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사랑의 품

 

의거입북의 기회를 노리던 나는 1989년 10월 중순 유럽관광의 길에 올랐다. 20여명의 관광단성원들과 함께 서울을 떠난 나는 영국의 런던, 에스빠냐의 마드리드, 이딸리아의 로마를 관광하고 오스트리아의 윈을 돌아보던중 대렬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을 찾아갔다.

대사관성원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면서 어떻게 이런 위험한 길을 택하였는가, 지금 우리 대사관주변에는 남조선의 정보기관에서 무비카메라를 설치해놓고 24시간 감시를 하고있다는것이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한주일전에 여기 윈에서 월북하려던 27살의 한 젊은이가 놈들에게 체포되여 서울로 압송된 사실이 생각나면서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대사관을 떠난 나는 그길로 평양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비행기안에서 이제는 오매에도 그리던 고향산천이 있는 내 조국에 안기게 되였다는 흥분으로 하여 진정할수가 없었다.

동행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나의 귀에는 《비행기는 압록강을 넘어섰습니다. 이제부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령내입니다.》하는 안내원처녀의 랑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살았구나!》 하는 안도의 깊은 숨을 몰아쉰 나는 시창밑을 바라보았다.

어서 오라 반기는듯 산천초목이 푸르러 설레였고 바둑판처럼 시원히 펼쳐진 전야에서는 황금의 파도가 물결치고있었다.

나는 불시에 조국의 향취가 확 안겨와 눈물이 핑 돌았다.

이윽고 비행기는 평양비행장에 도착하였다.

드디여 나는 주체78(1989)년 11월 3일 공화국에로의 의거입북에 성공하였으며 위대한 태양의 품에 안기게 되였다.

비행기승강대에 나서니 첫눈에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대형초상화가 안겨왔다.

순간 나는 위대한 그분들께서 저를 손저어 부르시는것만 같아 한달음으로 달려가 큰절을 올리고 만수축원의 인사와 함께 의거입북정형을 아뢰고싶은 심정이였다.

나는 두손을 번쩍 들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만세!》,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 만세!》를 목청껏 부르고 또 불렀다.

비행장에는 여러 간부들이 나와 동포애의 심정으로 따뜻이 맞아주었으며 수많은 군중들이 꽃다발을 흔들며 《조국》, 《통일》의 구호를 웨치면서 열렬히 환영해주었다. 동포애의 뜨거운 심정으로 환영을 받게 되니 나는 송구스럽기만 하였다. 사실 저의 의거는 한 인간으로서 참된 삶의 길을 찾아온데 불과한것이다. 후에 안 일이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저의 의거를 애국적소행으로 높이 평가해주시면서 경치좋은 보통강반의 호화로운 보통강려관에 숙소를 정하도록 하시고 국내외기자회견, 평양시환영군중집회 등도 조직하도록 하여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으로 높은 국가훈장과 거액의 상금도 수여하도록 하시여 생활에서 자그마한 불편도 없게 극진히 보살펴주시였다.

뿐만이 아니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세칸짜리 살림집도 마련해주시고 하루빨리 가정도 이루어 안착된 생활을 하도록 하시였으며 직장도 저의 신분에 맞게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회원으로 일하도록 높은 정치적신임과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로 말하면 조국의 통일을 평화적으로 촉진하기 위하여 련공련북의 길을 따라 북에 들어온 정계와 사회계, 학계와 군부 등 남에서 들어온 애국인사들이 망라된 정치조직인것이다.

나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베풀어주시는 크나큰 정치적신임과 은정에 보답할 일념으로 새 가정을 이루고 안착된 생활을 하면서 조국통일을 위한 사업에 저의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 나는 직장에서 조국통일에 대한 자문사업도 하고 신문, 방송, TV 등에 원고도 투고하고 출연하였으며 소책자도 내고 각계각층 군중을 대상하여 강연회도 하면서 보람찬 나날을 보냈다.

이 나날에 나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사랑과 배려를 누구보다 더 많이 받아안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저의 사업과 생활에 대하여 보고받으시고 친히 감사도 보내주시고 로력훈장도 수여하도록 해주시였으며 대를 이어 길이 전할 고급피아노도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뿐만아니라 남에서 교통사고로 부상당한 저의 왼쪽팔상태를 념려하시여 함흥정형외과병원에 보내여 병원원장이 책임지고 완치시켜주도록 할데 대한 은정어린 치료대책까지 마련해주시였다.

사랑이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으며 은정이면 이보다 더 깊은 은정이 또 어디 있겠는가.

정녕 위대한 장군님의 품은 저를 낳아키워준 친부모보다 더 따사롭고 저에게 돌려주시는 사랑은 하늘의 높이에도 바다의 깊이에도 견줄수 없다.

이 글을 적어나가는 나는 사랑과 은덕의 화신이시며 우리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신 김정일장군님께 남에 있는 동포들과 사랑하는 제자들 그리고 온 가족들의 한결같은 마음을 담아 삼가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싶은 심정을 금할수가 없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