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다음날부터 리제마는 강녕전에서 임금의 병을 고치는 일에 달라붙었다.

손을 대여 달라지기 시작한 임금의 병세는 닷새후부터 눈에 띄게 숙어들었다.

리제마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두툼한 담요를 깔고 엎드린 임금의 곤룡포 뒤자락을 걷어올리고 잔등에 자름자름한 부항 몇개를 붙여놓았다.

보중익기탕과 적백하오관중탕 같은 약처방으로만도 능히 고쳐낼수 있는 임금의 병인데 부항까지 붙이는데는 그럴 까닭이 있어서였다.

사람의 병은 약이나 침, 뜸으로만 고치는것이 아니다. 그 못잖은 비방이 있으니 그것은 병자의 마음을 끌어당겨 그의 성격과 심리에 맞는 정신적자극을 조화롭게 주는것이다.

약과 함께 반드시 자기의 병을 고칠수 있다는 병자의 정신상태, 이 두가지를 중시할줄 모르는 의원은 명의로 될수 없다.

하기에 명의로 되자면 다문박식한 학식을 쌓아야 한다. 여러 학문에 무불통달한 높은 학식으로 병자에게 이 의원에게 몸을 맡기면 얼마든지 병을 고칠수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병자에게 병을 고칠수 있다는 믿음을 주자면 그와 접촉할 시간을 내야 하는데 그런 시간은 자연스럽게 마련하는것이 좋다.

탕약만을 내주면 임금과 함께 있을수 있는 시간을 넉넉히 마련할수 없다.

그렇다고 임금에게 침이나 뜸을 놓아 아픔을 주면서까지 시간을 얻고싶지 않았다.

하여 리제마는 약물료법에다 부항료법을 보태기로 처방을 내린것이다.

병자에게 별로 괴로움을 주지 않는 부항료법이야말로 임금과 기분좋게 만날수 있는 시간을 얼마든지 얻을수 있을것이다.

부항을 붙여놓고 임금의 기분을 좋게 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이미 다른 나라 의원에게도 지어는 도깨비같은 미국의원에게도 병을 보였다는 임금이니 그들에게서 별의별 달콤한 소리를 다 들었을것이다.

리제마는 다른 나라 의원들로서는 도저히 흉내낼수 없는 시골의 마실방들에서나 하는 구수한 기담을 펼쳐놓기로 하였다.

세상에 기담을 싫다 할 사람은 없을것이다. 리제마의 생각은 빗나가지 않았다.

기담을 들으면서 유쾌한 기분으로 약물도 받아마시고 부항도 붙인 임금의 병세는 점차 차도를 나타내였다.

무엇을 보고 알수 있는가. 수라상이 말해준다. 옛적부터 력대 임금들은 먹다 남긴 수라상을 총애하는 신하나 공세운 신하들에게 물려주는것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신하들은 또 임금이 내주는 수라상을 받는 일을 제일 큰 자랑으로 여겼다.

임금은 병치료를 받는 첫날부터 리제마에게 수라상을 물려주었다.

첫날 수라상에는 음식을 든 자리가 거의 없었다. 임금은 기껏 큰 원반에서 쏘가리를 끓인 금린어탕을 조금 다쳤을뿐 다른 음식들은 전혀 다치지 않았다.

그러나 병치료를 받은지 사흘날부터는 전골이라든가 찜 같은 음식들에서도 자리가 났고 그 다음날부터는 남새반찬들에서도 자리가 났다.

오늘도 임금이 부항치료를 하는 리제마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공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

리제마는 그 뜻을 알아차렸다. 그러니 어서 이전처럼 기담을 꺼내놓으라는 뜻이다.

《전하! 오늘은 소신이 진해현감으로 있을 때 겪은 일을 아뢰자고 하오이다.》

《그것도 좋구.》

《한번은 례방이란 사람이 고을의 풍기를 어지럽혔다면서 홀아비 한명을 끌고온적이 있었소이다. 신이 홀아비에게 <무슨 죄를 졌느냐?> 하고 물었더니 그 사람은 대답대신 시뻘개진 얼굴을 어깨밑으로 깊이 숨기는것이였소이다.

례방이 말했소이다. 홀아비네 집 뒤뜨락에 큰 감나무가 한그루 있는데 그 감나무가 서있는 뒤뜨락이자 젊은 과부가 홀로 사는 이웃집마당이였소이다. 어느날 밤, 별스레 녀인생각이 간절해진 홀아비는 통 잠에 들수 없었소이다. 홀아비는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났소이다. 감을 따야겠다는 생각이 나서였지요.

뒤뜨락의 감나무에는 잘 익은 감이 주렁주렁하였는데 그럴수밖에 없은것은 홀아비는 젊은 과부가 핀잔할가봐 못 따먹고 또 젊은 과부는 홀아비가 지켜보는것 같아 못 따먹고 그래서 말랑말랑한 홍시가 그대로 매달려있었소이다.

홀아비는 감을 따자는 한가지 생각에서 망태기에 양푼을 넣어메고 뒤방문을 나섰소이다. 그러니 제가 알몸뚱인줄 알수가 없었지요.

남해가의 시골집들에선 사내들이 알몸뚱이로 잠자리에 드는 일이 종종 있소이다.》

《허? 그것 참, 볼만 했겠군.》

《예, 그런데 반달이 홀아비의 그 장한걸 감춰주고싶어서인지 구름속으로 몸을 숨기더라는것이였소이다.》

《하? 그것 참!》

《홀아비는 말랑말랑한 홍시를 한양푼 가득 따서 젊은 과부에게 안겨주면 예쁜 그 계집이 얼마나 기뻐하랴 하는 생각이였소이다. 사실 그는 젊은 과부를 마음에 두고있었소이다.

그는 기운이 뻗쳐 감나무로 기여올랐소이다. 나무에 기여올라서 홍시를 손더듬하는데 문득 젊은 과부네 집에서 문열리는 소리가 들려오는것이 아니겠소이까.

홀아비가 숨을 딱 죽였는데 타박타박 젊은 과부의 발걸음이 다가와 감나무밑에서 멎는것이였소이다.

<어이쿠, 하필 소피 볼데가 없어서 여기로 올건 뭐람.> 하고 홀아비가 가슴을 두근거리는데 이런 야단이 어데 있겠소이까. 글쎄 젊은 과부는 오줌을 싸는것이 아니라 치마를 버썩 걷어올려 허리에 둘러감고 나무로 기여오르겠지요.

반달이 구름속에서 나왔으니 젊은 과부가 보였소이다.

<아이쿠, 조 계집이 얼마나 홍시생각이 났으면 이러랴. 내가 하루만 더 먼저 생각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하여간 홀아비는 급해맞아 나무우로 더 기여올랐소이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 병진시궁(막다른 곤궁에 빠졌다는 뜻)이라 하겠소이다. 더는 올라갈데가 없는 홀아비는 나무가지를 붙안고 눈을 딱 감아버렸소이다.

괴변은 그 다음에 일어났소이다. 글쎄 과부가 홍시를 더듬어 딴다는노릇이… 그 녀자의 말큰한 손이 그만 홀아비의 두다리짬에 매여달린 그 장한걸 움켜잡은것이 아니겠소이까?》

《그, 그래서?》

리제마는 시치미를 뚝 떼고 말을 이었다.

《예, 그만 홍시가 아니라 어떤 사내녀석의 독오른 불알을 잡았다는걸 깨달은 젊은 과부는 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소이다. 그런데 떨어지진 않았지요.》

《어떻게?》

《홀아비가 날래게 나무아래로 미끄러져내려오며 녀인을 안아서였소이다. 홀아비는 젊은 과부를 끌어안고 속삭였소이다.

<이보게 날세, 나야. 앞집 홀아비!>

그만에야 숨이 나간 젊은 과부는 홀아비에게 몸을 맡겨버렸소이다. 그래서 기이하게도 가지친 감나무우에서는 과부와 홀아비의 괴이한 이성지합이 마련되게 되였소이다.》

임금은 몸을 들썩이며 소리쳤다.

《고금동서에 보기 드문 거사로다. 그것 참, 재미있었겠소.》

《예, 그랬던것 같소이다. 그런데 입이 빠른걸 보면 계집들보다 사내녀석이 더할 때가 있소이다. <홍시인줄 알았더니 잘 익은 불알이더라.> 하는 상스러운 소문이 났는데 젊은 과부의 입에서가 아니라 홀아비의 입에서 새여나왔소이다. 그래서 례방이 화가 나서 홀아비를 붙잡아온것이였소이다. 신은 례방에게 젊은 과부도 잡아들이라고 하였소이다.

젊은 과부가 끌려왔소이다. 신이 물었소이다. <넌 홍시를 따서 네가 먹자고 했는가?> 그랬더니 젊은 과부는 <제가 먹자고 한밤중에 그럴 사람이 어데 있겠나이까?> 하고 당돌하게 대꾸하는것이였소이다.

그래서 신이 례방에게 일렀소이다. <이 두사람은 고을의 풍기를 어지럽힌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하였으니 지체말고 모여살도록 하라.>》

《어? 아주 잘했다. 그것 참, 명담이야.》

임금은 바닥을 두드리며 껄껄 웃었다.

《과연 공은 지내볼수록 과인의 마음에 든다. 과인이 공에게 병을 보이길 잘했다. 이젠 병이 차도가 생기는듯 해.》

웃음을 머금고 임금은 계속 말했다.

《한가지 알고픈것이 있네. 언젠가 관상감(천문기상의 관측과 연구, 력서의 작성과 시간측정사업을 맡아보는 관청)에서 알려오기를 사람들은 대체로 보름날과 그믐 이삼일전에 더 많이 죽는다는것이야. 그래서 과인이 미국의원에게 왜 그런가고 물었더니 대답이 신통치 못했어.》

리제마는 임금이 진정 그 까닭을 알고싶어한다는것을 느끼였다. 심한 병은 아니더래도 잡병으로 시름시름 앓다보니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을것이다.

리제마도 보름날과 그믐날을 전후로 하여 병자들이 더 많이 죽는다는것을 알고 그에 대해서 생각을 깊이해본적이 있었다.

리제마는 임금의 등에서 부항을 떼며 말했다.

《전하! 소신은 달이 사람의 생사에 깊이 관여한다고 생각하오이다. 달은 음이고 사람의 머리는 양이옵니다. 달이 제일 커지는 보름날과 제일 작아지는 그믐날을 전후로 하여 변하는 달의 모양, 다시말하여 음의 변화가 심해지면 그 기운이 사람의 머리, 그러니 양을 몹시 제약하는 까닭에 이전보다 사람들의 머리에 허열증이 성해지게 되오이다. 허열증이 심해지면 내상7정(7가지 정서의 변화 즉 기뻐하고 성내고 근심하고 생각하고 슬퍼하고 놀라고 겁내는것)이 혼란되여 그런 날에는 병자들이 더 많이 잘못될수 있소이다.

이런 불상사를 막으려면 그런 날들에 과음하지 말며 변비를 없애고 잠을 푹 자야 할줄로 아오이다. 이건 아직 소인생각인줄 아오이다.》

《과시 명철한 대답이로다. 공은 진짜 명의다. 오늘은 몸이 거뜬해서인지 알고싶은것이 많구만. 방금 잠이란 말이 났기에 묻는건데 사람이 하루 얼마쯤 자는것이 좋은가?》

리제마는 기뻤다. 임금이 알고싶은것이 많아졌다는건 곧 의원에게 마음이 쏠렸다는 뜻이다.

《전하! 신이 다년간 의술을 닦으면서 살펴보니 대체로 잠을 모자라지 않게 잔 사람들속에서 장수자가 많았소이다. 적어도 깊은 잠은 일여덟시간은 자야 잠이 모자라지 않다고 볼수 있소이다. 잠이 모자라면 사람이 오륙을 제대로 놀리지 않을 때처럼 몹쓸 병에 걸릴수 있소이다.》

임금은 익선관(임금이 쓰는 관의 한가지)을 쓴 머리를 끄덕이였다.

《공의 말을 듣고보니 깨닫는바가 크오.

또 한가지, 사람들이 말하기를 공의 4상의학이 아주 새로운것이라고 하던데 … 어디 그에 대해서 한번 들어보았으면 하오.》

《황송하옵니다. …물론 2천년전 서방의 그리스나 춘추전국시기 고대중국에서 여러 의원들이 서로의 지혜를 모아 사람의 체질을 네가지 혹은 다섯가지로 나누어보려는 시도는 있은줄로 아옵니다. 소신이 생각하건대 그때 의원들은 사람의 체질을 병치료를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사람의 생김새나 갈라보려고 그렇게 하였던것 같았소이다. 그러다보니 옛사람들은 사람의 체질을 제나름대로 나누어놓은데만 그치였지 체질에 맞는 병증과 그에 따르는 약처방을 밝힐수 없었소이다. 그래서 소신이 내놓은 4상의학을 다들 새롭다고 하는것이옵니다.》

《음… 알겠소. 사람의 체질에 따라서 약처방이 달라지는 리유는 뭔가?》

《신이 병을 다스리는 리치는 4상인에 따라서 달라지는 5장의 세력을 그 사람의 체질에 맞게 고르롭게 하여주는것이옵니다.

사람은 5장의 크기가 서로 달라서 평시에는 소질(일시적균형)을 이루게 되는데 사기가 침범하면 그 소질이 깨져서 같은 병일지라도 증상이 달라지게 되오이다.

이로부터 병을 고치자면 장기의 소질을 회복시켜야 하는데 그러자면 세력이 과도한 장기는 <사>(사기 즉 병인을 없애고 이상항진된 기능을 정상에로 회복하는 작용)해주고 허한 장기는 <보>해주면서 사기를 몰아내야 하오이다.

커졌던 장기는 곧 줄어들수 없고 작아진 장기는 곧 커질수 없기에 5장의 세력이 고르롭게 잡힐수 없소이다.

그러나 약을 쓰면서 정신을 수양하면 그것이 장기에 자극을 주어 소질을 이룰수 있소이다. 하여 4상인에 따라서 장기의 부족되는 기력을 북돋아주는 약과 병증을 다스리는 약을 더하고 빼게 되니 그래서 약처방이 달라지는것이옵니다.》

임금은 고개를 기웃거렸다.

《과인이 학식이 넉넉치 못하다보니 공의 말을 다는 알아듣지 못하겠군.

하여간 공은 금성옥진(사물을 집대성화하여 완결했다는 뜻)하여 세상에 처음으로 4상의학을 새롭게 내놓았다는것만은 확실하오. 장하오. 공은 과시 조선의 명의라 할수 있소.》

리제마는 두손을 모아잡고 머리를 숙이였다.

《황공무지로소이다.》

《또 한가지! 미국의원이 과인에게 말하기를 동양이 개명하려면 의술에서도 서양의술을 받아들여야 한댔소. 공은 어떻게 생각하오?》

리제마는 임금에게 생각하는바를 기탄없이 아뢰였다.

《전하! 서양의원들은 사람의 체질에 따라서 그리고 병증에 따라서 쓰이는 각이한 약처방들과 침, 뜸, 부항, 지압, 찜질 같은 우리 나라의 의술을 알수도 없고 리해할수도 없을것이옵니다. 우리의 의술은 마음만 먹으면 어떤 병이든 다 고칠수 있소이다.

서방에서는 약에만 매여달리다보니 고뿔 하나 제대로 고치지 못하여 숱한 사람들이 죽고있다고 하오이다.

그러나 우린 약뿐아니라 침과 뜸으로도 고뿔을 고치고있소이다. 식체나 위완통 같은 속탈도 마찬가지옵니다.

신은 마땅히 선조들이 물려준 우리 의술을 기둥으로 하고 여기에 서양의술의 좋은 점을 보태쓰면 의술이 사람들의 장수에 더 기여할수 있다고 생각하오이다.》

《듣고보니 그 말이 옳은것 같소.》

임금은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리제마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그의 얼굴에 그늘이 지어있었다.

《공 보기엔 과인이 얼마를 살것 같소?》

리제마는 이 대답을 심중히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어찌 사람이 의술의 도움으로써만 장수를 누린다고 할수 있으랴.

《전하! 세상엔 <진시황도 죽었다.>라는 명담이 있소이다.

황제가 된 진시황은 만년장수를 해보려고 사방으로 신하들을 파하여 장생불사약을 구해오게 하였지만 쉰한살밖에 못살았소이다.》

임금은 탄식하였다.

《허?》

《전하! 옛 성현들이 이르기를 사람이 자기의 수명을 다 살려면 시기질투를 말며 라태를 말며 호색과 탐욕을 말며 과음을 말며 진귀한 약을 망탕 쓰지 말며 놀음에 지나치지 말며 짜게 먹지 말라 하였소이다. 그리고 사색하기를 즐기고 손발놀리기를 좋아하며 사람들과 화목하고 남새음식을 많이 들라고 하였소이다. 또한 지위가 높아질수록 덕을 베풀고 위엄을 보이는 <덕위병행>을 잊지말라고 하였소이다.》

임금의 얼굴에 심각해하는 빛이 떠돌았다.

《전하! 이만 오늘은 물러갈가 하오이다.》

리제마는 공손히 강녕전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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