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
예술은 사람들에게 풍만한 문화정서적량식을 주고 그들을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로 힘있게 이끄는 위력한 사상적무기이다.
그런데 썩어빠진 예술, 돈벌이수단으로 리용되고있는 예술만 보아오던 나는 예술이라면 아예 등을 돌려대군 했다.
그러던 내가 예술의 진미를 알게 된것은 이북에 온 이후부터이다.
이북의 예술은 모두 하나와 같이 민족적형식에 사회주의적내용을 담은것으로서 사람들에게 풍부한 정서를 안겨주고 삶의 앞길을 밝혀주고있었다.
나는 이것을 통하여 이북의 예술은 이남처럼 돈벌이의 수단으로, 유흥거리로 리용되는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문화정서적요구를 충족시켜주는 인민을 위한 예술로 그 면모를 일신했다는것을 잘 알게 되였다.
특히 예술이 대중화되여있고 근로자들의 예술적기량이 높은데 놀랐다.
나는 TV를 통하여 전국근로자들의 노래경연을 보고 크게 감동되였다.
노래경연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다 참가하여 독창, 2중창, 중창을 훌륭히 하고있는것도 놀라왔지만 70고령의 로인이 독창을 하고 온 가족이 나와서 각종 악기를 타며 노래를 부르는것은 더욱 놀라왔다.
반주를 하는 근로자들이 각종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솜씨 또한 나를 황홀하게 했다.
노래경연의 심사를 맡은 심사원들도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의 공훈배우, 인민배우들과 전문예술단체의 유명한 가수들, 문화회관일군들로 구성되고있어 경연을 예술적인 견지에서 공정하게 심의하고 평가했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데서 잘된 점과 결함을 일일이 지적해줌으로써 경연참가자들은 물론 공연관람자들과 TV를 시청하는 전국의 모든 근로자들에게 예술적소양을 높여주고있다.
실로 노래경연도 인민을 위해서 하고 인민에게 복무하고있었다.
이남에서도 《KBS》에서 《전국노래자랑》이라는것을 하고 《MBC》에서는 《가요콩클》이라는것을 하고있는데 이것들은 이북에서 하는 전국근로자들의 노래경연과는 모든 면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남에서는 노래는 일반인이 하지만 반주는 전문가가 하며 노래하는 도중에 가사나 곡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그 자리에서 종을 쳐서 중단시켜버린다.
이남에서 하는 《노래자랑》이요, 《가요콩클》이요 하는것들은 인민들의 예술적소양을 높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종의 흥미거리로 하는것이며 노래를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런 기회에 가수의 증서를 받아 직업을 가지고 돈벌이를 하기 위한 목적을 추구하고있다.
나는 이북에서 예술의 대중화수준이 매우 높다는것을 혜산종합방직공장에 갔다가 이곳 예술소조원들의 공연을 보고서도 절실히 느끼였다.
그들은 노래하는 수준도 대단했지만 각종 악기들도 능숙하게 다루고있었다.
그래서 공연이 끝난 다음 손풍금반주를 하던 처녀에게 어떻게 그렇게 손풍금을 잘하는가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생긋이 웃으며 우리 나라에서는 모든 근로자들이 누구나 다 한가지이상의 악기를 다룰줄 알게 되여있다고 하면서 자기도 자체로 배워 예술소조원이 되였다고 했다. 옆에 있던 예술소조책임자는 그의 말을 긍정하며 우리 나라에는 공장, 기업소, 농촌, 어촌, 림산마을, 섬마을 등 모든 곳, 모든 부문, 모든 단위들에 예술소조가 조직되여있고 각종 악기들이 일식으로 갖추어져있어 누구나 다 악기다루는 법을 익힐수 있게 조건이 지어져있으며 예술소조활동도 활발히 벌어지고있다고 했다.
나는 여러곳을 다녀보는 기회에 그 모든것을 목격하게 되였다.
이북의 교예와 그 시설도 나를 감탄하게 했다.
이북의 교예는 사람들의 사상감정과 생활을 반영한 체력교예를 중심으로 하고 민족교예를 기본으로 하고있으며 요술은 사회적으로 의의있는 내용을 기본으로 하여 생활적인 혹은 환상적인 형상을 통해 인간의 지능과 상상력, 창조력을 키워주고있다.
연 건축면적 7만여㎡에 3 500석의 좌석을 가진 평양교예극장은 또 어떤가.
현관의 바닥은 눈부신 보석주단으로 수놓아지고 수백을 헤아리는 현란한 무리등과 화려한 벽화장식들은 극장에 들어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황홀경에 사로잡히게 한다.
또한 빙상교예무대, 수중교예무대, 동물교예무대, 체력교예무대는 조종하는대로 순식간에 교체되고 좌우에서 뻗어내리는 계단무대와 특색있는 공중무대 등은 볼수록 요술처럼 희한하기만 했다.
그리고 은반을 펼쳐놓은듯 한 빙상훈련장과 맑고 깨끗한 수중훈련장을 비롯하여 목욕탕과 한증탕, 치료실까지 달려있는 600여㎡에 달하는 10여개의 대련습장과 30여개의 중소련습장, 분장실과 연구실, 생활실 등 500여개의 방이 있으며 부지면적 1만 4 000㎡에 이르는 합숙과 식당, 교예학교와 동물사를 비롯한 보조청사가 있다.
특히 극장안의 체력교예무대가 순식간에 수중교예무대와 빙상교예무대로 바뀌여지는것은 정말 놀라왔다.
나는 평양교예극장을 여러번 가보면서 이 모든 훌륭한 시설들이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와 보살피심에 의하여 마련되였음을 잘 알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61(1972)년 6월 교예학교를 설립하도록 하시고 주체65(1976)년 3월과 주체77(1988)년 11월에 교예학교 제1기와 제4기 졸업생들의 종합공연을 보아주시면서 유능한 교예배우후비를 키우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심으로써 영국에서 있은 세계교예선수권대회에서는 《공중그네비행》과 《널뛰기》종목에서 1등을 하고 모나꼬에서 있은 세계교예축전에서는 《공중그네비행》, 《널뛰기》, 《바다의 용사들》종목이 1등을 하게 되였다.
특히 나는 이북예술의 높은 경지를 혁명가극들을 보고 더욱 잘 알게 되였다.
문학예술의 위대한 거장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에 의하여 창작완성된 혁명가극 《피바다》는 세계가극사발전에서 새시대를 열어놓은 특출한 창조물이였다.
혁명가극 《피바다》는 종래의 까다롭고 어려운 아리아나 대화창대신에 아름답고 유순하고 알기 쉽고 듣기 좋을뿐아니라 부르기도 헐한 우리 인민의 민족적감정에 맞는 절가로 가극음악을 일관시켰으며 묘사하는 대상의 범위와 시간적, 공간적제약을 받지 않는 방창이라는 새로운 형식도 도입하고있었다.
이처럼 절가를 가극음악의 기본수단으로 하고 방창을 활용한 혁명가극 《피바다》는 립체적인 무대미술과 우아하고 부드러운 무용 등 모든 형상수단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됨으로써 종합예술의 위력을 남김없이 보여주고있다.
이북에서는 혁명가극 《피바다》를 창조하는 과정에 쌓은 고귀한 경험에 기초하여 《꽃파는 처녀》, 《한 자위단원의 운명》, 《밀림아 이야기하라》, 《한 간호원에 대한 이야기》, 《금강산의 노래》를 비롯한 수많은 혁명가극들을 창작하였다.
또 최근년간에는 사람들을 강성대국건설을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하는 김일성상계관작품인 경희극 《산울림》을 재형상하여 온 나라를 들끓게 하고있으며 중국의 고전적전설들인 《홍루몽》과 《량산백과 축영대》를 가극으로 훌륭히 형상하여 우리 인민을 기쁘게 하고있을뿐만아니라 조중친선을 강화하는데도 크게 이바지하고있다.
이북에서는 예술인들의 지위도 이남예술인들과 다르다.
그들은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충실히 복무하고있으며 그로 하여 인민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고있다.
그들은 최고훈장인 김일성훈장과 김일성상도 받고 공훈배우, 인민배우의 명예칭호도 받으며 공민의 최고영예인 로력영웅칭호도 받고 최고인민회의를 비롯한 각급 주권기관의 대의원으로 선거받아 나라의 정사에도 적극 참여한다.
나는 이북예술의 이러한 참모습을 보면서 이남예술의 반동성과 부패성을 개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남에서 류행되고있는 노래는 비관과 눈물, 저주 등 제목만 보아도 비애에 젖은 퇴페적인것들이다.
영화는 미국, 일본의것들을 본따 녀자를 발가벗겨놓고 육체를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을 동물적세계에로 이끄는것들이다. 무용 역시 육체를 드러내고 광적인 세계에로 몰아넣음으로써 사람들을 순식간에 미치게 만들며 《써커스단》의 공연은 렵기적인 취미나 불러일으키고 약을 팔아먹기 위한 무대로 리용되고있다.
어느해인가 나는 충청북도 음성에 있는 친구네 집에 놀러간적이 있다.
친구가 《써커스단》이 왔다기에 같이 가보았는데 시장옆 공지에 천막을 치고 주위에 세명의 보초를 세워놓고 자그마한 문으로 출입시키고있었다.
비싼 값으로 표를 사들어가보니 말 한필과 원숭이 하나에 높이 1. 5m, 길이 10m정도 되는 바줄이 설치돼있었고 어린아이로부터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무당옷차림을 한 형형색색의 배우들이 빙 둘러서있었다.
시작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나더니 원숭이를 가진 한 늙은이가 나타났다.
그는 원숭이에게 먹이를 주면서 재주를 부리라고 눈짓을 했다.
먹이를 받아먹은 원숭이는 늙은이의 어깨에서 잔등에도 가고 가슴에도 가붙으며 지어 머리꼭대기에도 오르내리면서 재주란것을 부리였다. 이러기를 지루하게도 5분씩이나 해댔다. 그 다음에는 나어린 소녀가 나와 바줄에 올라 부채를 들고 중심을 잡으면서 왔다갔다하는것이였다.
이것은 더 지루하게 10분간이나 해댔다.
이번에는 다섯명이 통을 들고 나왔다. 무슨 굉장한 재주거리를 보여주는가 하여 호기심을 가지고 주시하고있었는데 아니 글쎄 한다는짓이 장사질을 펼쳐놓는것이 아닌가.
그들은 감기약, 설사약, 위장약, 뽀드라지약, 고약, 무좀약, 습진약 등을 잔뜩 들고다니며 《한알만 먹어도 뚝 떨어지는 만병통치약이요.》, 《슬쩍 바르기도 바쁘게 뽀드라지, 무좀, 습진, 헌데, 고름이 온데간데 없어지는 특효약이요.》하면서 광고를 해댔다.
구경군들이 어이없어 《누가 약사러 왔는가.》, 《써커스를 빨리 하라.》고 여기저기서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거나말거나 그들은 약광고에 미쳐돌아쳤다. 여기저기서 한두명이 약을 사고있었다. 이러기를 또 10분, 그 다음에는 꺽다리 하나가 말을 타고 주위를 빙빙 돌아쳤다. 재주래야 달리는 말에서 내렸다가 오르고 올랐다가 내리는것뿐이였다.
이번에는 한 중년배가 나와 몸을 휘저으며 《타향살이 몇해던가》하는 《타향살이》의 노래를 애수에 차서 부르더니 이어 진하게 화장을 해 얼굴이 전체 붉게 보이는 처녀배우가 나와 또 《홍도야 울지 말아》라는 노래를 불러대는것이였다.
교예재주를 보러 왔는데 전탕 노래가락만 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닐세라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더니 《왜 노래만 부르나.》, 《빨리 써커스를 하라.》고 또 고아댔다.
그래서 이번에는 재미있는 써커스재주를 펼쳐보이는가 했는데 웬걸 밑창이 다 떨어졌는지 써커스는 하지 않고 두 남녀가 나와 만담이라는것을 하면서 사람들을 억지로 웃기는것이였다. 가까스로 50분을 초라하게 하는 써커스, 그나마도 노래, 만담, 약장사, 관람자들의 항의 등으로 범벅이 된 써커스, 이것이 바로 이남의 교예실상이다.
남에서는 이처럼 떠돌아다니는 《써커스단》이 있을뿐이고 교예극장도 없으며 전문교예단도 없다.
그러면 문학예술은 또 어떠한 형편인가.
외국의것이라면 덮어놓고 받아들이는데 환장한 문예계에서는 최근 《새로운 예술》의 류행을 본따느라고 야단이다.
그들은 문학예술에서 알기 쉽고 감상하기 좋은것들은 천박하고 깊지 못한것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이 도저히 리해할수 없는 난해한 작품들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소설을 구성도 줄거리도 없이 인물의 성격도 배제하고 개념과 론리가 두서없이 산재해있는 쪼각들로 라렬하거나 극도로 추상화된 시들을 《새로운 발견》, 《새로운 창조》라고 떠들어대고있다.
지어 음악계에서는 새로운 류행을 추구하다못해 새소리, 말소리, 탄식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등을 록음해 반대방향으로 돌리거나 그를 두배이상 가속시켜 괴상한 소리를 내게 하여 그것을 그대로 음악이라고 절찬하고있다.
미술계에서는 빛갈을 뿌리는것으로도 부족해 물감병속에 곤충이나 개구리를 잡아넣었다가 쏟아내여 그것들이 기여다닌 흔적을 따다가 명화라고 떠드는 착란증까지 연출하고있다.
이것이야말로 예술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독이며 인류문명을 무참히 짓밟는 범죄행위가 아닐수 없다.
예술의 배척자로부터 예술의 친근한 애호가로 된 나는 북과 남의 판이한 예술을 보고 당당히 평할수 있다.
황홀한 예술로 온 세상에 자랑떨치는 북은 예술의 화원이지만 예술을 돈벌이수단으로 삼으면서 사람들을 타락과 절망에로 이끄는 남은 예술의 페허지로 되고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