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통일가정》

 

위대한 장군님의 하해같은 사랑에 의하여 나는 먼저 가정을 이루게 되였다.

김철주사범대학 어문학부를 졸업하고 평양창전중학교에서 문학교원을 하는 36살의 로처녀 김영실녀성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였다. 중키나마에 웃음머금은 얼굴, 이목구비 곱살한 인물을 훔쳐보던 나는 얌전히 고개숙이고있는 그에게 물었다.

《36살이 되도록 왜 시집을 안 갔습니까?》

그는 부끄러웠던지 다소곳이 얼굴을 숙인채 묵묵부답이였다. 동안이 소리없이 흘렀다. 슬그머니 부아가 동한 나는 재차 《아니, 시집을 못 간겁니까, 안 간겁니까?》라고 다그쳐댔다. 그랬더니 하는 대답이 《선생님이 저를 찾아오실줄 알고 기다린겁니다.》라고 하는것이였다. 순간 나는 《우와하하-》하고 대성쾌소했다. 그도 웃음보가 터졌던지 두손모아 입을 가리우면서 수집어하며 웃는것이였다. 통괘한 웃음속에 정은 서로 오갔고 우리의 약혼은 성공리에 이루어지게 되였다.

웃음으로 시작된 우리의 생활은 웃음과 웃음의 련속이였다. 행복의 순간은 곱으로 흐른다더니 우리는 어느덧 귀여운 두 자식을 보게 되였다.

나는 위대한 장군님의 은덕이 너무도 고마워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이 한몸 다 바쳐 싸울뿐만아니라 자식들도 뒤를 이어 싸우고 또 앞으로 통일된 조국에서 위대한 장군님을 높이 우러러모시면서 잘살아가라는 의미에서 먼저 태여난 딸의 이름을 《통일》, 두번째 태여난 아들의 이름을 《조국》이라고 지었다.

이 나날 우리는 광복거리의 세칸짜리 집에서 사는것만도 과분한데 또다시 그보다 더 크고 현대적인 개선동의 주택을 배려받게 되였다. 경치좋은 모란봉기슭에 자리잡은 새 주택의 베란다에 나서면 주체사상탑의 봉화가 이글거리는것을 보게 되며 불빛환한 개선문과 천리마동상도 한눈에 볼수가 있다.

손에 잡힐듯 지척에 있는 모란봉에서는 봄, 여름내내 꽃향기가 취할듯 풍겨오고 가을에는 울긋불긋 불붙는듯 한 단풍이, 겨울에는 하얀 눈이 온 금수산을 뒤덮은 설경이 아름답게 안겨온다.

주택은 행복의 보금자리라고 하였는데 이런 훌륭한 보금자리를 가지고있는 우리 가정이야말로 얼마나 큰 복된 삶을 누리고있는것인가. 이러한 부럼없는 행복속에서 우리 부부는 또한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같이 헌신하는 혁명동지가 되였다.

안해는 저의 집필사업을 적극 도와나섰고 또 자신이 직접 방송, TV 등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어느덧 자란 딸 통일이와 아들 조국이는 평양서흥소학교를 거쳐 모란봉제1중학교와 평양제1중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둘이 다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의학대학에서 공부하는 행운을 지니게 되였다.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아버지와 함께 한몸바쳐 싸우라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그대로 통일이와 조국이는 자기의 본분을 자각했는지 늘 최우등생으로서 공부를 잘하였을뿐만아니라 품행도 바르고 체육도 잘하였으며 문학교원을 하는 어머니를 닮아서 시도 잘 짓는 모범학생으로 자라났다.

시를 지을 때면 언제나 비둘기 한쌍처럼 이마를 맞대고 오손도손 뜻을 모아 써나가군 하였으며 그러다가 시상이 막히면 어머니에게 물어보면서 밤이 가는줄 모르고 쓰고 또 쓰군 하였다.

이렇게 정열을 들여 창작한 동시, 동요, 가사는 무려 100여편이나 되였다.

통일이와 조국이는 그중에서 60여편을 추려 붉은 책뚜껑에 《장군님 따르는 선군꽃송이들》이라는 표제를 달아 아버지장군님께 올리였으며 주체92(2003)년 2월 16일 장군님께서 친히 보아주시는 크나큰 영광을 받아안게 되였다.

그중 동요 한편과 동시 한편을 소개한다.

 

동  요

 

장군님은 은혜로운 해님

 

우리들이 곱게 피는 꽃이라면은

장군님은 은혜로운 해님이지요

온 나라 아이들 그 해빛아래

행복의 꽃바다로 설레이지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그늘이 없이

이 강산 그 어디나 비치는 해님

그 품에 희망안고 우리 자라나

언제나 세상에 부럼없어요

 

해님품을 떠나면 우린 못살아

그 품만을 따르며 충성할래요

하늘땅 끝까지 세월 끝까지

우리 해님 받들어 충성할래요

 

 

동  시

 

남녘의 내 동무야

 

공부시간 작문시간 편지 쓰라고

선생님은 과제를 주시겠지요

나는 나는 연필로 턱을 고이고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어요

 

그러자 언젠가 텔레비죤에서

엄마잃고 슬피 울던 남녘의 철이

나의 눈앞에 어리여오겠죠

그리운 마음속에 찾아오겠죠

 

그래그래 철이야 편지 보아라

장군님의 통일대강 높이 받들고

조국통일 새 아침 밝아오니

너와 나 만날 날 멀지 않았단다

 

만나자 동무야 통일의 그날

너와 나 다정하게 손목 잡고서

장군님사랑 넘친 학교로 가고

숙제문제 우리 함께 풀어보자야

 

남녘의 동무야 나의 동무야

그날까지 힘차게 싸워나가자

장군님사랑의 그 해빛이

남녘에 비칠 날은 꼭 온단다

 

 

우리 가정에서는 또한 지난 기간 나라에 조금이나마 보탬을 주려는 일념으로 건설장에 지원사업도 적지 않게 하여왔다.

나는 의거입북당시 받은 상금으로 광복거리와 통일거리가 건설될 때 많은 지원물자도 보내주었으며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건설자들에게도 성의를 담아 적극 후원하였다.

또한 우리 가정에서는 주체89(2000)년초부터 오늘에 이르는 10여년동안 하반신마비로 걷지 못하는 특류영예군인에 대한 지원사업도 계속해오고있다.

명절때마다 온 가족이 떨쳐나서 음식을 만들고 기념품도 마련해가지고 그 집을 찾아가 기념품을 안겨주고 노래도 불러주며 음식도 같이 나누고 사진도 찍어주면서 즐겁게 지내군 한다.

그가 치료관계로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나는 병원에 찾아가 위로해주군 하였으며 타고다니는 삼륜차의 발동기가 고장났을 때에는 원산원동기공장에까지 찾아가 해결해주군 하였다.

하기에 그는 우리 가정의 보살핌이 고마워 제가 속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 감사편지도 보내군 하였다.

부모와 자식들모두가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 떨쳐나서니 인민반과 주변사람들은 우리 집을 《통일가정》이라고 부르면서 자주 찾아와 사진첩도 보고 내가 쓴 기사도 보며 통일이와 조국이가 창작한 시작품도 보면서 부러움을 금치 못해하고있다.

정답게 들려오는 《통일가정》!

나는 그 부름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 나의 모든것을 다할것이며 자식들도 반드시 나의 뒤를 잇도록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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