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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만에 북관땅에 들어서는 리제마는 집을 가까이 할수록 걸음발이 빨라졌다.
다시는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할수도 있다는 비장한 마음을 안고 떠나갔던 몸이 더 많은 사람들의 병도 고쳐주고 후진들을 키우리라는 새로운 열정을 안고 돌아오니 어찌 걸음발이 빨라지지 않을수 있으랴.
하늘소도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성천강을 건느자 걸음이 빨라졌다. 황필수가 마련해준 하늘소였다. 하늘소잔등에 실려있는 큰 보짐속에는 황필수와 지석영이들이 꾸려준 천필이 들어있다.
지금껏 수없이 집을 나들었지만 언제 한번 손에 물건을 사들고 안해앞에 나선적이 없는 리제마였다.
그말고도 또 있다. 그것은 대단한 보물이다. 다시는 고향사람들이 마마를 겪지 않도록 할수 있는 우두의 비방을 안고 온다.
그 비방을 가져온걸 알면 누구보다도 한옥이 기뻐할것이다. 만시름을 잊고 환히 웃는 안해를 그려보느라니 친지들이 더없이 고마웠다.
한 닷새 아니, 한 보름가량 집에 머무르자.
리제마는 문득 고삐를 당겼다. 하늘소가 멈춰섰다.
점심을 짓느라 집집의 굴뚝들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뿜어오르는 향교마을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비사치기(량쪽에 선을 긋고 가운데 세운 돌을 돌로 맞혀 넘어뜨리는 아이들의 놀이)를 하던 애녀석들이 오구구 모여 이쪽을 신비스레 바라보고있다.
애녀석들은 량반행색의 사람이 하늘소를 끌고 오니 희한한 모양이였다.
리제마의 입가에 웃음이 어려들었다. 비사치기로 열을 올리던 어린시절이 떠올라서였다.
《얘들아, 계속 놀아라. 어서!?》
어느덧 하늘소를 끌고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와?》
애녀석들이 소리를 지르며 하늘소를 끌고가는 리제마의 뒤를 우르르 따랐다.
집앞에서 문득 고삐를 당겨 하늘소를 멈춰세웠다.
이번에는 애녀석들때문에서가 아니였다.
반나마 열려진 사립문안의 뜨락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베감투를 쓴, 분명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였다.
그뿐아니라 집안에서 녀인들의 곡성이 울려나오고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지금은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생일제도 아니고 또 설사 그렇다고 해도 사람들이 모여들어 곡을 하지는 않는다.
리제마는 불길한 생각에 휩싸여 몸을 떨었다.
의봉이며 제자들이 달려나와 쓰러지듯 그의 앞에 엎드렸다.
《선생님! 왜 이제야 오시오이까? 사모님이… 사모님이…》
제마는 정신이 아찔하여 휘청거렸다.
사위 김준영이 그를 부축하며 목메여 말했다.
《장인님! 마음을 크게 가지소이다. 장모님이… 이틀전에 잘못되셨소이다.》
리제마는 뒤통수를 얻어맞은듯 하여 멍청히 서있었다. 한참만에 정신을 차린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럴수 없다. 한옥은 아직 수명을 못살았다.
제마는 두팔을 허우적거리며 집으로 달려들어갔다.
봉당의 헛간쪽에서 향불이 타는지 향연이 풍겨왔다. 거기에 병풍이 쳐있었다.
《아버님!》
머리를 풀어헤친 달래와 베감투바람의 민성이 달려와 량팔에 매달렸다.
리제마는 몸부림을 치며 빈소로 향하였다.
《아버님! 진정하소이다.》
한사코 앞을 가로막으려는 민성을 뿌리치고 빈소로 들어갔다. 빈소가운데 관이 있었다.
리제마는 와락 관뚜껑을 열어제끼고 시신을 덮은 흰 천을 벗기였다.
《아! 무정하오. 무정해. 한옥이!?》
리제마는 두손으로 죽은 한옥의 머리를 껴안았다. 반백의 머리카락, 주름살이 가득한 얼굴…
곱던 얼굴은 어데로 갔느냐.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이 죽은 한옥의 얼굴에 부딪쳐서 주름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버님! 가십시다.》
민성이와 사위가 그의 량팔을 잡아 관에서 떼여냈다.
리제마는 몸부림치며 소리쳤다.
《날 다치지 말아. 아!? 야속하구나. 날 버리고 먼저 가다니?》
제마는 다시 관우에 엎어졌다.
살아생전 단 한번이래도 옷 한벌 지어입으라고 천 한감 사다 주었대도 이처럼 가슴이 아프지는 않을것이다.
한옥이 어떤 귀인인가. 일찌기 젖먹이 어린 자식을 남기고간 어머니를 대신하여 따뜻한 정을 기울여준 은인이다.
늦게나마 지아비의 도리를 지켜보자고 했는데 저승에 훌쩍 가버렸으니…
리제마는 간신히 자기를 다잡고 제상앞에 꿇어엎드렸다.
그리고는 자기 손으로 술병을 세번 기울여 잔에 찰랑찰랑 술을 부었다.
그 다음 향불우에 세바퀴 돌려낸 술잔을 제상우에 올려놓고 목메여 말했다.
《내가 왔소. 내가! 살아서 고생만 시켰는데… 쓴 술이나마 성의로 알고 받아주오.》
리제마는 눈물을 흘리며 세번 절을 하였다.
등뒤에서 울리는 제자들의 흐느낌소리를 들으며 그는 팔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의봉이 리제마의 앞에다 조심히 붓과 회물, 붉은색비단 한폭을 가져다 놓았다.
고인의 관임을 알리는 명정을 쓰라는 그의 뜻을 알아차린 리제마는 붓을 잡았다.
손이 떨렸다. 자꾸 터져나오려는 곡성을 참자니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본관 교하, 한씨의 령구》라고 써야 할 글발이 눈물속에서 가물거렸다.
한옥의 관임을 알리는 명정을 잘 만들어서 병풍에 걸어두어야겠는데…
의봉의 손이 리제마의 붓쥔 손을 조심히 감쌌다.
이어 비단천우에 삐뚤삐뚤하나 정성들여 새기는 하얀 글이 한자두자 새겨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