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련기관지 《통일》
앞서 서술한 이야기들에 《통일》의 이름을 단 신문과 뷸레찐에 대한 말이 여러번 나왔습니다.
오늘도 그 이름으로 정기적으로 발간되고있는 고통련기관지들에도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들의 마음이 짙게 어려있습니다.
사회의 발전과 인간생활에서 출판물은 커다란 작용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가 다 인정하고있는것입니다.
가까운 실례로 세계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혁명을 승리에로 이끈 레닌의 활동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로씨야의 근로대중을 묶어세워 그들을 사회주의혁명에로 불러일으키는데서 레닌이 중요한 의의를 부여한것은 신문이였습니다.
그의 저서 《무엇으로부터 시작할것인가?》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먼저 신문이 필요하다. 신문없이는 원칙적으로 일관된 전면적인 선전 및 선동의 계통적수행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선전선동의 계통적수행은 일반적으로 사회민주주의의 항구적인 주요임무이며 가장 광범한 주민층속에서 정치 및 사회주의의 제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있는 현시기의 특히 간절한 임무이다.》
레닌이 출판물을 얼마나 중시하였는가가 이 몇줄의 글에 잘 드러나있습니다.
하기에 레닌은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하기 훨씬 전인 1900년 12월 신문 《이스크라》(불꽃)를 발간하였습니다. 《이스크라》는 로동계급의 당창건의 기초를 마련하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놀았습니다.
이에서도 알수 있는바와 같이 력사는 이미 사회발전에서 출판물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가에 대하여 충분히 증명하였습니다.
하기에 《검이 못하는 일을 붓이 한다.》, 《칼끝은 2cm만 비켜나가면 되고 혀끝은 9시간 지나면 잊어버리지만 붓끝은 영원하다.》는 말도 생겨났는가 봅니다.
그만큼 출판물은 사회활동에서 위력한 무기의 하나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처럼 출판물의 역할이 중요하기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들은 물론 적지 않은 사회단체들이나 조직들도 자기의 기관지들을 가지고 활동하고있습니다.
우리 고통련에서도 통일의 숭고한 목적을 실현함에 있어서 출판물을 적극 활용하고있습니다. 고통련에는 고통련기관지로서 신문 《통일》과 뷸레찐 《통일》이 있고 그를 제때에 출판해낼수 있는 인쇄설비도 그쯘히 갖추어져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출판기지에 의거하여 통일활동을 능동적으로 벌려나가고있습니다.
우리가 출판기지를 꾸리게 된것도 통일활동을 적극화해나가려는 의도로부터 출발한것이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자기의 출판물이 있어야 하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된것은 고통련조직을 뭇고 활동하는 초기부터였습니다.
고통련조직이 무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동포들이 고국과의 련계가 거의나 없었다는것은 앞에서도 언급하였습니다.
고국과 민족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였던 우리 동포들에게 있어서 민족의 통일문제 역시 생소한것이였습니다.
그러한 동포들에게 민족의 넋을 심어주고 통일에 대한 자각을 안겨주어 빠른 시일에 그들모두를 민족의 통일을 위한 투쟁에로 불러일으키자면 동포일군들의 힘만으로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더우기 동포들이 이전 쏘련의 광활한 지역에 불균등적으로 널려사는 조건에서 매 시기마다 조직의 의도와 새 소식을 모든 동포들에게 제때에 알려준다는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였습니다.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는데서 출판물만큼 위력한 수단은 없었습니다.
조직이 확대되고 통일운동이 심화됨에 따라 우리들은 날이 갈수록 정기간행물에 대한 욕구를 절실히 느끼게 되였습니다.
그러나 이전 쏘련의 붕괴와 함께 모든것이 사영화되여가고있는 당시의 실정에서 출판기지를 꾸린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들을 도와나선것은 역시 제 민족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출판기지를 꾸리기 위하여 고심하고있을 때 고국에서는 출판물인쇄에 필요한 인쇄설비 일식을 보내주고 그 운영을 위해 유능한 인쇄기술자들을 파견해주었습니다. 고국의 인쇄기술자들은 이국의 불리한 환경속에서도 몇해동안이나 고생을 하면서 동포들이 제힘으로 인쇄설비를 다룰수 있을 때까지 성의껏 도와주었습니다.
일본에 있는 총련조직에서도 출판기지를 꾸리는데 필요한 물질적방조를 주었습니다.
이에 고무된 고통련조직의 우리 동포들도 물심량면의 성의있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겨레의 따뜻한 정, 뜨거운 통일열망에 떠받들려 1993년 4월 14일에는 신문 《통일》이, 1996년 9월 9일부터는 뷸레찐 《통일》이 발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고통련의 기관지들에 모두 《통일》(《예진스뜨보》) 이라는 이름을 달았습니다. 그 제명에는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 동포들의 마음이 반영되여있습니다.
세계에는 헤아릴수 없이 많은 정기간행물들이 모두 자기의 이름을 가지고 출판되고있습니다. 각이한 그 이름들에는 하나같이 그것을 출판하는 집단이나 단체의 목적과 의도가 반영되여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나라나 집단도 자기의 기관지들에 꼭같이 하나의 이름을 단 례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기관지들에 《통일》이라는 하나의 이름을 붙인것은 그것이 모두 겨레의 숙망인 통일에 이바지하기를 바라는 동포들의 마음을 반영하였기때문입니다.
그러한 심정은 창간호들에도 어리여있습니다.
신문과 뷸레찐 창간호들의 첫장들에 실린 기사들에 대하여서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신문 《통일》의 1면에는 《봄예술축전》, 《통일지지 친선의 밤》, 《모두가 하나의 운명》이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있습니다.
신문의 상단에는 《봄예술축전》이라는 기사를 김일성화사진과 함께 실었습니다. 기사에는 그해 2월에 따슈껜뜨에서 여러 나라의 동포예술단들의 참가하에 진행한 제1차 조선민족예술축전소식에 대하여, 여기에서 당선된 예술단체들이 평양에서 진행하는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참가하게 된다는것을 상세하게 실었습니다.
《통일지지 친선의 밤》에는 따슈껜뜨에서 조선의 통일을 지지하는 국제친선의 밤이 성대히 진행된 소식을 실었습니다. 《모두가 하나의 운명》이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아쏘크가 창립된 3년기간 조선의 통일을 위한 활동과 민족문화를 재생하기 위한 사업 등 여러 활동을 벌려오면서 이전 쏘련지역의 광범한 동포들과 여러 국가기관들의 인정을 받는 조직으로 발전하여온데 대하여, 그 과정에 동포들이 서로가 하나의 운명으로 결합되여있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는데 대한 내용을 실었습니다.
뷸레찐 《통일》의 첫 표지에는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께서 사업을 토의하시는 영상을 모시였습니다.
다음표지에는 상단에 《경애하는 김일성주석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대한 외국인들의 반향》이라는 제목으로 세계인사들의 반향을 실었습니다. 아래에는 《9. 9절을 맞으며》라는 제목으로 국제고통련 위원장의 글을 실었습니다.그 일부를 그대로 인용해보겠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경애하는 김일성주석님에 의하여 1948년 9월 9일에 창건되였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창건된 이날을 오늘 조선인민과 함께 전세계의 많은 나라 인민들이 뜻깊게 기념하고있습니다.
이 뜻깊은 날을 맞으면서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창건하시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에 의하여 령도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앞으로 더욱 승승장구하리라고 굳게 확신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조선은 아직 통일되지 못하였습니다.
조선의 통일은 조선사람이라면 그가 북에 살건 남에 살건 해외에 살건 모두가 바라는 가장 큰 소원입니다.
조선은 반드시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통일되여야 합니다.
민족의 분렬을 더는 지속시켜서는 안될것입니다.
모두다 전민족대단결의 기치밑에 하나로 굳게 뭉쳐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의 그날을 앞당겨와야 할것입니다.》
창간호들은 다른 지면들에도 민족의 통일문제와 동포조직실태를 비롯하여 우리 민족과 관련한 기사들과 상식들을 실었으며 이전 쏘련지역의 일부 소식들도 실었습니다.
신문과 뷸레찐은 열렬한 민족애와 통일에 대한 겨레의 뜨거운 열망을 담고있는것으로 하여 나오자마자 동포들의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널리 애독되였습니다.
고통련에서는 동포들의 기대에 맞게 기관지발간을 따라세우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우선 통일을 지향하는 고통련기관지로서의 성격을 살리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였습니다. 공화국의 통일방안들과 제안들, 각종 통일행사들, 조선의 북남정세 등 통일관련소식들과 함께 민족의 력사와 문화전통을 비롯한 민족성관련기사들의 비중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독립국가협동체지역에서 살고있는 동포들의 생활과 활동에 대한 소식들, 고통련의 활동계획들에 대해서도 반영하였습니다.
특히 우리는 출판물을 통하여 조선의 북남정세와 관련한 우리의 견해와 그에 대한 조직의 활동내용도 제때에 알려주어 매 시기마다 통일운동에 대한 고통련조직의 립장을 내외에 밝히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였습니다. 물론 그 계기마다 동포들이 민족의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통일운동에 대한 의욕과 지향도 높여나가도록 하는데 중요한 목적을 두었습니다.
한편 출판물들에는 조선과 독립국가협동체지역 나라들사이의 교류와 호상래왕을 비롯한 친선관계문제들에 대해서도 실었습니다. 출판물은 해외동포기관지로서의 특성에 맞게 조선어와 로어를 적절히 배합하여 편성하였습니다.
자료보장에도 큰 힘을 넣었습니다. 고국과의 련계밑에 고국의 출판물들을 정상적으로 입수하는 체계를 세우고 광범한 동포들에게도 의거하였습니다. 한편 주재국인사들도 적극 인입하였습니다. 로씨야사회과학원 동방학연구소 실장인 와닌선생이 뷸레찐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있는것이 그 하나의 사례로 됩니다.
우리는 보급에도 응당한 관심을 돌렸습니다. 신문 《통일》은 현재 우즈베끼스딴 출판물배포쎈터를 통하여 우즈베끼스딴의 지방들과 독립국가협동체지역에 있는 고통련조직들에로 배포되고있습니다. 뷸레찐 《통일》도 자기의 정연한 보급체계를 갖추고 각 공화국 고통련조직들과 로씨야의 지역별고통련조직들에로 배포되고있습니다.
기관지발간을 정상화하면서 부수도 점차적으로 늘여나가고있습니다.
신문 《통일》을 반월간으로부터 주간지로, 4면으로부터 8면으로 늘이였으며 뷸레찐 《통일》은 분기에 1호씩 발간하던것을 월간지로 발간하여 동포교양에 리용하고있습니다.
6. 15북남공동선언이 채택되고 전민족적범위에서 통일운동이 거세차게 벌어지는데 맞게 우리들은 기관지들마다에 통일관련소식들을 더욱 많이 싣는 한편 출판물의 종류를 늘이고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노력하고있습니다.
고통련에서는 발전하는 현실에 맞게 독자들의 수요와 통신의 신속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인터네트홈페지를 개설하고 2009년 4월 전자신문 《통일》의 창간호를 내고 선전물을 통한 통일운동을 더욱 확대해나가고있습니다.
오늘 고통련기관지들은 《통일》이라는 성스러운 그 이름과 함께 동포들에게 조선민족의 넋을 깊이 새겨주고 통일의 열망을 불러일으키는데 적극 기여하고있습니다.
그 성과속에는 창간호와 함께 오늘까지 부닥치는 어려움을 통일에 대한 밝은 희망으로 헤쳐오며 신문과 뷸레찐발간에 모든것을 다 바쳐오고있는 주영일, 안향진동포들의 숨은 노력이 어리여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