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패륜패덕의 사회

 

 

《물질생활에서의 기형화, 정신문화생활에서의 빈궁화, 정치생활에서의 반동화, 이것이 바로 현대제국주의의 반인민성과 부패성을 보여주는 자본주의사회의 기본특징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김  정  일

 


 

황금만능세상

 

돈이 모든것을 지배하는 사회, 돈만 있으면 군수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며 《대통령》도 될수 있는 사회가 바로 이남이다.

돈만 있으면 이남에서는 극우익보수분자로 악명떨치는 리회창과 같이 자식들을 의무화되여있는 그 지긋지긋한 군대에도 보내지 않을수 있다.

그 돈을 위하여 이남의 절대다수 민중이 하나와 같이 뛰고 또 뛰고있다.

돈만 벌수 있다면 의리이건 도덕이건 관계없이 서로 속이고 빼앗으며 물고 뜯고 죽인들 상관이 없다.

하루밤을 자고나면 언론에서 어디에서는 재산을 노리고 아들이 아버지를 칼로 죽였다, 또 어디에서는 보험금을 타기 위해 안해가 남편을 독살시켰다, 또 어디에선 떼강도가 들었다는 불길한 소식만 전하고있다.

하기에 지금 이남에서는 돈을 벌수 있는 유모아가 류행되고있다.

어느 한 기업가가 권력을 잡아 벼락부자가 된 정치인에게 찾아가 물었다.

《부자가 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건 아주 쉽습니다. 오줌을 쌀 때 한쪽다리를 들면 됩니다.》

《아니 그거야 개들이나 하는짓이 아닙니까?》

《바로 그거요. 사람다운짓만 해가지고는 절대로 돈을 벌수 없습니다.》

맞는 말이다.

짐승처럼 행해야 사는 사회, 바로 이것이 이남사회이다.

내가 살던 자그마한 농촌도시 운천에서도 보험에 들어있는자가 차를 몰고 다니면서 고의적으로 마주오는 차와 교통사고를 내고 병원에 입원하는 방법으로 수십차례에 걸쳐 수억원의 보험금을 타먹은 일이 있었다.

또 서울관악구에서는 면허증이 없는 사람들만 골라가면서 사고를 낸 뒤에 돈을 받아먹는 범죄패당도 있었다.

이자들은 운전면허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사람들중 무면허운전사만 골라가면서 사고를 내고 돈을 받아먹군 하였는데 연 94차례에 걸쳐 2억 4 000만원을 받아먹었다 한다.

전라남도 광주에서 유흥장을 경영하던 박 아무개라는자는 20억원의 빚을 지게 되자 처와 사기극을 조작했다.

이자는 2003년 9월부터 10개월동안 6개 보험회사의 보험에 가입한 뒤 2004년 8월 태풍이 부는 날을 골라 처와 함께 지리산으로 갔다. 그리고는 처에게 《남편이 발을 헛디디여 급류에 떠내려갔다.》고 알리도록 하였다.

전해에 태풍으로 130여명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낸 사실을 악용하였던것이다. 자기의 주검이 발견되지 않더라도 《재해사망》으로 인정받을수 있었기때문이다.

하여 처는 남편의 사망신고서를 내여 보험회사들로부터 7억 2 000여만원을 받았으며 20억원의 빚도 《채무자사망》으로 상쇄해버렸다.

이들부부는 남에게서 훔친 주민등록증과 사기협잡으로 타낸 보험금으로 흥청거리며 살다가 붙잡히고야말았다.

내가 서울 도봉구 신창2동에서 살 때 근방에 수유약국이라는 비교적 큰 약국이 있었다.

그 집에서 초청해 가보니 외아들 결혼식을 하고있었다. 그 아들은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다리를 절고있었는데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국을 운영하고있었다.

그들이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데 5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아 시부모들이 며느리에게 무슨 병이 있는게 아닌가고 하면서 진찰을 받아보라고 독촉하였다.

그때마다 며느리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남편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택시운전수와 짜고 살인극을 꾸몄다.

그는 래일 남편과 조용한 밤길을 걸을터이니 택시로 남편을 깔아죽이고 도망치라고 하면서 운전수에게 100만원을 주고 성공하면 900만원을 더 주겠다고 하였다.

이튿날 밤 택시운전수는 각본대로 둘이 걸어갈 때 남편을 깔아죽이고는 그대로 도망을 쳤다.

다음날 운전수가 남편을 죽였으니 약속대로 돈을 달라고 독촉을 하니 그 녀자는 장례를 치르고보자고 했다.

날자가 지나면 돈을 받지 못할가봐 운전수는 하루에도 몇차례나 독촉을 하게 되였다.

시부모들은 오고가는 전화소리를 들어보니 《며칠만 기다리라.》느니 《인차 주겠다.》느니 하는 말들이 수상하여 신고하였는데 사실이 들장나게 되였다.

이 녀자는 돈을 보고 시집을 와서 남편이 죽으면 그 집 재산을 다 가지게 되겠으니 아이도 낳지 않고있다가 이러한 살인극을 꾸몄던것이다.

황금만능의 극치의 사실을 내 눈으로 직접 본것을 하나 더 이야기하려고 한다.

내가 의거입북하기 두달전인 1989년 여름에 있은 일이다.

앞에서도 말한바 있지만 우리 집에서 가까운 한탄강이란 곳에 리화녀자대학교 학생들이 나와 수영을 하고있었는데 그중 한 학생이 수영을 잘하지 못해 빠져죽게 되였다.

나도 그날 제자들과 함께 그곳으로 수영하러 갔었는데 여러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있어 왜들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한 녀대학생이 빠져죽었는데 건질수 없어 그런다는것이였다.

그러면서 한 학생이 가까운 체신소에 가서 그 부모에게 알리여 잠수부를 데리고오는중이라고 했다.

내가 그 말을 듣고 인차 옷을 벗고 물속에 들어서고있었는데 그 부모들이 잠수부를 데리고 달려왔다. 나는 이제는 시체를 찾게 되였구나 하고 안심하면서 뚝으로 올라가 잠수부를 지켜보았다.

부모들이 딸의 이름을 부르며 대성통곡하면서 잠수부더러 빨리 시체를 건져달라고 했다.

그런데 잠수부는 담배만 뻑뻑 피우면서 도대체 물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않고있었다. 안달이 난 부모들이 왜 그러고만 있는가고 물어보니 잠수부는 얼마만 한 돈을 주겠다는것인지 계약서를 써야 들어갈게 아닌가고 하는것이였다.

그래서 부모들이 가지고온 돈 100만원(1 200US$)을 내놓으니 그제야 잠수부는 제꺽 물속으로 뛰여들었다. 얼마동안 있다가 잠수부가 나왔는데 빈손으로 나오는것이였다.

그가 나와서 하는 말이 아무리 찾아보아도 시체는 없다는것이였다.

부모들이 다시한번 더 들어가 찾아봐달라고 애원하는데도 잠수부는 글쎄 없는것을 어떻게 찾느냐고 하면서 오히려 짜증을 내는것이였다.

부모들이 할수 없어 또 100만원을 내놓으면서 한번 더 들어가 찾아봐달라고 하니 잠수부는 또 물에 뛰여들었다.

잠수부가 되여서 그런지 그는 물속에 들어가 퍼그나 오래동안 있었다. 잠수부는 이번에도 빈손으로 나와 하는 말이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데 아마 시체가 떠내려간 모양이라고 했다.

그곳은 강폭이 늪처럼 넓어 물살이 별로 센 곳이 아니였다. 어느덧 해는 서산에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애가 탄 부모들은 안절부절 못하면서 잠수부더러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들어가 시체를 찾아봐달라고 사정사정했다.

그러자 잠수부는 두번씩이나 샅샅이 훑어봐도 없는데 어디가서 찾겠는가, 이젠 시체를 찾기가 다 틀렸다고 하면서 딱 잘라매는것이였다.

절망에 빠진 부모들은 또 가방을 꺼내 100만원을 주면서 마지막으로 찾아봐달라고 했다.

그러자 잠수부는 돈을 받기가 무섭게 물속으로 뛰여들어가 인차 시체를 들고나와서는 옷을 갈아입기가 바쁘게 제 혼자 뺑소니를 치는것이였다.

사람들이 그의 뒤를 쫓아가면서 《돈을 많이 벌었군요. 통돈을 벌어 좋겠군요. 그런데 왜 일찍 꺼내주지 그렇게 늦게 건졌는가?》고 물으니 잠수부가 사람들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아니, 일찍 꺼내주면 돈을 벌수 있나요. 내가 처음 물에 들어갔을 때 바위틈에 끼여있는 시체를 보았는데 일부러 안 건졌지요. 내가 이런 일을 한두번 해본 사람이나요. 그저 가족들의 애간장을 태워야 돈이 슬슬 나오지요. 잠수부는 여름 한철 돈을 벌어놔야 겨울을 지내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살수 있나요.》 하는것이였다. 정말 치떨리는 말이였다.

그들의 뒤를 따라가던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돈이 사람들의 량심과 도덕을 짓밟고 사회를 썩게 만들고있는 황금만능의 이 세상을 치를 떨며 저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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