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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언간 4년세월이 흘러 겨울이 닥쳐들었다.

저녁부터 내리던 함박눈은 밤이 깊어질수록 더욱 세차게 펑펑 쏟아지고있었다. 근래에 보기 드문 폭설이였다.

리제마는 지붕에도 뜨락에도 지어는 방문턱앞의 토방까지 함박눈속에 묻히는줄도 모르고 붓을 달리고있었다.

그의 손에 쥐여진 붓대가 참지에 가닿을 때마다 활달한 글체가 꿈틀거리면서 박력있게 피여났다.

《태양인에게 알맞는 약재를 다섯가지 찾아냈다. 오갈피, 모과, 띠뿌리, 다래, 룡담.

태음인에게 쓸수 있는 약재는 58개 찾아냈다. 록용, 오미자, 맥문동, 마, 도라지, 우황, 석창포…

소음인에게는 59개를 찾아냈다. 인삼, 황기, 오두, 삽주, 육계, 당귀, 대추…

소양인에게 맞는 약재는 69개 찾아냈다. 치자, 구기자, 산수유, 솔풍령, 결명씨, 산딸기…》

줄기차게 달리던 붓이 뚝 멈춰섰다.

리제마는 깊은 생각에 잠기였다.

먼저 자기가 키워낸 학도들을 생각하였다. 그는 지난 네해사이에 네번씩이나 길러내여 북관땅의 각지로 떠나보낸 학도들을 한명한명 그려보았다. 이어 한옥이와 자식들을 그려보았다.

그사이 달래도 민성이도 혼례를 하였다. 을순이 나서서 첫번째 학급의 접장을 하였던 안변총각 김준영을 달래에게 중매를 서주었다.

그는 또 홍원에서 부인병을 치료하면서 낯을 익힌 어느 집의 마음씨 곱고 인물도 고운 딸을 민성이가 맞아들이도록 해주었다.

지내볼수록 을순이의 아름다운 마음에 감동을 금할수 없다. 여러번이나 한옥을 여기로 데려오려고 함흥걸음을 한 을순이였다.

홍원에서 선참으로 의술을 배운 민성은 장가들자 홀로 사는 한옥을 모시려 집으로 돌아갔다.

학당일에 짐이 되지 않겠다며 굳이 집을 떠나지 않는 한옥의 마음을 그 누가 움직일수 있으랴.

그동안 홍원에서의 여러해란 세월이 짧아보였다. 방금 참지우에 써넣은 4상인에게 맞는 근 이백가지의 약재를 밝혀낸데는 학도들의 공적도 적지 않다. 머지않아 제자들과 함께 이 땅에서 나는 수백가지의 약재들을 다 4상인별로 구별해낼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자기의 체질에 맞는 약재들을 골라써서 병을 더 쉽게 고칠수 있다.

리제마는 다시 붓을 들었다.

한편, 깊은 밤 리제마와 이웃한 곁방에서는 을순이 그린듯이 앉아있었다.

그의 생각은 줄곧 리제마에게 가있었다.

리제마를 가까이 한지도 여러해, 그 여러해동안 바란것이 있었다면 단 하나 그를 도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는것이였다.

그런데 요즘에는 웬일인지 자주 불안한 생각이 갈마들었다.

한옥은 함흥을 처음 찾은 을순이를 따로 만나 이렇게 말했었다.

《난 거기를 친동기보다 더 가깝게 여기고싶어요. 거기서 있기에 민성이 아버지가 어데 가도 마음을 놓아요. 앞으로 민성이 아버지를 더 잘 도와줘요.》

《사모님!》

한옥은 다정하게 을순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난 정말이지 객지에서 지금껏 민성이 아버지를 가까이에서 돌봐드린 을순이에게 절을 하고싶어요.》

그날 을순은 리제마라는 인간을 오늘로 이르게 도와준 한 녀인의 참모습을 보았다. 리제마를 자기의 남편만이 아니라 백성들을 위한 큰사람으로 내세우려는 그 마음을 보았다.

얼마나 훌륭한 녀인인가. 스승도 훌륭하지만 부인도 훌륭했다.

을순은 벽에 기대앉은채로 스르시 잠에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을순은 꿈나라로 서서히 실려갔다.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쳤다. 천지를 일격에 태워버릴듯 거대한 번개불이 땅을 때렸다. 이어 천둥소리 요란한데 그속에서 한 사나이가 비틀걸음으로 어데론가 가고있었다.

쓰러질듯 넘어질듯 위태롭게 비바람을 맞받아 뚫고가는 사나이는 다름아닌 리제마였다.

선생님이 어데로 가는것일가. 그가 갑자기 멈춰섰다.

어느 골안에서 쏟아져내리는지 집채만 한 바위돌까지 굴러내리면서 사품치는 강물이 그의 앞을 가로막아서였다.

그런데 강물이 시뻘겋다. 쇠물이 녹아내린것 같았다. 리제마가 시뻘건 강물을 건너갈수 없어 두팔을 허우적거리는데 강물의 맞은켠에서 소복차림을 한 녀인이 두손을 입가에 모아대고 이쪽을 향해 소리쳐 부른다.

《선생님!?》

그 부름소리를 가려들었는지 리제마도 두손을 입에 가져다대고 웨쳐댔다.

《날 기다리지 말고 들어가오!?》

《선생님!? 건너오지 마세요.?》

시뻘건 강물은 더 사나운 파도를 일으키며 범람했다.

그런데도 두사람은 그냥 마주서서 애타게 소리쳤다.

녀인이 풍덩- 강물에 뛰여들었다. 시뻘건 강물이 단숨에 그를 삼켜버렸다.

《이보라구! 어데 있소??》 하더니 리제마도 첨벙 강물에 뛰여든다.

《악!?》

을순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치였다.

(?! …)

꿈이였다. 꿈치고는 무서운 흉몽이였다.

을순은 너무도 무섭고 끔찍한 꿈이여서 한동안 얼굴이 창백해있었다.

무슨 꿈이 이렇담.

다시 생각해보니 왜서인지 자꾸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강가에 나와 리제마에게 건너오지 말라고 소리치던 녀인은 누구일가?

생각해볼수록 그 녀인은 바로 을순이, 자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리제마가 을순이 자기때문에 불상사를 당한다는것이 아닐가.

을순은 간담이 서늘해져 몸을 떨었다. 아,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꿈이 꼭 맞아떨어진다고는 할수 없어도 그렇다고 흉몽까지 무심히 스쳐버릴수야 없지 않은가.

을순이는 날이 밝는줄도 모르고 불안속에서 가슴을 조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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