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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에 올라온 리제마는 황도연부터 찾아갔다. 한성에 남아있는 유일한 친지를 뵙고싶어서였고 이모저모로 조정일에 밝은 그한테서 시국형편을 알아야 했기때문이였다.

시국형편을 환히 알아야 앞으로 할바를 결심할수 있었다.

리제마는 황도연의 집대문을 두드렸다.

인차 대문이 열리고 황도연의 늙은 안해가 나와 맞아주었다.

《사모님! 그동안 무고하셨소이까?》

《아니, 무평선생이 아닌가? 아이고 왜 인제야 오셨수. 왜?!》

(?…)

옷고름을 눈에 가져가는 황도연의 늙은 안해를 보자 리제마는 더럭 겁이 났다.

혹시 혜암선생에게 무슨 불상사가 생긴것이 아닌가.

《령감의 병을 고칠수 있는 사람은 8도강산에서 동무선생밖에 없는데…》

리제마는 손맥이 탁 풀렸다. 그러니 혜암선생이 잘못된게 맞구나.

《왜 그러구 섰나? 어서 들어오지 않구.》

《사모님!》

리제마는 대문앞에 선채 움직일수 없었다. 몸이 망두석처럼 굳어진채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무평선생이 오셨으니 이젠 령감이 살아났네, 살아났어.》

그 소리에 사랑문이 열리고 키큰 사내가 마루로 나왔다.

황도연의 아들 황필수였다.

《무평선생!》

《황선생!》

리제마는 황필수에게 이끌려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아래목에 포단을 깔고 뼈만 남은 황도연이 누워있었다.

《혜암선생님!》

기척없이 누워있던 황도연이 움쭉거렸다.

《아버님! 무평선생이 그 먼 함흥에서 아버님을 찾아왔소이다. 아버님!》

황필수의 울먹이는 소리에 황도연이 가늘게 눈을 떴다.

리제마는 맥을 보려고 황도연의 손목을 가볍게 잡아쥐였다. 싸늘하게 식은 손이였다.

《무평, 무평이 왔구만. 보고싶었네.》

리제마는 영채를 잃지 않은 황도연의 눈을 보자 숨이 좀 나갔다.

《무평! 난 몸이 아파서가 아니라… 마음이… 마음이 아파 병에 걸린거네.》

《혜암선생님!》

《아, 김옥균이네가 그렇게 쓰러지다니. 분하구만, 분해.》

《무평! 어떤 사람들은 김옥균이 패한것은… 개화파조정이 자리잡은 창덕궁을 지켜주기로 했던 왜놈들이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차버리고 달아난데도 있지만 난 그렇게 생각지 않네.》

리제마는 정신을 가다듬고 황도연의 가늘어지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김옥균은 때를 잘못 만난거네. 개화로서 조선을 강국의 지위에 올려놓으려는 그의 뜻을 받아주고 그 뜻을 펼치도록 이끌어주려는 세상이 아니였거던. 임금이 약하고 암둔하여서 조정은커녕 민비라는 내인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세상이니 김옥균이 어떻게 뜻을 이룰수 있겠나.》

리제마의 가슴은 방망이질을 하였다.

지금껏 숱한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임금을 내놓고 비난한이는 없었다. 임금을 욕하는 그 한마디면 그가 누구든 대역부도죄에 걸려 온 집안이 멸족당할수도 있다.

《무평은 벼슬까지 지내보았으니 나보다 더 잘 알걸세.》

리제마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무평! 내 말을 잘 들어주게. 자넨 몸을 아껴야겠네.》

리제마는 그 말에 숨이 막히는듯 했다.

황도연이 남의 마음속까지 헤쳐본것이 아닌가.

《무평! 난 다시 태여날수만 있다면 결단코 후진을 키우는 일에 전심하겠네. 지금에 와서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 의술을 다해 명의라는 공명은 날렸으나 내 재주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입힐수 있도록 제자들을 많이 두지 못했다는것일세. 겨우 아들과 두세명의 제자가 고작이니…

그러고보면 자넨 눈이 바로 배겼어. 제발 부탁하건대 자넨 조정일에 뛰여들지 말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거든. 무능한 임금의 치하에선 김옥균의 신세밖에 안돼. 그래서 자넨 몸을 아끼라는걸세. 내 말을 들어주지?》

황도연은 다짐을 받아낼듯 눈을 크게 떴다.

리제마는 대답대신 눈물이 앞을 가리웠다. 생이 진해가는 마지막에조차 남을 위해 진심을 바치는 이런 귀인의 가르침을 소홀히 함은 사람의 할바가 아니다.

《혜암선생님!》

《허? 이 정신 봤나. 무평! 반가운 소식이 있네. 송촌 지석영이라고 서른전 사내인데… 그 사람이 마마(천연두)를 고치는 묘방을 찾아냈다네.》

리제마는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얼굴에 보기 싫은 흉터를 남겨놓거나 목숨까지도 앗아가는 마마는 옛적부터 사람의 재주로는 고칠수 없는 무서운 돌림병으로 알고있다.

《무평! 송촌을 만나보게. 꼭 도움이 될걸세. 오늘날 학문은 말할것도 없고 조정의 쇄신을 위해서도 실학을 중시하는 젊은이들에게 기대를 걸어야 하네.》

《혜암선생님! 선생님의 가르침을 꼭 명심하겠소이다.》

황도연의 까칠하고 창백한 얼굴에 가는 웃음발이 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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