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민족적인 통일운동에 합류하여 

 

단결은 곧 힘이고 힘은 곧 승리입니다. 뭉치면 이기고 흩어지면 패한다는것은 력사가 가르쳐주는 철리입니다. 민족공동의 과제인 통일을 이룩하자면 조선의 북과 남 그리고 해외의 온 겨레가 서로의 리념과 주의주장에서의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의 리익을 앞에 놓고 서로 단결하고 련대와 공동행동을 벌려나가야 합니다.

북과 남, 해외의 통일애국력량을 하나의 기치아래 묶어세우기 위한 련합체를 내오며 그를 위하여 범민족적성격을 띤 대회를 소집하는것은 1980년대말-1990년대초에 이르러 성숙된 요구로 나섰습니다.

여기에서 특별한 의의를 가진것은 1989년에 평양에서 진행된 해내외동포들의 조국통일촉진대회였습니다.

앞서 언급한바 있지만 이 대회에서는 1990년 8월 15일에 판문점에서 북과 남, 해외동포대표들로 조국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를 소집할데 대한 제의를 전폭적으로 지지하였습니다.

대회에서는 조국통일에 관한 선언과 해내외동포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습니다.

조국통일촉진대회는 우리가 사는 곳, 우리가 신봉하는 사상과 리념은 서로 달라도 그 뜻은 오직 하나 민족의 자주, 조선의 통일이라는것을 세계에 과시하고 해내외동포들사이의 련대의지를 더욱 굳히였습니다.

이 대회는 우리 고려인들에게 있어서는 더우기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계기로 되였습니다.

대회를 통하여 이전 쏘련지역에서 사는 조선동포들은 민족분렬의 비극과 아픔을 가슴에 새기였으며 겨레의 통일운동에 발걸음을 맞추어나갈 민족적사명감을 자각하게 되였습니다. 그것이 조선의 통일을 위해 활동하는 조직을 내오게 된 중요한 동기로 되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1990년 8월 15일, 마침내 조선해방 45돐이 되는 이날 조선의 판문점과 서울에서는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기 위한 력사적인 회합인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가 온 겨레의 크나큰 관심속에 대성황리에 열리였습니다. 비록 반통일세력의 방해책동으로 범민족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앉지 못하게 된 조건에서 판문점과 서울 두곳에서 진행되였지만 대회는 같은 시각에 같은 안건을 가지고 동일한 일정에 따라 진행되였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경내에서 진행된 범민족대회는 8월 13일 조국통일촉진 백두-한나대행진 백두산출정식으로부터 막을 올리였습니다.

조국통일촉진 백두-한나대행진대는 조선통일의 열풍을 세차게 일으키며 수백리 먼길을 지나 8월 14일 평양에 도착하여 여러가지 행사들을 진행하였습니다.

8월 15일 판문점 북측지역에서 수백명의 해외동포들과 남조선의 전민련대표를 포함한 1 000여명의 대표들 그리고 수많은 개성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력사적인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가 성대히 진행되였습니다.

대회에서는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범민족대회결의문과 해내외동포들에게 보내는 호소문, 북남당국과 유엔사무총장, 미국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와 일련의 문건들을 채택하였습니다.

범민족대회일정에서 중요행사의 하나였던 판문점에서의 합토제와 기념식수, 평양에서 있은 련환모임, 《통일문화의 밤》행사에서도 대표들은 통일을 지향하는 뜻과 마음을 두터이 하였습니다.

반통일세력들의 악랄한 방해책동속에서도 성과적으로 진행된 범민족대회는 우리 민족은 둘로 될수 없는 오직 하나임을 내외에 엄숙히 선언하였으며 통일을 바라는 겨레의 지향은 그 누구도 막지 못한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주었습니다.

범민족대회에 참가하였던 우리 동포들도 저저마다 《가슴에 깊이 맺혔던 이국살이설음이 싹 사라졌다.》, 《조국, 조국하였는데 조국이 이렇게 좋은줄 몰랐다.》, 《우리들사이에 존재하는 정견과 신앙은 통일을 위해 단합하는데서 문제로 되지 않는다는것을 몸과 마음으로 확인하였다.》고 격정에 넘쳐 말하였습니다.

력사적인 범민족대회는 조선의 통일을 위한 민족대단결과 겨레의 통일운동이 새로운 높은 단계에 들어서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되였습니다.

그것은 그후에 련이어 진행된 여러가지 형식의 통일행사들이 실증해주고있습니다.

1990년 9-10월에 있은 제11차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온 민족의 가슴을 통일열기로 뜨겁게 달군 북과 남의 선수들에 대한 공동응원문제가 실현된데 이어 10월에 북남사이의 통일축구경기가 평양과 서울에서 성황리에 진행되고 범민족통일음악회가 진행되였으며 12월에는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가 진행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에게 통일의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고 조선민족의 드높은 통일의지를 온 세상에 과시한 커다란 경사였습니다.

1991년에는 북과 남의 선수들이 유일팀을 무어 제41차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제6차 세계청년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세속에서 1990년 9월부터 조선의 북남사이에 고위급회담이 열리게 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겨레에게 통일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고 민족의 통일대행진을 힘있게 추동한것으로 하여 이전 쏘련지역 모든 동포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환영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온 민족의 통일열기가 높아가는 가운데 1990년 11월 민족대단결의 기치밑에 북과 남, 해외의 통일애국력량이 민족앞에 결의한대로 상설적인 전민족통일전선체인 조국통일범민족련합(범민련)이 결성된데 이어 1992년 8월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련합(범청학련)이 결성되고 범민련과 범청학련의 산하조직이 조선의 북과 남 그리고 해외의 여러 지역들에 조직되게 되였습니다.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의 뜨거운 통일열망속에 조선의 통일을 위한 민족대단결투쟁은 막을수 없는 력사의 흐름으로 되였습니다.

1990년 8월 제1차 범민족대회가 막을 올린 후 그것이 정례화되여 조선의 북과 남, 해외에서 해마다 범민족대회가 온 민족의 드높은 통일열의속에 진행되였습니다.

이전 쏘련지역안의 우리 동포들도 통일운동의 첫발을 뗀때로부터 이러한 전민족적인 통일운동에 적극 뛰여들었습니다.

고통련에서는 1차 범민족대회때부터 매해 정례적으로 진행되는 범민족대회에 자기의 대표들을 파견하여 겨레의 통일지향에 목소리를 합치고 걸음을 맞추어나갔습니다.

고통련에서는 1990년에 진행된 범민족대회와 범민족통일음악회 등에 수백명의 고려인들을 참가시키여 민족적단합과 통일기운을 조성하는데 기여하였으며 8.15범민족대회를 계기로 하여 따슈껜뜨로부터 모스크바, 원동을 거쳐 조선에 가는 편지전달계주단을 조직하여 동포들속에서 통일기운을 고조시키였습니다.

국제고통련대표의 자격으로 참가한 정일심동포는 범민족대회에서 다음과 같이 토로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보았겠지만 이 판문점대밑에 만리장성처럼 쌓여진 콩크리트장벽은 과연 누구의 소산이며 무엇을 뜻하는것이겠습니까.》

이렇게 허두를 뗀 동포는 민족분렬의 장본인들인 미제와 남조선당국자들의 《두개 조선》조작책동의 본질을 폭로단죄하면서 토론을 계속하였습니다.

《조선은 하나입니다. 민족도 하나, 령토도 하나, 더는 헤여져 살수 없는 하나의 민족, 하나의 조국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구촌 그 어디에 살든 조선민족의 한 성원이라는 자각과 시대적사명감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사상과 리념을 뛰여넘어 나라의 통일성업에 적극 이바지합시다.

그리하여 이 조국땅우에 통일되고 세세년년 무궁번영하는 자주독립국가를 일떠세웁시다.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 만세! 민족의 대단결 만세!》

이것은 정일심동포만이 아닌 우리 고통련성원들의 한결같은 토로이기도 하였습니다.

고통련에서는 1991년 8월에 진행된 백두-한나대행진과 북, 남, 해외동포청년학생통일회담에 청년조직대표를 참가시킨것을 비롯하여 범민련 2차대회를 계기로 통일분위기조성에 적극 기여하였습니다.

저도 1994년 8월 평양에서, 1996년 8월에는 중국의 선양에서 그리고 1998년 8월 판문점에서 진행한 범민족대회들에 고통련대표단 성원으로 참가하여 전민족적인 통일운동의 마당에서 우리 고려인들의 통일의지를 펼쳐보였습니다.

고통련에서는 동포들속에서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통일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습니다.

고통련에서는 1992년 북남합의서리행을 촉구하여 연 574만명의 동포들과 이전 쏘련사람들을 망라하는 서명운동을 벌리였습니다. 또한 동포들은 비전향장기수 리인모를 가족과 조국의 품으로 돌려보낼데 대한 편지를 남조선당국자들과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내여 국제적여론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통일운동을 년중 줄기차게 벌렸습니다.

1995년 한해동안 진행한 통일운동에 대하여 생각나는대로 개괄해보겠습니다.

그해 1월 24일 평양에서는 조국해방 50돐을 맞으며 통일대축전을 진행할것을 호소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당, 단체련합회의 호소문이 발표되였습니다.

우리들은 호소문에 적극 호응하여 통일대축전을 성과적으로 보장하여 통일운동을 한층 고조시키기 위한 활동을 벌려나갔습니다.

우선 호소문을 지지하여 고통련부위원장들이 각각 담화들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긴급협의회를 열고 통일대축전 국제고통련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한편 고통련산하 각 조직들에서도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축전준비사업에 착수하였습니다.

우리들은 4월에 제2차 조선민족예술축전을 따슈껜뜨에서 성대히 진행하는것으로부터 민족통일대축전을 위한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통일대축전실현을 위하여 우리들은 각 공화국, 주, 지역들에서 다양한 형식과 방법의 정치활동과 행사를 적극 추진시켜나갔습니다.

우즈베끼스딴에서는 700명, 끼르기즈스딴에서는 70여명의 참가밑에 통일집회가 진행되였으며 로씨야 원동지역에서는 고통련과 다른 동포조직과의 공동주최로 싸할린과 하바롭쓰크에서 통일집회를 진행하였습니다.

싸할린주에서 진행된 통일집회에서는 김정일장군님께 삼가 드리는 편지가 채택되였으며 뒤이어 동포들에게 통일의식을 깊이 심어준 통일음악회가 동포들의 열렬한 절찬과 환호속에 열렸습니다.

통일음악회가 끝난 다음 동포들은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적극 지지하는 서명운동에 참가하였습니다.

까자흐스딴고통련에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적극 지지하는 연구토론회가 진행된것을 비롯하여 여러 공화국 고통련조직들에서도 담화와 방송연단 등 다양한 형식과 방법의 통일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이밖에도 고통련에서는 8월에 평양에서 진행하는 민족통일대축전에 수십명의 동포들을 파견하여 온 겨레의 통일열망에 우리들의 마음도 적극 합치도록 하였습니다.

통일대축전을 성사시키기 위한 부단한 정치활동의 결과 동포들속에서 통일분위기가 더한층 높아진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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