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렬한 반인륜적, 반민족적인 세뇌교육

 

력대로 이남당국자들은 《반공을 국시》로 내세웠다. 이남의 수많은 애국자들과 민중이 이를 견결히 반대해왔다.

1959년 7월 진보당 당수 조봉암선생은 살인재판정에서 《나는 <반공국시> 그자체를 부정한다. 외세에 의하여 분렬된 조국을 통일하기 위하여서는 공산주의자들이라고 하여 적대시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민주주의와 자주정신이 꽃피고 우리 민족이 참생활을 누리는 살기 좋은 사회를 건립하기 위해서는 <반공>이 아니라 마땅히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국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싸우다가 끝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970년대 신민당 《국회》의원 유성환까지도 《국회》연단에서 국시란 국가의 기조정책을 뜻하는것인데 어떻게 반공이 국시로 될수 있겠는가고 열변하였다가 그 《반공법》에 걸려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하게 되였다.

나도 해병대 전복무기간 이남당국의 《반공국시》의 《혁명공약》을 외워야 잠을 재우군 했으므로 지금도 그 내용을 기억하고있다.

총 6조로 되여있는데 1조가 바로 반공이다.

《1. 반공을 국시의 제1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강화한다.…

5. 민족적숙원인 국토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수 있는 실력의 배양에 전력을 집중한다.》…

《반공을 국시》로 하는 력대 당국자들의 반민족적행위로 말미암아 지금 이남학교들에서는 반공교육이 강요되고있다.

붓을 놀리며 적어나가는 나는 여기서 심한 량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수 없다.

한것은 이남당국에서 직접 틀어쥐고 하는 반공교육이 비렬한 반인륜적이며 반민족적내용으로 일관되여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리라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옳은 소리 한마디 못하고 침묵만을 지켜왔었기때문이다.

교육은 사람들을 지덕체를 겸비한 사회적인간으로 키우는 사업인데 백지장과 같은 학생들의 머리속에 반민족적이고 적대적인 사상을 주입시키는 이남당국자들의 처사야말로 얼마나 가증스러운 행동인가.

우선 반공교육은 북에 대한 허위와 날조, 중상과 비방으로 일관되여있다.

세상에서 가장 인민적이며 가장 우월한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제도를 《획일적》이니, 《페쇄적》이니 하며 헐뜯는가 하면 나라의 당당한 주인이 되여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누구나 다 의식주에 대한 근심걱정을 모르고 무료교육, 무상치료제의 혜택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있는 이북인민들에 대하여 《자유》가 없다느니, 《강제로동》을 한다느니 하며 비방중상을 하고있으며 지어 항상 《감시》와 《통제》속에서 부모형제지간에도 마음 터놓고 살수 없는 처지에 있다고 지껄여대고있는것이다.

특히 반공교육은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가장 유치하고 가장 비렬한 인권모독으로 일관되고있다.

공산주의자들은 얼굴은 빨갛고 눈알도 새빨갛고 머리에는 뿔이 돋고 이발은 밖으로 삐여져나온 드라큐라(흡혈귀)처럼 생겼다고 가르치고있다.

뿔을 가리우기 위해 쏘련에서 쓰는 레닌모를 쓰고 다니며 성질은 매우 사납고 표독하다.…

듣기에도 소름이 끼치는 일이다. 아무리 비방중상에 이골이 난자들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인격을 모독하며 인권을 무시한단 말인가.

나는 그때 이러한 반공선전을 들으면서 이남당국자들에 대한 회의심을 금할수 없었다.

또한 반공교육시간에는 그림그리기도 하는데 그 드라큐라를 잘 형상한 그림에 100점을 주었고 그 100점짜리들을 골라 학교적인 전시회도 하군 했다. 어린 청소년학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이러한 세뇌교육을 받으니 북에 대한 옳바른 인식을 가질수 없는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기에 《통일의 꽃》 림수경학생까지도 평양에 와보고 북의 사람들이 뿔도 나고 얼굴도 새빨갛고 이발도 삐여져나왔다고 했는데 진작 이북에 와보니 그런것이 아니라고 했다는 사실은 반공교육의 혹심한 후과를 보여주는것이였다.

나는 1972년 9월 북남적십자단체회담 제2차회의를 취재하러 서울에 나갔던 한 기자와 친숙하게 되여 당시의 사실을 얻어듣게 되였다.

당시 기자단 25명은 리화녀대학교 학생들의 안내를 받으며 뻐스를 타고 서울로 가게 되였다.

처음에 서먹서먹하던 분위기는 점차 오고가는 동포애에 휩싸여 어느덧 화해의 분위기로 변하였고 통쾌한 웃음소리와 노래까지 울려나오게 되였다.

이때 한 녀대학생이 기자의 손을 잡으며 《오빠, 난 이젠 무섭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것이였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가 하여 기자는 생각하다가 《그렇지!》 하며 이 녀대학생이 반공선전에 속아왔음을 실토하는것이라는것을 알아차렸다.

아니나다를가 그 녀대학생은 자기의 심중을 터놓는것이였다.

《공산주의자들은 뿔도 없고 얼굴도 빨갛지 않아요. 표독하지도 않고요. 다들 친부모같고 친오빠같아요. 》

우리 적십자단체대표단이 서울 한복판에 있는 코스모스백화점을 참관하러 갔을 때였다. 복도와 계단 량쪽에 늘어선 조선옷차림의 녀성들이 우리 대표단성원들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며 《얼굴이 빨갛지 않아!》, 《뿔도 없어!》, 《다들 신사멋쟁이야!》 하며 수군거리는것이였다.

그 기자는 이들의 반영을 주체61(1972)년 9월 20일에 위대한 수령님께 직접 보고올리였는데 수령님께서는 매우 심중히 들으시고 이러한 사실은 북과 남이 대화하고 접촉하면 남조선사람들에게 얼마든지 좋은 영향을 줄수 있다는것을 말하여주는것입니다라고 교시하시였다고 한다.

나는 북에 와서도 학생들에게 반공교육의 허황성을 깨우쳐주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면서 제자들에게 마음속으로 늘 속죄하군 했다.

그러다가 1990년 9월 북남고위급회담이 열려 북의 대표단이 서울에 드나들게 되자 어느 한 기회에 내가 제일 사랑하고 또 그도 나를 제일 따르던 한재윤이라는 제자에게 편지를 써보낸바 있다.

《보고싶은 사랑하는 제자 재윤이 보아라.

오늘은 어찌나 네가 보고싶은지 이렇게 펜을 들었다.

내 소식을 재윤이는 알고있겠지. 아마 동창들이 모이면 내 이야기를 많이 하고있을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얼마전에 오매불망 그리던 고향을 찾아 북으로 들어와 지금은 평양에서 살고있단다.

이곳에 와 생각해보니 분단의 아픔을 더 느끼게 되는구나.

재윤아,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지. 나는 그 말의 참뜻을 오늘에야 비로소 알게 됐단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실지체험을 통해 북과 남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수 있었지.

재윤이도 공부할 때 이북사람들은 뿔이 나고 얼굴이 새빨갛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 그때 그것이 정말인줄 알았을거야.

지금은 아이아버지가 되여 그런 생각을 덜하고있는지는 몰라도 그때 반공시간에 너무 지독하게 했기때문에 그런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수도 있었을거야.

재윤아,

나는 이곳에 와서 그때 파출소소장이 학생들에게 그렇게 말하는것을 보고도 학교장으로서 왜 그대로 묵인했는가, 왜 학생들에게 그것이 거짓이라고 말 한마디 못해주었는가, 그래도 량심에 살고 정의에 살자고 한 사람이 <보안법>이 무서워서, 감옥이 두려워서?!… 나는 이러한 죄의식을 한시도 잊은적이 없구나.

나의 이 아픈 마음을 멀리서 전하는것은 너에게 그 무슨 환심을 사려는것도 아니고 북에 좋은 인상을 가지라고 설교하는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시키는대로, 교과서에 있는대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것을 속대없이 묵인한것이 너무도 가슴아프고 죄책감이 크기때문에 스승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자신을 저주하고 참회하는 마음에서 그러는것이야.

재윤아,

거짓을 배워주고 어린 가슴속에 북에 대한 나쁜 인상을 안겨준 이 스승을 용서해다오.

사랑하는 재윤이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에게, 이제는 아들, 딸들을 가졌을 아버지와 어머니들에게 두손 모아 빌고 또 빈다. 너그러운 용서를.

우리 통일되는 날 얼싸안고 만나 울고웃으며 기쁨과 슬픔의 회포를 나누어보자.》

이 시간에도 이남에서는 가장 비렬하고도 악랄한 반인륜적, 반민족적세뇌교육이 거침없이 나어린 청소년들의 머리속에 주입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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