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이한 선거제도
선거제도는 해당 사회제도의 진보성과 반동성을 가르는 시금석이다.
이북의 선거제도는 인민이 나라의 주인인것만큼 가장 민주주의적이며 가장 인민적인 선거제도로서 인민주권의 대표자들을 뽑는것으로 하여 선거는 하나의 축제로 되고있다.
내가 의거하자마자 처음으로 맞이한것은 최고인민회의 제9기 대의원선거였다.
선거날이 다가올수록 나는 이상야릇한 기분에 휩싸여있었다. 이북에서는 어떻게 할가, 왜 후보자들이 돈봉투나 물건들을 들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지지표를 요구하지 않을가, 혹시 우리 집만 빼놓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들로 자못 번거로왔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고 잘못되였던가 하는것을 나는 선거장에 가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였다.
선거장은 정말 나를 놀라게 했다. 공화국기발과 고운 꽃송이들로 화려하게 단장된 선거장에서 명절옷차림을 한 선거자들이 투표를 끝마치고 나와 흥겨운 춤판을 벌리고있었다.
혹시나 이남에서처럼 총을 멘 경관이나 경찰차, 소방차 같은것이 있는가 하여 두리번거렸으나 아무것도 찾아볼수 없었다. 사람들이 북과 꽹과리, 장고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흥에 겨워 들썩이는 선거장은 그야말로 명절분위기에 휩싸여있었고 사람들의 얼굴마다에는 기쁨과 환희가 넘쳐흐르고있었다.
흥성거리는 선거장안에서는 선거자들이 인민에 대한 복무정신을 안고 인민을 위해 자기의 땀과 열정을 다 바쳐온 인민의 충복들을 대의원으로 내세우고 그들에게 찬성의 한표를 바치고있었다.
이것은 고마운 인민정권에 대한 민중의 절대적인 지지와 신뢰의 표시였다.
더우기 나를 놀랍게 한것은 평범한 로동자, 농민, 지식인들이 대의원으로 선거되고 모든 공민들이 누구나 다 자유롭게 선거에 참가하여 모두가 찬성투표하는것이였다.
이튿날 나는 신문과 방송을 통하여 온 나라의 선거자들이 《99. 7% 선거참가》, 《100% 찬성투표》라는 특별보도를 받아안게 되였다.
나는 이 소식을 들으면서 선거가 그대로 축제이고 선거날이 그대로 명절날로 되고있으니 이러한 선거가 어찌 100점, 만점짜리 선거로 되지 않겠는가고 생각하였다.
하기에 남녘의 동포들은 이북의 선거제도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민중중심의 선거제도라고 부러움을 금치 못해하고있다.
춘천시의 한 종교인은 동료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북에서는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고있는 로동자,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대의원이 되고 나라일에 참가하고있다. 그들중에는 녀성들도 많다. 이북의 선거분위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의 경이적인 현실이다. 이것은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의 주위에 전민이 일심동체로 단결된 이북에서만 있을수 있는 일이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이북을 보고 세상사람들모두가 진정한 민주주의적인 나라라고 칭송하며 민중을 위한 정치를 펴는 국민의 세상이라고 하는것이다. 》
광주에 사는 한 주민은 《이북의 선거제도는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선거제도이다. 공화국의 품속에서 선거에 참가해보았으면 좋겠다.》라고 격동된 심정을 터뜨렸다.
그러면 민중들의 의사에 의하여 선거된 이북의 각급 주권기관 대의원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모두 하나와 같이 로동자, 농민, 근로지식인을 비롯한 각계각층 인민들의 출신이다.
주체99(2010)년말 현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만 보더라도 지난 기간 근로인민의 출신으로서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앞에 헌신한 영예의 김일성훈장수훈자, 김일성상수상자들과 공화국영웅, 로력영웅들이 42. 4%, 군인들이 16. 9%, 현직로동자들이 10. 3%, 현직협동농장원들이 10. 1%로서 모두 근로인민의 아들딸로 구성되여있다.
민중의 손에 의하여 선거된 근로인민의 출신들이 바로 인민대중을 위한 정치를 론하고 민중의 의사와 리익을 위하여 일해나가는것은 자못 응당한 일이다.
나는 입북후 다음해 봄에 개성시 개풍군 룡산리에 가본 일이 있었다.
협동농장관리위원회에는 직원 한사람만이 있었다.
그는 관리위원장이 어디 갔는가 하는 나의 물음에 현장에 나가 일한다는것이였다. 그의 말이 이상하게 들려왔다. 나는 그와 함께 관리위원장이 일하고있는 현장으로 찾아갔다.
과연 그는 농장원들과 함께 어울려 강냉이영양단지모를 심고있었다.
알고보니 그는 로력영웅이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였다.
《이남으로 말하면 관리이시고 <국회>의원과 같은분이신데 그렇게 손에 흙을 묻히며 일하신다는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나는 이남에서 관리나 《국회》의원들이 놀고먹는것을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거기에는 놀라울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인민들이 자기들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해달라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해주고 관리위원장을 시켜주었는데 그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그들보다 손에 흙을 더 많이 묻히고 어렵고 힘든 일에 앞장에 서는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는 이렇게 말하며 밝게 웃었다.
《위원장님은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원장님의 경우이겠지요. 》
나는 모든 간부들이 다 그러할수는 없으며 그가 부지런하고 근면하여 그러리라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내가 특별히 훌륭한것은 없습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은 다 그렇게 하거나 더 많은 일을 하고있습니다. 여기 판문군 동창리협동농장 관리위원장동무도 2중로력영웅이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지만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고있어 인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있습니다. 》
나는 동창리협동농장에도 가보았는데 역시 이곳 관리위원장도 들에서 농장원들과 함께 일하고있었다. 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며 2중로력영웅인 자강도 전천군 상업관리소 소장을 만났을 때에도 그의 손이 몹시 거친것을 보게 되였다. 나는 그때에야 이들이 내가 생각하던것과 같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는 인식을 새롭게 가지게 되였다.
북에서는 행정간부들만이 아니라 당간부들도 역시 인민을 위해 헌신분투하고있었다.
이남당국자들은 북의 당간부들은 세도를 쓰고 관료주의를 부리면서 전횡을 일삼고있으며 온갖 특전과 특혜를 누리고 사치한 생활을 하고있다고 선전했다.
나는 그들의 선전을 다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세도와 특전, 특혜는 있으리라고 생각하고있었다.
나는 월북한 2년후 가을 검덕광업련합기업소에 가본 일이 있었다.
내가 기업소에 갔을 때 당책임비서는 갱막장에 일하러 들어가고 없었다. 그는 로동자들과 함께 작업교대를 하고서야 나왔다. 작업복차림의 겸손한 그에게서는 큰 기업소의 당사업을 책임진 간부이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라는 티를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었다. 나는 그와 인사를 나누면서 이렇게 말했다.
《큰 기업소의 당사업을 책임지신분이야 갱에 들어가지 않고 지도만 하셔도 되지 않습니까?》
《로동자들과 동떨어진 사무실에서 무슨 지도를 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그것은 눈먼 지도이지요. 로동자들이 있는 갱속에 들어가 그들과 일도 같이하면서 이끌어주고 또 그들에게서 배우는것이 우리의 지도입니다.》
나는 그가 로동자들에게서 배운다는 말에 또 한번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날 저녁 그가 이끄는 바람에 그의 집으로 가게 되였다.
나는 그와 함께 가면서 큰 기업소 당책임비서의 집이니 대단히 요란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옆의 로동자들의 집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검박한 살림이라는것이 대번에 알리였다. 책임비서의 안해는 대단히 반가워하면서 식사를 성의껏 마련했다. 나는 집내외분들과 식탁을 마주하고 기분좋게 약주를 한잔씩 들었다.
식사후 나는 그에게 북의 간부들은 하나와 같이 특전, 특혜를 모르고 검박하게 생활하면서 인민을 위해 헌신하고있는데 그 비결이 리해되지 않는다고 물었다. 그는 가볍게 웃고나서 《그러실테지요. 남조선에서는 그런 일이 없을테니까요. 그 부모에 그 자식이요, 그 스승에 그 제자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자애로운 어버이로, 위대한 스승으로 모시고있습니다. 그분들께서는 우리 일군들이 한발자욱도 헛디디지 않고 인민을 위해 충실히 복무하도록 일일이 손잡아 이끌어주십니다.》라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해 가을 평안북도의 한 산골군을 찾으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이곳 군당책임비서가 갓 배치되여 군의 실정에 밝지 못한것을 헤아리시여 군간부협의회를 여시고 인민생활을 높일데 대한 대책적문제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그분께서는 그러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떠나실 때에는 군당책임비서를 렬차에 부르시여 달리는 렬차에서 그에게 인민생활을 높이는것을 목표로 하여 모든 사업을 벌려나가도록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경애하는 주석님으로부터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은 그는 주석님의 크나큰 신임과 기대에 충성으로 보답하겠다는 결의를 다지였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나직이 책임비서동무, 충성다하는것이 무엇인지 아오? 라고 물으신 다음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으시고 지금 많은 사람들이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하는데 인민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살게 하는 사람이 실지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고 했다.
그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간부들을 인민의 충복이 되도록 꾸준히 교양하고 이끌어주신데 대해서도 자신의 체험과 결부하여 이야기했다.
그는 그분께서 자기와 같은 간부들과 자리를 같이하는 기회가 생길 때면 자신께서는 밥상을 받을 때마다 인민들을 생각하며 색다른 음식을 보면 더욱 그렇다고 하시면서 인민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살게 하는것이 자신의 리상이라고, 간부들은 언제나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듯이 인민들을 생각해야 하며 자기가 뜨뜻하게 지낼 때 인민들이 춥게 지내지 않는가 하는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늘 교시하시는것처럼 자기가 배부를 때 인민들이 배고파하지 않는가 하는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그런 간부라야 당과 수령께 충성할수 있고 인민의 충복이 될수 있다고 간곡한 가르치심을 주시던 일도 회고하고 당간부들이 걸음도 많이 걷고 밤잠도 덜 자면서 고생을 하면 인민들이 행복해지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인민들이 고생하게 된다고, 간부들은 언제나 대중과 고락을 같이하면서 헌신적으로 일할 각오를 가져야 한다고 가르쳐주시던 일도 회고했다.
그러면서 1990년대의 첫해 설날에 당중앙위원회와 정무원(당시)의 책임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가슴뜨거운 구호를 내놓으시고 간부들이 인민의 충복으로 더 열심히 일하도록 이끌어주고계시는데 대해서도 말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정말 감동적으로 들었다.
이튿날 나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찾으셨던 4. 5갱에 들어가보았다.
인차를 타고 20리정도 들어가보니 위대한 장군님께서 석수가 떨어지는 지하막장에서 로동자들과 친히 무릎을 마주하시고 생산을 늘이기 위한 대담한 작전을 펼치시였던 그 불멸의 사적이 가슴뜨겁게 안겨왔다.
나는 이를 보며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우리 장군님께서 덜컹거리는 인차를 타시고 어느 순간에 무너져내릴지 모르는 이 험한 수천척 지하막장에까지 찾아오시다니…》
나의 두눈에서는 핑그르르 눈물이 돌았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위대한 장군님의 발자취가 어려있는 4. 5갱을 주의깊게 돌아보면서 장군님이시야말로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헌신하시는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며 로동계급의 친근한 스승이시라는것을 다시한번 깊이 느끼게 되였다.
하기에 이곳 로동계급은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하여 맡겨진 무거운 계획과제를 해마다 넘쳐 수행하고있으며 당책임일군도 장군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로동자들과 함께 현장에서 일하고있는것이였다.
나는 공화국의 대의원들이 누구나 다 한사람같이 현장에 내려가 로동자, 농민들과 함께 일하고 생활하고있는것을 목격하면서 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북의 선거제도가 낳은 필연적결과라고 생각하였다.
남에서는 정치인들이 탄광이나 광산의 지하막장에 들어가 본다는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다.
력대 그 어느 위정자들이나 장관, 《국회》의원들도 지하막장에 들어가본 일이 없으며 더우기 로동자들과 같이 일해본적도 없다.
그러면 이남의 선거제도는 어떠하며 그에 의하여 당선된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남의 선거제도는 한마디로 말하면 반인민적이며 반민족적인 통치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수단으로 리용되고있다. 이로부터 선거란 돈과 권력, 뢰물과 사기협잡으로 일관된 란투극이다.
우선 이남의 선거는 《돈》선거라고 말할수 있다.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려면 1 500만원의 《공탁금》을 내야 하고 도지사는 5 000만원, 군수는 1 000만원을 내야 한다. 그러니 돈없는 사람은 아예 선거에 출마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공탁금》이라는것은 공개적으로 내야 하는것이고 실지 선거에 들어가서는 그보다 더 많은 뭉치돈이 있어야 당선될수 있다.
이남에서는 《국회》의원선거때마다 후보자들이 외우는 말이 있다.
1960년대에는 《5당3락》이라는 말이 널리 퍼졌는데 후보자가 선거에 5억원을 쓰면 당선되고 3억원을 쓰면 락선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더 높아져 1970년대에는 《10당5락》으로, 1980년대에는 《20당10락》으로, 1990년대에는 《30당20락》으로, 2008년에는 《50당30락》으로 물건값처럼 뛰여올랐다.
특히 《대통령》선거때에는 여야당이 서로 기업가들로부터 천문학적수자의 《대선자금》을 받아먹으며 뿌려댄다.
세상에 널리 폭로된바와 같이 《한나라당》은 1990년대 《대선》때에 《대선자금》을 아예 차판채로 받아 탕진함으로써 이남민중의 규탄을 받고 여의도의 당사까지 팔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또한 이남에서는 선거전야에 선거유세라는것을 벌려놓고 후보자들 호상간 인신공격을 하면서 싸움판을 벌려놓고있다.
그리고 후보자들이 돈봉투나 신발, 비누와 같은 물건짝들을 나누어주거나 지어는 식당이나 술집에 데려다 향응을 베풀고 온천이나 명승지에 보내주면서 표를 찍어달라고 구걸하고있다.
선거당일에는 후보자들이 선거장으로 가는 골목마다에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큰절을 하며 굽신거리는데 신문들에는 유치원어린이에게 허리굽혀 절을 하는 장면을 실어 사람들을 웃기고있다.
또 선거장안에서는 부정표들을 만들어 쓸어넣는가 하면 개표할 때에도 부정협잡놀음을 일삼는다.
1960년 3월 15일에 있은 제4기《대통령》선거가 부정선거로 락인되여 무효로 선포되고 선거를 재탕하게 된것은 그 대표적실례이다.
이런 판국이니 이남사람들은 누가 당선되든지 관심이 없으며 아예 선거에 참가하려고도 하지 않고있다.
일반적으로 이남의 선거참가률은 50%이내인데 지어 어떤 때에는 24%밖에 되지 않아 소동을 피운 일도 있었다. 이러한 정치풍토속에서 그 무슨 민중의 대변자가 나올수 있겠는가.
2010년말 현재 이남《국회》의원 299명을 분석해보면 정치인 131명, 정당인 83명, 기업인 11명, 학계 12명, 법조계 22명, 관료 22명, 언론계 8명, 의료계 5명, 예술인 1명, 로동계(상층) 4명으로서 일반로동자, 농민, 근로자들은 단 한사람도 없다.
이른바 립법기관이라는 《국회》자체가 이와 같이 구성되다보니 여기서 민중을 위한 정치가 나올수 없다는것은 불을 보듯 명명백백한것이다.
《국회》는 여야간의 당리당략을 위한 싸움마당으로 되고있으며 《국회》의원이란자들은 민중과 동떨어져 말싸움만 일삼고있다. 그들은 할 일이 없으니 《국회의사당》안에 들어박혀 대낮에 《고스톱(화투)》질만 하고 광주봉기자들의 영령이 묻혀있는 바로 그 앞거리에서 술추렴을 하고 성희롱만을 일삼고있으며 선거때 쓴 돈을 봉창하고 재부를 늘이기 위하여 온갖 사기협잡을 다하고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일자리가 없어 거리에서 헤매고 류랑걸식자들이 도처에서 욱실거려도, 최하층의 빈민들이 가난에 쪼들리다 죽어가도 도대체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판자집철거를 반대하고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민중의 목소리도, 이대로는 더이상 못살겠다는 서민들의 원성도 그들의 귀에는 통 들리지 않는다.
반인민적이고 반민족적인 《법안》들을 날치기로 통과할 때에는 굉장하다. 《국회》의장단상을 점거하고 여야간 몸싸움을 벌리며 지어 똥물까지 퍼부어대면서 서로 치고받고하며 피투성이가 된다.
오죽하면 《국회》안에 사복경찰대까지 꾸려놓고있겠는가.
지난 로무현에 대한 탄핵시기 《한나라당》패거리들이 《국회》사복경찰들을 내몰아 불법적이며 비법적인 《대통령탄핵안》을 통과시킨것은 일찌기 세계정치사에 그 류례가 없는 일이였다.
하기에 항간에서는 《국회》의원을 가리켜 지저분하고 안에만 박혀 싸움질만 한다고 하여 코털과 같다고 하거나 먹을것을 주면 좋아하고 아무리 지껄여도 개소리만 한다는데로부터 개와 같다고 비난하고있다.
이남 주간잡지 《뉴스플러스》 1997년 4월 24일호에는 이남《국회》를 비난하는 풍자만화가 실리였다.
만화는 이마빡에 《국회》마크를 그린 얼굴에 말만 하는 《정치》라고 하여 눈자위에는 입이 두개나 올라가 붙어있고 부패한 사회현실을 외면하고 돈과 뢰물만 찾아본다고 하여 주둥이에는 한개의 커다란 눈알이 붙어있으며 민중의 목소리를 귀담아듣지 않고 한쪽으로 듣고 한쪽으로 내보낸다는 의미에서 오른쪽귀로는 오리로 형상한 사람이 들어가고 왼쪽귀로는 닭모양의 사람이 나오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입 둘에 눈 하나, 한국정치의 자화상(제모습)》이라고 조소하고있다.
이어 그해 7월 3일호에서는 화가 안창홍의 풍자만화가 이남 정치인들의 행태를 비난하고있다.
만화는 세놈의 사나이가 파쑈살인마들에 의해 희생된 인민들을 형상한 숱한 해골바가지가 올려다보는 속에 이를 외면하는 뜻에서 눈은 두툼한 수건으로 싸매고 귀는 커다란 나무마개로 틀어막고있으며 입에는 회유와 모략과 권모술수를 위해 한개의 혀바닥으로도 모자라 무려 다섯개씩이나 되는 혀바닥을 가지고 날름거리고있는 인간추물상을 보여주면서 《우리 시대의 정치인들》이라고 개탄하고있다.
나는 판이한 선거제도와 정치인들의 실상을 보면서 북은 민중중심을 위한 정치를 하고 남은 극소수 특권층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것을 여기에 똑똑히 밝히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