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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1879년 가을이 왔다.
리제마는 그동안을 청나라의 도읍인 연경(베이징)에 머무르고 있었다.
리제마는 3년전 박규수가 청나라 례부시랑에게 써준 소개신을 가지고 그를 찾아갔었다. 소개신을 펼쳐본 례부시랑은 몹시 기뻐하면서 정양문근처의 건어호동에 있는 조선관의 곁에 리제마의 거처지를 잡아주었다.
조선관은 연경을 찾아오는 조선의 사절들이 드는 객관이였다.
연경에서의 3년은 리제마에게 있어서 배움의 길이라기보다 자기 나라 의술에 대한 긍지와 믿음을 굳게 한 나날이라고 할수 있었다.
물론 3년세월 리제마는 4상의술에 도움이 될수 있는 비방을 알아내려고 동서고금의 의서들을 수많이 읽었다.
례부시랑은 의서들을 보았으면 하는 리제마의 청을 쾌히 수락하고 력대의 도서들을 모아둔 문연각은 물론 여러곳에 비치해둔 의서들도 볼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 많은 의서들중에서 사람의 체질에 대하여 서술한 책은 《황제내경》이였다. 그 책을 청나라사람들은 《중국의 보배》라고 하였다.
《황제내경》은 중국의 춘추전국시기(B. C. 770-221년)에 숱한 의원들이 달라붙어 쓰고 그후(B. C. 26년)에 출판한 의서인데 바로 그 책에 사람의 체질에 대한 구절이 있었다.
그것을 찾아보았을 때 리제마는 눈이 번쩍 띄였다.
허나 몇줄 읽어내려가던 리제마는 실망감을 금치 못하였다.
그 책에서는 사람의 체질을 다섯가지로 나누었는데 그나마 겉생김에 따라 나누었을뿐이였다.
하긴 옛적 의원들이 사람들의 체질을 그 정도나마 갈라놓은것도 놀라운 일이였다.
청나라의원들은 사실상 사람의 체질을 가르고 그에 맞게 약을 쓴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도리머리를 하였다.
그러니 그것을 생각하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은 리제마 자기뿐임을 확인한것이나 다름없었다.
리제마는 연경에 머무르는 기간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었다.
때로는 침으로, 때로는 뜸과 부항으로 병자들의 병을 다스리였는데 특히 그가 지어주는 약을 받아먹은 사람들은 이 약이야말로 죽어가던 사람도 살릴수 있는 명약중의 명약이라고 놀라워하였다. 그리고 그 비방을 몹시 알고싶어하였다.
그때마다 리제마는 단마디로 대답하군 하였다.
《병은 체질에 맞게 다스려야 합니다.》
리제마가 지은 약은 어느것이나 병자의 체질을 보고 그에 맞게, 말하자면 4상의술로 지은 약이니 쓰는족족 약효가 나타났다.
청나라사람들은 리제마의 의술을 가리켜 《조의》(조선의술)라 하면서 무척 신비스러워하였다.
리제마는 많은 청나라사람들과 친교도 맺었다. 그들속에는 청나라조정의 리부에서 시랑이라는 권세있는 관직을 지닌 벼슬아치도 있었다.
청나라조정의 문관들을 떼고붙이는 자리에 앉아있는 리부시랑이 오늘 저녁 리제마를 자기 집으로 청하였다.
리부시랑으로 말하면 청나라의원들이 고칠 가망이 없다고, 앞으로 몇달 더 살지 못한다고 도리머리를 하고 나앉은 병자였다.
그는 리제마가 지어주는 약을 몇달 쓰고는 죽은것이 아니라 병이 뚝 떨어졌다.
하여 그는 리제마를 생명의 은인으로 천하명의로 공경하는터였다.
의봉이 견마를 잡은 말을 타고 리제마는 력대로 황제들이 하늘에 대고 제사를 지낸다는 천단의 근처에 있는 리부시랑의 집을 찾아갔다.
리부시랑은 풍성한 음식상을 차려놓고 리제마를 맞이하였다.
리제마가 술좌석에 앉아 술 몇잔을 받아마셨는데 리부시랑이 만면에 웃음을 짓고 말했다.
《요즘 온 북경장안에 조선명의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오. 글쎄, 조선명의가 마술을 쓴다고 하오. 게다가 천민일지라도 차별없이 대해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선 돈도 받지 않고 병을 고쳐주니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은인이라는거요.
리공! 아니, 조선의원! 내 직판으로 청하는데 집안식솔들을 아예 여기로 데려오오.》
리제마는 어이가 없어 웃고말았다.
그랬더니 리부시랑은 더욱 열이 나서 말하였다.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요. 우리 조정도 인재를 중히 여긴다오. 그대같이 문무에다 누구도 견줄수 없는 의술을 지닌 재사가 다른 나라에서 산다는건 참 아쉬운 일이요.》
리제마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핑그르르 고여올랐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에서였다.
정들면 고국이라…
그렇다면 자기를 알아주고 받아주워 내세워주려는 품이 있다면 그 품에 정을 주고 고국이라 따르라는 뜻이 아닌가.
고국이란 무엇인가. 대대로 선조들이 묻히였고 자자손손 그분들의 넋이 이어오는 땅, 처자들의 숨결이 있는 땅이 분명 고국일진대 어떻게 이 세상에 그것과 대비할 정줄 땅이 또 있단 말인가.
정도 하나이듯 마음도 하나, 목숨도 하나이며 그 목숨을 준 고국도 하나인것이다.
하기에 사람들은 누구나 나서자란 고국을 못 잊어하는것이며 죽어서도 그 땅에 묻히려 하는것이다.
그렇다. 고국이 나를 헐뜯고 풍상고초를 들씌우다못해 목을 치려 한다 해도 나는 선조들의 혼이 있는 그 땅에 뜻을 묻으러 웃으며 갈것이다.
리제마가 고국을 멀리 떠나온것은 4상의술을 더욱 련마하고저함만 아니라 자기를 해치려 하는 민겸호의 검은 마수를 일시 피하려는데도 있었다.
그동안 여러해가 흘렀으니 민겸호의 속도 얼마간 가라앉았을것이다.
리제마는 숙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고맙소이다. 허지만 나의 마음속에는 자나깨나 내 나라 백성들에 대한 근심으로 꽉 차있소이다. 내가 연경에 찾아온것은 무슨 재물이나 벼슬을 바래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체질에 맞는 의술을 다지려 해서였소이다. 난 자기 나라, 자기 겨레를 떠난 의술을 바라지 않소이다.》
리부시랑은 리제마의 손을 꼭 부여잡았다.
《아! 내 감동되였소. 그대야말로 진짜 의로운 애국충신이요!》
《…》
거처지로 돌아오니 을순이 방금전 고국사신단의 한사람이 주고 갔다면서 글월을 내보였다.
황도연이 써보낸 글월이였다.
급히 글월을 펼쳐드니 함흥과 이웃한 홍원고을에다 학당을 마련해놓겠으니 어서 귀국하라는 반가운 소식이 적혀있었다.
지난해 리제마는 연경을 찾아와서 조선관에 든 고국사신단의 서장관에게 황도연에게 보내는 글월을 부탁했었다.
글월에서 리제마는 이제는 고국에 나가 후진을 키우는 일을 하고싶은데 도움을 달라고 하였다.
그 청을 황도연이 들어준것이였다.