살수 있다는것을 알고있는 동포들이지만 가정과 생활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민족을 위한 길에 전심전력하고있는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도 일신의 안락한 생활보다도 적으나마 민족과 조선의 통일을 위하여, 동포사회를 위하여 자신을 바치는것을 락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누구보다도 깊이 헤아려주시고 우리들의 생활과 운명을 따뜻이 보살펴주시는분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이십니다. 그이께서는 고통련일군들은 그 어떤 보수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애국자들이라고, 이들의 마음을 우리가 알아주어야지 누가 알아주겠는가고 하시면서 우리 일군들이 고국을 큰집이나 본가집으로 알고 자주 찾아오도록 하여주시고 고국에 머무르는 기간 이역풍상에 겹쌓인 피로도 풀고 마음껏 즐기도록 세심히 돌봐주십니다. 동포들의 건강에 대해서도 늘 관심하시며 뜨거운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십니다.
고통련일군들에게 안겨주신 김정일장군님의 사랑에 대한 하많은 이야기가운데는 이러한 사실도 있습니다.
2005년 6월 모스크바종양병원으로 로씨야주재 조선대사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이 병원에서는 로씨야고통련녀성회 회장으로 사업하고있던 주진숙동포가 입원치료를 받고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장군님께서는 즉시 동포의 치료에 필요한 약들을 보내주도록 하시였습니다. 그이께서 보내주신 보약을 전달하기 위하여 대사가 오게 되였던것입니다.
주진숙동포는 사랑의 불사약을 부둥켜안고 오열을 터뜨리였습니다.
사람은 목마를 때 물을 가져다 주는 사람을 제일 고맙게 여깁니다. 그때로 말하면 동포가 불치의 병이라는 《사형선고》를 받고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이던 때였습니다. 가족들도 이제는 가망이 없다고 맥을 놓고있었습니다.
그러한 때 김정일장군님께서 고국에서 수만리 떨어진 이역의 동포를 위해 사랑의 불사약을 보내주시였으니 주진숙동포는 한없는 고마움에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습니다.
동포는 격정에 넘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외국에 사는 저에게 너무도 크고 귀한 약을 보내주시니 그저 목이 메고 눈물이 앞설뿐입니다. 장군님께서 불사약을 보내주시였으니 나는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나는 꼭 살아서 김정일장군님의 친어버이사랑에 기어이 보답하겠습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드리는 저의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기 바랍니다.》
그의 가족들도 《정말 김정일장군님은 친어버이이시고 조국은 어머니입니다.》라고 하면서 환자의 어깨를 부여잡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곁에서 이러한 꿈같은 광경을 목격한 담당의사는 《세상을 놀래우는 일이다. 이 병원에 입원한 우크라이나의 한 녀성은 치료를 끝내고 귀국할 려비가 모자라 우크라이나대사관에 찾아가서 사정이야기를 했지만 내쫓기였다고 한다. 그런데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한 해외동포를 위하여 그처럼 큰 은혜를 베푸시니 그분은 참으로 위대한분이시다.》라고 하면서 《김정일장군 만세!》를 불렀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동포애는 이렇듯 만사람을 격동시키는 위대한 사랑입니다.
동포들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는 크고작은것이 따로 없으며 정에 정을 더해주는것이 그분의 천품입니다. 그이의 한없는 사랑속에 저의 삶도 빛나고있습니다.
2008년 가을 고국을 방문하였던 저에게 격동의 순간이 차례졌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저에게 70돐생일상을 보내주시였던것입니다.
해외동포원호위원회의 일군들과 해외동포들이 다수 참가한 가운데 그들의 축하를 받으며 생일상앞에 앉은 저는 너무도 황송하고 고마워 몸가짐을 바로할수 없었습니다.
반세기이상을 민족과 떨어져 살아왔고 그후 민족을 위한 길에 들어섰다고는 하나 떳떳이 자부할만 한 일을 해놓은것이 없다고 생각하고있는 저는 생일상이 꿈에도 바랄수 없었던 과분한 은총으로 여겨졌습니다.
저는 격정을 가까스로 누르고 《김정일장군님, 고맙습니다.》라고 마음속으로 뇌이고 또 뇌이였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생일상을 받아안은 행복의 자리에서 저는 그이의 깊은 관심속에 통일운동을 벌려나가는 한없는 긍지와 행복감으로 가슴 벅차오름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이렇듯 크나큰 사랑과 은정속에 우리 고통련일군들이 살며 활동하고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 동포들의 생활을 어버이의 따뜻한 심정으로 보살펴주실뿐아니라 애국애족의 길에서 생을 마친 동포들에게 영생의 삶을 안겨주시였습니다.
국제고통련 위원장이였던 강일선생이 사후에 받아안은 사랑과 은정은 그 축도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강일선생은 생전에 장군님의 사랑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은 일군이였습니다.
그는 때때로 협심증발작을 일으켜 주변에서는 그를 두고 《폭탄을 안고 사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이에 대해 깊이 심려하시면서 그의 건강을 위해 각별한 관심을 돌려주시였습니다. 그이의 세심한 관심과 은정이 그의 생을 연장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강일선생이 고질적인 심근경색으로 사망한것은 1996년 12월 13일이였습니다.
그날 선생의 비보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아까운 사람을 잃었다고 못내 애석해하시며 조의대표단을 파견하여 장의식을 현지에서 크게 하고 평양에서도 영결식을 크게 할데 대한 말씀을 주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선생이 세상을 떠난것이 너무도 가슴아프시여 장의식과 관련한 모든 조치를 취해주시고도 추도회장에 친히 화환을 보내주시였습니다.
김정일장군님의 은정속에 강일위원장의 장의식은 12월 17일 따슈껜뜨시에서 국제고통련일군들과 동포들, 강일위원장의 유가족들, 우즈베끼스딴의
전, 현직 상들을 비롯하여 각계층 600여명이 참가하고 군악대까지 동원된 가운데 크게 진행되였습니다.
그날 강일위원장의 유가족들과 동포들은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과 은정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강일선생을 추억하시고 그의 공적을 높이 평가해주시였으며 그의 가족들의 생활도 따뜻이 념려해주시였습니다.
강일선생은 다른 나라의 관직에서 그 나라를 위해 인생의 대부분을 바쳐온 사람입니다. 그때의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불과 몇이 안됩니다. 그러나 인생말년의 짧은 몇해동안이지만 국제고통련 위원장으로 일해온 그는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이신 김정일장군님께서 잊지 못하시는 사람으로 동포들의 가슴속에 깊이 아로새겨지게 된것입니다.
애국에 사는 동포들에 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의리는 그것이 실로 천만사람들을 탄복하게 하는 이 세상 가장 숭고한 사랑과 의리인것으로 하여 행성에 울려퍼지는 김정일장군.
그이의 이렇듯 다심한 어버이사랑은 비단 고통련일군들뿐아니라 평범한 동포들모두에게 다 돌려지고있습니다.
움트는 푸른 싹으로부터 풍상에 아지 휜 고목에 이르기까지 고르롭게 비쳐주는 저 하늘의 해빛처럼 통일애국에 사는 우리 겨레모두를 따뜻이 보살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한 포옹력앞에서 그 누군들 고개를 숙이지 않을수 있으며 매혹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경애하는 장군님의 한없이 숭고한 민족애와 고매한 인덕에 이끌리여 행성의 한끝에 튕겨났던 곡절많은 해외동포들이 그이께 운명과 미래를 의탁하고 통일의 길로 꿋꿋이 걸어가고있는것입니다.
절세의 위인의 거룩한 령도의 자욱을 되새겨보는 저의 가슴속에는 김일성주석님 그대로이신 김정일장군님께서 계시기에 민족의 앞길은 더없이 창창하며 통일은 반드시 이룩된다는 신념이 억세게 뿌리내리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