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예술의 가치를 새겨안으며
민족문화는 민족성을 특징짓는 중요한 징표의 하나입니다. 여기서 노래와 춤은 민족문화의 중요한 내용을 이룬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것은 거기에 민족의 정신과 기질, 정서가 반영되여있을뿐아니라 력사와 전통이 담겨져있기때문입니다.
따라서 민족예술에 대한 태도는 그 민족의 본태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의 하나로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고통련안의 동포들의 놀라운 성장과정은 이에 대한 뚜렷한 증시로 됩니다.
이렇게 노래와 춤이라는 주제로 서두를 떼놓고보니 마음부터 흐뭇해지는것을 금할수 없습니다.
우리 고통련의 활동이나 동포들의 생활은 노래와 춤을 떼여놓고는 생각할수 없습니다. 여러 공화국 고통련들은 물론 그 산하조직들까지 자기의 예술단체를 가지고있으며 그에 의거하여 자기의 활동을 진행하고있습니다. 노래와 춤으로 시작되고 노래와 춤으로 이어지는것이 동포들의 생활입니다.
예술적기량 또한 세련되여 다른 민족들도 감탄하고 부러워하고있으며 주재국의 정부와 기관들의 행사들에도 자주 초대받군 합니다.
시작부터 너무 요란하지 않는가 하는감도 없지 않지만 사실 우리 동포들의 민족문화활동에 대한 자랑거리는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여기서 이야기하려는것은 단지 이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으려는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우리 동포들의 민족문화활동에 대하여 한없는 긍지를 가지게 된데는 가슴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고통련의 창립당시까지만 하여도 우리 동포들속에는 제 민족의 노래와 춤동작 하나도 제대로 아는이가 없었습니다. 있다면 부모들로부터 물려받은 옛 시기의 구슬픈 타령 몇곡조가 전부였습니다. 그러하던 우리 동포사회전반이 불과 10여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민족의 노래와 춤으로 가득차게 되였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이런 놀라운 성과속에는 김정일장군님의 뜨거운 동포애적사랑과 그이에 의하여 교양육성된 고국예술인들의 사심을 모르는 헌신적노력이 깃들어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전하자면 몇권의 책으로도 다 쓸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쉽지만 극히 몇가지 사실들과 동포들의 반향자료들을 그대로 담는것으로 그 사연을 전할가 합니다. 그것이 그 어떤 미사려구보다도 독자들에게 저의 심정을 전달하는데 설득력이 더 있으리라 봅니다.
우리 동포들이 제 민족의 아름답고 고상한 노래와 춤을 알게 된것은 이역땅에서 고국예술인들의 공연을 보게 된 때부터입니다.
이전 쏘련지역의 우리 동포들이 민족예술의 발전을 위해 모대기고있을 때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름있는 예술단들과 예술지도교원들을 현지로 파견해주시였습니다.
그리하여 로씨야와 중앙아시아지역을 비롯한 이전 쏘련의 넓은 지역에 고국의 예술단들이 여러차례 파견되여 순회공연을 진행하였습니다.
1995년 6월이라고 생각됩니다.
그해에 고국의 소편대예술단이 중앙아시아지역을 순회하면서 공연을 진행하였습니다.
따슈껜뜨에서 공연하는 날 수많은 동포들이 공연을 보기 위하여 모여들었습니다.
장내를 가득 채우며 맑고 그윽하게 울리는 민족악기소리, 거기에 맞추어 부르는 흥취나는 민요와 발전하는 조선의 현실을 반영한 노래들, 정겹고 우아한 춤가락들…
숨길수도 없고 과장할수도 강요할수도 없는것이 사람의 감정정서입니다. 민족적정서와 감정이 흘러넘치는 예술단의 공연은 동포들을 몹시 흥분시켰습니다. 그들은 객석에서 저도 모르게 민요가락들을 따라부르다가는 어느새 어깨를 들썩이고 덩실덩실 춤까지 추며 너무 좋아 어쩔바를 몰라하였습니다. 이역땅에서 오래간만에 그리운 고향의 정취, 조국의 정서를 느끼게 된 기쁨에 눈물이 글썽한 늙은이들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공연은 끝났어도 동포들은 오래도록 공연장소를 떠나지 못하였으며 그토록 훌륭한 예술단을 보내주신 김정일장군님을 우러러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또 드리였습니다.
조선의 정서, 민족의 정서를 안고 소편대예술단은 동포들의 열광적인 환호와 기대속에 그해 6월과 7월 중앙아시아지역을 순회하면서 37회의 공연을 펼치였습니다.
8명의 예술인들이 동포들의 심장을 틀어잡았습니다.
《배우들이 노래도 잘한다. 어떻게 그런 고운 소리를 내는지 모르겠다. 나는 공연을 보는 동안 이국땅에 산다는것을 잊어버리고 조국의 어느 극장에 가있는감을 느꼈다. 조국의 예술은 내용이 좋고 아름답다. 그리고 힘이 있어서 좋다.》(까자흐스딴 침껜뜨시의 동포)
《조국의 예술은 참으로 놀랍게 발전하였다. 황홀하다. 나는 남조선에도 가보았고 그들의 공연을 보았지만 조국과는 대비도 되지 않는다. …
우리 노래, 우리 춤이 얼마나 좋은가. 죽기 전에 평양에 꼭 가보고싶다.》(우즈베끼스딴 따슈껜뜨시의 동포)
《8명으로 구성된 예술단이 온다고 하길래 처음에는 그것이 잘되겠는가고 사실은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이번에 참 잘되였다. 역시 우리의 예술이 제일이다. 고통련일군들이나 동포들이 우리에게 전화를 걸 때면 예술단에 대한 말부터 하고있다. 다들 자기네한테는 예술단이 언제 오는가고 하고있다. 이번에 우리 고통련의 위신이 올라갔다. 우리가 동포들속에 나가 선전하는것보다 몇배나 더 효과가 컸다.》 (국제고통련 부위원장)
이것이 그때 공연을 본 동포들의 반향의 일부입니다. 이러한 찬탄의 목소리를 자아낸 고국예술인들의 공연은 그 이후시기에도 계속되였습니다.
여러차례에 걸치는 예술단의 공연을 통하여 동포들은 찬란히 개화발전하는 조선예술의 실상을 목격하게 되였습니다.
이 시기에 파견되여온 고국예술교원들의 활동은 동포들이 아름답고 우아한 민족예술의 참모습을 실감케 하는 또하나의 계기로 되였습니다.
중앙아시아지역에 고국의 예술지도교원들이 파견되여오기 시작한것은 1990년부터였다고 생각됩니다. 그해 5월에 우즈베끼스딴 신생조선가무단 성원들이 고국을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고국에서 체류기일까지 연장해가며 예술전습을 받으면서 참다운 민족문화예술의 실상을 직접 보고 느끼였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가무단성원들의 체류일정을 세심히 보살펴주시고도 그들이 돌아갈 때에는 고국의 이름있는 노래와 무용전문가들을 함께 현지에 보내여 그들을 구체적으로 도와주도록 하여주시였습니다.
그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고국의 우수한 예술교원들이 이전 쏘련지역에 파견되여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술지도교원들은 파견지들에서 민족예술을 배우고싶어하는 동포들에게 우리 민족의 춤과 노래를 보급하는것과 함께 공연활동을 적극적으로 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의 적극적인 활동은 잠자고있던 동포들의 민족의식에 눈을 틔워주고 그들의 가슴속에 제 민족의 노래와 춤을 배우려는 충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많은 동포들이 조선노래와 춤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예술단들도 조직되였습니다.
고통련조직에서는 이들의 열의에 맞게 동포들의 민족예술활동을 적극 장려하였습니다. 예술축전은 그 한 고리였습니다.
1993년 2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탄생기념일을 맞으며 따슈껜뜨에서는 조선예술축전을 처음으로 진행하였습니다.
고통련에서는 이때부터 예술축전을 매해 진행하는것을 전통화하고 여기에서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파견할 예술단과 동포들을 선발하였습니다.
이것은 민족예술에 대한 동포들의 관심과 열의를 더욱 불러일으켰으며 비온 뒤 버섯처럼 예술단들이 곳곳에 조직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민족예술을 배우려는 동포들의 열의가 높아가고 예술단들이 많이 조직됨에 따라 각지의 고통련 산하조직들에서 예술교원들의 지도를 요구해왔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이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싶은데 예술지도교원들의 수가 제한되여있어 난처하였습니다. 노래와 춤, 민족악기를 기초부터 교육하고 숙련시키며 안삼블을 맞추는 등 그 예술적기량을 세련시켜야 하는 예술의 특성상 한명을 키우는데도 많은 시간과 품이 드는것은 일반상식입니다. 한개 예술단체의 기량을 완성시키는것도 대단한 성과였습니다. 그런 조건에서 산하조직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기 곤난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고충을 알게 된 예술교원들은 자기 민족의 예술을 배우려는 동포들의 열의가 얼마나 좋은가고 하면서 다른 예술단체들에 대한 지도도 주저없이 맡아나섰습니다.
그들은 한곳에서 며칠씩 집중적으로 기초훈련을 준 다음 일정한 기간 자체로 숙련시키도록 하고 후에 다시 교육을 주는 방법으로 여러곳을 오가며 동포들의 예술전습을 보장하였습니다. 그러다나니 그들이 받는 정신육체적부담은 말할수 없이 컸습니다. 게다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있는 동포거주지역들을 찾아 때로는 국경까지 넘나들어야 하는 지루한 려행까지 겹쳐 부담은 더욱 커졌습니다. 그런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그들은 동포들에게 우리 말과 글까지 배워주었습니다.
그러는 예술교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고통련일군들은 누구나 감동되지 않는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의 편의를 더 잘 보장해주지 못하는 죄스러운 마음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고통련일군들은 그들에게 귀한 선생님들에게 고생시켜 안됐다고,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여러번 미안함과 간청의 말을 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동포들의 예술기량이 눈에 띄게 나아지는 모습을 보니 힘든줄 모르겠다고 하면서 너무 마음쓰지 말라고 도리여 우리들을 위안하였습니다.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하여 많은 동포들속에서 민족의 노래와 춤이 흘러나오게 되였습니다.
이에 대해 동포들의 반향으로 그러한 실상을 대신해보겠습니다.
《조국선생님들이 배워주는것을 보니 확실히 다르다.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잘하는것을 보니 정말 우리 조국이 좋다. 남조선사람들은 돈을 달라고 하면서 좋지도 않은것을 배워주는데 조국사람들은 돈 한푼 안 받고 배워주니 정말 고맙다.》(우즈베끼스딴 따슈껜뜨시 동포)
《아이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는것을 보니 눈물이 난다. 남조선목사들은 교회당에 다니면서 돈을 내라고 하는데 북조선선생님들은 돈 한푼 안 받고 배워주니 조국이 정말 좋고 진심으로 우리를 도와준다.》(우즈베끼스딴 글리스딴시의 녀성)
《우리는 남조선에서 온 사람들도 대상하여보았는데 그들은 처음에는 하나를 주고 나중에는 열개를 빼앗아가는 돈밖에 모르는 사람들이였다.
그래서 우리는 조국에서 온 선생들에게 처음에는 곁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내 손자, 손녀들에게 노래와 악기를 배워주는것을 보고 진심으로 우리를 도와주러 왔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끼르기즈스딴 비슈께크시의 로인)
《예술전문가들이 이 나라 땅에 처음으로 오다보니 오늘에야 이 땅에서 자기 민족의 고유한 악기소리와 째인 안삼블, 정확한 노래를 듣게 되였다.
나는 선생들이 와있는 기간 생활조건과 사업조건을 잘 보장해주지 못하였는데 조국에서 온 선생들은 진정으로 우리를 도와주었다. 여기 고통련회관에 매일과 같이 찾아오는 로인들은 나의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분들이다. 그들에게 의거하여 사업하는 나는 진심으로 선생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현재 로인들이 점심식사도 하지 않고 떠나는 선생들에게 인사를 하겠다고 기다리고있다.
이번에 선생들이 한 일은 돈으로는 계산할수 없다. 사업성과는 우리 동포들과 함께 여기 끼르기즈스딴땅에 영원히 남아있을것이다.》(끼르기즈스딴고통련 위원장)
보는바와 같이 몇가지 반영들에서도 노래와 춤을 통해 민족을 알고 조선민족의 넋을 지녀가는 동포들의 성장모습이 방불하게 안겨옵니다. 여기에는 또한 자신들을 위해 성실한 땀을 바쳐 진심어린 노력을 기울인 고국의 예술교원들에 대한 동포들의 감사의 마음이 뜨겁게 어려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한두사람의 마음만이 아닙니다. 동포사업을 전담하는 사업상특성으로 저는 고국의 예술지도교원들이 파견되여 활동하는 곳곳에서 이러한 숨결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비할바 없이 높은 경지에 이른 고국인민들의 사상정신적풍모에 대하여 가슴뜨겁게 느꼈습니다.
아울러 이런 훌륭한 교원들을 보내주시여 동포들에게 민족의 넋을 심어주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신 김정일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의 마음을 깊이 새겨안았습니다.
이것은 저뿐이 아닌 우리 동포들의 한결같은 심정이였습니다.
하기에 많은 동포조직일군들과 동포들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뜨거운 감사의 인사가 담긴 편지들을 올리고있습니다.
우즈베끼스딴동포들은 김정일장군님께 올리는 편지에서 자기들의 심정을 이렇게 담았습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
우리 우즈베끼스딴고통련 일군들은 장군님께서 여기 우리 동포들에게 돌려주시는 사랑과 배려가 너무도 고마워서 우리 회원들의 한결같은 심정을 담아 경애하는 장군님께 삼가 이 편지를 올립니다.
장군님. 장군님의 사랑과 배려에 의하여 조국과 멀리 떨어진 여기 우즈베끼스딴땅에 조국에서 온 조선말교원과 예술지도교원들이 몇해째 와서 동포들에게 우리 글과 노래, 춤을 배워주어 그들이 조국과 민족을 알고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 나설수 있게 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습니다.
특히 1996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따슈껜뜨주 쏠다쯔끼시 목란예술단에 와서 사업한 국립민족예술단 배우들은 정말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장군님.
여기 사는 동포들은 겉만 조선사람이지 속은 얼마우재가 다된것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예술지도교원들이 조국의 노래와 춤을 배워주고 민족의 넋이 소생하게 하여주었습니다. 목란예술단이 여러번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 수상자로 되게 하였을뿐아니라 동포들이 집중되여 살고있는 지역을 여러차례 찾아다니면서 여기 있는 우리 예술소조성원들과 동포들에게 조선노래와 춤, 조선말을 있는 정성을 다하여 배워주었습니다. 그래서 동포들이 사는 곳마다에서 <김일성장군의 노래> 와 <김정일장군의 노래>를 비롯한 조국의 노래들이 울려퍼지게 되였으며 날을 따라 많은 동포들이 우리 고통련에 들어오고있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
정말 금싸락같은 사람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어 고맙습니다. 여기 온 선생들은 장군님슬하에서 자란 조국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자기의 모범으로 우리모두에게 보여주었고 깨우쳐주었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고마움 이를데 없어 이 편지를 올리지만 장군님의 귀중하신 집무에 방해될가보아 이만하려고 합니다.
우리 전체 회원들과 동포들의 한결같은 마음을 담아 경애하는 장군님의 건강을 삼가 축원합니다.
주체87년 3월 9일 》
동포들의 민족예술발전에 기울이신 김정일장군님의 뜨거운 동포애는 주재국 벗들의 가슴도 뜨겁게 울려주고있습니다.
2005년 12월 모스크바에서는 세계청소년예술축전 《모스크바의 서정》이 열리였습니다. 이 축전에서 조선무용 《쟁강춤》과 《칼춤》이 단연 1등을 쟁취하였습니다. 117개 단체가 참가하는 축전에서 심사측은 다른 단체들은 시간상관계로 출연하여 절반도 넘기지 않고 퇴장시켰으나 조선작품들은 마지막까지 보고 박수를 치며 환영하였고 축전 1등컵과 상장 그리고 심사위원회 위원들이 련명수표한 감사장까지 전달하였습니다.
이 무용작품에 출연한 주인공들은 로씨야 싸할린의 에뜨노스과외예술교양학교 조선과에 파견된 고국의 예술지도교원들에게서 배운 어린 동포학생들이였습니다.
그들은 그전에도 울라지보스또크에서 진행된 민족음악축전에서와 싸할린주 문화국에서 진행된 개인경연과 축전들에서 모두 1등함으로써 조선민족예술의 우월성과 발전면모를 널리 시위하였습니다.
싸할린주 문화국장과 에뜨노스학교 교장은 이렇게 큰 축전에서 1등을 한다는것은 우리자체의 수준으로서는 상상도 못한다고 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예술발전수준을 똑똑히 알게 되였다고, 김정일동지께서 보내주신 선생들에 의하여 오늘의 성과가 이룩될수 있었다고 하면서 그이께 감사의 편지를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하여 원동고통련의 권천식위원장과 함께 에뜨노스학교 교장도 김정일장군님께 감사편지를 올리였습니다.
에뜨노스학교 교장이 올린 편지의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 올립니다.
가장 존경하는 김정일동지!
싸할린에서 조선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데 배려를 돌려주신 당신께 크나큰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께서 예술전문가를 보내주시여 우리가 조선의 민족예술을 배우고 보급하는데서 커다란 도움을 받았습니다.
리히봉-연출가, 리영애-무용교원(공훈예술가), 김애란-가야금 및 성악교원, 안영일-기악교원들은 싸할린 우리 학들의 교육사업과 조선예술을 발전시키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우리에게 계속 관심을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경의와 감사를 표합니다.
에뜨노스예술학교 교장 로씨야 공훈문화일군 엔. 에쓰. 에이지노바 2006년 10월》
참으로 김정일장군님의 한없이 무한한 동포애는 우리 동포사회에 세상에 으뜸인 조선민족의 노래와 춤이 넘쳐나게 한 신비의 세계를 펼쳐놓았습니다.
김정일장군님의 깊은 관심과 은정속에 민족예술활동을 벌리는 나날에 우리 동포들은 참으로 귀중한 진리를 체득하였습니다.
《생활이 있는 곳에는 음악과 노래가 있기마련이다.》
《인간생활에 음악이 없다면 그런 생활은 꽃이 없는 화단과 같다.》
《로동이 있는 곳에 노래가 있고 노래가 있는 곳에 생활의 랑만이 있다.》
예술의 의의와 관련한 김정일장군님의 명언들입니다.
금언과도 같은 이 명언들은 새겨볼수록 우리 고통련동포들을 두고 하신 말씀과도 같이 느껴집니다.
김정일장군님의 이 명언과 같이 오늘 우리 고통련이 걸어온 자랑스러운 로정도 노래와 춤이 없이 생각할수 없습니다. 그 어떤 행사나 모임에도 예술공연이 뒤따르고 조직의 두리에 동포들을 묶어세우는 사업에도 노래와 춤이 큰 역할을 합니다. 민족들사이의 화목과 단합을 실현해나가는데서도 노래와 춤은 없어서는 안될 힘있는 수단으로 되고있습니다. 노래와 춤이 있어 우리 동포들이 언제나 활기에 넘치고 동포조직이 흥성거리고있습니다.
하기에 우리 동포들은 동포사회에 노래와 춤이 차넘치게 하여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민족예술활동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가고있습니다.
그에 대한 사례로 따슈껜뜨에 있는 동포예술단들의 조선 전통 및 문화협회청사 리용일람표를 인용하는것으로 이야기를 마칠가 합니다.
문화협회청사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여러 동포예술단들이 청사에 와서 춤도 추고 노래를 배우면서 조국애, 민족애를 키워가고있습니다.
예술단훈련시간표
날자 시간 예술단이름
일 9시 ~ 11시 묘향산
11시 ~ 17시 모란봉
14시 ~ 16시 북극성
월 10시 ~ 14시 친 선
14시 ~ 20시 모란봉
16시 ~ 18시 꽃봉오리
화 10시 ~ 16시 미 래
13시 ~ 16시 묘향산
수 10시 ~ 15시 로인가무단
14시 ~ 18시 모란봉
목 15시 ~ 17시 금 산
14시 ~ 18시 모란봉
금 10시 ~ 14시 아리랑
16시 ~ 18시 꽃봉오리
토 10시 ~ 12시 도라지
11시 ~ 15시 태양절
15시 ~ 17시
비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