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자주정치와 예속정치
|
《정치적자주성은 자주독립국가의 첫째가는 징표이며 나라와 민족의 제일생명입니다. 정권이 있어도 자주성이 없는 나라는 사실상 자주독립국가라고 말할수 없으며 자주성이 없는 민족은 식민지적예속과 노예적굴종의 처지를 면할수 없습니다.》 김 정 일
|
누가 자주적이고 누가 예속적인가
정치는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근본요소이다. 어떤 정치를 하는가에 따라 자주적인 국가로 될수 있고 또 예속적인 국가로도 될수 있기때문이다.
나는 공화국의 품에 안겨 이북의 정치가 자주정치라는것을 잘 알게 되였다.
그것은 이북의 정치가 주체를 튼튼히 세우고 자기 인민의 리익에 맞게 대를 세워 해나가고있는데서 찾아볼수 있었다. 자주정치를 하자면 모든 로선과 정책을 자주적으로 규정하고 민족의 리익에 맞게 집행해나가며 대외관계에서도 완전한 자주권과 평등권을 행사해나가야 한다. 만일 정치가 이렇게 되지 못할 때에는 정권이 있어도 나라와 민족의 존엄을 고수할수 없고 민중은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면할수 없게 된다.
이북은 바로 자주성을 튼튼히 틀어쥐고 자주적으로 살아나가는 존엄있는 나라이다.
내가 입북한 초기에 북남고위급회담이 열려 북남불가침선언을 비롯한 일련의 좋은 문제들이 합의채택되였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미국은 《핵의혹》설을 퍼뜨리면서 공화국에 핵사찰을 강요해나섰으며 많은 무력을 조선반도에 집중시켜놓고 이북을 없애치우겠다고 위협해나섰다.
사실 그때 나는 이북에 갓 들어온것만큼 전쟁이 금방 터지리라고 생각하면서 몹시 긴장하여 사태를 주시하고있었다.
허나 강철의 령장이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미국과 그에 추종하는 국제원자력기구의 강도적요구에 자위적인 조치로 대답해나서도록 하시였다.
그때 공화국은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하며 전국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것으로써 대응해나섰다. 이렇게 되자 미국은 조미기본합의문에 서명을 하고 위대한 장군님께 대통령 클린톤의 명의로 담보서한을 보내오게 되였다.
나는 그때 통쾌함을 금치 못하면서 이것이 바로 이북의 배짱있는 자주정치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이와 류사한 사실을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를 참관하면서도 더 잘 알게 되였다. 《푸에블로》호는 원산앞바다에 전시해놓았었는데 우리 인민들과 세계 여러 나라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그 옛날 미국침략선 《셔먼》호가 침몰된 자리에 옮겨다놓았다.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는 1968년 1월 23일 조선인민군 해군용사들에 의해 나포된것이다.
미국이 초고성능전파탐지설비들을 장비한 최신형무장함선이라고 자랑하던 《푸에블로》호가 조선의 자그마한 해군경비정에 붙잡혔으니 충격적인 사변이 아닐수 없었다. 미국은 불맞은 송아지처럼 날뛰였다. 그들은 《보복》을 떠들며 핵항공모함을 비롯한 수십척의 대기동함선집단을 원산앞바다로 투입하면서 이북에 대한 군사적압력을 가하였다.
그때 이남강점 미군과 남조선군, 《향토예비군》에도 《비상동원령》이 내려졌다.
당시 《향토예비군》에 소속되여있던 나도 비상소집에 동원되였다. 당시 이남사람들은 당장 전쟁이 터진다고 가산을 정비하면서 술렁대였다. 나 역시 벌려놓았던 중학교건설사업을 중단하고 정리하였었다.
세계는 숨을 죽이고 북을 주시하였다.
일부 사회주의나라들에서는 북에 미국의 요구에 응하라는 권고도 하였다 한다.
이 준엄한 폭풍전야에 공화국정부는 미국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것이라는 단호한 립장을 온 세상에 선포하였다.
추상같은 북의 선언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미국은 하는수없이 북의 요구대로 대화의 마당에 끌려나오게 되였다.
그런데 오만한 미제는 회담장에서도 배와 선원들을 모두 당장 돌려보내달라는 강도적인 요구만을 들고나왔다.
이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푸에블로》호는 우리의 전리품인것만큼 절대로 돌려줄수 없으며 선원들은 정탐행위를 인정하고 사죄하며 다시는 이러한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미국정부의 담보서한을 받은 조건에서 돌려보내야 한다고 단호히 말씀하시였다.
하여 판문점 조미회담에서는 위대한 장군님의 뜻대로 《푸에블로》호문제를 락착짓게 되였으며 미국정부는 《푸에블로》호의 정탐행위를 인정하고 사죄하며 다시는 그러한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담보서에 서명하여 보내오게 되였다.
그때 공화국이 미국정부로부터 받아낸 사죄문요지는 다음과 같다.
《미합중국정부는 1968년 1월 23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령해에서 조선인민군 해군함정들의 자위적조치에 의하여 나포된 미국함선 <푸에블로>호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령해에 침입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반대하는 엄중한 정탐행위를 한데 대하여 전적인 책임을 지고 이에 엄숙히 사죄하며 앞으로 다시는 어떠한 미국함선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령해를 침입하지 않도록 할것을 확고히 담보하는바이다.
이와 아울러 미합중국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측에 의하여 몰수된 미국함선 <푸에블로>호의 이전 승무원들이 자기들의 죄행을 솔직히 고백하고 관용을 베풀어줄것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 청원한 사실을 고려하여 이들 승무원들을 관대히 처분하여줄것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 간절히 요청하는바입니다.》
당장 군사적힘으로 북을 제압할것처럼 으르렁거리던 미제국주의자들은 이렇게 이북앞에 무릎을 꿇고말았다.
당시 이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접한 이남민중은 환성을 올리였다. 나도 민족적쾌감에 기쁨을 금할수가 없었다.
사실 나도 초기에 세계《최강국》이라는 미국이 어마어마한 군사적장비로 위협하는것을 보고 북이 양보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혹도 품고있었다. 그런데 TV에서 《푸에블로》호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이 두손을 우로 올리고 부들부들 떨고있는 모습과 미국대표가 사죄문건에 서명하는 장면 그리고 선원들이 군사분계선을 한명씩 넘어서는 장면 등을 보면서 세계《최강국》이란 미국이 종이범에 불과한것이며 북은 미국을 타승한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당시 세계정치정세전문가이며 평론에서 날카롭게 정평하기로 유명한 한양대학교 교수 리영희는 월간잡지 《말》에 투고한 글에서 《북은 <푸에블로>호사건을 통하여 자주정치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고 평하였다.
주체65(1976)년 4월 이전 유고슬라비아대통령 찌또는 공화국정부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조선은 자주성이 강하기때문에 마음에 든다. 그래서 나는 자주의 정치를 하시는 김일성동지를 존경한다.》고 했다. 그는 원래 자존심이 매우 강하여 남을 칭찬하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북의 자주성에 감탄하여 위대한 주석님을 존경한다고 했던것이다.
나는 북은 세계에서 가장 주체적이고 가장 자주성이 강한 나라라는것을 깊이 깨닫게 되면서 이남의 정치에 대해 개탄을 금할수 없었다.
이남의 정치는 미제의 철저한 예속정치이다.
1948년 5월 단독선거를 통하여 리승만《정권》을 조작한 미제는 오늘까지 주구들을 내세워 식민지예속화정책을 계속 실시해오고있다.
이남에 대한 미국의 지령은 백악관으로부터 서울 세종로에 있는 미대사관을 거쳐 미문화원이 있는 부산, 광주에로 하달되면서 즉시에 집행되고있다.
미국은 우선 이남의 《대통령》부터 마음대로 떼고붙인다.
1960년 4월민중봉기후 장면《정권》을 유지해오다가 그것이 무맥하게 되자 1961년 5. 16군사정변을 일으켜 군사독재자로 갈아치웠다.
1970년대말 부산, 마산인민들의 대중적진출에 더는 현 《정권》을 지탱할수 없게 되자 미국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를 시켜 군사독재자를 사살케 하고 전두환군사 《정권》을 조작하게 하였다.
2000년대에 6. 15공동선언과 10. 4선언이 련이어 발표되고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밑에 통일운동이 더욱 강화되게 되자 당황한 미제는 2007년에 있은 《대통령》선거에 개입하여 친미보수적인 현 《정권》을 조작하는데 이르렀다. 하여 이남에서는 신라의 김춘추, 김유신으로부터 시작된 사대주의가 을사5적에 의해 국권상실이라는 뼈아픈 력사를 유발시킨데 이어 오늘날에는 친미사대주의자들에게 이어져 미제의 식민지통치가 실시되고있는것이다.
미국은 또한 이남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보건, 체육, 군사, 외교 등 모든 분야에 이르기까지의 내정을 통제장악하고있다.
이남당국자들은 미국의 강도적요구에 따라 이미 여러차례에 걸쳐 윁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지에 숱한 청장년들을 파병하여 미제의 대포밥으로 죽게 하였다.
1960년대 윁남파병때의 일이다.
나는 그때 신병훈련을 마치고 포항에 있는 해병 제1상륙사단 땅크대대에 배치되여 기갑(땅크)병으로 있었다. 나는 다행히 기갑병과였기때문에 파병명단에서는 빠졌으나 신병동기생들은 나를 찾아와 어떻게 하면 파병에서 빠질수 있겠는가, 돈을 주고 빠질것인가, 아니면 탈영해 도망칠것인가고 하면서 근심걱정을 하였었다.
1965년 9월 어느날 밤 1시 나는 《청룡》부대의 명칭을 달고 윁남으로 떠나는 동료들을 배웅하기 위해 사단정문에 나갔었는데 떠나는 사람, 바래주는 사람모두가 울고불며하여 온통 울음바다였다. 캄캄하여 서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규진이》, 《규진이》… 하고 들려오는 목소리를 알아차리고 《갑성이》, 《영남이》, 《경철이》 하며 나는 미국놈들의 대포밥으로 끌려가는 동료 3명을 눈물속에 배웅하였다.
나는 그때 밝은 대낮에 보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생각하다가 당국자들이 윁남파병을 반대하는 인민들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도적고양이처럼 야밤삼경에 이따위 놀음을 벌려놓는구나 하며 격분을 금할수 없었다.
그때 떠나간 동료 3명중 한명은 가자바람으로 무주고혼의 신세가 되였고 한명은 발목이 잘리웠으며 또 한명은 정신병자가 되여버렸다.
상전의 지시에 따라 숱한 청장년들을 무참히 죽이게 하는 정치, 이것이 바로 이남의 예속정치상황이다.
서울 동작동에 있는 《국군묘지》에 가면 미제의 대포밥으로 윁남침략전쟁에 끌려가 죽은 숱한 청장년들의 무덤을 보게 된다.
거기에는 나의 친구들의 무덤도 많다.
그런데 격분을 금할수 없는것은 묘지앞에 《조국을 지키다 순직한 영령들이여, 고이 잠들라.》라고 뻐젓이 써놓고있는것이다. 도대체 미제의 윁남침략전쟁에 대포밥으로 끌려가 개죽음을 당한것이 어찌 《조국》을 지킨것으로 되며 더우기 《순직》한것으로 된단 말인가.
나는 해마다 친구들의 명복을 빌려 갈 때 이 글발을 보며 당국자들을 증오하면서 여기에는 《미제의 대포밥으로 끌려가 억울하게 죽은 영령들이여, 벌떡 일어나 싸우라.》이렇게 써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하군 하였다.
미국에 대한 이남정치의 예속성은 1990년대에 들어와 더욱 로골적으로 표시되였다.
1991년 봄 북과 남사이의 불가침선언이 체결되고 여러 분야에서 교류와 합작이 실천단계에 들어서게 되자 미국은 《대화속도가 빠르다.》느니, 《핵문제와 보조를 맞추라.》느니 하면서 이남당국에 압력을 가하여 여러 갈래로 추진되여오던 북남대화를 모두 차단해버렸다.
또한 미국은 《전략물자반입》이니, 《퍼주기》니 하면서 개성공업지구건설에 제동을 걸어오다가 지난해에는 주구들을 부추겨 한동안 중단시켜버리는것도 서슴지 않았으며 금강산관광도 파탄시켜버렸다.
미국의 간섭은 지어 체육분야에까지 뻗치고있다.
얼마전 국제야구경기때 이남팀과 미국팀이 대전하게 되였는데 이남팀이 강하다는것을 안 미국은 저들이 지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남이 져주어야 한다고 로골적으로 강박하였다. 그러나 이남선수들은 경기에서 잘 싸워 쾌승하였다. 민중은 미국의 뺨을 후려친 《통쾌한 승리》라고 하면서 환성을 올리였다. 이렇게 되자 미국은 볼이 부어 이남당국에 또 압력을 가하였다.
주대도 없고 민족의 얼도 없는 당국자들과 《한나라당》패거리들은 질겁하여 미국을 자극했으니 《안보》에 구멍이 생길수 있다느니, 뭐니 하는 얼빠진 소리를 줴침으로써 각계의 분노를 자아내였다.
한편 미국은 남조선군대의 통수권을 장악하고 작전과 훈련, 이동에 간섭하면서 장비와 무기, 탄약과 원유 등을 마음대로 다치지 못하게 하고있다.
이남군대의 전시작전통제권을 60년이상이나 장악하고있는 미제는 2012년 4월 11일자로 이남당국에 넘겨주게 되여있으나 현 집권자의 애걸과 보조를 맞추어 지난 2010년 6월에 있은 《정상회담》이라는데서 2015년 12월 1일자로서 3년 7개월이나 연장시키는 강도적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면서 미국은 이남당국자들에게 《방위분담금》을 체계적으로 늘일것을 강요해나섰다. 하여 당국자들은 1989년에 4 500만US$를 지불하던것을 20년후인 2008년에는 무려 7억 8 700만US$나 지불하였다.
이남당국자들은 앞으로 또다시 9억 3 700만US$의 막대한 《방위분담금》을 내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여기에 또 미군은 이남의 땅과 건물 등을 무료로 사용하면서 막대한 리득을 보고있다.
현재 미제침략군은 근 1억평에 달하는 땅을 돈 한푼 안내고 군사기지로 사용하고있다.
미군의 군사기지와 군사시설이 차지하고있는 토지를 돈으로 환산하면 모두 19억 9 000만US$에 달하며 무료로 사용하고있는 훈련장비용은 년간 1 100만US$에 달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미군은 전기세와 물세 등 각종 세금에서도 특혜를 보장받고있다. 그 액수를 조목조목 따진다면 무려 수십억US$에 달하고있다.
뿐만아니라 이남당국으로부터 짜내는 전쟁연습비도 막대하다고 한다.
미제가 이 땅을 강점하여 겨레에게 피눈물나는 고통을 주고있는것만도 격분스러운 일인데 그 유지비까지 받아먹고있으니 과연 이를 어떻게 용서할수 있겠는가.
그런데 더욱 격분스러운것은 인민들로부터 혈세로 받아낸 유지비를 현지은행에 예금해두고 리자까지 받아먹는 범죄까지 일삼고있는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월간잡지 《신동아》는 미군이 2002년부터 《방위분담금》으로 받아낸 자금가운데서 7억US$는 미국은행에, 1억US$는 이남은행에 각각 예금해놓고 거기에서 나오는 막대한 리자를 온갖 타락한 생활에 탕진하고있다고 폭로했다. 이 모든 사실은 이남에 《정권》이란것은 있어도 그것은 철저히 미국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허수아비정권이며 정치란 미국상전의 내정간섭밑에서 진행하는 철저한 예속정치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