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은 북으로
민심은 천심이다. 천심을 얻으면 승자가 된다고 했다.
이남의 민심이 력대로 북으로 쏠린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넓으신 도량에 이끌려 해방직후에 려운형, 허헌, 홍명희, 김구, 김규식 등 정계인사들과 리승기, 리종만, 강영창 등 과학자들, 리기영, 송영, 조령출, 리면상과 같은 재능있는 작가, 예술인들이 평양에 찾아왔었다.
조국해방전쟁의 그 준엄한 시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북행길에 올랐으며 평화통일이란 말만 해도 《반공법》에 걸려 처형당해야 했던 1960년대에도 민심은 북으로 쏠리였다.
1961년 2월 신문 《령남일보》는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을 흠모하여 《조국의 자유독립과 민족해방을 위하여 용감히 일떠선 애국적선진분자들은 강력한 조직으로 결속된 항일무장대오를 형성하기에 이르렀고 이들은 백두산밀림속과 만주벌판을 거점으로 하여 일제의 경찰과 군사력량에 심대한 타격을 주면서 해방되는 날까지 싸웠다.》고 썼으며 1967년 서울에서 출판된 《군국일본조선강점사》에서는 《1930년경부터 특히 장백산일대와 송화강연안을 중심으로 한 지역과 조만국경에 신출귀몰한 전술로써 일본군과 그의 경찰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게 한 항일세력이 출현하였으니 그것은 김일성장군을 중심으로 한 조선인유격대들이였다. 이들은 1936년 조국광복회를 조직하고 강도 일본제국주의통치를 전복하고 조선인정부를 수립한다는… 등 10대사상을 결의하고 빨찌산투쟁으로 치렬한 항일전을 전개하였다. 이 유격대들은 주로 …일본군과 만주군으로부터 탈취한 무기로써 10만대원들의 무장을 완전히 하여 신출귀몰한 행동과 전법으로써 일본군과 그 경찰군을 기습하여 상승적으로 전멸시켜 일야지중에 김일성이라 칭하는 인물이 도처에서 나타나는 등 일본인들로 하여금 종잡을수 없게 하였다.》고 썼다.
특히 이때부터의 민심은 풍랑을 만나 공화국북반부에 들어왔다가 나간 어민들을 통하여 더욱 북으로 쏠리게 되였다. 속초, 인천을 비롯한 동서해의 많은 어민들이 풍랑을 만나 북에 들어와 평양을 비롯하여 각지를 돌아보고 나가 가족, 친척들과 마을사람들속에 북을 찬양하는 이야기들을 전하게 되였다. 이 이야기들은 삽시에 도처에 퍼져갔다.
1967년 내가 군에서 제대되여 집으로 오니 마을에도 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퍼져있었다.
그때 내가 들은 이야기로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십성상 항일무장투쟁을 승리에로 이끄신 민족의 태양이시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축지법을 쓰시여 일제 100만 대군을 때려눕히고 조국을 광복하신 민족적영웅이시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국놈들을 때려눕힌 불세출의 영웅이시다.》, 《세계에서 최강을 자랑하는 미국놈을 제일먼저 타승하신 명장은 오직 김일성장군뿐이시다.》, 《김일성장군님께서 해방후 민중을 위한 시책을 베푸시여 북에서는 로동자, 농민들이 제일 잘산다.》, 《김일성장군님의 치하에서 북에서는 온갖 걱정을 모르고 다같이 고르롭게 잘산다.》는것 등이였다.
이 격동적인 말들은 나의 마음을 북으로 나래치게 했다.
7. 4북남공동성명이 발표되고 북남적십자단체회담이 열리던 1970년대초부터 이남에서는 반공사상이 깨여지기 시작하였으며 련공, 련북의 기운이 퍼지게 되였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이 급격히 앙양되는것과 함께 민심도 더욱 북으로 향하였다.
1984년 9월초 이남에서는 사상류례없는 대홍수로 큰 재난을 입게 되였다.
도처에서 거리와 마을, 건물과 주택, 농경지와 도로 등이 파괴침습되고 숱한 사상자와 리재민들이 생겨나 말그대로 이남땅은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화하였다.
그런데 당시 《대통령》이라는 전두환은 이 참혹한 사태를 외면하고 외국유람의 길에 떠났다.
바로 이러한 때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쌀 5만석, 천 50만m, 수많은 의약품, 세멘트 등 1 800여만US$에 달하는 구호물자를 한지에서 떨고있는 수재민들에게 보내시는 동포애적조치를 취하시였다.
당시 나는 주식회사맛샘 영업부장으로서 인천항에 들어온 세멘트를 부리우는 이남로동자들의 식사를 보장하느라고 힘든줄 모르고 성수가 나서 뛰여다녔다.
그후 며칠이 지나 북의 구호물자들이 우리 회사가 자리잡고있는 서울 공덕동 사무소마당에 도착하였을 때였다.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수재민들로 사무소마당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들중에는 쌀포대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백발의 할아버지도 있었으며 천필을 쓰다듬으며 눈물짓는 할머니도 있었고 북녘하늘을 바라보며 큰절을 하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지어 어떤 아낙네들속에서는 쌀을 받아가는 수재민들에게 귀한 북의 흰쌀밥을 해먹을수 있게 바꾸어달라고 조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를 계기로 이남민중들속에서는 위대한 주석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흠모의 정이 더욱 높아갔으며 이북바로알기운동이 벌어지게 되였다.
1980년대말경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때 나는 림진강상류의 한 수영장에서 대학생들이 일광욕을 하면서 경쾌한 곡조의 노래를 부르는것을 목격하게 되였다. 유심히 들어보니 이남노래가 아닌 새롭고 신기한 노래였다.
노래곡조에 흥이 난 나는 슬금슬금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갑자기 인기척에 놀란 그들은 부르던 노래를 뚝 그치고 나를 경계하는것이였다. 그들은 내가 자선중학교 교장을 했던 사람이라는것을 알고 반기면서 요즘 대학가에서 위대한 장군님을 그리는 노래 《향도성을 따라서》를 지어부르고있다고 하면서 그 가사를 친절히 알려주는것이였다. 노래는 《아》자의 모음풀이노래였다.
향도성 따라서
1. 아침해 빛나는 저 멀리 백두산
야밤도 눈부신 주체의 큰 별님
어둠에 짓눌린 캄캄한 야밤에
여(려)명을 부르며 찬란히 빛나네
오늘도 향도의 그 빛발 우러러
요(료)원의 불길로 파쑈를 부시자
2. 우리는 가련다 충성의 한길로
유난히 빛나는 향도성 따라서
으뜸의 내 나라 영원히 빛내며
이 세상 끝까지 충성을 다하리
으뜸의 내 나라 영원히 빛내며
이 세상 끝까지 충성을 다하리
위대한 장군님을 흠모하는 가사를 받고보니 나는 흥분을 금할수 없었다.
나는 이미 두차례에 걸쳐 외국어대학교의 게시판에서 《친지김동 만만세!》, 《백두광명성 만세!》라는 대자보를 본바 있어 대학생들속에서 경애하는 장군님을 높이 존경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있었지만 이렇게 노래까지 만들어부르며 흠모하고있을줄은 정말 몰랐다. 나는 그 대학생들이 돋보였다. 아니, 한없이 고마웠다. 태양의 품을 찾아가려는 나를 힘있게 떠밀어주고있었던것이다.
나는 흥분된 심정을 금치 못해하며 그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부르면 부를수록 힘이 났다. 나는 집으로 오면서도 입속으로 불렀다. 그런데 이 노래가 어떤 경로를 거쳐 북에까지 들어오게 되였는지 나는 입북후 얼마 안있어 당보에 실린 이 노래가사를 보고 놀라움과 함께 반가움을 금할수 없었다. 노래도 민심의 반영이여서 제 곬으로 찾아온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무렵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이 평양을 방문해 위대한 주석님을 만나뵙는 영광을 지니였으며 통일애국인사 문익환목사도 사선을 헤치고 평양을 찾아와 위대한 주석님을 만나뵈옵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련방제방식에 의한 통일방도를 합의하게 되였다.
또한 그해 7월에는 《통일의 꽃》 림수경학생이 전대협대표로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해 수령님을 만나뵈웠으며 공화국의 조국통일방안을 적극 지지해나섰다.
1990년대에 들어와 북남고위급회담이 열리고 체육분야에서 《코리아》유일팀으로 국제경기에 나서는 경이적인 사태발전을 계기로 북을 향한 민심동향은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문익환목사를 접견하시는 영상사진을 《한겨레》신문 1면에 크게 모신것을 출발점으로 신문, 잡지, 도서들에서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존귀하신 영상사진이 대대적으로 실리게 되고 흠모와 동경의 정은 북으로 북으로 향하였다.
나는 어느 한 기회에 북남고위급회담취재차로 서울에 나갔던 한 기자와 만난바 있다. 그는 그때 《통일의 꽃》 림수경학생의 모교인 외국어대학교와 동국대학교를 찾은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가 여러명의 기자들과 함께 외국어대학교에 찾아가니 전대협간부들이 겨울방학기간의 활동계획을 토론하고있었다.
북의 기자들이 모여온 100여명의 대학생들앞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실현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자고 열렬히 호소하자 그들은 우렁찬 박수를 치며 적극 호응해나섰으며 한 간부는 연단에 뛰여오르더니 《옳소! 우리의 미래이며 희망이신 김일성주석님께서 제시하신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을 이 땅우에 우뚝 일떠세울 그날을 위해 피끓는 청춘을 바치자!》고 열변을 토하는것이였다.
이에 화답하여 대학생들이 일제히 《옳소!》, 《옳소!》 하며 통일의 열기를 높이였다. 어느새 모여들었는지 삽시간에 교실과 복도에는 500여명의 대학생들로 차고 넘치였다. 북의 기자들은 그들과 어깨겯고 노래도 부르고 그들에게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의 정당성을 해설해주면서 뜨거운 동포애의 정을 나누었다.
우리 기자들이 동국대학교에 찾아갔을 때에도 대학생들은 북을 열렬히 동경해나섰다.
이때 전대협의 한 간부는 《주체철학은 김정일지도자님의 철학이다. 주체철학은 우리 전대협의 투쟁지침으로 되고있다. 그래서 새 학기에는 주체철학연구회를 내오려고 한다.》고 하였으며 또 한 간부는 그때에 위대한 장군님의 초상화를 모실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해나서기도 하였다.
북으로 향한 민심은 2000년 6월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계기로 더욱 확산되였다.
평양상봉 하루전인 6월 12일 오후 6시 40분쯤 서울 북부경기도지역 하늘에서 시원한 소나기가 쏟아져내리더니 이윽고 칠색령롱한 쌍무지개가 북과 남을 련결하며 무려 20분간이나 비끼였다. 이를 본 서울시민들은 한결같이 래일의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축하하기 위하여 쌍무지개가 비낀것이라고 경탄해마지 않았다. 그러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마련하신 평양상봉과 더불어 서울하늘에 쌍무지개가 비낀것은 결코 무심히 대할수 없는 신기한 일이라고 말하는것이였다.
이남신문들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김대중《대통령》과 악수하시는 장면의 사진을 지금까지의 관례를 깨고 1면에 크게 정중히 모시였다.
특히 《경향신문》은 이 장면의 사진을 1면 전면에 다 싣고 이것으로써 수백수천마디의 말을 전하고있는데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하는 뜻에서 아무런 해설글이나 사진설명도 달지 않았다.
인터네트들에서는 《김정일국방위원장 사랑해요》, 《북지도자 김정일국방위원장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글들을 계속 내보냄으로써 이남민중을 격동시켰다.
이때부터 출판물들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존칭을 《김일성주석》으로, 경애하는 장군님의 존칭을 《김정일국방위원장》으로 정중히 모셔 쓰게 되였다.
《북한》이라고 쓰던것도 《이북》으로 바꾸어 쓰기 시작하였으며 력대로 써오던 악의에 찬 비방표현들이 자취를 감추게 되였다.
특히 사회적으로는 《김정일국방위원장 따라배우기》열풍이 급격히 파급되였다. 상점과 백화점들에서는 장군님께서 끼셨던 색안경과 입으신 옷형태들이 전시되고 그것을 사려고 모여온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일부 매대들에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영상사진까지 모셔져있었는데 숱한 사람들이 그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느라고 붐비였다.
이 운동에는 역시 청년학생들이 앞장에 섰다.
의복도 위대한 장군님께서 입으시는 색의 천으로 쟘바를 해입고 안경도 꼭같은 색안경을 끼고다니며 글도 장군님식으로 활달하게 흘려쓰고 말도 유모아를 섞어가며 유쾌하게 하는 등 《김정일열풍》을 도처에서 일으켰다.
력사적인 6월 15일 당일 현대아산재단과 통합농업협동조합중앙회는 이전 조선로동당 강원도 철원군위원회가 자리잡고있던 옛 건물앞에서 조국통일을 념원하는 《사랑의 무료진료》를 벌리였다. 연 3일간 진행된 이 행사에서는 주민 400여명을 치료해주었다. 행사가 옛 로동당청사앞에서 진행된것도 이채로웠고 조선로동당의 인민적보건정책인 무상치료를 해준 사실은 더욱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였다.
남에서는 두차례에 걸치는 인공지구위성의 발사와 두차례의 핵시험, 신형미싸일발사 등을 통하여 강력한 핵보유국으로 된 이북의 막강한 힘에 고무되여 북에 대한 동경을 끊임없이 표시해나섰으며 경제강국건설에서 일어난 북의 성과를 찬양하면서 2012년의 강성대국건설목표가 반드시 실현될것이라는 확신의 목소리도 높이고있다.
민심의 이러한 추향을 반영하여 언론들은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활동소식을 대대적으로 소개하고있다.
주요 24개의 언론들이 2010년 상반년기간 위대한 장군님의 경제부문의 현지지도와 관련하여 보도한것은 총 175건으로서 전해 같은 기간에 비하여 근 3배나 많았으며 영상사진은 135상으로서 전해보다 무려 8배나 더 많이 모시였었다.
오늘 이남의 민심이 북으로 향하고있는것은 해빛을 따르는 해바라기와 같이 합법칙적인것이며 그 누구도 막을수 없는 시대적추향으로 되고있다.
그것은 바로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신 김정일장군님의 넓고 따뜻한 품이 있기때문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