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민족의 넋을 지켜
□ 《나의 집》
어느 민족에게나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고유한 정신과 기질, 생활관습과 정서가 있습니다. 이러한 민족성에는 민족의 넋이 어려있습니다. 민족성이 흐려지면 민족본연의 모습이 흐려져 민족의 존재와 발전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습니다.
이것은 다른 민족들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민족일수록 더욱 그러합니다.
인류력사의 갈피에는 수많은 민족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강대민족에게 정복되여 멸망했거나 혹은 동화되여 고유한 민족적특질을 잃어버린 민족도 있고 또는 그 기운이 쇠퇴해져서 사라져가고있는 민족도 드물지 않습니다.
민족의 넋을 고수하는 길만이 민족을 살리고 번영을 안아오는 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것은 결코 아닙니다. 력사는 민족의 넋을 고수하는 길도 탁월한 령수를 모실 때만이 민족의 명맥이 꿋꿋이 이어진다는것을 보여주고있습니다.
해외에서 민족의 넋을 지켜나가기 위한 활동을 벌리는 과정에 저는 이러한 진리를 깊이 새겨안게 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이전 쏘련지역에 동포조직이 무어지기 전까지만 하여도 우리 동포들은 이민족들속에서 민족의 넋을 잃고 생활의 세파에 부대끼며 살아왔습니다. 생김새만 같을 뿐 민족의 고유한 풍습은 물론 우리 말과 글도 모르고 자기의 고유한 이름마저 가지고있지 못한 우리들이였습니다. 고국에 대한 표상조차 없는 3세, 4세동포들이 동포사회의 주류를 이루면서 민족의 넋은 더욱 사라져가고있었습니다.
이것은 쏘련의 붕괴와 함께 표면에 더욱 드러나게 되였습니다.
쏘련이 무너져 가맹공화국(혹은 민족)단위로 독립하게 되자 기성민족관념의 구속에서 몸부림치던 이 지역의 많은 소수민족들속에서 민족문화가 재생, 발전의 길에 들어섰으나 절대다수의 우리 동포들은 우리 말과 글은 물론 노래와 춤도 모르고있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된데는 동포들이 고국과 멀리 떨어진 남의 나라 땅에서 수십년, 대를 이어 살아온 객관적조건과 환경에도 기인된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건과 환경이 어떻든지간에 그것은 다른 민족으로 동화되여가는 과정이라는 의미에서는 심중한 문제가 아닐수 없었습니다.
첫발을 내디딘 고통련조직앞에는 민족교육과 민족문화예술보급사업을 벌려 동포들속에 민족성, 민족의 넋을 심어주어 그들이 참된 조선사람답게 살아가도록 하는 문제가 선차적인 과업으로 나섰습니다.
그러나 조선말과 글을 가르쳐주고 민족문화와 예술을 보급하자고 하여도 없는것, 모자라는것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교원이 모자라고 그들의 수준도 어리였으며 민족의 노래와 춤을 보급하기 위한 수단도 없었고 민족악기는 더욱 없었습니다. 동포들속에 조선말과 글, 노래와 춤을 배워주고 보급하기 위한 사업은 좀처럼 빛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동포들의 이러한 실태를 누구보다도 깊이 헤아려주신분은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이십니다.
1990년 4월 김일성주석님의 탄생 78돐을 경축하는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장에는 세계의 이름있는 예술인들과 함께 세계 각지에서 온 수많은 동포예술인들도 참가하였습니다. 그속에는 처음으로 이 예술축전장에 참가하는 재쏘동포들도 있었습니다. 비록 어설픈 기량이였지만 갓 말을 익히기 시작한 모습을 부모앞에 보이는 자식의 심정으로 주석님앞에 나섰던 우리 동포들이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예술공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미숙한 공연이였지만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자애에 넘치신 미소로 출연자들의 공연을 격려해주시였습니다.
하지만 그때 우리 고통련예술단성원들의 심정은 참으로 죄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축전장에 여러 나라에 있는 동포예술단들이 참가하였지만 유독 쏘련에서 온 동포들만은 이름도 의상도 모두 남의것이였습니다.
공연에 참가한 다른 민족의 예술인들도 주석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조선의 춤과 노래를 준비하고 조선민족의상을 입고 출연하고있었습니다. 그런데 민족의 어버이를 칭송하는 축전장에 조선사람이 타민족의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이런 잘못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니 공연수준 또한 미숙하리라는것은 론할 필요조차 없는것입니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4월 17일 4. 15경축 재쏘조선인축하단을 위한 오찬회에서 쏘련에 있는 동포들이 조선사람의 넋, 민족의 넋을 잃지 말고 철저히 고수하여나가는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씀을 주시였습니다.
김일성주석님의 말씀은 동포들속에서 민족의 넋이 사라져가고있는 위험성을 제때에 깨우쳐주시고 고통련조직이 민족의 넋을 살려나가는 사업을 잘해나가도록 하라는 간곡한 당부의 말씀이였습니다. 이 말씀속에는 조선동포들이 비록 해외에 살아도 조선사람답게 떳떳하게 살아나가도록 하시려는 어버이사랑이 뜨겁게 흐르고있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바와 같이 거의 한세기동안이나 고국과 문화적련계가 없었던 상태에서 동포들에게 민족의 넋을 심어주기 위한 사업은 거의 백지상태에서 진행하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이것은 고통련조직의 힘만으로는 너무도 힘에 부친 일이였습니다.
김일성주석님의 애국애족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나가시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가까이에 있는 자식보다 먼곳에 있는 자식을 더 위하는 다심한 어버이손길로 물심량면의 방조를 주시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민족교육과 민족문화예술보급에 가장 큰 애로로 되고있던 교원문제를 해결해주시였습니다.
김정일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고국의 이름있는 대학들과 예술단체들에서 유능한 교수들과 예술인들이 선발되여 이전 쏘련의 여러 지역에 많이 파견되였습니다.
1992년 한해동안에만 하여도 따슈껜뜨, 싸마르깐드, 알마띠, 모스크바, 노보꾸즈네쯔크, 비슈께크 등 이전 쏘련의 수십곳에 고국의 교원들이 파견되였습니다.
조선사람들이 집중되여있고 고통련조직들이 있는 곳들에 매해 수많은 교원들이 파견되였습니다.
새 세기에 들어와서도 교원파견은 끊임없이 이어져 지금도 고국에서 파견된 많은 교원들이 이전 쏘련의 여러 지역에서 동포어린이들에게 예술전습을 주고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교원들을 파견하도록 하는것과 함께 교원능력이 있거나 예술에 조예가 있는 동포들이 고국에 와서 배울수 있는 온갖 조건도 보장해주도록 하시였습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동포들이 김일성종합대학과 평양음악무용대학(당시)을 비롯한 고국의 이름있는 대학들에서 장학금까지 받으며 마음껏 배우게 되였습니다. 현재 우즈베끼스딴에서 동포들의 예술전습을 담당하고있는 남별, 김미숙동포들도 평양음악무용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참가하는 동포예술단성원들이 고국의 이름있는 예술인들에게서 일정한 기간 예술전습을 받을수 있도록 하여주신분도 김정일장군님이십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동포들에게 민족의 넋을 심어주는데 필요한것이라면 그 무엇도 아낌없이 돌려주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우리 말 교과서들도 많이 출판하여 보내주도록 하시고 중앙아시아지역에서 조선민족전람회도 진행하도록 하여주시였으며 민족의 우수한 고려의학을 전수하고 동포들을 치료해줄 의료진들도 파견해주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또한 민속명절을 비롯한 여러 기회에 민족악기들과 조선의 노래와 무용들을 수록한 록음, 록화카세트, 달력, 민예품을 보내주시여 동포들속에 널리 보급할수 있는 조건도 지어주시였습니다. 여러차례 예술단들도 파견하시여 동포들이 아름답고 우아한 조선예술의 참모습을 실지 체험하도록 하여주시였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훌륭하게 꾸려진 민족문화활동거점들에도 김정일장군님의 숭고한 동포애적사랑과 은정이 뜨겁게 어려있습니다.
동포들속에서 민족문화와 전통을 배우려는 열의가 높아가고 민족문화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그것을 목적의식적으로 이끌어나가자고 하니 그 거점을 꾸리고 운영하는 문제가 나서게 되였습니다.
이전 쏘련지역에 자본주의가 복귀되여 부동산가격도 상상할수 없이 뛰여올라 고통련조직들에서 자체의 자금과 동포들의 기부금만으로는 필요한 건물을 구입할수 없었습니다. 엄청난 값을 주고 구입한 건물도 작고 보잘것없어 활동에 지장을 받고있었습니다. 그러나 동포들은 민족의 풍습과 노래와 춤을 배운다는 기쁨으로 하여 작은 단칸방이나마 차례진것으로도 만족해하였습니다.
이러한 실태에 대하여 아시게 되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 문제도 풀어주시였습니다.
우즈베끼스딴의 수도 따슈껜뜨에 자리잡고있는 《조선 전통 및 문화협회》청사가 그 대표적실례로 됩니다.
이 건물은 어지간한 큰 행사도 치를수 있는 커다란 홀과 여러개의 사무실, 무용훈련장, 노래련습실, 민족료리실습실, 신문 《통일》의 편집실 그리고 인쇄소까지 갖춘 종합적인 문화활동의 거점입니다.
우즈베끼스딴의 수도에서 이만한 큰 건물을 건설하자면 막대한 땅값과 건설비가 듭니다. 하기에 웬만한 단체나 조직들도 이러한 건물을 리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있습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고국과 너무도 멀리 떨어져있는 이역의 동포들을 위해 이렇듯 훌륭한 건물을 마련해주시였습니다. 그것도 경제적어려움을 겪고있는 고국의 형편에서 막대한 자금을 돌려주시였으니 진정 민족을 위하시는 장군님의 사랑의 세계는 끝이 없습니다.
건물개관식때 이곳 동포조직의 주영일위원장은 우리 동포들의 심정을 담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님께서는 해외에 살고있는 조선사람들은 그 어디에 살고있건 조선사람, 우리 형제자매들이라고 하시면서 주실수 있는 사랑을 다 베풀어주시였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 지니신 가장 숭고한 동포애를 그대로 계승해나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오늘은 우리들에게 이렇듯 큰 건물을 마련하여주시였습니다.
이 건물은 저희들에게 모든 분야에서 사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진행할수 있게 하는 커다란 가능성을 주고있으며 이 쎈터를 토대로 하여 우리들은 민족문화활동과 통일애국운동을 보다 적극 진행해나가겠습니다.
우리 동포들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커다란 관심과 배려를 돌려주고계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가장 충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리면서 장군님께서 부디 건강하시기를 열렬히 축원합니다.》
오늘 이곳에서는 여러 기념행사들과 모임들뿐아니라 동포들의 민속놀이와 예술활동, 기량훈련 등이 진행되며 결혼식과 같은 례식들도 민족적풍습에 맞게 진행되고있습니다.
자연히 동포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고 언제나 흥성거리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곳에서 진행한 동포의 결혼식에 참가한 한 로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동포들과 한데 어울려 고국소식도 전해듣고 민속전통도 꽃피워가는 이곳을 자주 찾군 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나는 내 집 문턱을 넘어서는감을 느끼군 합니다. 여기서 나는 민족의 진가와 생의 보람을 느끼고있습니다.
진정 이곳은 나의 집입니다.》
나의 집, 참으로 의미깊은 말이였습니다.
누구나 다 자기의 집에 대한 애착을 안고 삽니다. 그것은 거기에 부모처자의 따뜻한 정과 사랑이 슴배여있기때문입니다.
하다면 이곳을 가리켜 자기의 집이라는 동포의 말에는 무슨 의미가 깃들어있는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이곳이 동포들에게 한피줄을 이은 민족의 정서와 감정을 느끼게 하고 민족의 긍지와 넋을 새겨주는 삶의 진정한 보금자리라는 의미가 담겨져있었습니다. 아울러 이 말에는 잃을번 하였던 민족의 모습을 찾아주시고 재생의 삶을 안겨주신 김정일장군님을 어버이로 모신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이 함축되여있었습니다.
이것은 동포들모두의 한결같은 심정이였습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이러한 《나의 집》은 로씨야고통련 사무실을 비롯하여 여러곳에 있습니다.
해외동포들에 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이렇듯 한없이 뜨거운 어버이사랑은 동포들의 가슴속에 몸은 비록 이역에 있다 해도 민족을 알고 민족을 위해 보람있게 살려는 애국애족의 열정을 안겨주었습니다. 이와 함께 고통련에 대한 기대와 신뢰감을 더욱 높여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