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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마는 생각밖에 지석영의 집에 머무르면서 귀빈대접을 받게 되였다.
완고한 배아픔에서 벗어났을뿐아니라 소음인의 신장에 든 돌을 뽑아낼수 있는 적백하오관중탕이라는 4상의학의 처방까지 받은 지석영의 사촌형이 못내 기뻐하면서 함께 식사를 하자고 조르기에 리제마는 때이른 점심상에 나앉았다.
그동안 죽 아니면 두부 같은 연한 음식으로 조심스럽게 끼식을 땠다는 병자가 마음놓고 밥을 달게 먹으니 리제마는 기분이 좋아서 수저를 들수 있었다.
점심상을 내여가자 병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님, 하나 묻고싶소이다. 조선의술이 우수한지 아니면 내 동생이 좋아하는 서양의술이 우수한지요?》
리제마는 갑자기, 그것도 언제 한번 생각해보지 못했던 질문에 닥치자 당황하였다.
병자는 상대에게 생각할 틈을 주려는듯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솔직히 전 우리 의술을 믿지 않았소이다. 배아픈 고생을 그것도 한두달도 아니고 해를 넘기도록 하는 병자 하나 고쳐주지 못하는 의술이 무슨 의술이겠소이까. 그래서 서양의술에 밝은 동생에게 병을 보이려고 고향 충주를 떠나 예까지 왔소이다. 그러나 동생은 마마 같은 병에는 귀신인데 내 병엔 영 무맥하지 않겠소이까. 이것을 놓고보면 서양의술이란게 반쪽짜리가 분명하오이다.
오늘은 제 생각이 달라졌소이다. 선생님이 지압 하나만으로도 배아픔을 다스리는걸 보고 우리 의술이 제일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리제마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러고보면 이 사람도 지석영이 못잖은 식자이다. 하긴 책을 몹시 좋아한다는 지씨가문이라니 사물을 대하는 눈도 바를것이다.
《선생님! 사실 제가 말하고저 하는건 우수한 우리 의술에다 서방의술의 좋은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것이옵니다.》
지석영이 사촌형의 말을 이었다.
《무평선생님! 형님생각이 옳다고 보오이다. 진심으로 나라의 진보와 문명을 바란다면 우리의것을 허술히 여기지도 말며 남의 좋은것도 소홀히 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오이다.》
리제마는 지씨형제의 말뜻을 음미해보았다. 지씨형제의 주장은 덮어놓고 남의것을 본딸것이 아니라 우리의 비위에 맞고 우리의 실정에 맞는것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서방의술의 좋은 점을 받아들여야 함을 더 말해 무엇하랴.
리제마는 우두의 비결을 알기에 앞서 지석영의 사람됨을 더 파고들고싶었다.
《송촌! 그댄 어떻게 되여 마마 고칠 생각을 하게 되였소?》
《그거야…》 하던 지석영은 곧 입을 다물었다.
자기 자랑을 하는것이 점직해난 모양이였다.
병자가 그를 대신했다.
《이 사람은 어렸을적부터 책이라면 오금을 못 썼지요. 듣자니 이 사람은 한성으로 이사를 와서 동강(최한기, 1803-1879)선생의 집에 잘 다녔다고 했소이다.》
리제마는 그 한마디에 지석영을 알수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스승을 알면 그 제자도 알수 있는 법이다.
리제마는 최한기를 한번도 만나본적은 없었지만 황도연을 통하여 좀 알고있었다.
《훈민정음》의 창제에도 기여했고 법전 《경국대전》의 집필에도 관여한 최항의 후손이 최한기라고 한다.
최한기는 계몽된 임금과 백성들이 함께 추천하는 공선에 의해 선출된 벼슬아치들이 백성들의 목소리가 담긴 공론에 따라 인정(어진정사)을 베푼다면 얼마든지 부국강병을 이룰수 있다는 리론을 내놓아 유명해진 사람이다.
《동강선생의 집에는 고금동서의 책들이 가득했는데 내 동생에겐 마음대로 보게 했다고 하오이다. 이보게, 동생! 그만큼 운을 떼주었으면 말을 넘겨받을줄도 알아야지.》
병자는 보건대 붙임성도 좋고 교제에도 능란한 사람 같았다.
지석영은 얼굴을 붉히며 말을 넘겨받았다.
《동강선생님이 돌아가시기 몇해전인데… 하루는 선생님이 부른다는것이였소이다. 달려가보니 선생님은 책을 하나 내주시면서 읽어보라는것이 아니겠소이까. 다른 나라에 갔다온 동강선생님의 친구되시는분이 그 나라에서 구해온 서양의술에 대한 의서였소이다.
그 책을 통하여 저는 서양의술을 알게 되였고 마마를 막는 비방도 배우게 되였소이다.
동강선생님은 저에게 책에서처럼 마마를 고쳐보라고 하셨소이다.》
리제마는 감격하였다. 바로 그렇다. 나라와 백성을 아끼는 사람들은 꿈을 꾸어도 책을 하나 보아도 겨레의 고통을 먼저 생각하기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의학의 진보가 이루어지는것이 아니겠는가.
《우두약을 만드는건 어렵지 않소이다. 우두에 걸린 소의 고름을 짜내여 송아지의 살가죽에 상처를 내고 거기에 묻혀주면 며칠지나 송아지도 앓게 되오이다.
우두에 걸린 송아지의 고름을 받아서 사람의 팔에 약간한 상처를 내고 묻혀놓소이다. 이게 다지요.》
리제마는 쑥스러워하는 지석영을 보니 생각되는바가 컸다.
장한 사람일수록 자기가 해놓은 일을 하찮게 여긴다. 나라를 위해서 지석영이 같은 인재가 많아야 한다. 인재가 많은 나라는 흥하기마련이다.
《참, 우두를 놓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소이다. 사람이 우두를 맞으면 며칠 지나서 온몸의 살가죽에 우두맞은 자리에 돋는 꽃비슷한 우두진이 돋을수 있소이다. 그러면 열이 나고 앓게 되오이다. 우두진이 돋게 되는것은 우두맞은 자리가 가렵다고 긁어서 사기가 온몸에 퍼졌기때문이오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우두맞은 자리를 긁지 못하도록 천으로 처매주는것이 좋소이다.》
리제마는 덥석 지석영의 손을 부여잡았다. 고향사람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혜택을 안겨줄수 있게 된것이 기뻐서였고 또 한사람의 벗을 얻은 기쁨에서였다.
《고맙소. 송촌!》
리제마는 낮에 이어 밤깊도록 지석영의 형제들과 흉금을 터놓고 의술에 대해서와 시국형편에 대해서도 많은 말을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