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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민성이와 함께 한옥의 묘소에 초막을 지어놓은 리제마는 아들에게 떠밀려 또다시 집을 나섰다.
달래네 량주도 안변으로 떠나갔다.
홍원에 당도한 리제마는 속이 편치않았다. 그것은 학당일로 해서가 아니였다. 학당일은 그만하면 어려운 시기에도 불구하고 괜찮게 나가고있었다.
함흥감영에서 내려온 《고석배기》 그놈이 학당을 없애버리려고 했지만 학당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리제마에게서 병을 고친 《궁도련님》이 신세갚음으로 묵돈을 《고석배기》에게 찔러주어서인것 같았다.
돈이라면 그림자도 따라갈 《고석배기》인지라 그놈은 묵돈을 받아먹고는 군말없이 함흥으로 가버렸고 새로 온 현감은 홍원에 부임해오자마자 속탈이 났었는데 의봉이 손을 써서 고쳐준 은혜를 입었으니 학당일이라면 돕지는 못해도 훼방은 놓지 않을것이다.
홍원사람들이 쌀이며 소금이며 반찬감들을 모아주어서 학당일은 이전과 다를바 없었다.
이만하면 의봉이 스승이 없는 동안 학당일을 잘 이끌어나갔다고 할수 있었다.
리제마가 속이 좋지 않아하는것은 집일때문이였다.
아버지로서 할 일까지 한생 자식에게 맡겨버린 사람이 동서고금에 몇몇이나 되겠는가. 과연 바깥사람들에겐 좋은이가 될수 있어도 집안사람들에겐 좋은 아버지가 될수 없단 말인가.
리제마는 이런 심중의 아픔을 애써 참으며 제자들에게 우두법을 가르쳐주었다.
우두법을 배운 제자들은 북관땅의 각지로 떠나갔다.
리제마가 의봉이와 함께 읍거리에까지 나가 떠나가는 제자들을 바래워주고 학당골에 들어서는데 을순이 사색이 되여 기다리고있었다.
《무슨 일인가?》
《선생님! 웬 사내들이 다 죽게 된 두사람을 데리고 찾아왔소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행색을 보니 관가를 피해다니는 사람 같소이다.》
《그 사람들이 어데 있나?》
《글방에 있소이다. 제가 밖에 나다니지 말라고 일렀소이다.》
《잘했네.》
리제마는 을순이와 의봉을 뒤에 달고 글방으로 향했다.
글방안에 들어서니 일여덟의 사내들이 굽석 허리굽혀 인사를 차리였다.
리제마는 가벼이 답례를 하고 방 아래목에 죽은듯이 누워있는 병자들에게 다가갔다.
옷은 새옷으로 갈아입혔으나 두 병자가 다 뼈만 남아서 송장같았다.
손가락을 병자들의 코밑에 가져다 대니 숨이 알릴락말락 느껴졌다.
《선생님!》
말없이 리제마를 주시하던 사내들가운데서 그중 나이가 많아보이는 텁석부리가 공손한 몸가짐을 하고 입을 열었다.
《선생님! 사실 소인네들은 한달전에 토산관가를 들이쳤던 농군들이오이다.》
《?》
《관가놈들이 어찌나 못되게 구는지… 참을수가 없어 들이쳤는데… 관군과 싸우다가 적지 않은 친구들이 잘못되고… 이 두 친구도 총에 맞았소이다. 관군에게 쫓겨 황해도지경을 벗어나 북관땅에 들어섰는데 병을 잘 보는 명의님이 홍원에 계신다기에 이렇게 찾아왔소이다.》
《선생님!》 하고 나직이 부르는 의봉의 눈길이 질려있었다.
하긴 그럴수 있다. 관가를 들이친 사람은 《역적》에 해당되니 그런 《죄인》들을 구해준다는것은 섶을 지고 불속에 뛰여드는것이나 마찬가지라 할수 있었다.
틀림없이 이 사람들은 관가의 눈을 피해 토산지경을 멀리 벗어난것이고 지금은 죽기를 마다하고 동료를 살리러 여기를 찾아왔을것이다.
리제마가 무릎을 꿇고 앉아 병자의 옷고름을 푸니 텁석부리가 그일을 거들어주었다.
(?…)
리제마는 몸서리를 쳤다.
병자는 아래배에 총알을 맞았는데 손바닥만큼이나 살이 시꺼멓게 썩어 끔찍하였다.
창상이나 종처로 고생하던 병자들을 수태 고쳐보았어도 총에 맞은 사람은 처음인데다 상처가 너무 심하여 맥이 풀렸다.
다른 병자의 상처를 헤쳐보니 그는 허벅다리를 총에 맞아 그래도 좀 나았다.
의봉이 난감한 기색을 지으며 《선생님!》 하고 불렀다.
리제마는 의봉에게 엄한 눈길을 주었다. 의원으로서 손을 대보지도 않고 물러날수야 없지 않은가.
리제마는 이어 텁석부리를 향하여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자네들은 몸을 숨겼다가 열흘후에 찾아오게!》
《알겠소이다!》
텁석부리네들은 허리를 깊숙이 숙여 절을 차리고 물러갔다.
《의봉이 이 사람! 곧 상처를 헤치겠으니 차비를 해주게.》
《선생님! 아무래도 명이 다된것 같은데…》
《사람이 죽고살고 하는건 하늘에 달려있는것이 아니라 우리 의원들에게 달려있네!》
의봉은 한숨을 쉬며 밖으로 나갔다.
인차 의봉이와 을순이 차비를 해가지고 나타났다.
리제마는 끓여식힌 소금물에 손을 씻은 다음 을순이에게 말했다.
《배를 상한 병자부터 아픔을 덜 느끼게 아편을 먹이라구.》
의봉이 깐깐하게 배를 다친 병자의 상처를 소금물로 닦아냈다.
《이젠 해봅세. 자네들은 병자가 움직이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게.》
리제마는 손에 익은 큰침을 집어들었다.
이 큰침으로 얼마나 많은 종처며 창상을 다스렸던가. 제발이지 이 병자에게도 혜택을 입혀주렴.
리제마는 조심스럽게 총상부위를 《+》자로 쨌다.
큰침을 대기 바쁘게 고름이 콸콸 쏟아져나왔다. 이어 피고름이 흘러나왔다.
을순이 솜으로 피고름을 닦아내고 리제마는 숙련된 솜씨로 상처부위를 더 깊이 헤치고 들어갔다.
죽은듯 하던 병자는 꿈틀거렸지만 워낙 기력이 빠질대로 빠져서 상처를 째는데 지장이 없었다.
밸과 밸사이에서 큰침이 부딪치는 굳은 물건이 있었다. 총알이였다.
리제마는 이를 사려물고 쇠집게로 총알을 집어냈다.
총알을 집어냈을 때 리제마는 환성을 올릴번 하였다.
리제마는 침착하게 소금물로 상처를 씻어내고 오징어뼈가루를 뿌려넣었다. 그 다음 소금물에 끓여낸 목화솜으로 심지를 만들어 박고 그우에 황단고를 바른 두툼한 천을 붙이였다.
《됐어.》
의봉이 리제마의 이마에 돋은 땀을 훔쳐주며 말했다.
《선생님! 이쪽 사람은 소생이 하겠소이다.》
《그래주게.》
두번째 사람의 상처를 처치하는 일이 벌어졌다.
입술을 깨물은 의봉이 병자의 허벅다리에 깊숙이 상처를 째들어갔다.
총알은 없었다. 총알이 뼈를 약간 스치며 다리를 뚫고나간것이다.
의봉은 꼼꼼하게 썩은 살을 베여내고 정성껏 상처를 처치하였다.
《잘했네. 이젠 약을 어떻게 쓰는가에 이 사람들의 목숨이 달려있네. 을순인 삼황탕에 길짱구와 으름덩굴, 삼칠을 더 넣어 달여먹이라구. 보중익기탕도 좋네.》
《예.》
《의봉인 날마다 고름을 빼고 새살을 돋게 하는 황단고를 갈아붙이게.》
《알겠소이다.》
글방을 나선 리제마는 울분을 금치 못했다. 나라를 지키라고 쥐여준 총으로 관군은 자기의 형제들을 쏘아눕히고있다.
언제면 이 나라에 운이 트이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