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주체의 사회주의
○ 평양에서 진행된 뉴욕교향악단공연을 보고
(2008. 3. 3)
나는 2008년 2월 26일 오후 6시 뉴욕교향악단이 평양에서 연주를 하는 력사적현장에 있었다. 말로 표현할수 없는 감동의 현장이였다. 감격스러웠던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교향곡중에서 2번째로 좋아하는 드보르쟈끄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From the New World)가 이번에 연주된것이였다. 나는 신세계교향곡의 한음도 놓치지 않으려고 내자신이 로린 마젤대신 스스로 지휘를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음을 다 들었다. 눈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련속 흘러내렸다. 어떤 때는 흐느껴울었다. 감격 그자체였다. 내가 신세계교향곡에 그렇게 빠져들은 그 리유를 나중에 뉴욕교향악단이 《아리랑》을 연주할 때 문득 깨달았다. 그 두 음악의 쩨마의 원천이 같았기때문이였다. 아리랑민족의 한과 념원, 절망과 희망, 실련과 사랑, 좌절과 꿈, 현실과 리상이 신세계교향곡과 아리랑에 깊숙이 뿌리박고있었기때문에 나는 그 두곡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감동속으로 몰입했던것이다.
체스꼬에서 활동하던 안또닌 드보르쟈끄는 1892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흑인들과 인디안들의 음악의 독특성들(peculiarities of African-American and Indian music)을 연구분석한 후 그것들을 구현하여 기본주제들(original themes)을 써나갔으며 이것들을 주제삼아 현대의 리듬, 화음, 대위법, 관현악적색갈 등의 모든 자료들을 발전시켜 결국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를 완성시켰던것이다. 나는 드보르쟈끄가 왜 당시 사람들이 선망하는 발전된 자본주의사회인 미국의 물질문명에 관심을 돌리고 상류층들과 중산층들의 삶의 특성들을 구현하여 교향곡을 작곡하지 않고 오래동안 억눌리고 짓밟혀온 흑인들과 인디안들의 민속음악들을 구현하여 신세계교향곡을 작곡했을가 묻고 또 물어보았다. 그러면서 나는 내스스로 답을 생각해보았다. 새로운 세상, 신세계는 결코 백인지배층들의 풍요로운 물질문명의 삶에서 찾을수 있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짓밟고 착취하고 억압해온 흑인들과 인디안들의 한과 념원, 웨침소리에서 그리고 그들의 공동체의 삶속에서 찾을수 있다는 드보르쟈끄의 발견때문이 아닐가?
흑인들과 인디안들의 념원과 한이 표현된 민요들, 례를 들면 스와니강, 더 리틀 알라바마 쿤, 마사 디어 등의 독특한 슬프고 그리운 민속음악선률들이 신세계교향곡전반에서 발견된다. 나는 스와니강노래를 고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후 영어로 2절까지 외워 외롭고 슬플 때마다 지금까지 부르군 했다. 《내 오랜 가족들과 고향사람들이 사는 그곳, 내가 일하던 플란테이션이 있는 스와니강에 내 마음이 향한다》는 애절한 흑인민속노래는 6.25전쟁때 례성강변의 황해도를 떠나온 나로 하여금 내 고향을 그리게 하는 애절한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였다.
드보르쟈끄의 신세계교향곡은 바로 물질문명으로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미국중산층과 상류층에게 하나의 경고이며 인류가 갈망하는 신세계는 바로 억압받고 착취를 받아온 흑인들과 인디안들, 제3세계민중들이 추구해온 자주의 세계, 조화와 평화의 세계, 단결과 협력의 세계 즉 사랑의 공동체임을 암시하고있는것이다.
이번 뉴욕교향악단이 공연한 곡중에는 미국작가인 죠지 거쉬윈(George Gershwin)이 작곡한 《빠리의 미국인》(An American in Paris)도 있었다. 이 곡을 들으며 빠리를 방문중인 한 미국인이 빠리의 여러 모습들과 소리들, 혁명과 좌절이 담긴 빠리의 정신을 알려고 노력했듯이 평양을 수십번 방문해온 코리안 아메리칸인 나는 평양의 여러 모습을 알려고 노력해왔다. 거쉬윈이 빠리에서 관찰했던 빠리의 진면목이 《빠리의 미국인》이라는 교향곡에 묘사되였듯이 나도 평양의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오래동안 평양을 관찰한 내용을 여러 글에 담았다.
한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내가 평양에 오래동안 머무르며 관찰한 내용이 무엇이였을가? 나는 오래동안 평양에 머물면서 평양시민들의 내면의 웨침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그 소리는 바로 평화의 웨침소리였다. 더이상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평양시민들은 각 처소에서 노력하고있었다. 그 다음으로 평양시민들이 웨치는 내면의 소리는 통일의 함성이였다. 평양시민들은 조국은 북과 남 둘이 아니라 하나다라고 웨치고있었다. 이들은 조국통일을 위하여 모든 노력을 하고있었다. 또한 이들 평양시민들은 그들의 생명인 자주성을 지키기 위하여 어떠한 제국주의의 침략도 단호히 막아내겠다고 웨치고있었다. 내가 만약 작곡가라면 이들 평양시민들의 내면의 웨침소리를 주제로 하여 교향곡을 작곡하고싶다. 제목은 《A Korean American in Pyong Yang》이라고 달고싶다.
우리 아리랑민족인 코리안은 왜 한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고 침략만 받아왔을가? 강대국에 침략을 당하여 식민지생활을 해본 민족만이 그 한과 설음, 비통과 슬픔을 알기에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아리랑민족은 다른 나라를 침략할수가 없었던것이 아닐가? 비록 자신들이 아리랑고개를 넘어갈망정.
그러나 우리 아리랑민족의 5천년력사에 처음으로 다시는 강대국들이 심지어 핵무장을 한 현대의 제국주의라도 조선반도를 더이상 감히 침범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새로운 신세계인 평양의 말없는 자주의 웨침소리, 평화의 웨침소리, 민족통일의 웨침소리였다. 그것은 단순한 웨침소리가 아니라 실제로 모든것을 준비한 정치사상의 강국, 군사의 강국, 문화의 강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당당한 참모습이였다. 이것이 내가 1989년부터 거의 20년동안 평양에 머물며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관찰한 내용이였다. 수령과 당, 군대와 대중이 하나의 사회정치적생명체로 일심단결된 나라가 바로 북부조국이였다.
이것은 핵무기나 수소폭탄보다 더 강한 무기이다. 5천년의 력사를 지닌 조선민족의 꿈과 념원을 실현한 평양의 자랑, 평양의 긍지감을 로린 마젤은 느끼지 못하고 갔을것이다.
나는 2006년 10월 9일 핵실험의 력사적현장인 평양에 있었고 그후 2007년 2월에 나온 2.13합의가 발표되던 날 나는 다시 력사적현장인 베이징에 있었다. 그리고 그 이튿날 평양에 들어갔다. 2008년 2월 26일 이제 북미간에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전초전으로 두 나라 백성들간의 마음과 마음을 하나로 조화시키기 위한 뉴욕교향악단의 평양공연현장에 나는 다시 있게 되였다. 신세계교향곡과 《아리랑》이 연주되는 력사적현장인 평양에서 한 코리안 아메리칸인 나의 념원과 꿈은 하나이다. 그것은 조선반도의 자주, 평화, 통일이다. 평양의 한 코리안 아메리칸의 이 념원과 꿈이 어느 작곡가에 의해 작곡되여 코리아가 통일되는 날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연주되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