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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설겆이를 마친 달래와 며느리까지 방에 들어와앉자 방 아래목의 벽에 기대앉았던 리제마는 감고있던 눈을 떴다.

장례를 주관했던 의봉이와 을순이 제자들을 데리고 홍원으로 떠나가서 방에는 민성이와 달래네 량주들뿐이다.

의봉이네 다섯 자식들이 있어서 그렇지 그애들마저 없다면 이 집이 어디 사람사는 집이라고 하겠는가.

지금쯤 의봉의 안해는 아이들을 재우느라 옆방에서 애를 먹고있을것이다.

리제마의 눈길이 민성이에게서 멎었다. 한옥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인 아들이다.

정말 한옥이 민성이를 남겨두고 땅속에 묻혔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뜨락에 나서면 뜨락에서, 방에 들어서면 방에서도 한옥의 모습이 얼른거린다. 소리쳐 부르면 금시 어데선가에서 반겨나올것만 같다.

마을녀인들이 위로하여 하는 말이 민성 어미가 살아서는 고생이 심했지만 눈감아서는 호강을 받았으니 한이 없을거라고 하였다.

하긴 녀인의 상사에 끌끌한 사내들이 모여들고 이웃마을들에서까지 조객들이 찾아와 령구를 내여가는 길이며 무덤곁에 인산인해를 이룬 일은 드물것이다.

더우기 지아비되는 사내가 안해의 상주가 되여서 상여를 따라나간 일도, 지아비의 손으로 하관한 처의 관우에 명정도 놓아주고 흙도 덮어주고 봉분을 한 묘앞에서 절을 한 례도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였다.

달래가 먼저 방안의 무거운 침묵을 깨뜨렸다.

《아버님! 마음 같아선 한 열흘 더 집에 머무르고싶은데… 래일은 안변시집으로 떠날가 하오이다.》

리제마는 맥없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제 어미 상사일로 보름나마 본가집에 묵고있는 달래이니 시집에 두고온 아이들이 걱정될것이다.

김준영이 달래를 흘겨보며 말했다.

《이보우, 무슨 말을 그렇게 하오? 시집핑게 말고 더 묵으면서 집안일을 돕게.》

《됐네. 자네 색시말대로 하게.》

리제마는 준영을 타이르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제 더는 자식들에게 아비가 할 일을 그냥 맡겨만 두고있을수 없다. 늘그막에라도 아비구실을 하여야 저승에 가서 선친들을 뵈올 면목이 있을것이 아닌가.

리제마는 아들 민성을 바라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자고로 부모를 잘 모시는 사람이 나라도 잘 받든다고 하였지만… 사실말이지 부모된 사람은 자식들에게 분부를 내리기 전에 제 할바부터 바로해야 하는거다.》

그 말에 민성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버님!》

《됐다. 난 네가 무슨 말을 하자는지 안다.》

그렇다. 리제마는 아들의 속생각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다.

말없이 아비를 지켜보는 그의 행동을 보면 짐작할수 있다.

민성은 지난날 아버지를 대신하여 자기 할아버지의 묘곁에서 3년간 려묘살이를 한것처럼 이번에도 한옥의 묘를 지키려 할것이다.

하긴 그렇게 하는것이 자식으로서 해야 할 법도이지만 더는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둘수 없다.

이 리제마가 늦긴 했어도 지금부터 집일을 맡아하면서 한옥의 묘도 봐주고 자식들의 뒤바라지를 해야 한다.

내 일이 걱정되여 아직까지 여기를 뜨지 않은 의봉이네 처자들도 그렇고 민성이도 홍원으로 보내야 한다.

홍원에 을순이도 의봉이도 있으니 민성이에게 의술을 더 깊이 다지도록 해줄것이다.

《얘들아, 내 아비로서 이번만은 너희들에게 도리를 지키도록 해달라는거다.》

준영이 깜짝 놀라 부르짖었다.

《장인님! 그 말씀 무슨 뜻이오이까?》

민성이 벌떡 일어나 리제마의 손을 잡고 절절하게 말했다.

《아버님! 아버님의 할바는 저희 자식들을 돌보는 일이 아닌줄 아옵니다. 제자들이 학당골에서 아버님이 오시기를 간절히 바라고있지 않소이까?》

리제마는 할 말을 잃고말았다.

딱히 언제부터인지는 알수 없으나 홍원사람들은 학당이 자리잡은 골안을 학당골이라고 불렀다.

그 학당골이자 후진을 키우는 리제마의 삶의 터였고 래일이 있는 곳이였으며 생의 전부를 맡긴 곳이였다.

민성의 울음에 잠긴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아버님의 손엔 우리 나라 의술의 장래가 맡겨져있소이다. 어머님은 숨을 거두기에 앞서 저에게 아버님을 잘 받들어 4상의술이 꼭 빛을 보도록 해야 한다고 유언하셨소이다.

<무병장생은 만민지복락>임은 어머님의 뜻이기도 하였소이다. 그래서 한생 어머님이 집일을 도맡아 저희들을 키우면서 아버님의 뒤바라지를 하신것이 아니겠소이까.》

리제마는 와락 민성을 부둥켜안았다.

그의 얼굴로 두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리고있었다.

《아버님! 어머님의 려묘살이는 소자가 하겠소이다. 집은 걱정마시고 제자들곁으로 가주소이다. 저도 더욱 의술을 련마하여 반드시 아버님의 뜻을 이어나가겠소이다.》

《얘야, 너야말로… 너야말로…》

리제마는 너무도 감격이 북받쳐 종시 효자라는 칭찬의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저 민성의 잔등을 오래오래 어루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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