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이한 보건상황
사람들은 누구나 다 오래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은 바란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니다.
돈이 없으면 병이 나도 치료받을수 없는 이남과 같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그것을 꿈에서나 그려볼 일이다.
허지만 이북인민들은 누구나 다 행복속에서 오래 살수 있다는 자신심을 가지고있다.
그것은 이북에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보건제도가 세워져있고 인민적인 보건시책이 실시되고있기때문이다.
나는 입북초기에 이북의 보건시책을 몰라 남을 웃기는 일도 많았고 감격스러웠던 일도 많았으며 새로 알게 된것도 많았다.
내가 광복거리 금성동에 집을 받고 이사한 다음날 아침이였다.
초인종소리를 듣고 나가보았더니 녀성의사 한분이 찾아왔다.
《누구신지요?》
《여기 진료소 의사입니다.》
《우린 의사선생을 청하지 않았는데요.》
우리의 대화가 이쯤되였을 때 또 망신스러운 일이 생길것 같은 기미를 느낀 안해가 나왔다. 안해는 의사선생을 반겨맞으며 방으로 안내했다.
나는 속으로 안해가 알고있는 의사선생인가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는 우리 가정담당 의사로서 나의 건강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온것이였다.
그는 표지에 《건강관리부》라고 쓴 책에다 나의 건강상태를 하나하나 적어나갔다. 나는 이런 일을 처음 당하는지라 무슨 영문인지 통 알수가 없었다.
《의사선생님, 저는 원래 건강한 사람인데 그걸 기록해서 무얼 합니까?》
《선생님은 아직 잘 모르시겠는데 우리 나라에는 의사담당구역제라는 인민적인 의료봉사제도가 세워져있습니다. 이에 따라 의사들이 주민구역안의 일정한 세대를 고정적으로 맡아가지고 예방치료사업을 진행하는데 제가 선생님댁을 담당하였습니다.
건강관리부는 담당의사의 이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것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이북의 주민들은 누구나 다 태여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건강관리부가 있게 되고 담당의사는 일상적으로 매 가정을 찾아다니며 주민들의 건강상태를 관찰하여 건강관리부에 기록하고 예방대책을 세우며 병이 나면 제때에 치료해준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하고 돌아가면서 안해에게 건강관리부를 인차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
안해가 이미 살고있던 곳에서 건강관리부를 찾아 가져다달라는 소리였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돈을 내라는 말이 없는것이였다.
나는 이북에 와서 무상치료제를 실시하고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래도 왕진비 같은것은 내야 되는것이 아닌가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래서 안해에게 물어보았더니 이북에서 실시하고있는 무상치료제는 전반적이고 완전한 무상치료제이기때문에 왕진비도 없다고 했다.
내가 다시 그러면 수고로이 찾아온 의사선생님에게 얼마간의 사례금이라도 주어야 도리가 되지 않는가고 했더니 이북에서 의사선생님들은 사례금 같은것을 받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의 피와 살, 뼈까지도 환자치료에 바친다고 했다.
실로 들으면 들을수록 새로운 말뿐이였고 놀랍기만 했다.
그로부터 얼마후였다.
내가 직장에서 퇴근해오는데 담당의사선생님이 아빠트현관문에 지켜서있다가 나를 보고 빨리 진료소에 가서 렌트겐촬영을 하고 오라고 했다.
내가 아픈데도 없는데 무슨 촬영을 하겠는가고 했더니 여기서는 매년 한번씩 모든 사람들을 종합검진하게 되는데 빠지면 안된다는것이였다.
그래서 아빠트앞에 있는 진료소에 갔는데 이동렌트겐차가 와서 촬영을 하고있었다.
나는 순서를 기다려 촬영을 했다. 그런데 역시 돈을 내라는 말이 없었다.
내가 집으로 오면서 보니 담당의사선생님은 여전히 아빠트현관문에 지켜서서 어린이로부터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한사람이라도 빠질세라 체크를 해가며 촬영하러 보내고있었다.
나는 그러는 짬시간을 리용하여 그에게 렌트겐촬영을 하고 나오는데도 돈을 내라는 말이 없었는데 그것도 무상인가고 물었더니 그렇다는것이였다.
그러나 나는 이때까지도 전반적이고 완전한 무상치료제라는 의미를 다는 모르고있었다.
그러다가 안해가 해산하게 되여 평양산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그것을 똑바로 알게 되였다.
안해가 산원에 입원하던 날이였다.
그는 병원에 입원하러 가면서도 돈을 가지고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돈지갑을 찾았다.
《돈은 어데다 쓰려고 그러세요?》
《입원하러 가는데 돈을 가지고 가야 할게 아니예요.》
《입원해도 돈쓸 일은 없어요. 그대로 갑시다.》
《다른건 몰라도 밥값이야 물어야 할거 아니예요?》
《밥도 거저 먹여주니 걱정말고 빨리 갑시다.》
안해는 이렇게 말하며 그대로 가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고 또 혹시나 돈을 가지고 가지 않았다가 망신이라도 당할것 같아서 안해를 앞세워놓고는 슬그머니 돈지갑을 찾아가지고 뒤따랐다.
그런데 안해를 입원시키고 나오는데도 돈을 내라는 말이 없었다.
나는 퇴원할 때 보기로 하고 그대로 돌아왔다.
며칠후 안해가 해산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왔다. 딸애라고 했다. 그런데 안해는 순산을 못하고 수술을 했다는것이였다. 나는 안해가 귀여운 딸애를 낳았다는 기쁨과 함께 수술비가 굉장히 많을것이라는 걱정도 했다.
안해가 10일간 입원했다가 퇴원하는 날이였다. 병원에서는 여전히 돈이야기가 없었다. 필경 큰 수술을 했으니 수술비야 받겠거니 생각하고 의사선생님에게 수술비가 얼마냐고 물었다.
그러자 의사선생님과 곁의 간호원들이 일시에 폭소를 터뜨리는것이였다.
안해는 창피스러운지 나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빨리 가기나 하자고 했다.
나는 망신을 당하고 어찌나 무안했던지 뒤통수가 막 근질거렸다. 결국 병원에 돈을 가지고 가지 않아서 망신한것이 아니라 돈을 가지고 갔기때문에 망신한셈이였다.
이렇게 나는 망신까지 당하고서야 이북에서 실시하고있는 전반적이고 완전한 무상치료제에 대한 옳바른 리해를 가지게 되였다.
내가 조선적십자종합병원에 입원하고있을 때였다.
개선중학교 6학년 학생이 지팽이를 짚고 다니기에 어델 다쳐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그 학생은 자랑삼아 말하는것이였다.
그는 어렸을 때 불치의 병에 걸려 7살까지 기여다녔는데 이 병원에서 이미 14번째 수술을 받고 이제 15번째 수술만 받으면 제 마음대로 걸어다닐수 있게 된다고 하면서 그 마지막수술을 위하여 입원했다는것이다. 나는 믿을수가 없어 그의 담당선생에게 물어보았더니 모든것이 옳다는것이였다.
한번도 아니고 15번째의 수술! 돈으로 계산해보는데 습관된 나는 이 엄청난 대수술비를 속으로 계산해보았다.
이남에서 간단한 맹장수술만도 5 000US$이상을 내야 하는데 이 학생의 15번의 수술비는 몇만, 몇십만US$가 될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이북의 고마운 무상치료제에 감사함을 금할수 없었다.
그후 나는 생활의 체험을 통하여 이북의 무상치료제는 전반적이고 완전한 무상치료제로서 전체 주민들에게 적용되고 주민들사이에 차별이 없으며 어린이들과 임신부들의 건강을 위해서는 특별한 국가적혜택이 돌려진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되였다.
그리고 인민적보건시책에 의하여 로동능력을 잃은 사람들과 돌볼 사람이 없는 만성환자, 년로한 환자들에게도 다 무상치료제의 혜택이 차례지고 의료봉사에 드는 모든 비용도 국가가 완전히 무상으로 보장하고있는것도 알수 있었다.
지어 북에서는 이발을 해넣는 보철비, 불구자의 교정기구비도 다 무상이고 병치료를 받는 기간에도 식량과 생활비가 지급되고있다.
북에서는 이러한 무상치료제에 의해서만도 해마다 인구 한사람당 두달분의 생활비와 맞먹는 추가적인 국가적혜택을 받고있다.
북에서는 또한 의료봉사기지들과 제약 및 의료기구생산기지, 의료일군양성기지, 의학과학시설 등이 잘 꾸려져있고 보건일군들은 온갖 성의를 다해 환자들을 치료해주고있다.
나는 또한 북에서 갓 태여나는 애기들과 산모들에 대한 국가적시책에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동평양 문수거리에 가면 두팔을 벌려 어서 오라 반기는듯싶게 지은 평양산원을 보게 된다.
내가 들은데 의하면 이 건물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친히 발기하시고 중앙기관 정무원들을 동원하시여 창광원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게 지어 녀성들에게 안겨준것이라고 한다.
연 건평 6만㎡, 13층건물에 2 030개 호실, 1 500대의 침대, 천연색TV면회실 등이 최신설비로 꾸려진 이곳에서는 지난 30여년동안에 71만명이 출생하였다. 그중 3태자, 4태자만도 600여쌍이나 된다.
산모들은 현대적인 의료설비에서 아이들을 낳고 미역, 산꿀, 영양제를 공급받으며 한주일이상이나 안정생활을 하게 된다.
주체94(2005)년 10월에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남녘의 아이가 태여나는 반갑고도 희한한 일이 생겨나 온 겨레를 기쁘게 하였다.
10월 10일 저녁 범청학련 남측본부 《한총련》대표로 주체87(1998)년에 평양을 방문한바 있는 통일련대 대변인 황선녀성은 《아리랑》공연을 관람하던 도중 갑자기 오는 진통으로 하여 평양산원에 입원하게 되였다.
원래 그는 해산예정일이 이미 지난 몸이여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리랑》공연 관람길에 올랐던것이다.
그는 입원한지 1시간도 못되여 밤 10시에 귀여운 옥동녀를 순산하였다.
이렇게 그는 온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평양산원에서 딸을 낳게 되였다.
그는 입원해있는 기간 무상치료제혜택으로 산후치료는 물론 종합적인 치료와 함께 모든 산모들과 꼭같이 산꿀과 귀중한 보약제, 영양제들을 공급받았다. 하여 산모의 건강상태와 아기의 발육상태는 대단히 좋았다. 그가 퇴원하게 되였을 때였다.
그가 비행기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갓난애기가 비행기동음에 놀랄수도 있고 여러가지로 불편할수 있으므로 판문점을 통해 륙로로 가게 하되 차를 천천히 몰아 산모와 애기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하라고 사려깊은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해당 일군으로부터 장군님의 육친적인 사랑의 소식을 전달받은 황선녀성의 얼굴에서는 두줄기의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그는 평양산원 의료일군들의 뜨거운 환송속에 산원문을 나섰으며 복받은 옥동녀를 안고 판문점으로 당당히 나갔다.
그후 황선부부는 북과 남은 하나라는 뜻에서 아기에게 《윤겨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가 평양에서 아기를 낳은 소식은 이남에서 큰 화제가 되여 널리 퍼지게 되였다. 평시에 《아리랑》공연에 침묵을 지키던 보수언론들까지도 《평양에서 출산한 최초의 남한녀성》이라고 크게 보도하였다.
북에서는 또한 세쌍둥이, 네쌍둥이들에 대해 극진히 보살펴주고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주체36(1947)년에 첫 세쌍둥이가 태여났을 때 아주 경사스러운 일이라고 하시면서 이것은 나라가 흥할 징조라고 못내 기뻐하시였다고 한다.
어느해인가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에서 회의를 지도하고계시다가 세쌍둥이가 태여났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우리 나라에서 세쌍둥이의 출생률이 높아지고있는것은 나라가 흥할 징조라고 하시면서 전국각지에서 태여나는 세쌍둥이들모두가 특별한 의학적감시와 보호를 받도록 온갖 대책을 다 취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출생후에는 생년월일을 새긴 은장도와 금반지를 선물로 주시고 그들이 다 자랄 때까지 국가의 부담으로 키울데 대한 은정깊은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주석님과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에 의하여 북에서는 세쌍둥이라고 의진되면 무조건 평양산원에 입원시키는것이 하나의 법칙처럼 되고있다고 한다.
하여 세쌍둥이 산모들은 그 어디에 있건 관계없이 평양시와 그 주변에서는 구급위생차로, 지방에서는 특별비행기에 실려 평양산원에 입원해 현대적설비와 정성높은 의료일군들의 방조속에 아이들을 낳고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은장도와 금반지를 비롯한 수많은 선물을 받으며 아이들을 키우게 된다.
그리고 퇴원할 때에는 담당의사, 간호원들은 물론 산원의 많은 성원들이 떨쳐나와 환송해주고 남편이 안겨주는 꽃다발을 받는 속에 시부모와 형제들, 직장과 인민반성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게 된다.
인민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흘러넘치는 이 평양산원을 참관한 이남《총리》를 비롯한 남측고위급회담대표단, 기자단, 녀성대표단성원들이 《북은 녀성들의 천국이다. 나라에서 지어준 이런 훌륭한 산원에서 아이를 낳으니 정말 부럽다. 》고 한결같이 말하였으며 50대인 녀성들은 《이제라도 평양산원에 와서 아이를 낳아보았으면 좋겠다. 》, 《통일되면 딸, 며느리들을 꼭 평양산원에 데리고 와 아이를 낳게 하겠다. 》고 말하였다고 한다.
나는 북에서 세쌍둥이, 네쌍둥이들이 태여난것을 큰 경사로 여기면서 극진히 돌보아주고있는 이 격동적인 사실을 보면서 이남의 실태를 개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남에서는 우선 쌍둥이를 낳으면 사회적으로 돌봐주는데가 없어 부모들자신이 창피스러워한다.
내가 살던 운천에서 옆집의 신혼부부가 첫애기를 아들과 딸의 쌍둥이를 낳았댔는데 나는 그들을 부를 때 처음에 《쌍둥이아버지》, 《쌍둥이어머니》라고 친근하게 부르군 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부르면 창피하고 귀에 거슬리며 지어 수치감을 느낀다고 하면서 그렇게 부르지 말아달라고 하는것이였다.
이남에서는 세쌍둥이, 네쌍둥이의 출산률이 적을뿐만아니라 혹시 낳는 경우에도 그 부모들이 내다버려 죽게 만든다.
내가 의거하기 전해에 경상남도 마산에서 있은 일인데 한 젊은 녀성이 세쌍둥이를 낳자마자 오물통에 내다버려 죽게 만들었다.
그 녀성은 살인죄에 걸려 재판을 받게 되였다.
그는 재판정에서 세쌍둥이를 키우자고 생각하니 첫째로, 경제력이 부족하고 둘째로, 힘이 들고 셋째로, 창피스러워 하는수없이 내다버리게 되였다고 진술하였다.
나는 이 사실을 신문을 통해서 알게 되였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북에서는 세쌍둥이, 네쌍둥이 어머니들이 많은데 한지맥을 이은 이남에서는 왜 다산녀성들이 없는가. 그것은 필경 우의 산모와 같은 리유로 아이들을 다 내다버렸기때문이라고 생각되였다.
나는 이북보건제도의 우월성을 료양제도를 통해서도 잘 알수 있었다.
나는 입북한 이듬해 왼쪽팔의 치료를 위하여 황해남도 삼천군에 있는 종달온천에 료양을 가게 되였다.
료양소는 경치수려한 곳에 아담하게 자리잡고있었는데 시설도 좋았고 53℃의 뜨거운 물이 솟구쳐올라 첫인상에도 치료가 잘될것 같은 신심이 생겼다. 나는 이 료양소가 시설도 좋고 물온도도 높아 특정한 사람들이 많은 돈을 내며 치료받는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온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하여 이사람저사람 물어보았더니 500여명의 료양생들이 모두 로동자, 농민, 사무원, 영예군인 등 평범한 사람들이였다.
땅속에서 솟구쳐오르는 생신한 온천탕에서 땀을 쭉 빼고나면 온몸이 거뜬하고 쏘던 아픔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군 했다. 나뿐만아니라 사람들모두가 나날이 차도가 생긴다고 했다. 옆방에 있는 한 녀성은 허리를 다쳐 지팽이를 짚고 왔었는데 10여일만에 지팽이를 버렸을뿐만아니라 운동장에 나와 배구운동까지 하게 되였다.
한 보름을 지나니 쩔룩거리던 사람들이 탁구, 배구, 축구, 철봉, 달리기 등 여러가지 운동을 하면서 락천적으로 지내게 되였으며 밤이면 문화회관에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즐겁게 보내군 하였다. 나는 그때 사리원에서 온 곱살한 처녀동무가 《여기가 내 사는 조국이여라》라는 노래를 부르는것을 들으면서 나의 운명과 결부하여 생각하며 큰 충격을 받았었다.
백두산 천지에 붉은 노을 비끼니
락원의 강산에 아침해 솟네
수령님 뜻으로 빛나는 내 나라
여기가 내 사는 조국 장군님 품이여라
…
그 처녀는 신통히도 내가 안긴 조국, 그렇게도 안기고싶던 장군님의 따사로운 품에 안긴 나의 운명을 노래하고있었다. 나는 끓어오르는 격정을 누를길 없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였다.
그때 받은 충격이 너무도 커서 나는 이 노래를 사랑하며 배웠고 오늘날에는 동료들로부터 《18번》지정곡으로 지목받게 되였다.
료양소에서는 모든것이 무상이였다. 숙박하는것도, 먹는것도, 치료받는것도 모두 무상이였으며 지어 오고가는 차값도 국가가 부담하고있었다.
이 이상 더 좋은 인민의 세상, 세상에 부럼없는 땅우의 락원이 또 그 어디에 있을것인가.
나는 그후에도 경성온천, 배천온천 등에도 가보았지만 국가의 인민적시책은 그 어디에서나 똑같았다.
나는 여러번 온천치료의 혜택을 받으면서 이남의 온천실태를 생각해보았다.
경상남도 창녕군 부곡면 거문리에는 부곡온천이 있다.
그 옛날 훈민정음의 창제자 세종대왕도 여기에서 치료받았다는 이 온천 주변에는 7개의 호텔, 19개의 려관이 들어서있고 온천에서는 돈있는자들만 와 부화방탕한 생활을 하고있다.
나도 1983년 10월에 친구들과 함께 관광차로 가본적이 있었는데 호텔비, 식비, 물건값, 온천목욕값 등이 너무 비싸 하루도 못되여 돌아오고말았다.
나는 그후에도 온양온천, 동래온천, 수안보온천 등을 비롯하여 여러 온천들에도 가보았지만 서민들을 위한 온천은 하나도 없었고 료양치료제 그자체도 없는 형편이였다.
지하에서 솟구치는 자연온천도 북과 남에서는 제도가 다르니 사람들의 리용가치도 판이하게 달라지는것이다.
인민적보건시책의 덕을 받으며 행복하게 사는 이북에서는 평균수명이 해마다 늘어나고있으며 사람들은 60청춘, 90환갑을 노래하고있다. 하기에 북에서는 생일 90돐을 맞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나고있다.
이 모든것은 전적으로 위대한 주석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직접적인 발기와 보살피심속에서 이루어진것이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주체36(1947)년부터 로동자, 사무원들과 그 부양가족들에게 사회보험법에 따라 무상치료제를 실시하시였고 주체42(1953)년 1월부터는 치료대상에 제한이 없는 전반적인 무상치료제를 실시하시였다.
주체49(1960)년 2월부터는 전반적무상치료제의 성과를 공고발전시키시여 완전하고도 전반적인 무상치료제를 실시하시였다.
이북의 이러한 무상치료제는 인민이 주인이 되고 모든것이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을 똑똑히 보여주는것으로 된다.
이와는 반대로 이남에서는 돈이 없으면 치료를 받을수 없어 온갖 질병속에 고통을 받고있다.
하기에 남에서는 《가난하면 아프지 말라. 》라는 말이 통용되고있다.
의사들은 환자의 몸에 청진기를 대는것이 아니라 돈주머니에 대고있다.
종합검진을 한번 받자면 400US$가 있어야 하며 입원비는 하루평균 300US$에 달하고있다.
특히 신형독감에 대한 진찰 및 검사비는 1회당 20만원이나 되여 대부분의 주민들은 병원문앞에서 돌아가거나 검진자체를 아예 포기하고있다.
이로 하여 2009년 상반년까지만 해도 하루에 1 500여명정도 발생하던 신형독감의 감염자수는 11월에 무려 1만여명으로 늘어나고 11월말까지 117명이나 사망하여 사람들에게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주고있다.
로인들의 월평균 치료비는 2 000US$나 되며 이 돈을 마련할수 없는 수십만명의 로인들이 자식들에게서 버림을 받고 질병과 빈곤, 고독속에서 홀로 여생을 마치고있다.
수술비는 천문학적인 수자에 달한다. 간단한 맹장수술비만도 5 000US$, 복강경수술비는 6 000US$, 추관판탈출수술비는 2만US$, 자궁암수술비는 3만US$, 뇌수술비는 15만US$, 골수이식수술비는 무려 17만US$에 달한다.
약값 또한 천정부지로 오르고있다.
2009년에 감기약값은 전년보다 16. 9%, 종합비타민값은 16. 4%로, 외래진료비는 7. 2%로 올라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주고있다.
백혈병약값은 한알에 2만원 하던것이 무려 7만원으로 껑충 뛰여올랐다. 2만원을 할 때에도 수많은 백혈병환자들이 약값을 마련할수 없어 써보고싶은 원을 남기고 죽어갔는데 그 약값이 세배이상이나 뛰여올랐으니 어떻게 환자들이 약을 사 쓸수 있겠는가.
병원에서는 의사들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돈벌이를 하고있다.
우선 《리베이트》라는 사기행위로 환자들의 돈주머니를 털어내고있다.
《리베이트》란 의사나 병원들에서 환자들에게 안면있는 제약회사약들을 구입하도록 처방전을 떼주고 그 대가로 제약회사로부터 돈이나 물건을 받는 부정거래현상을 말한다.
의료계와 제약회사들의 이런 내막을 알길없는 환자들은 제약회사의 비싼 약을 사며 돈주머니를 채워주고있다. 제약회사는 이렇게 털어낸 돈을 선심이나 쓰듯 개별적의사나 병원들에 주면서 《유인작전》을 더 잘하라고 등을 두드려준다.
어느 한 단체가 조사한데 의하면 2007년 12월부터 2009년 1월까지의 기간에 17개 제약회사들이 《리베이트》사기행위를 한 의사들에게 7 228억원의 돈을 주었으며 이 부정거래로 인한 소비자피해규모가 최소한 2조 8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병원들에서는 또한 의사들이 허위병력서를 만들어주고 돈벌이를 하고있다.
서울의 어느 한 병원 원장은 2007년 10월부터 입원환자 385명의 허위병력서, 허위처방전, 허위진단서 등을 발급해주고 3억 2 500만원의 돈을 사취하였다.
부산에 사는 한 의사는 2007년 3월부터 2년 넘게 처방전을 떼주는 조건을 리용하여 알약 11만여정을 빼돌려 2만여정을 소비하고 9만여정은 환자들에게 비싼 값으로 팔아먹었다.
또한 병원들에서는 의사들이 각종 범죄에 개입하여 돈벌이를 하고있다.
2009년 10월말 보험회사들로부터 2억 5 000만원을 략취한 정 아무개와 그 일당 3명의 범죄실현에 의사들이 깊숙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일당은 2007년 4월부터 2009년 8월까지 광고를 통해 고학을 하는 99명의 대학생들을 모집하여 교통사고를 일으키도록 하고 보험회사들로부터 돈을 뜯어냈다.
차량을 일부러 부딪치게 하는 수법으로 26차례의 교통사고를 일으킨 이 일당은 의사들을 매수하여 부상자들의 입원기간을 연장하거나 치료기일이 더 걸리는듯이 병력서를 위조하여 엄청난 돈을 받아냈던것이다.
또한 의사들은 임신부들을 대상하여 돈벌이를 하고있다.
2009년 제주도에서는 모리간상배들이 의사들과 짜고 81명의 임신부들을 턱대고 3억 8 400만원을 떼먹은 사실이 드러났다.
치과병원에서의 돈벌이행위는 상상을 초월하고있다.
인공이발은 개당 200만∼250만원, 이발교정치료비는 500만∼600만원, 이발을 하얗게 하는 미백치료는 50만원이나 된다.
2007년 8월 10일에 한 주민은 출판물에 《칼을 안든 도적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치과에 가면 그런 느낌을 받는다. 인공이발 하나에 200만원을 하고 종합병원에 가면 외국제라고 하여 400만원씩 받아먹는다. 과연 이들이 의사인가. 》고 한 글을 투고했다.
이남의 병원들이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는 곳이 아니라 돈벌이만 하고있는 곳이라는 사실은 내가 직접 당해보았기때문에 잘 알수 있다.
나는 이남에 있을 때 교통사고로 왼쪽팔이 어깨에서 빠지는 큰 부상을 당하게 되여 서울 명동에 있는 성모병원에 입원하게 되였다.
그때 팔을 어깨에 집어넣고 고정만 하면 얼마든지 완치할수 있었다.
그런데 병원측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하여 이핑게저핑게 대면서 기일을 질질 끌었다.
빠진 어깨뼈는 제자리에 들어가지 못하고 상처는 더욱 악화되였다.
하는수없이 수술하게 되였다.
수술할 때 의사들은 나보고 《좋은 못》을 쓴다고 히쭉 웃기까지 하였다.
병원측에서는 좋은 못값과 30일동안의 입원비로 350만원(5 000US$)을 뜯어먹었다. 그런데 그 엄청난 돈을 들이밀었는데도 부상자리는 완치되지 못하였다. 하는수없이 아픈 팔을 그대로 참아오다가 이북에 와 조선적십자종합병원에서 재수술을 받게 되였다.
수술을 해보니 그 좋은 못이라는것이 다 녹이 쓸고 부러져있었다.
어깨관절부위에서 쇠가 녹쓸고 부러져있으니 왜 쏘지 않겠으며 완치될수 있겠는가.
나는 그때에야 이남의 병원의사들이란 흉기없는 도적놈들이라는것을 똑똑히 알게 되였으며 팔병신을 만들어놓은 놈들을 저주하였다.
이남에서는 또한 의료사고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고있다.
최근 당국이 줄여서 발표한데 의하더라도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동안에 병원들에서 무려 8 000여건의 의료사고가 있었다.
또한 감염사고는 년간 30만건이 발생했는데 이로 하여 한해에 1만 5 000명의 환자들이 사망하고있다.
병원에서 치료받고 퇴원한 100명중 12명정도가 인차 사망하고있으며 그중 50. 4%는 얼마든지 살릴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병원들에서 의료사고로 인한 사망자수는 년간 1만~2만 7 000명인데 그것은 산업재해나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수보다 훨씬 더 많다.
하기에 이남민중은 병원들은 병을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병을 옮겨놓는 전염기관,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는 지옥이라고 규탄하고있다.
또한 이남에서는 입원실이 부족하여 치료를 받지 못하고있다.
지금 이남에서는 갑상선암환자가 급격히 늘어나고있는데 지난 2000년에 5 588명이였던것이 2006년에는 1만 5 603명으로 늘어났으나 이런 환자들을 치료할수 있는 치료실은 불과 63개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 동촌동에 사는 윤 아무개는 갑상선암을 제때에 치료받지 못해 억울하게 죽고말았다.
어느 한 기관이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등 서울시내의 주요병원들을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치료실의 부족으로 환자들이 갑상선요드치료를 받을수 있는 대기기간이 평균 1년이나 된다고 한다.
특히 위암, 간암, 페암, 대장암, 유선암 등은 수술후 치료실의 부족으로 치료를 전혀 기약할수조차 없다고 한다.
그러니 환자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고 죽는 날만 기다리지 않을수 없다.
하여 이남은 세계에서 《질병속에서 기침하는 <나라>》, 《병마의 소굴》로 비난을 받고있다.
돈이 없어 병나면 병원문턱에도 못 가보고 죽어야 하고 의료사고로 불구자가 되여 죽어야 하며 치료시설마저 없어 또 죽어야 하는 형편, 바로 이것이 이남의 보건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