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모가 다른 체육
내가 평양에 와서 하루밤을 자고난 아침 보통강반으로 산책을 나갔을 때였다.
유보도와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아침운동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속에는 아이들도 있었고 백발의 로인들도 있었다. 한가족으로 보이는 그런 사람들이 운동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의 체질과 특기에 맞는 각이한 운동을 하고있었다.
나도 신바람이 나 기백있게 달리는 백발로인의 뒤를 따랐다.
한창 달리고난 나는 땀을 들이는 로인과 인사를 나누고나서 그로부터 대중체육과 관련한 좋은 이야기를 듣게 되였다.
그는 경애하는 주석님께서 해방직후부터 체육을 몇몇 전문가들이나 하는 선수본위의 체육이 아니라 전민이 참가하는 군중체육을 발전시킬데 대하여 늘 강조하시고 이에 깊은 관심을 돌려오시였으며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석님의 뜻을 받들어 체육을 대중화, 생활화할데 대한 방침을 내놓으시고 전민이 체육활동에 참가하도록 하시여 체육이 진정으로 인민대중을 위한 사업으로 되게 하여주신데 대해 감동적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분들의 은정속에 이북에서는 해마다 인민체력검정을 실시하면서 체력을 증진시키고 강의한 의지와 용감성을 키워주며 건강한 몸으로 사회와 집단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도록 하고있다고 했다.
나는 이튿날부터 그 로인의 권고대로 매일 아침 보통강유보도에 나가 그 로인과 달리기를 했다.
의거한 이듬해 봄 평안북도 신의주시에 있는 백사인민학교에 들렸을 때였다.
이날 학교에서는 체육대회를 하고있었는데 나는 학생들의 경기가 재미나 오랜 시간 구경을 하면서 체육선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지금 이북의 학교들에서는 륙상과 기계체조, 태권도, 여러가지 구기와 수영, 체육무용을 장려하고 학생들을 집단체조에 널리 참가시키며 학교의 특성에 맞는 한두가지 체육종목을 정해놓고 그것을 특별히 발전시키고 전통화하고있다고 했다.
그리고 학생들의 소질과 취미, 계절조건과 지대적특성에 맞게 과외체육활동을 널리 벌리며 모범체육학교쟁취운동을 적극 벌린다고 했다.
이때 옆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한 학부형이 학생들만이 아니라 온 나라의 모든 인민들이 다 체육을 한다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는 기관, 기업소들과 협동농장들에서는 자기 단위의 특성에 맞게 체육시간을 정하고 모든 사람들이 아침체조와 업간체조, 걷기와 달리기, 태권도를 비롯한 여러가지 운동을 정상적으로 하고있으며 쉬는날이나 명절 같은 때에는 여러가지 체육경기와 체육유희를 계획적으로 조직하고있는데 이에는 간부들을 비롯하여 모든 근로자들이 다 참가한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가정들에서는 아침체조와 걷기, 달리기를 비롯하여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좋은 운동을 많이 하며 오래전부터 실시해오고있는 인민체력검정사업에 모든 대상자들이 빠짐없이 참가해 합격하도록 한다고 했다.
한편 해양체육월간사업과 겨울철체육월간사업도 활발히 진행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도, 시, 군들에서는 모범체육군이 되기 위한 활동을 널리 벌리고 도처에서 체육소조를 활발히 운영하며 체육대회와 종목별체육경기도 정상적으로 진행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체육을 대중화, 생활화할수 있는 충분한 조건도 다 갖추어놓고있다고 했다.
정말로 그러했다.
만경대지구 안골에만도 175만여㎡의 면적에 연 건축면적 26만 7 000여㎡나 되는 종합적인 체육문화기지가 하나의 거리를 형성하고있는데 여기에는 2만 5 000명 수용능력의 터침식서산축구경기장과 10개의 종목별실내경기관들이 있어 20개의 체육종목에 40여가지의 경기를 동시에 할수 있는 훌륭한 설비가 갖추어져있다.
나는 주체81(1992)년 9월 평양에서 진행된 제8차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보기 위해 태권도전당에 가보았는데 참으로 매혹적이였다.
푸른 숲 우거진 넓은 골안에 틀지게 들어앉은 태권도전당은 민족의 고유한 건축술을 살려 아름드리 화강석기둥들과 그에 떠받들린 수십m의 합각지붕으로 힘있고 무게있게 건설되여있었다.
전당 정면에는 《태권도전당》이라는 글발이 부각되여있고 중앙현관홀 정면에는 대형쪽무이로 된 백두산이 형상되여있어 전당의 품격을 힘있게 살려주고있다.
전당은 6만여㎡의 부지면적에 2 000㎡가 훨씬 넘는 경기관과 2 400여석의 관람석, 120여개의 크고작은 방들로 되여있었다.
전당에는 남녀태권도사범들을 위한 종합훈련관을 비롯하여 여러개의 훈련관들과 휴계실, 수영관, 사무실, 면담실, 연회장 등이 있고 훈련관마다에는 한증탕, 목욕탕, 안정실들이 훌륭히 갖추어져있어 태권도사범들이 훈련과 휴식을 충분히 보장받을수 있게 되여있었다.
경기장내부에는 공기조화기가 설치되여 언제나 선수들이 경기와 훈련에 알맞춤하게 온습도가 보장된 맑은 공기가 흘러들고 최신설비들을 갖춘 음향실, 방송실, 영사실 등이 있어 국제국내경기들은 물론 여러가지 행사들도 할수 있었다.
경기장바닥에는 선수들이 여러가지 태권도경기를 진행할수 있는 구획들이 있고 경기장중심에는 승강대식경기장들이 갖추어져있어 경기할 때는 일정한 높이로 두드러져 올라와 관람자들은 경기를 상세히 볼수 있게 되여있다.
나는 이 훌륭한 전당을 보면서 이북에서 태권도와 같은 민족체육발전에 얼마나 큰 힘을 넣고있는가를 절감하게 되였다.
특히 우리의 태권도선수들이 태권도조국의 선수답게 대단한 기술로 상대방선수들을 물리치고 우승할 때마다 실로 크나큰 민족적긍지를 느끼게 되였으며 이 전당을 선수들만이 아니라 태권도를 즐기는 모든 사람들이 다 리용할수 있다는데 대해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평양에는 이외에도 10만명 수용능력의 김일성경기장과 15만명 수용능력의 5월1일경기장이 있고 평양체육관과 양각도축구경기장, 동평양경기장, 빙상관 등이 있으며 매 구역마다에 체육관이 있다.
그리고 도소재지들에는 종합체육관과 수영관, 체육인숙소가 있고 시, 군소재지들에는 체육관과 수영관, 수영장, 체육구락부숙소가 있으며 학교들에는 체육관과 수영장 등이 있다.
이북에서 활발히 벌어지고있는 대중체육활동은 유망한 체육선수들을 키워내는 토양이기도 하다.
대중체육활동을 통해 체육에 특기가 있는 청소년들을 체육학원과 체육대학 등에서 체육전문가와 선수로 키우기도 하고 전문체육선수단에 받아들여 키우기도 한다.
이북에서는 전문체육선수단의 경우에도 체육활동의 인민적성격은 여전했다. 체육인들은 체육활동으로 인민에게 복무하는것을 본분으로 하고있다.
국내에서는 나라의 체육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하고 체육실력을 쌓아 국제경기에 나가는 경우에는 우승하여 조국의 영예와 민족의 기개를 만방에 떨쳐 인민들에게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고 그들을 기쁘게 해주는데 복무한다.
나라에서는 이런 체육인들에게 공화국공민의 최고영예인 로력영웅칭호도 수여하고 인민체육인, 공훈체육인, 체육명수의 명예칭호도 주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나라의 정사에도 참가하도록 내세워줄뿐아니라 이름난 탁구녀왕 박영순처럼 죽어서도 애국렬사릉에서 영생하게 한다.
이것은 이북체육의 혁신적변화를 보여주는 새로운 면모이다.
이북의 대중체육에서 특출한 자리를 차지하는것은 집단체조이다.
체조대와 배경, 음악 등의 체육예술적조화로 이루어지는 집단체조는 황홀경을 펼친다.
체조는 맨손운동과 기재운동, 대형과 조형 등을 기본으로 하는 다양한 체육적형상수단과 언어들을 통하여 세련된 체육적기교를 보여주며 배경대미술, 취주악과 방창, 무용률동 등을 배합하여 높은 예술성을 보장한다.
세계의 이목을 끈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높은 사상예술성과 체육기교가 훌륭히 배합된 혁명적인 새형의 종합적체육형식으로 하여 세계적기적과 발명만을 기록하는 《기니스세계기록집》에 당당히 올린 최대의 걸작품이였다.
나는 처음 배경대의 신비스러운 조화에 홀리워 《돈 끼호떼》와 같은 우습강스러운 일도 자아낸바 있다.
시원히 펼쳐진 배경대에서 변화무쌍하게 펼치는 화폭들을 보면서 나는 《저것은 영화로 돌리는것이겠죠?》라고 안내원에게 물었다.
안내원은 가볍게 웃고나서 영화로가 아니라 개별적인 배경대책으로 쪽무이하여 펼치는것이라고 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배경대화폭이 움직이는것은 무엇인가? 갑자기 우뚝 솟아난 금강산의 절경은 또 무엇인가?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안내원은 바로 그게 《<아리랑>의 신비성》이라고 했다.
나는 세번째로 가보고서야 그 비결을 알게 되였다.
그날은 여느때보다 일찍 가게 되였다.
자리표를 찾아 땀을 들이고있느라니 배경대에서 기세충천한 훈련이 벌어졌다.
배경대에는 세로 중학교이름들이 새겨져있었는데 그것들이 서로 경쟁이나 하듯 《얏!》, 《얏!》 하며 펼쳐졌다 없어졌다 하며 또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줄줄이 펼쳐졌다가 다시 반대방향으로 펼쳐지는가 하면 이번에는 밑으로부터 우로 각양각색의 무늬를 내며 펼쳐지고있었다.
이러기를 종횡무진하며 기세를 돋구고있었다.
나는 그때에야 배경대의 신비성을 발견하고 《아하!》 하고 무릎을 치며 통쾌하게 웃어댔다.
남에서는 그 어느 체육대회나 지어 국제경기를 치르는 대회에서도 볼수 없었던 배경대의 신비스러움은 나로 하여금 넋을 완전히 잃게 했던것이다.
북에서는 이러한 집단체조를 중앙에서뿐만아니라 각 도와 시, 군들에서도 하고 각급 학교들에서도 광범히 벌리고있다.
하여 북에서는 청소년학생들과 근로자들을 건강한 체력으로 튼튼히 키워주며 전면적으로 발전된 참다운 인간으로 육성하고있다.
이북의 대중체육은 경치수려한 금수산제일봉인 모란봉을 통해서도 활발히 벌어지고있다.
모란봉에서는 해마다 대황소상민족씨름경기를 비롯하여 그네뛰기, 널뛰기 등 민속경기들이 벌어지고있으며 김일성경기장에서는 사시장철 전국적 혹은 부문별로 되는 각종 구기경기들과 륙상경기들이 진행되고있고 국제마라손경기대회도 진행되고있다.
내가 광복거리에서 살다가 모란봉기슭에 있는 개선동으로 이사온 후 아침산보를 위하여 모란봉에 올랐을 때였다.
모란봉에는 천년강국으로 이름떨친 고구려선조들의 슬기와 땀이 스며있는 국보유적 제1호인 평양성을 비롯하여 최승대, 을밀대, 현무문, 칠성문, 감찬정, 청류정 등 유적들이 많은데 이것을 돌아보느라면 숱한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인민보건체조와 달리기, 뜀뛰기와 제기차기, 현수와 태권도 등 여러가지 운동을 하는것을 볼수 있었다.
나도 처음에 그들과 어울려 달리기도 하고 제기도 차면서 아침운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주체95(2006)년 5월부터 내가 좋아하는 운동중의 하나인 바드민톤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지에서 3~4명과 함께 바드민톤공을 치고받는 훈련을 했다.
나는 이미 이 운동에 숙련되였으므로 처음으로 치는 사람들에게 친절히 배워주었다. 그랬더니 한달도 못되는 사이에 예순살이 지난 수십명의 바드민톤애호가들이 생겨나게 되였고 모두 란타의 기초를 쌓게 되였다.
그중에는 일흔살이 지난 할머니들도 있었고 여든살을 바라보는 백발의 할아버지들도 있었다.
그때에 나는 74살의 고명철로인과 한번에 떨구지 않고 1 000번이상씩 공치기를 하였었다.
인원도 늘고 치는 솜씨도 늘어남에 따라 현무문앞마당에 13. 4m×6. 1m의 규격경기장을 만들어놓고 단식, 복식경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경기를 하게 되니 아침운동분위기는 더한층 고조되고 치고받는 기술도 비할바없이 늘어나게 되였다.
금수산제일봉의 정점에서는 웃고떠드는 사람들의 명랑한 목소리가 넘쳐흘렀다.
바드민톤애호가들은 나날이 늘어 경기장 하나만 가지고서는 도저히 경기수요를 충족시킬수 없었다.
하여 우리는 옆에 있는 그네터에 2개의 경기장을 더 만들어놓고 바드민톤운동에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도록 하였다. 세개의 경기장에서 한번에 12명의 인원이 경기를 하게 되니 아침운동시간에만도 연 60여명의 사람들이 운동할수 있게 되였다.
우리의 이 운동에 고무되여 또 수많은 바드민톤애호가들이 생겨나 수백명으로 늘게 되였다.
하여 모란봉에서는 아침해맞이와 더불어 현무문, 그네터, 을밀대, 모란각, 모란봉극장, 칠성문, 송가정마당에서 수십개의 하얀 닭털공이 이채롭게 하늘높이 날아예게 되였다.
우리 로인들의 이 랑만적인 대중체육소식을 《평양신문》은 주체95(2006)년 8월 31일 《모란봉의 류다른 새벽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체육신문》은 주체96(2007)년 7월 4일 《모란봉은 청춘을 노래한다》의 제목으로 온 나라에 전해 주었다.
나는 우리 로인들의 대중체육생활이 너무도 즐거워 지난해(2010년) 민족최대의 경사스러운 태양절을 맞는 바드민톤운동경기때에는 동료들앞에서 즉흥시를 읊어대였다.
《오! 닭털공, 하얀 닭털공
아침마다 금수산제일봉의 해맞이하며
모란봉하늘가를 날아예는 닭털공아
더 높이 날고날아 장군님 꽃펴주시는
우리 생활, 우리 행복
소리높이 전해주려무나 온 세상에!》
그러다가 노래를 하나 지을수 없을가 하여 《모란봉 명당자리 바드민톤운동장》하며 흥타령을 하던 끝에 가사 《바드민톤 좋을시고》를 창작하게 되였다.
바드민톤 좋을시고
1. 모란봉에 해가 뜨면 우리네 로인들도
바드민톤운동장을 찾아간다오
삼백에 륙십오일 닭털공 치니
금수산은 웃음천지 들썩인다오
후렴: 아 장군님 지펴주신 대중체육 열풍속에
우리 운동 좋을시고 바드민톤 좋을시고
2. 현무문에 올라서서 대동강 바라보면
누려가는 이 행복에 가슴이 젖소
하루도 빠짐없이 닭털공 치니
너도나도 젊은 혈기 넘쳐난다오
후렴:
3. 사회주의 우리 제도 빛내갈 한마음을
바드민톤운동장에 다져간다오
열두달 변함없이 닭털공 치니
구십환갑 백살장수 문제없다오
후렴:
모란봉에서는 비단 아침운동시간뿐만아니라 낮에도 대중체육이 활발히 진행되고있다.
모란봉구역을 비롯한 중구역, 서성구역, 보통강구역, 대성구역 등의 나이많은 로인들이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 바드민톤운동장에 와서 경기도 하고 손자, 손녀들에게 란타하는 법도 배워주며 점심도 같이 나누고 춤도 추면서 즐겁게 보내고있다.
나는 모란봉에서 진행하는 이 즐거운 대중체육을 볼 때마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잡고있는 남산에서도 대중체육을 하였으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생각하군 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바와 같이 남산밑 지하에는 악명높은 정보원(전신인 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이 자리잡고 사람잡이를 하고있어 불쾌한 인상에 등산하기를 꺼리는데다가 산자체가 가파롭고 평평한 곳이 없어 운동할 조건이 되지 못할뿐만아니라 더우기 사방 가시철조망을 쳐놓아 출입을 통제하면서 비싼 입산료를 받기때문에 돈없는 일반주민들은 등산할래야 등산할수 없고 운동을 하고싶어도 운동을 할수 없게 되여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남도처의 그 어디에서나 다 같은 현상이다.
그러니 이남에서 대중체육이 어떻게 있을수 있으며 또 발전할수 있겠는가.
이남은 대중체육자체도 황무지이다.
그러면 이남체육인들의 운명은 또 어떤가.
그들은 돈에 목메여 움직이는 가련한 처지에 있다.
제아무리 세계적인 패권자가 된다 하더라도 알아주는데가 없으며 명예도 없고 보수도 보잘것없다.
내가 입북한 2년후인 주체80(1991)년 봄에 일본 지바에서는 제41차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열리였다.
이때 위대한 주석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넓은 도량에 의하여 력사상 처음 《코리아》탁구유일팀으로 출전하여 패전을 모른다던 외국녀자팀을 보기 좋게 타승하고 우승하였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일대 경사였다.
그리하여 유서깊은 김일성경기장에서는 10만명의 참가하에 《코리아》탁구유일팀 전체 성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평양시 환영군중대회를 가지였다.
대회에서는 리분희, 유순복선수에게 인민체육인칭호를 수여할데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당시) 정령이 랑독되고 그 자리에서 명예칭호증서와 함께 국기훈장 제1급이 본인들에게 안겨졌다.
이 격동적인 사실을 주석단 앞좌석에서 직접 바라보던 이남의 남녀탁구강자들인 김택수, 현정화를 비롯한 선수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하는 동시에 자기들의 신세에 실망을 금할수 없어하였다. 그때 이남선수들은 한결같이 《북의 선수들이 부럽다. 북에서는 이처럼 세계패권자들을 영웅시하는데 우리는 아무것도 없다. 환영사업도 없고 명예칭호도 없으며 다만 약간의 보수만 있을뿐이다.》고 개탄하는것이였다.
체육계에 관심을 가지고있는 나는 얼마전에 이남의 세계권투선수권보유자 최효삼이 경기후 비참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였다.
그는 1990년에 세계권투선수권을 보유하게 되였는데 돈이 없어 그동안 네번밖에 경기를 치르지 못하고있었다.
자그마한 회사에 명줄을 걸고있던 그는 하는수없이 18개월만에 세계권투링에 오르게 되였다. 그는 사생결단으로 싸워 이기기는 했으나 마지막기력을 모아 《내 장갑을 풀어줘.》 하는 말을 유언처럼 남기고 죽게 되였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시체를 붙잡고 《시합준비를 하며 돈이 모자라 제대로 못 먹고…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세계선수권을 보유하면 뭐 나아질게 있다고…》하며 눈물을 쏟았던것이다.
그런데 그의 죽음과 바꾼 승리의 월계관도 부족하여 돈에 환장한자들은 아직 피가 채 식기도 전에 그의 인체에서 심장, 신장, 간장, 취장, 각막 등 9개의 장기를 떼여내는 몸서리치는 행위를 감행하였다.
체육인생애의 전기간 32승과 5패의 전적을 가진 세계권투 패권자 최효삼, 그는 이렇게 돈의 희생물이 되여 장기마저 빼앗긴채 한많은 세상을 떠나갔다.
이것이 오늘 이남체육인들의 비참한 운명이다.
실로 한지맥으로 이어진 북과 남은 제도상의 차이로 하여 체육활동과 체육인들의 운명에서도 이렇듯 현저한 차이를 보여주고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