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없는 나라와 세금지옥
세금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면 이북인민들을 제외하고는 그것을 믿을 사람이 아마도 이 세상에 단 한명도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러했다. 나는 이북에 와서 처음으로 세금이 없다는 말을 듣고 무슨 소리인가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기에 앞서 의문부터 생겼다. 세금은 국가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얻기 위해 만들어낸것이기때문에 국가가 있는 한 세금이 있기마련이라는것이 나의 굳어진 생각이였다.
그런데 세금이 없다니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어지간히 왼심을 썼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모란봉제1중학교에 참관을 가게 되였다.
학교를 돌아보던중 예술소조실에 들렸을 때였다. 나의 눈길은 피아노를 열심히 치고있는 한 녀학생에게로 쏠렸다.
나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가 피아노를 치다가 잠간 숨을 돌리는 사이에 나는 그를 칭찬해주었다.
《피아노치는 솜씨가 대단하네요.》
그는 얼굴이 붉어지며 수집어했다. 그의 순박하고 어진 마음씨가 대번에 알렸다. 나는 이 순박한 학생에게 물으면 알리라고 생각하고 질문을 했다.
《학생은 세금을 아나요?》
학생은 한동안 머리를 갸웃거리더니 《우리 학교에는 해금, 가야금, 목금 같은것은 있어도 세금이란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는것이였다.
세금을 그 어떤 악기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것을 보고 나는 이북의 학생들이 세금을 모르고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애들의 손목을 잡고 가는 녀인에게도, 다음날 산책길에서 만난 한 젊은이에게도 물어보았는데 모두 이북에서는 세금이 없어진지 오래되였다고 말하는것이였다.
나는 나름대로 이북의 세금징수형식이 이남의 간접세형식으로 되여있어 사람들이 모르고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때 나라에서는 광복거리에 새로 지은 호화주택에 입사시키면서 나에게도 세칸짜리 주택을 배정해주었다.
나는 훌륭한 주택에서 살게 된것이 여간만 기쁘지 않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도 없지 않았다.
한것은 집이 훌륭하니 집세로 많은 돈을 내야 할것이라고 생각한데서였다.
그런데 달이 바뀌여 두달이 지나도 집세를 받으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어느날 나는 안해에게 물었다.
《여보, 우리가 이 집에서 살림한지 이제는 두달이 지났는데 왜 집세 내라는 말이 없는거요? 여기서는 분기에 한번씩 받는거예요?》
안해는 어이없다는듯 깔깔 웃었다.
《당신이 우리 나라에는 세금이 없어진지 오래다는 이야기를 들으셨겠는데 아직도 잘 믿어지지 않아 그러세요? 집세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그 누구도 집세라는것을 모르고 살아요.》
그러면서 안해는 주택사용료라는것이 있는데 그것은 전기, 수도, 난방 등 시설물들의 사용료를 의미하며 그것도 얼마 되지 않기때문에 생활에서는 조금도 부담이 되는것이 없다고 말하는것이였다.
참으로 모를 일이였다. 하지만 나는 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후 어느 쉬는날이였다.
나는 만경대유희장으로 놀러 갔다가 광복거리 갈림길동에서 산다는 김경명로인을 알게 되였다.
그는 기계공업부문의 책임적인 직위에서 오래동안 사업하다가 나이가 많아 집에서 쉬고있었다.
그는 이날 유치원에 다니는 손녀가 유희장에 놀러 가자고 성화를 부리는 바람에 그애를 데리고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날 지지리도 못살던 자기가 아들딸 6남매를 모두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대학공부를 시키고 훌륭한 주택에서 나라의 혜택을 받으며 이렇게 유희장에 놀러 다니게 되였으니 정말 꿈같은 일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아직은 이북에서 얼마 살아보지 못해서 아는것보다 모르는것이 더 많을것이고 알고 받는 혜택보다 모르고 받는 혜택이 훨씬 더 많을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수긍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요즘 광복거리 금성동에 훌륭한 주택을 무상으로 받아놓은데다가 집세까지 없다는 바람에 통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얼떨떨해지고있습니다.》
《아, 그럴테지요. 그런 생활에 익숙되여있는 우리도 생각할수록 감개무량한데 선생이야 아마도 놀랍기만 하겠지요.》
《그런데 집세는 물론이고 세금이라는것이 아예 없어졌다고 하니 그러면 국가는 어떻게 관리되고 유지되는지 그것이 통 리해가 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내가 자기처럼 생각하고 선생이 리해할만큼 차근차근 이야기를 안해준 모양이구만. 그러면 우리 나라에서 세금이 없어지게 된 사연에 대해 좀 이야기해드릴가요?》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로인은 우리 나라에서 세금이 없어지게 된 과정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조국을 해방하고 새 조국건설에 들어서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투쟁시기에 마련하신 조세강령에 기초하시여 여러 민주개혁과 함께 조세개혁을 실시함으로써 인민들을 온갖 가렴잡세로부터 해방하시고 새로운 세금제도를 확립하시였다.
조국해방전쟁과 전후시기에도 세금부담을 끊임없이 덜어오신 수령님께서는 사회주의제도가 수립된 다음에는 세금제도를 완전히 없앨데 대한 강령을 제시하시고 주체55(1966)년에 농업현물세를 완전히 없애시였다.
이것은 농민들을 세금부담에서 완전히 해방하는 력사적조치였다.
결과 소득세만 남게 되였는데 그것은 국가예산수립에서 보잘것없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였다.
사회주의제도의 공고화와 자립적민족경제위력의 강화로 국가의 재정이 더욱 공고화되여 남아있는 세금의 몫을 전민소유에 기초한 국가기업소들이 감당할수 있게 되였다.
세금을 완전히 없앨수 있는 이런 현실적가능성에 기초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최고인민회의법령으로 주체63(1974)년 4월 1일부터 《세금제도를 완전히 철페할데 대하여》를 공포하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공화국은 세상에서 처음으로 세금없는 나라로 되고 인민들은 세금을 모르는 세상에서 살게 되였다.
세금제도철페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난 로인은 당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회의에 직접 참가하여 법령이 발포되던 순간을 감회깊이 회고했다.
그는 주석님께서 법령을 발포하시는 순간 장내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자기도 목청껏 만세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던 감격에 대해서와 그분께서 세금제도를 완전히 없앤것은 김을 잘 맨 밭에서 마지막 돌피를 뽑아낸것과 같다고 하시며 환히 웃으실 때 인민들을 세금없는 세상에서 살게 하시려고 심려와 로고를 바쳐오신 그분에 대한 고마움으로 가슴이 막 터질것만 같던 심정에 대해서도 회고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으면서 세금제도는 결코 나라의 경제적토대가 튼튼하고 국가재정이 공고해서만 철페되는것이 아니라 국가가 인민적인 시책을 실시하는가 하는데 달려 있다는것을 깊이 깨닫게 되였다.
그러면서 나는 력사적인 주체63(1974)년 4월 1일부터 이북은 세상에서 처음으로 세금없는 나라로, 인민들은 세금을 모르고 사는 인민으로 되였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게 되였고 이후부터는 더는 의심을 하지 않게 되였다.
나는 그때 세금을 지고 태여나 세금중하에 눌리워 살다가 세금을 지고 묻히는것이 인생인줄로 알고있는 이남동포들이 이북에서 세금이 완전히 없어졌다는것을 알게 되면 얼마나 부러워하랴 하는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이남은 실로 지긋지긋한 세금지옥이다.
이남에는 소득세, 재산세, 농지세 등으로 이루어진 직접세와 류통령역에서 추가적으로 수탈하는 간접세 그리고 《방위세》, 주민세 등으로 이루어진 준조세가 있고 그 무슨 《방위성금》, 리재민구호성금, 새마을사업기부금 등 별의별 성금과 쓰레기세에 이르기까지 오만가지 세금이 있어 세금의 종류를 다 알고있는 사람이 없으며 지어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세무원들조차 세금종류를 다 알지 못하고있는 형편이다.
사람들의 피땀을 빨아내는 수십종의 기본세금외에 또한 수백가지에 달하는 가렴잡세도 있다.
극장에 들어가면 입장세, 뻐스를 타면 통행세, 조미료 한봉지를 사도 물품세, 샤쯔를 하나 사도 직물류세 지어 소주 한잔을 마셔도 주세를 물어야 한다. 그러니 항간에서는 숨쉬는 《공기세》, 해빛을 쪼이는 《일광세》도 곧 생겨날것이라고 우려하고있다.
이남당국자들은 근로대중에게 더 많은 세금을 들씌우는 방향에서 《소득세법》을 계속 개악하여왔는데 소득세계통에서도 《근로소득세》에 중점을 두면서 그의 규모와 세률을 체계적으로 늘여왔다.
2008년에 주민 한사람당 세금부담액은 전해보다 5만원이나 더 늘어나 422만원으로 되였으며 2009년에는 467만원으로 올라 사상최고를 기록했다.
이남의 세금이 얼마나 지독한가 하는것은 서울 동대문구에서 살던 나의 친구 리춘성의 경우를 놓고보아도 잘 알수 있다.
그는 좀 큰집을 가지고 살아보기 위해 동대문구에 있던 집을 팔고 서대문구에 집지을 땅을 얼마간 사는데와 건축허가를 받는데 수천만원을 들이밀었다.
그런데 그에 뒤따라 세금이 들씌워졌다. 집을 짓기 시작하자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 《방위세》 등 집을 짓기도 전에 아홉가지의 세금을 물어야 했다.
가까스로 집을 짓고 등록허가를 받으려 하자 이번에는 소방공동시설세, 도시계획세, 재산세, 등록세, 《방위세》를 또 물어야 했다.
그뿐만아니라 주민주택채권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명목의 공채를 사도록 강요당했다.
이렇게 되여 그는 빚에 빚이 덧쌓여 하는수없이 새로 지은 집에서 살아보지도 못하고 다시 동대문구의 이전 집보다 더 작은 집으로 옮겨앉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결국 그는 주택조건을 개선해보려다가 세금의 중압에 눌리여 희망이 수포로 돌아가고말았다.
하기에 이남사람들은 세금을 가리켜 피를 빨아낸다는 《혈세》, 뼈를 깎아낸다는 《골세》를 초월하여 사람을 죽인다는 《생명세》로까지 부르고있다.
오죽했으면 이남의 인민들이 죽으면 세금에 시달리지 않는다는데서 《세금해방일》이라는 말까지 하며 자살의 길을 택하겠는가.
미제의 식민지통지가 계속되고 착취와 압박이 심화되고있는 이남에서는 인민들이 절대로 세금지옥에서 벗어날수 없다.
이것이 바로 세금왕국 이남의 현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