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한몸을 바쳐서라도 백성들을 불러일으키리라 결심했던 리제마는 황도연의 죽음으로 마음을 고쳐먹지 않을수 없었다.
황도연은 리제마를 만난지 며칠 지나 운명하였다.
운명하기에 앞서 그는 황필수와 리제마에게 결의형제를 맺어주었다. 그리고 황필수에게 리제마를 형으로서 잘 도우라는 유언을 남기였다.
리제마는 황도연을 가까운 친지로서가 아니라 스승으로 받드는 상제가 되여 그의 장례를 치르었다.
장례를 마치고 고인의 유물을 정리하다보니 갑신년의 섣달도 다 가고 1885년(을유년)을 맞이하게 되였다.
황필수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켜 리제마에게 각별한 관심을 돌려주었다. 그는 아버지의 저서인 《의종손익》을 참작하여 의서 《방약합편》을 새로 집필하는 바쁜 속에서도 변동하는 시국정세를 알아다 전해주었다.
대부분의 소식들은 리제마의 의분을 끓게 하는것들이였다.
민비일파는 갑신정변의 주모자인 김옥균을 기어코 잡아죽이려고 왜놈들한테 그를 넘겨달라고 졸라대고 벼슬을 하던 개화파의 일가친척들을 모조리 파직시키고도 모자라 설날을 앞두고는 충의계의 계원들을 또 형장에 끌어내였다.
하여간 저희들의 집권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사정없이 처형했다. 그리고 왜나라와 우리 나라의 국익을 손상시키는 침략적인 《한성조약》을 체결한 그들이였다.
황필수는 지석영의 소식도 알아다 주었다.
충주가 고향인 지석영은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어 박식가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가 어떻게 되여 의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몇해전 두살 난 조카애에게 우두를 놓아 마마에 걸리지 않게 하였다.
이를 경험으로 삼은 지석영은 곧 40여명의 아이들에게 우두를 놓았는데 그들도 다 마마에 걸리지 않았다.
확신을 가진 그는 두묘(우두원료약)를 만들어서 경기도 수원사람들에게 우두를 놓아주었고 이어 전라도의 전주와 충청도의 공주에 우두국(우두접종소)을 내오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마마에 걸리지 않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여러 의원들에게 자기의 비방을 배워주었다고 한다.
황필수는 리제마에게 어서 지석영을 만나볼것을 권고하였다.
하여 리제마는 아침을 먹고 지석영의 집을 찾아 떠났다.
지석영의 집대문을 두드리니 키가 구척같은 사내가 맞아주었다.
리제마는 첫눈에 얼굴이 기름하고 코날이 우뚝한 이 사람이 지석영이라고 생각하였다.
지석영의 갓우에 눈가루가 덮여있는것을 보아 뜨락을 거닐던것 같았다.
리제마는 먼저 가볍게 절을 하였다.
《함흥사람 리제마, 송촌선생을 뵙자고 찾아왔소이다.》
지석영은 급히 맞절을 하며 송구해하였다.
《제가 지석영이옵니다. 아침에 황의원댁에서 무평선생님이 오신다는 전갈이 왔소이다.》
리제마를 이끌어 사랑채로 향해가던 지석영이 나직이 말했다.
《무평선생님! 저… 한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소이까?》
《?!》
《다름이 아니라 제 집에 종형 한분이 와계시는데… 무슨 병에 걸렸는지 고생이 말이 아니오이다. 저로서는… 여러 의원들에게 보였는데 병은 점점 더해만 가니 야단났소이다.》
리제마는 은근히 속이 떨렸다. 마마까지 고치는 의원도 손털고 나앉은 병자를 무슨 수로 고쳐낼수 있단 말인가.
(혹시 이 량반이 내 재주를 중떠보자는게 아닌가. 하여간 닥친 일이니 맞다들어보자.)
리제마는 긴장한 마음으로 지석영을 따라 사랑방에 들어갔다.
방 아래목에 얼굴이 창백한 사람이 배를 그러안고 앉아있었다.
병자는 인사를 차리는 리제마를 보자 억지로 웃어보이며 답례를 하였다.
리제마는 병자곁에 앉아 그의 체격이며 용모부터 더듬었다.
마흔댓살 나보이는데 보통키에 몸은 별로 여위지 않았다.
리제마는 병자의 숨결소리에 귀를 강구면서 그의 손목이며 발등에서 맥을 짚어보았다.
병자는 소음인에 속하는데 알만 한 병들이 겹쳐있었다.
별로 이렇다할 기색이 없는 리제마를 지켜보던 지석영이 병자를 대신하여 입을 열었다.
《형님은 대체로 닷새나 사흘에 한번씩 배를 아파하는데… 하루종일 또는 이틀 꼬바기 배를 아파하지요. 약이란 약은 거의다
써보았는데 어디 효험이 있어야지요. 참 딱하오이다.》
리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것이다. 병증을 가려보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 병증에 맞는 처방을 내기는 더 어려운 일이다.
지석영은 무표정한 제마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적취에 든게 옳소이까?》
리제마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배안에 랭이 든것이 옳소이까?》
또 고개를 끄덕이였다.
《간장과 열주머니에도 병이 들었소이까?》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비장과 신장도 약하고 심계(심장신경증)에도 든것이 맞소이까?》
지석영은 매번 묻는 말들에 마치 버릇이 된듯 고개만 끄덕이는 리제마를 보자 뜨아해하였다.
대답을 시원하게 못하는건 자신이 없어서가 아닐가.
리제마는 락심해하는 지석영의 안색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이런 배아픔엔 현호색정도로는 말을 듣지 않을거요.》
지석영은 몹시 놀라워하는 눈길로 제마를 바라보았다.
어떤 의술을 지녔기에 리제마는 단번에 사촌형의 병증을 가려냈을가.
사실 오늘 아침에도 지석영은 이전처럼 고통스러워하는 사촌형의 배아픔을 멈춰보려는 의도에서 배아픔멎이약인 현호색을 썼던것이다.
현호색은 위탈이나 담낭, 취장에 든 병으로 배가 아플 때 쓰이는 특효약이다.
처음 사촌형은 현호색을 쓰자 배아픔이 좀 멎는듯 하더니 소용없다고 하였다.
허나 다른 도리는 없고 하여 의연히 현호색을 그냥 썼다.
그런데 리제마가 그걸 어떻게 짐작해냈을가. 면바로 결점을 찾아내는 사람은 그 결점도 고칠수 있는 법이다.
리제마는 병자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자, 시작해봅시다. 배를 깔고 엎드리시오.》
병자는 시키는대로 고분고분 말을 들었다.
리제마는 병자의 저고리 뒤자락을 우로 걷어올리고 눈짐작으로 허리량쪽의 신유혈을 찾아 두 엄지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렀다.
병자는 아프다고 비명을 질렀다.
이제는 좀 알만 하다.
리제마가 머리를 끄덕이는데 지석영은 지레짐작으로 침통을 꺼내놓았다.
침통을 본 병자는 불에 덴듯 놀라 벌떡 일어나앉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또 침이야? 싹 걷어치워라. 나한텐 침이 안 맞아. 골백번 맞아본 침인데 이번이라고 다르겠느냐?》
리제마는 무안해서 얼굴이 벌개진 지석영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병자의 말이 지당하오. 이 병엔 침이 맞지 않소.》
《거 봐라. 이 어른은 확실히 달라.》
《병자는 마음을 놓아도 되겠소. 자, 다시 돌아누우시오.》
리제마는 병자의 아래배에 있는 기해혈을 눌렀다.
이번에도 병자는 아프다고 비명소리를 냈다.
《자, 일어나앉으시오.》
리제마는 일어나앉은 병자의 왼쪽 신유혈부위를 주먹으로 툭 쳤다.
병자가 아무렇지도 않아하자 이번에는 오른쪽부위를 쳤다.
병자는 몸을 비틀며 신음소리를 냈다. 그러니 오른쪽신장에 병이 들었다.
《자, 이젠 오른쪽허리가 우로 가게 하고 모로 누우시오.》
리제마는 시키는대로 모로 누운 병자에게 바싹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한손의 엄지손가락은 병자의 배꼽옆에 있는 황유혈에, 다른 엄지손가락은 아파하는 오른쪽 신유혈에 대였다.
그 다음 숨을 한번 깊이 들이쉬고는 두엄지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아? 아? 아?》
리제마는 비명을 지르는 병자를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엄지손가락들에 힘을 가했다. 그렇게 하기를 한동안 지나 병자의 몸에서 두손을 뗐다.
《자, 어떻소? 지금도 배가 아프고 잔등쪽이 뻐근하오?》
한동안 꼼짝않던 병자는 몸을 꿈틀대더니 벌떡 일어나앉았다.
그때 리제마는 분명 병자의 배에서 꾸르륵? 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이까? 꿈인지 생신지 정말 아프지 않소이다.》
지석영은 리제마의 의술에 감탄을 터치였다.
《아, 해묵은 병을 손놀림 한번으로 고치다니…》
리제마는 소리없는 웃음을 지었다.
《이 병자의 경우엔 손을 달리 써야 하오. 병자는 자꾸 배를 아파하는데 과연 어느 장기에 골병이 들어서 배를 아파하는가? 이 병자는 위나 열주머니, 밸에 병이 있어서보다 신장에 든 돌때문에 배를 아파하오.》
리제마는 고개를 기웃거리는 지석영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신장에 돌이 든 병자의 태반은 배를 참을수 없이 아파하는데 너무 아파서 기절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배아픔은 때없이 일어나고 피오줌도 누며 오줌을 눌 때 아픔을 느낀다. 그래서 의원들은 그런 병세를 보고 신장에 돌이 들어있음을 간파한다.
그러나 이 병자는 사정이 다르다. 정말 보기 드문 병증이였다. 배는 참을만 한 정도로 둔하게 아프나 하루나 이틀이고 길게 아파하며 오줌을 눌 때도 별다른 증상을 찾아보기 힘들것이다.
《신장에 생기는 돌은 사람의 체질과 음식물에 따라서 그 본태가 달라지기때문에 돌의 모양새라든가 크기도 각이하오.
그대 형님은 몹시 작고 둥근 모양의 돌들이 신장에 배겨있을것이요. 모름지기 어려서부터 허리를 둔하게 아파했고 나이들어서는 더 아파했을거요.》
병자는 탄복을 금치 못하였다.
《그걸 다 어떻게… 사실 어려서 아플 때는 래일은 병이 꼭 낫겠지 하는 소망에서 그닥 아픈줄을 몰랐는데 지금은 반대로 몸이 아플 때마다 래일은 병이 더 심해지겠구나 하는 실망에서 점점 더 아프기만 하오이다.》
리제마는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비방을 알고싶어하는 지석영을 생각하여 계속 말을 이었다.
《신장에 든 작은 돌때문에 처음엔 허리를 아파했고 그 다음은 그것이 화근이 되여 밸에 병이 들고 나중에는 위탈까지 생기였소. 더 자세하게 말한다면 신장에 든 돌로 하여 신장이 제구실을 못하게 되니 밸이 제대로 움직일수 없게 되고 그러면 위도 제대로 움직일수 없게 되오. 그래서 먹은 음식물이 아래로 잘 내려가지 못하는 까닭에 위가 부르트니 온 배가 아파나게 된것이요.
그런데 배가 아프다니까 적취만을 생각하고 현호색이 든 약처방을 내리였소. 요진통을 놓쳤거던.》
《선생님!》
리제마는 병자의 손을 어루만지였다.
《그댄 너무 근심마오. 그대 병을 고치려면 신장에 든 잔돌을 말끔히 뽑아내야 하오.》
지석영은 흥분해서 재촉하였다.
《무평선생님! 어서 처방을 내려주소이다.》
《그럽시다. 이제 또 배아픔이 일어날거요. 아침저녁으로 발바닥에 있는 용천혈과 그 아래부위를 아플 정도로 눌러주시오. 한번에 담배 서너대 태울 시간만큼 한해고 이태고 다 나을 때까지 꾸준히 해야 하오. 바로 그 부위에 신장에 든 돌을 뽑아내는 신기한 기운이 들어있소.
배아픔이 올 때마다 신유혈과 황유혈을 엄지손가락으로 세게 눌러주시오.
약으로는…》
리제마는 붓을 들어 은조롱, 붉은 조롱, 량강, 마른생강 등이 들어간 적백하오관중탕을 써주었다.
《이 약을 하루 두첩 쓰되 한번에 물 세홉에 달여 발바닥을 누른 다음 마시도록 하오. 이렇게 하기를 한 대여섯달 지나면 반드시 효험을 볼것이요. 어참, 한가지 놓칠번 했군. 병자는 몸도 좀 놀려야 하오.》
병자는 기쁨에 겨워 응답하였다.
《아, 일을 하라는것이지요? 알겠소이다. 일을 하겠소이다.》
《그럼 됐소. 허허허?》
리제마는 또 한사람의 병을 고쳐주었다는 생각에서 기분이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