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을 통해 본 두 제도

 

생활이란 사람이 먹고 입고 쓰고사는데 필요한 물질적부와 일정한 휴식, 안정된 로동조건을 보장받을수 있는 권리에서 생기는 인간의 삶인것이다.

인민이 국가와 생산수단의 주인으로 된 이북의 사회에서는 생존과 민주주의적권리가 백방으로 보장됨으로써 인민들의 행복한 생활이 이루어지지만 주권과 생산수단이 착취자들의 수중에 장악되여있는 이남에서는 인민들에게 초보적인 생존권과 민주주의적자유가 보장되지 못함으로써 참다운 생활이 이루어질수 없다.

내가 베를린에서 이북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리륙하는 순간 드디여 의거입북에 성공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오던 반공화국선전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이북에서는 1년에 쌀밥은 두번, 고기국도 두번, 닭알은 한번밖에 먹지 못한다, 녀성들은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는것이 고작이다, 주택은 심히 부족하고 주거공간이 협소하여 신혼부부는 장기간 동거생활을 한다. …

이러루한 내용이 이북에서의 의식주문제에 대한 이남당국자들의 선전이였다.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정작 이북에 몸담고 살기 위해 가는 이 순간에 혹시나 하는 생각은 어쩔수 없었다.

나는 이북의 생활과 관련한 륜곽적인 말이라도 들어보고싶어 비행기의 앞좌석에 앉아있는 30대 초반쯤 되여보이는 이북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실례이지만 선생은 어느 부문에서 일보십니까?》

《대외경제부문에서 일합니다.》

《이북에서 쌀값은 대체 어느 정도입니까?》

《예? 쌀값…》

그는 대뜸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선생은 어디에서 오십니까?》 하고 되묻는것이였다.

나는 너무 조급했던 나머지 실수를 했다. 나의 신분을 소개하기에 앞서 서둘러 질문부터 했던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마도 나를 이북방문차로 가는 해외교포인가 생각했던 모양이다.

《제 신분을 먼저 알려드리지 못하고 질문부터 해서 미안하게 되였습니다. 저는 이남에서 월북해오는 사람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정말 반갑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나의 손을 굳게 잡아주었다.

《이제 가서 살아보시면 알게 되겠지만 쌀은 국가에서 매 가정에 공급해주는데 거의 무상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북에서는 집 한채에 대략 얼마나 합니까?》

《집은 국가에서 지어서 인민들에게 무상으로 주기때문에 집을 팔고사는 법이 없습니다.》

《선생은 월급을 얼마나 탑니까?》

《130원을 탑니다.》

《그것이면 생활수준이 어느 정도됩니까?》

《아무런 걱정이나 불편없이 살수 있습니다.》

아무리 물어보아야 그는 좋은 말만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월북해온다고 하니 듣기 좋게만 말하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선생, 좋은 말씀만 하시지 말고 있는 그대로 말씀해보십시오.》

《허, 내 말이 믿어지지 않으시는 모양입니다. 정 그러시다면 이제 평양비행장에 내려서 거기에 있는 사람들과 한번 물어보십시오. 아마 그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다 그렇게 대답할것입니다. 그것이 있는 그대로이니까요.》

나는 그가 이렇게까지 말하는것으로 보아 그의 말이 사실인것 같아 일단은 안심이 되였다.

나는 이북에 첫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 그 많던 의문이 하나하나 풀리기 시작하였으며 오늘날에 와서는 인간이 누릴수 있는 가장 참다운 생활이 바로 여기서 꽃펴나고있다는것을 확신하게 되였다.

해방후 첫날부터 인민들의 복리증진을 위하여 온갖 심혈을 다하여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건국초기에 벌써 유급휴가제와 휴양제, 료양제를 실시하시였으며 전쟁과 전후복구건설의 그 준엄한 시련속에서도 가장 완전한 무료교육제와 무상치료제를 실시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로동자, 사무원들에게 운반비정도의 헐값으로 식량을 공급하도록 하시였고 로동자, 사무원들은 물론 농민들에게까지 살림집을 지어주도록 하시였다.

또한 탁아소, 유치원어린이로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철따라 헐값으로 옷을 공급하도록 하시는가 하면 생활비는 계통적으로 올리시였고 반면에 물건값은 체계적으로 낮추시였다.

그리고 력사적인 주체63(1974)년 4월부터는 세금제도를 완전히 철페하도록 하심으로써 수천년동안 인민들의 고혈과 피눈물을 짜내던 조세제도에 종지부를 찍고 인민이 창조하고 생산한 모든 물질적부가 고스란히 인민의 수중에 들어가게 하시였다.

위대한 주석님과 장군님께서는 특히 주체81(1992)년 3월부터 전체 로동자, 기술자, 사무원들의 생활비를 평균 42.4%로, 사회보장자들의 사회보장년금을 평균 50.7%로, 대학, 전문학교를 비롯한 각급 학교 학생들의 장학금을 평균 38%로 높이고 협동농민들의 분배수입을 높이시기 위해 국가수매가격을 벼는 26.2%로, 강냉이는 44%로 높이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로동자, 기술자, 사무원들의 생활비와 대학, 전문학교 학생들의 장학금 그리고 사회보장자들의 보조금도 체계적으로 높이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공화국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날로 윤택해지는 생활속에서 걱정없이 다같이 고르롭게 잘살고있다.

나는 입북한지 얼마 안되여 가족과 함께 대성산유원지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

나는 유원지에서 가족과 함께 관성렬차도 타고 회전비행기도 타면서 즐겁게 놀다가 내려오는 길에서 어린 쌍둥이오누이를 만나게 되였다.

나는 그들이 너무도 귀여워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나요?》

《리금별.》

《난 리은별입니다.》

《이름이 참 이쁘네요. 나이는 몇살이나요?》

《여섯살입니다.》

《어디서 사나요?》

《보통강구역 락원동에서 삽니다.》

나는 그애들의 씩씩하고 발랄한 모습에서 내 마음이 밝아지고 몸은 젊어지는것만 같았다.

《오늘 유원지에서 어떻게 놀았나요?》

쌍둥이오누이는 서로 앞을 다투어 대답하는것이였다.

《우주비행선을 탔습니다.》

《백마랑 배그네도 탔어요.》

《맛있는것도 많이 먹었나요?》

《김밥하고 찰떡, 단물을 먹었어요.》

《녹두지짐, 닭알도 먹었구요.》

《이제 집에 가서는 뭘 하나요?》

《아동영화봅니다.》

《무슨 영화가 제일 재미있나요?》

《소년장수.》

《다람이와 고슴도치.》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이쁘나요?》

《일 잘하는 사람.》

가장 평범한 대화였다. 미사려구도, 선전도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남에서 들어볼수 없는 가장 귀중하고 가장 값있는 대화였다고 생각한다.

머루알같은 눈을 반짝이며 총총히 내뱉는 아이들의 청신한 말속에 이북의 생활상이 비껴있었던것이다.

그 어디에 가서 요란하게 묻고 취재한들 이보다 더 생큼하고 기름진 자료를 얻어낼수 있을것인가.

북에서는 또한 나이많거나 병 또는 불구로 로동능력을 잃은 사람들과 돌볼 사람이 없는 늙은이들과 어린이들의 생활을 국가적으로 보장해주는 인민적인 사회보장제가 실시되고있다.

이 제도는 현금, 현물, 의료방조, 국가적보호시설을 통한 방조, 알맞는 직업의 보장, 사회적원호 등의 형태로 실시되고있다.

그리고 나이가 많거나 질병, 로동재해, 부상 등으로 로동능력을 잃은 사람들에게 국가적부담으로 생활을 보장해주는 인민적인 사회보험제도도 있다.

나라의 예산지출에서는 매년 사회보험사업비를 더욱 늘이여 근로자들에게 더 많은 추가적혜택이 돌려지도록 하고있다.

이남에서는 도대체 있을수 없는 일이였다.

위대한 태양의 품속에서 인민들의 행복한 생활이 꽃펴나고있는 이북이야말로 세상에 없는 지상락원이다.

그러나 이남의 생활형편은 이와는 정반대이다. 이남에서는 돈있고 권세있는자들은 잘살지만 돈없고 권세없는 사람들은 죽지 못해 살아가고있다.

우리 나라 땅 22만㎢중 이남의 땅이 10만㎢인데 그중 60%를 권력자나 매판자본가 500여명이 차지하고있다.

이남인구중에서 500여명이라면 약 10만분의 1인데 이 극소수의 특권층이 이남땅의 과반수이상을 차지하고 절대다수의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있다.

당국의 친재벌정책에 의해 2008년 1.4분기에만도 고소득자와 저소득자사이의 소득격차는 14.5배로서 1997년의 5.7배에 이어 사상최악의 상태로 벌어졌다.

당국자들은 기회있을 때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니, 검박생활이니 하며 떠들면서도 특권층의 호화생활을 위해 2008년에 외국으로부터 무려 2억 7 306만US$에 달하는 골프채를 사들이였다.

이 돈은 첫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에 사회계의 분노를 폭발시키면서까지 사들인 골프채값 2 420만US$의 11배나 되는 엄청난 액수이다.

이들은 2009년 상반년에도 골프채를 또 사들여오는데 1억 504만US$에 달하는 돈을 탕진하였다고 한다.

극소수 착취자들의 생활은 날로 극대화되고 부패해지고있으나 절대다수 민중들의 생활은 점점 더 빈궁화되고있다.

800만명이 넘는 로동자들은 최저생계비도 안되는 기아임금을 받으며 렬악한 작업조건하에서 장시간의 로동을 강요당하고있다.

날로 격화되는 경제위기로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은 계속 떨어지고있다.

2009년 1∼9월사이의 일반물가상승률은 평균 2.8%이지만 주민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식료품가격은 4∼10%로 뛰여올랐다.

하기에 요즘 주민들속에서는 《생활물가 고공행진》, 《서민들 허리 휜다.》는 아우성이 높아가고있다.

세금은 나날이 가증되고 저소득층의 소득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빈곤층과 실업자대렬이 증대되고있다.

최근 구멍가게, 매대 등을 차려놓고 생계를 유지하던 자영업자들이 달마다 20만∼30여만명씩 파산되면서 빈곤층은 계속 늘어나고있다.

당국이 발표한데 의하더라도 2009년 9월말 당시 빈곤층은 585여만명(전체 인구의 11.9%)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들의 생활형편은 어느 정도인가.

얼마전 신문 《한겨레》에 의하면 서울 성북구 삼성동의 한 가정에서는 세대주가 밖에 나가 일하느라고 점심을 싸가지고 나가면 나머지 식구들은 저녁을 굶어야 생활을 유지해나갈수 있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부모들의 사망으로 혼자 살림을 하고있는 한 대학생청년은 각종 세금과 교육비를 내지 못한 상태에서도 돈이 너무 부족해 심한 영양실조에 피부병까지 걸렸다고 한다.

한달 방값이 8만 7 000원이나 되는 이 대학생청년의 집은 반지하실로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치 한증탕에 들어온듯 더운데다가 곰팡내가 나고 바퀴벌레가 욱실거리는 집아닌 집이라고 한다.

여기에 비가 오면 비물이 줄줄이 새는 형편이여서 습기 또한 많다고 한다.

생활환경이 너무도 한심하여 결국 대학생청년은 돈을 최대한으로 절약하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집수리때문에 최저생계비의 10여배에 달하는 돈을 더 빚지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고 한다.

또한 이 마을의 어느 한 가정의 세대주는 한심한 음식에다 부족한 돈때문에 항상 쫓기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다보니 전달에만도 5kg이나 몸이 깠다고 하였으며 어느 한 가정의 녀성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사는데도 저축은커녕 적자만 루적되니 당국의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있다고 원망했다.

신문 《한겨레》는 《최저생계비로는 적자인생을 도저히 면할수 없다. 젊은 가정세대들의 생활형편이 이런 판에 늙은이들만 살거나 장애자들이 있는 가정들의 형편이 어떠하리라는것은 불보듯 명백하다.

국민을 우롱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즉각 페지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최저생계비로 살아갈수 없는 저소득층은 하는수없이 은행기관의 빚을 내여 생계를 유지하고있다.

가계부채는 해마다 11%씩 늘어나 2001년에 2 647억US$였던것이 2010년 4월에는 7 000억US$로 증가하였다.

지금 매 세대들에서는 년간소득의 1.4배에 해당하는 빚을 지고있고 해마다 막대한 리자를 물어야 하는데다가 은행들에서 가계대출금리를 계속 올리고있기때문에 생활은 나날이 더욱 어려워져가고있다.

현재 저소득층세대의 55%이상이 빚을 내여 살아가는데 그 부채가 소득의 3배이상에 달하는 가정세대의 채무비중이 30%이상에 달함으로써 가계부채가 위험한 상태에 이르고있다.

이와 관련하여 국제신용평가회사인 피치는 《한국경제의 가장 큰 위험은 가계부채》라고 평하였으며 경제전문가들도 《가계부채에 짓눌린 한국》, 《가계부채가 경제위기의 새로운 뢰관으로 되고있다.》고 심각히 우려하고있다.

이남민중의 생활이 이러하니 거리와 마을에는 실업자와 류랑걸식자들이 범람하고 이대로는 더이상 살수 없다는 한숨소리만 높아가고있다.

살길이 막힌 많은 사람들이 자식과 가정을 버리고 뛰쳐나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택하고있다.

인간의 존엄이 짓밟히고 초보적인 생존의 권리마저 빼앗기고있는 《서민 암흑시대》, 바로 이것이 오늘 이남사회의 실상이며 미제의 식민지통치가 가져다준 후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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