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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리제마가 학도들에게 4상의학을 배워주는 첫날이다.
아직은 몇사람만이 알고있는 4상의학을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한다고 생각해서인지 리제마는 첫 수업때보다 가슴이 더 울렁거렸다.
이미 의봉이 4상의학을 배우게 된다고 일러주어서 학도들은 숨소리가 날세라 긴장해서 쳐다보는데 그들의 번쩍이는 눈길을 당하자 리제마는 그만 하려던 말마디들이 헝클어져 두서없이 입을 열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래서 맨 마지막에 말하려고 했던 4상의학의 발견과정을 먼저 펼쳐놓고말았다.
《4상의학에서는 무엇보다 먼저 이 의술의 골자라고 할수 있는 사람의 체질 즉 4상인을 옳게 가려볼줄 알아야 하오.
그럼 4상인을 어떻게 가려낼수 있는가?》
리제마는 오랜 세월에 터득해낸 비결을 아낌없이 터놓았다.
4상인을 바로 가려보려면 사람의 체격과 용모를 잘 살펴보고 그다음은 그 사람의 성격과 심리를 파악해내야 하며 이어 살갗은 어떠한가, 맥은 또 어떠한가, 대소변과 땀의 상태는 또 어떠하며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줄도 알아내야 한다. 그 다음 몇가지 약재를 달여먹이면서 몸에서 어떤 변화가 생기는가도 관찰해야 한다.
민성이와 학도들은 리제마의 말을 한마디도 놓칠세라 귀담아들으면서 부지런히 종이말이에 붓을 달린다.
《내가 많은 사람들을 대상해보면서 알아본데 의하면… 백사람가운데서 4상인별로 차지하는 몫은 다음과 같았소. 제일 많은 사람은 태음인으로서 쉰명정도이고 제일 적은 사람은 태양인으로서 천에 한명이거나 만에 서너명정도였소. 소양인은 서른명정도로서 두번째로 많았고 그 다음으로 소음인은 스무명정도였소. …》
리제마는 어떻게 오전수업을 마치고 글방을 나섰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점심을 먹고 나앉는데 의봉이 찾아와 학도들이 오전에 배운 4상의학을 다시한번 더 되풀이해주었으면 한다는 의견을 전해왔다.
그런 부탁이야 열번이란들 마다할소냐.
리제마는 오후수업은 시원한 느티나무그늘에서 열었다.
《학도들! 4상인을 옳게 가려보기는 결코 쉽지 않소.
적과의 싸움에서 자기를 잘 아나 적을 모르면 패할수도 있소. 적도 자기도 다 잘 알면 열번 싸워 열번 다 이길수 있소. 허나 적아를 다 잘 안다는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요. 4상인도 그 못지 않소. 손쉽게 알아볼수 있는 체격이나 용모만을 가지고 너는 소양인이다, 소음인이다 해서는 안되오. 반드시 여러가지 특질들을 다 알아본 다음에 열번 재고 가위질을 하듯이 옳은 판단을 내려야 하오.
례를 들어 키가 좀 크고 하체가 실한 점만 보면서 그 사람이 태음인이라고 단정해서는 안된다는것이요. 그렇게 생겼다고 해도 성격이 온순하고 조용하며 소심한데다가 더운 음식을 좋아하고 인삼이나 단너삼이 맞으면 소음인으로 보아야 하오. 이와 같이 여러 특질들을 잘 따져보고 더 많은 특질에 맞으면 그에 해당되는 체질로 보아야 하오. 그럼 오늘부터 사흘간 시간을 주겠소. 학도들은 오늘 배운것을 가지고 서로 문답하면서 자기 체질이 어디에 속하는가를 밝혀내야겠소.》
학도들은 사기가 나서 흩어져갔다.
사흘이 지나서 리제마는 약속한대로 학도들의 앞에 나타났다.
학도들은 글방에 앉은자리 순서별로 차례로 한명씩 일어나서 자기의 체격이며 용모, 살갗형태, 성격과 심리, 맥, 좋아하는 음식, 대소변과 땀상태 등이 여사여사하기때문에 어느 체질에 속한다고 대답하였다.
대체로 그들의 판단이 옳았는데 리제마는 가끔 잘못된 견해를 바로잡아주었다.
학도들의 대답이 끝나자 리제마는 문답으로 넘어갔다.
리제마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의 특질들을 말해준 다음 역시 앉은자리 순서별로 돌아가면서 한명씩 지명하여 어떤 체질인가를 대답하게 하였다.
모든 학도들이 비교적 만족한 대답을 하였다. 리제마는 며칠사이에 4상인을 가려볼수 있게 된 학도들이 대견하여 기분이 좋아졌다.
문답이야말로 학도들의 머리를 틔여주는데서 제일 좋은 비결 같았다.
학도들은 열이 나서 의봉이는 소양인이며 을순이는 태음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옳은가고 리제마에게 물었다.
《정확하오.》
리제마의 칭찬에 사기가 난 학도들은 그를 소양인이라고 하였다.
리제마는 학도들의 판단에 놀라움을 표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리제마 자기를 알아맞추기는 헐치 않다고 여겨서였다.
일찌기 《포태선생》의 슬하에서 무술을 닦느라 다리힘이 매우 세졌기때문에 하체가 결코 상체보다 허해보이지 않을뿐더러 급한 성격도 마음먹고 달라붙어 고친 리제마였다.
《다들 좋소. 그만하면 4상인에 대한 표상이 바로섰다고 할수 있소.
허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오. 반드시 다음과 같은 약재들을 써보아야 하오.》
리제마는 청나라에서 사람들을 치료하는 나날 다시한번 확증한 비방을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태양인에게 계지를 쓰면 울기가 오르고 또 파두를 먹이면 배 아파하면서 설사를 하게 되오.
태음인에게 감수를 먹이면 심통이 생기고 황경피를 쓰면 오줌이 잘 나가지 않으며 령사를 쓰면 손발이 차지게 되오. 또 시호를 먹이면 땀이 많이 나오.
소양인은 주염나무열매나 칡뿌리를 쓰면 메스꺼워하고 부자를 쓰면 열독이 오르면서 오한이 나오. 또한 인삼을 먹이면 갈증을 느끼게 되오.
소음인에게 대황을 쓰면 갈증도 나고 땀이 돋으면서 오한이 난다오. 사군자를 먹으면 트림이 나고 생소고기를 먹이면 설사나 리질이 생기게 되오. 경분을 쓰면 뼈마디아픔을 느끼고 령사를 먹으면 손발이 차지오. 또한 황련을 먹이면 머리를 아파하오.》
학도들은 숨을 죽이고 리제마의 말을 귀담아듣고있었다.
리제마는 여유를 두고 학도들을 둘러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는 4상인의 매개 체질에 따라서 알맞는 약들은 어떤것이며 그 체질의 병증에 해당되는 약처방들은 무엇인가? 바로 이걸 배워주겠소. 먼저 태음인의 여러가지 병에 잘 맞는 태음조위탕이란 약처방을 지어내던 일을 말해주겠소.》
리제마는 의주에서 《의주기인》을 만나던 때를 돌이켜보았다.
리제마는 깊은 추억을 더듬으며 《의주기인》에게서 사람의 체질에 맞는 음식처방을 넘겨받던 일을 학도들에게 말해주었다.
《<의주기인>에게서 병자에 따르는 음식처방을 배우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난 그의 집안이 어떤 리치로 그런 비방을 만들었는지 알게 되였소.
바로 그렇소. <의주기인>네는 소음인처럼 비위가 허하고 랭성체질인 사람들에게는 비위를 보하고 랭을 막는 리치에서 소화되기 쉽고 더우며 달고 향기로운 음식들로 처방을 만들었던거요.
그런가 하면 비위에 열이 많은 체질인 소양인 같은 사람들에게는 위열을 내리우고 신을 보하는 찬 음식, 남새, 물고기와 음을 보태주는 음식들로 밥상을 차려냈소.
태음인부류의 사람들은 체격이 비교적 크고 위가 실하여 식성이 좋고 잘 먹는 체질이여서 그들에게는 서늘하고 기름진 음식을 생각해냈던거요.
태양인같이 열성이 센 체질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열을 빼고 음을 보하는 리치에서 생것과 서늘한 음식, 싱겁고 연한 음식을 위주로 낸것이였소.
<의주기인>이 음식처방을 쓴것처럼 그 리치를 약처방에 받아들이면 어떨가, 그렇게 생각하니 승산이 있어보이더란 말이요.
그래서 난 사람들중에서 제일 많은 태음인의 약처방부터 먼저 찾아보기로 하였소.
집에 들어서자 나는 태음인에게 맞는 약처방을 짓는 일에 달라붙었소. 태음인은 주로 페허한증에 걸리기 쉽소. 그러니 페에 든 병을 고치는 약을 만드는 일이 선차였소.
페를 보하고 페병을 낫게 하는 약으로는 맥문동, 도라지, 마황, 석창포, 오미자, 무우씨가 맞춤하오. 여기에 태음인의 위기를 돋구어 소화가 잘되게 하는 율무쌀과 밤을 보태면 태음인의 페허한증에 좋은 약이 될것 같아 이 약재들로 약처방을 만들었소.
즉시 이 약을 만들어 태음인병자들에게 써보았소. 그렇게 하기를 한해만에 그 약처방이 태음인들의 해소(기침)며 페옹(페농양), 심계(심부전), 심비(심장판막증), 위완통(급성위염 및 만성위염), 설사, 황달, 복통(배아픔) 등 여러가지 병에 특효가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소.
하여 난 그 약처방을 태음인에게 으뜸가는 명약처방이라는 뜻에서 태음조위탕이라고 이름을 지었소.》
학도들은 환성을 올렸다. 그들속에 끼인 민성도 감격으로 하여 눈물을 흘렸다. 리제마는 학도들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계속 하였다.
《태음조위탕을 찾아낸 기쁨을 안고 그런 방법으로 계속 애써 또 한해만에 소음인에게 특효약처방인 팔물군자탕을 찾아냈소.
그러나 유감인것은 아직까지 숱한 품을 들였지만 4상인에게 맞는 약재를 다 밝혀내지 못하였고 찾아낸 약처방도 몇 안된다는 사정이요.》
리제마가 지금까지 밝혀낸 4상인에 따르는 약재들과 약처방을 공개하고났는데 의봉이 조심히 다가와 귀띔하는것이였다.
《선생님! <궁도련님>이란 사람이 병을 보이겠다고 찾아왔소이다.》
리제마는 의아하여 의봉을 쳐다보았다.
정 위급한 병자가 아니면 리제마를 찾지 않게 되여있었다.
의봉은 난감한 기색을 짓고 변명조로 말하였다.
《그 사람이 꼭 선생님께만 병을 보이겠다고 해서…》
《나에게?! …》
하여간 흥미있는 일이다.
《그런데 <궁도련님>이란 누구요?》
의봉이 대꾸했다.
《<홍원왕처중>의 아들을 가리켜 <궁도련님>이라고 하오이다.》
리제마는 생각났다.
《홍원왕처중》이라면 《박부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왕처중은 백년전에 만석군으로 소문났던 호남의 일등부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때 《호남의 왕씨》라면 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홍원사람들은 홍원현에서 제일가는 갑부인 《박부자》를 가리켜 《홍원왕처중》이라고 불렀다.
《이리로 데려오게.》
좀 있어 의봉이 두사람이 메는 람여를 뒤에 달고 나타났다.
걸상처럼 생긴 덮개없는 람여는 주로 품계가 낮은 관리들이 타는 가마였다.
《홍원왕처중》의 아들이면 그런 람여는 탈만 했다.
람여가 멎어서자 유학자들이 즐겨입는 심의를 차려입은 《궁도련님》이 람여에서 내렸다.
의봉이 뭐라고 말하자 《궁도련님》이 좀 빨리 걸음을 옮겨오더니 깊숙이 허리를 굽히였다.
《선생님! 선생님께 문안드리오이다.》
《여기 와 앉으소.》
리제마는 멍석우의 빈자리를 가리켰다.
《황송하오이다.》
보매 30살쯤 나보이는 《궁도련님》은 리제마를 몹시 어려워하는 눈치였다.
문무를 겸비하여 무과에도 급제하고 고을원도 지낸데다 명의로 알려진 리제마이니 그럴것이다.
《선생님! 실은 현감어른이 선생님을 찾아가보라기에…》
《현감이?》
《예, 소인의 병은 선생님만이 고칠수 있다고 하셨소이다.》
리제마는 송구스러워하는 《궁도련님》의 얼굴을 눈여겨보면서 그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어보았다.
《학도들! 우릴 찾아온 병자를 보고 병자가 어떤 체질이며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알아내야겠소.》
《궁도련님》의 얼굴이 수수떡처럼 벌개졌다.
《허? 병을 보이러 온 병자가 뭘 부끄러워하오. 여기선 이런 일이 례상사요. 그러니 가만히 앉아서 학도들의 청을 들어줘야겠소.》
《궁도련님》의 얼굴이 좀 밝아졌다.
학도들은 너도나도 그의 맥도 짚어보고 혀를 내밀라고 하여 들여다도 보고 이것저것 캐묻기도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리제마는 《궁도련님》의 병을 고칠 처방을 생각해냈다.
《선생님! 병자는 태음인이라 할수 있소이다.》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학도들의 소리에 리제마는 미소를 지었다.
《병자는 적취에 들었소이다.》
민성이도 면바로 맞혔다. 《궁도련님》의 입둘레가 누르끼레한것만 보고서도 알수 있다.
《열주머니에도 병이 들었소이다.》
그것도 옳게 보았다. 금방 《궁도련님》은 오른쪽가슴 아래부위가 둔하게 아프다고 호소하였다. 그리고 혀바닥에는 흰 이끼가 끼여있었다.
《신장에도 병이 들었소이다.》
그 말도 틀리지 않는다. 《궁도련님》은 허리부위에 둔한 아픔이 있고 가끔 오줌이 잘 나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래배가 불어나는듯 하면서 아프다고 하였다. 병의 근원은 위탈이였다.
리제마는 사색이 되여있는 《궁도련님》에게 말했다.
《내 보기엔 공자님이 오래동안 진귀한 약을 쓴것 같은데.》
《그걸 다 어떻게? 그… 그렇소이다. 소인은 원래부터 몸이 허약하여 아이적부터 늘 보약을 써왔소이다. 그래도 위탈이 낫지 않아 아버님은 청나라에도 줄을 놓아 약을 지어왔는데… 그 약을 먹고있지만 뭐 별루 이렇다할 효험이 없기에…》
리제마는 탄식을 금할수 없었다. 병은 사람을 못 잡아도 약은 사람을 잡는다. 산삼이나 록용같이 아무리 진귀한 약재라도 망탕 쓰면 멀쩡한 사람을 망칠수 있다.
《선생님!》
리제마의 그늘진 얼굴을 《궁도련님》이 가슴을 조이며 쳐다보고있었다.
리제마는 그의 심중이 리해되였다.
《공자님은 유생이니 물론 <사기렬전>을 읽어보았겠소?》
《예.》
《편작의 렬전도?》
《예.》
《그렇다면 편작이 제나라에 가서 환공을 네번째로 만나본 다음 도망치기에 앞서 그가 보낸 신하를 만나서 한 말이 생각날
거요.》
잠시 생각을 더듬던 《궁도련님》의 얼굴이 분가루를 발라놓은듯 하얗게 질렸다.
《아니, 그… 그럼 소인 병에는 수명을 맡은 귀… 귀신일지라도 어쩔수가 어… 없다는것이오이까?》
민성이와 학도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궁도련님》과 그를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는 리제마를 번갈아 보며 손에 땀을 쥐였다.
《편작의 말대로 한다면 공자님의 병은 수명을 맡은 귀신일지라도 어쩔수 없게 병이 깊이 들었소.》
《아이쿠, 선생님-》
《궁도련님》은 멍석우에 머리를 조아리며 애원하였다.
《불쌍한 인생을 가엾게 여기시여 살려주사이다.》
리제마는 짐짓 엄한 어조로 대꾸했다.
《편작이 할수 없는걸 나라고 할수 있겠소?》
《선생님! 아이구, 죽고싶지 않소이다. 살려주시면 은혜를 잊지 않겠사옵니다.》
리제마는 눈물을 머금고 애원하는 《궁도련님》을 굽어보며 말했다.
《편작을 자랑하는 나라에서라면 공자님은 얼마 살지 못할거요. 그러나 다행히도 여긴 조선이요. 공자님은 내가 하라는대로 할수 있겠소?》
《궁도련님》은 급히 허리를 일으키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눈에 생의 의욕이 이글거렸다.
《선생님! 뭐든 다… 다하겠소이다.》
《그렇다면 좋소. 공자님은 몇살이요?》
《서른한살이오이다.》
《궁도련님》의 하얀 작은 손과 값비싼 갖신속에 들어있는 발이 그리고 《궁도련님》이라는 기이한 별명이 그의 지나온 생애를 말해주고있었다.
《공자님은 잘 듣소. 병을 일으키는 사기는 바람과 랭기, 더위와 습기를 타고 몸안으로 침습하는데 그것이 골수에 이르면 장사일지라도 견디지 못하오. 그래서 병엔 장사가 없다는것이요. 그렇다고 병을 고칠수 없다는건 아니고.
공자님은 오래동안 손발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팔과 다리로 통하던 기혈이 다 막혀버렸소. 그래서 위탈에 들게 된것이요. 그러니 팔과 다리로 기혈이 다시 통할수 있게 해야 병을 고칠수 있소. 그런데 그렇게 하는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요.》
《궁도련님》의 눈에서 불꽃같은것이 튕기였다.
《선생님! 물과 불속이란들 마다하지 않겠소이다.》
리제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멀리 야산등성이아래 가을한 강냉이밭이 보였다. 그루터기들이 점처럼 촘촘히 박혀있다.
리제마는 손으로 강냉이밭을 가리켰다.
《저기가 아마 공자님의 집근처일거요. 매일 해뜰무렵에 밭에 나가서 강냉이그루터기를 쉰포기씩 뽑되 보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해야겠소.》
《궁도련님》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제가 강냉이그루터기를 뽑으란 말이오이까?》
《그렇소!》
《그럼… 약은, 무슨 약을 쓰면서…》
리제마는 손을 내저었다.
《약은 소용없소. 약은 강냉이그루터기속에 들어있소. 그걸 쉰포기씩 뽑느라면 강냉이뿌리속의 약기운이 몸에 스며들게 되여 병에 차도가 생기니 살려면 꼭 해야 하오.》
《궁도련님》은 더 크게 눈을 뜨고 리제마를 쳐다보았다.
《그게 정말이오이까?》
리제마는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봄내 여름내 강냉이가 빨아들인 <기>는 그루터기에 쌓이게 되오. 그게 귀한 약인줄 사람들이 모를뿐이지. 보름동안 해보고 다시 오시오.》
《궁도련님》은 명약대신 강냉이그루터기를 뽑을 일거리만 한아름 받아안았으나 기세충천하여 돌아갔다.
리제마는 그의 뒤에 대고 다시한번 을러멨다.
《단 하루만이라도 게을리했다간 10년공부 나무아미타불로 된다는걸 명심하시오.》
그로부터 보름후.
《궁도련님》은 하인들에게 음식과 천필을 잔뜩 지워가지고 리제마를 찾아왔다.
글방에서 학도들에게 의술을 가르치던 리제마는 잠시 휴식을 선포하고 《궁도련님》을 안으로 불러들였다.
학도들은 글방에 들어서는 《궁도련님》을 보고 다들 놀라워하였다.
병색이 짙었던 《궁도련님》의 얼굴에 혈색이 어리고 온몸에서 힘이 넘쳐나보여서였다.
리제마는 수염을 내리쓸며 물었다.
《그래, 그 처방이 효험이 있었소?》
《궁도련님》은 얼굴이 환해져서 대꾸했다.
《여부가 있소이까?!》
《궁도련님》은 성수가 나서 말하였다.
《소인은 돈도 들이지 않는 일인데 한번 속는셈 치고 해보자는 생각으로 이튿날부터 강냉이그루터기를 뽑기 시작했소이다.
그런데 조화는 조화였소이다. 아침마다 해뜰무렵에 밭에 나가 강냉이그루터기를 쉰포기씩 뽑기 시작한지 닷새만에 먹은것이 쑥쑥 내려가고 트직한감도 없어지고 열흘째 되는 날에는 배가 막 출출해지겠지요. 어찌나 밥맛이 당기는지… 그 이후로부터는 밥을 먹어도 탈이 나지 않고 대소변도 시원하게 잘 나가고 잠도 잘 오고…
소인은 강냉이그루터기에 신통한 약기운이 있다는걸 진짜 깨달았소이다.》
리제마는 빙그레 웃으며 응수했다.
《그래서 인사턱을 내자고 찾아왔겠소?》
《궁도련님》은 벙글벙글 웃으며 대꾸했다.
《거야 뭐, 하여간 강냉이그루터기를 뽑고 병이 나았으니… 그야말로 신묘한 처방이 아니겠소이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오?》
《그러문요. 10년 묵은 위탈이 보름동안에 씻은듯 낫지 않았소이까.》 …
《궁도련님》이 돌아가자 민성이 리제마에게 물었다.
《아버님! 아침에 해뜰무렵이면 정말 강냉이그루터기에서 약기운이 나오이까?》
리제마는 껄껄 웃었다.
《강냉이그루터기에서 무슨 약기운이 나오겠느냐?》
민성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럼 강냉이그루터기를 뽑는 놀음이 어떻게 위탈을 낫게 했소이까?》
리제마는 더 크게 웃었다.
《그 리유는 다른데 있는것이 아니다.
새벽부터 들에 나가 부지런히 일하는 농사군들에게 속탈이 없듯이 그들처럼 몸을 움직여서 일을 하면 병이 나을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처방을 내렸던게다.
사람들에겐 일이 만병을 다스리는 명약이란다.》
《아버님도 참…》
민성은 깨도가 되여 함뿍 웃음을 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