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리제마와 그의 제자들의 지성어린 보살핌으로 하여 두사람은 기적적으로 소생하였다.

열흘에 한번씩 그의 동료들이 꼭꼭 학당골을 찾아왔다.

마침내 만가을에 이르러 두사람은 멀쩡한 새 사람이 되여 동료들과 함께 홍원을 떠나갔다.

리제마는 구태여 그들이 가는 곳을 묻지 않았다.

그들이 북쪽으로 방향을 잡은것을 보아 남의 나라 땅으로 살길을 찾아간다는것만은 짐작하였다.

며칠후, 함흥감영에서 형방비장이라는자가 라졸들을 한 무리 끌고 와서 학당을 없애라는 관찰사의 령을 전달하였다.

형방비장의 말은 조정에서 충의계의 계원이였던 전 홍원현감이 벌려놓았던 일을 다 없애버리라고 했다는것이였다.

그들은 글방을 빼앗아 도로 원집으로 쓰게 하였다.

리제마는 억이 막혔다. 남은 생을 깡그리 후진을 키우는 일에 바치리라 한 그 기대마저 제대로 이룰수 없으니 세상은 왜 이리 험악한가.

아니, 내 이 길에서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테다.

리제마는 의술을 배우는지 몇달밖에 안된 학도들에게 후에 때가 오면 다시 가르쳐주기로 약속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 다음 그는 의술에 더욱 전심하였다.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분발하여 4상의술을 밝힘으로써 그것을 후진들에게 물려주어야 할것이였다.

다행히도 리제마가 거처하는 집은 그대로 남아있어 그곳에서 4상의학을 심화시켜나갔다.

을순이는 여전히 부인병치료에 전심했고 의봉이는 리제마를 도와 4상인에 따르는 처방을 찾아냈다.

이 나날 리제마는 4상인에 따르는 약의 작용이 서로 다르다는것을 재확인하였다.

그에 의하면 소음인에게 알맞는 약은 성질이 온열적이고 맵거나 단맛을 가지면서 주로 비, 위경에 작용한다. 소양인에게 적합한 약은 성질이 한량성이고 쓰거나 단맛이 있으면서 신, 방광경에 작용한다. 태양인의 약은 성질이 차거나 서늘하며 단맛이 있고 주로 간, 비, 위경에 작용하며 태음인의 약은 성질이 온열성과 한랭성이 각각 절반씩인데다 쓴맛이 대부분이고 페, 간, 신경에 영향을 미치는것이다.

이런 리치를 재확정하였으니 4상인에 맞는 약을 갈라내는것은 의원이라면 누구나 할수 있게 될것이다. …

바쁜 나날속에 또 한해가 지나고 새봄이 왔다.

만산을 연분홍꽃 진달래가 빨갛게 물들일적에 민성이와 달래네 량주들이 학당골로 찾아왔다. 어머니의 1년상을 마쳤으니 아버지의 생일상을 차려드리겠다는것이였다.

그들이 모여들어 학당골이 흥성거렸다.

3월 19일, 리제마는 신새벽에 일어났다.

버릇대로 아침산보를 하러 토방에 나서니 부엌에서 아낙네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웃음소리만 들어도 그들이 누구들인지 안다. 며느리와 달래, 을순이, 의봉이의 처들이다.

생일음식을 차린다며 밤늦도록 분주했는데 언제 깨여났을가.

하여간 오랜만에 그리운 사람들이 한자리에 앉게 되였으니 기쁜 일이다.

의봉이 먼저 깨여일어나 밖에 나갔댔는지 사립문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선생님! 또 산보하시려는것 같은데 산보가 그렇게도 좋소이까?》

《암, 좋다마다. 아침마다 소나무숲을 거닐면 머리가 맑아져 좋거던. 참, 자네 고뿔처방을 써보았겠지?》

의봉은 아름드리소나무들이 구불구불한 그아래를 천천히 거니는 리제마를 따르며 대꾸했다.

《예, 선생님께서 내리신 처방인데 어련하실라구요?》

《실없는 소리.》

리제마는 허리에 손을 얹고 잠시 멈춰섰다.

소나무우듬지사이로 이름모를 새들이 날아예며 지저귄다.

세상에 감기만큼 흔하고 대수롭지 않으나 고치기가 까다로운 병은 없을것이다.

그 몹쓸 감기를 약을 써서 고쳐보려고 애써오는지 수십년이 지난 오늘에야 빛을 보게 되였다. 4상의학이 아니였다면 아직도 감기의 처방을 제대로 내리지 못했을것이다.

《선생님! 선생님이 지으신 형방패독산이 정말 신통하오이다. 엊그제 소양인병자들에게 그 약을 달여먹였더니 하루 지나 그제 벌써 말을 듣겠지요. 약을 먹어 이틀만인 어제 다섯사람이 다 고뿔이 뚝 떨어졌소이다. 확실히 이번에 지은 약들은 옛적 처방에 있는 약보다 고뿔에 명약이오이다.》

《천궁계지탕은 내가 고뿔에 걸린 소음인들에게 써봐서 아는것이고 그렇다면 됐네. 유감스러운것은 우리 조선사람들에겐 태양인이 무척 드문 까닭에 태양인처방을 얻어내기 힘든것이야.》

《선생님!》

《자, 그럼 들어가서 내인들이 차린 음식상을 함께 받읍세.》

의봉이와 함께 방에 들어선 리제마는 어리둥절하였다.

생일상이라기엔 너무도 요란했다. 음식상에는 한쌍의 통닭까지 올라있었다.

(허? 이애들이 정신나갔군.)

리제마는 혀를 찼다. 확실히 자식들에게 조상전래의 풍습을 속속이 배워주지 못했다는 자책이 들었다.

나많은 사람의 생일상에는 잉어 같은 물고기를 올려놓는것은 좋지만 닭은 좋지 않다. 암수 한쌍의 닭은 아들딸을 많이 낳으라는 뜻으로 신랑신부의 잔치상에 올려놓는것인데…

리제마는 선자리에서 잘못된걸 바로잡아주려다가 이 좋은 날 잔소리를 하는것 같아서 차차 일깨워주기로 마음먹었다.

《아버님!》

민성이 다가와 리제마의 머리에 사모를 씌워주었다.

《허? 이건 뭐냐?》

《아버님! 오늘만은 저희 자식들이 하자는대로 따라주소이다. 자, 아버님이 앉으실 자리는 여기… 가운데옵니다.》

민성의 부축을 받아 리제마는 통닭 한쌍이 올라있는 교자상의 가운데를 마주하고 앉았다.

사모까지 쓰고 앉아서인지 퍼그나 어색하였다. 인차 부엌에서까지 사람들이 모두 들어왔다.

민성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 자식들은 아버님의 마흔아홉번째의 생일을 맞으며 약소하나마 음식상을 마련했소이다.

오늘 아버님곁에는 앉으실분이 있소이다.》

민성의 말을 기다렸다는듯 달래와 민성의 안해가 을순이를 부축하였다.

당황하여 몸둘바를 몰라하는 을순이를 두 녀인이 리제마의 곁에 이끌어앉히였다.

민성이 눈물이 글썽해서 말하였다.

《이모님! 이모님께선 진해때부터 이날이때까지 저희 아버님을 몸가까이에서 모시고 삼시 세끼 진지를 해올리고 돌봐드려왔소이다. 저희 자식들이라면 그렇게 해드렸겠소이까. 저희 자식들이 머리칼을 베여 이모님의 신을 삼아올려도… 그 은혜 천에 하나도 갚을수 없소이다.

이모님! 오늘부터 우리 자식들은 이모님을 어머니라 부르겠소이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덤덤히 앉아 듣기만 하던 리제마는 손발을 어떻게 건사해야 할지, 또 눈길은 어데다 두어야 할지 몰라 허둥거렸고 을순이는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흐느꼈다.

그러고보면 민성이와 달래네 량주들은 아버지의 생일날인 바로 오늘에 이런 일을 꾸미자고 작정하고 모여온것이 분명하였다.

의봉이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었다.

《이 사람, 민성이! 정말 잘 생각했네. 자넨 진짜배기 효자일세.》

이윽고 민성의 량주가 먼저 술을 부어올렸다. 리제마와 을순은 떨리는 손을 내밀어 청실홍실로 이어진 표주박을 받아들었다.

그들이 각기 받아든 표주박에서 맑은 술이 남실거렸다.

《어서 드시오이다.》

재촉소리에 리제마와 을순은 눈물을 머금고 표주박을 기울였다.

후실을 맞는 풍습대로 한다면 리제마는 사모날개가 둘이 아니라 한개만 있는 망가진 사모를 써야 한다. 재취하는 사내는 날개가 두개 다 있는 온전한 사모를 쓸수 없다.

그런데 민성은 온전하게 날개가 다 있는 사모를 씌워주었다.

자식들의 그 마음에 리제마도 을순이도 감동되였다.

을순을 후실이 아니라 정실로, 어머니로 모시겠다는 자식들의 마음이 기특했다.

달래네 량주, 그 다음은 의봉이네 량주들이 술을 부어올렸다.

리제마는 생전처음으로 술을 많이 받아마셨다. 자식들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되여서 부어주는대로 술을 받아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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